이 책을 읽고 싶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괜찮은 척하고 있지만 아직은 투병 및 간병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고 반찬값도 벌어야 해서 넋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 수업 노동을 하는 중이기도 하다. 글을 쓸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뜻. 그리고 이어질 글이 엄청 후질 수 있다는 변명이기도 하다.

 

독립서점 때문에 인스타를 하던 중 최초딩 님을 팔로우 하게 되었다. 초딩님의 절절한 간병기에 내 모습이 겹쳐졌다. 그리고 이 글을 쓰지 마시고 조금이라도 더 주무시면 좋겠다, 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잘 안다. 쪽잠보다는 때로는 그런 토로가 살아가는 힘이 될 수도 있지.

 

힘들던 어느 날 나 역시 전원기라는 긴 글을 썼다. 누군가에게 보일 기회가 있어서 보여드리고 혹독한 평?(이런 류의 글은 너무나 흔하다)을 받기도 했지만, 적막한 서재에 먼지를 떠는 기분으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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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기 1

 

 

어릴 때 즐겨보던 전원 일기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전원이라는 낱말을 들으면 누군가는 한가로운 자연을 떠올릴 것이다. 나 역시 예전에는 그러했다. 그러나 엄마가 자주 그리고 오래 편찮으시게 된 이후로는 전원(병원을 옮김)’은 나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낱말이 되었다.

    

 

2월 말 평안한 주말 저녁 엄마가 계시는 요양병원에서 다급하게 보호자를 찾았다. 스마트폰 스피커폰 너머로 익숙한 담당 간호사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있으며 모든 생체 징후 수치들이 좋지 않다면서 대형 병원으로 응급실로 급히 옮겨야 한다고 하셨다. 코로나 19가 점차 팬데믹화되며 맹렬히 세를 확장하던 때로 요양병원에서도 면회를 금지하여 근 한 달을 엄마를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일단 부평구에 사는 여동생이 엄마를 구로구의 요양병원에서 부천성모병원 응급실로 급히 옮겼다. 경기도 광주도 아닌 광주광역시에 사는 우리 가족은 급히 야밤에 고속도로를 탔다. 임종을 못 지킬 수도 있다는 생각에 눈물만 그저 흘렀다.

 

병원에 도착하자 보호자 1인 외에 다른 가족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해서 여동생과 우리아이들, 남편을 돌려보내고 나홀로 응급실에 남았다. 응급실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환자들이 코로나 19 검사를 받아야 해서 기도삽관을 한 채 고통스러워 하는 엄마와 응급실에 남았다.

 

급하게 따뜻한 남쪽에서 추운 윗지방으로 온 것이라 그런지 2월 말 응급실은 춥고 적막했다. 응급의학과 교수님이 계속 엄마만 주시하셨고 전광판에 위중한 환자임을 알리는 표식이 되어 있었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 잘 지내는 편이시라는 이야기만 들어서 마르고 욕창이 생긴데다 이렇게 급성 폐색전증으로 기도삽관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계속 눈물이 흐르고 심장이 조이는 듯 아파왔다. 간만에 본 엄마는 몹시 마르고 온 피부가 버짐같은 것으로 덮여 있었다. 기도삽관의 고통이 엄청나 계속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온몸을 뒤틀고 계셨다. 그간 여러 힘든 모습을 보아왔지만 단연코 이번이 제일 고통스러워보였다.

 

다음날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코로나 음성이라는 결과가 나와 엄마는 중환자실로 가시게 되었다. 사실 2년 전에도 중환자실에 며칠 계셨던 터라 이번에도 꼭 회복하실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아니 이제는 솔직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어느 정도는 어머니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했다.

 

내가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누구와 통화를 했는지도 부끄럽지만 밝혀본다. 

 

그 기간에 나는 최근에 상을 치른 친구들에게 전화해 장례식장은 어떻게 알아보고 부고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집요하게 캐물었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무심한 친구였던 내게 어릴 적 친구였던 남사친들은 친절하고 상세하게 자신들의 부모님의 투병기와 장례절차를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성당 친구들이지만 장례는 일반 식장에서 했고, 장례식장 메뉴 중에 뺄 것이 많다는 팁을 주었다. 특히 전이나 떡이 많이 남아 버리니 많이 하지 말라고 했다. 수량 체크 잘하라는 것은 기본. 장례 절차를 적어둔 블로그를 열어 노잣돈 많이 넣어봐야 중간에 슬쩍 사라지니 부모님 노잣돈이나 금붙이를 함께 묻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글까지 읽고 있었다.

 

장례 절차만 읽다가 이러다 진짜 이상해질 듯해서 폐색전증 치료와 예후에 대해 읽어보았다. 김대중 대통령도 생의 말기에 걸린 적이 있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누워만 계시다 혈전이 생겨 여기저기 혈관을 막기도 하는 병이라고 한다. 엄마의 경우 혈전이 폐로 가는 곳을 막아 폐색전증이 된 것이다. 치료가 아주 어렵지는 않지만 재발이 잦다고 하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이 되지 않아 막막했다. 정겹게 손을 잡고 이런저런 검사실 복도를 다니는 어르신들과 홀로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엄마가 대비되어 그저 눈물만 흘렀다. 코로나 시국인지라 항상 마스크를 쓰게 되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와중에도 생각은 돌고돌아 이 시국에 진짜 가시면 엄마가 너무 쓸쓸하실 것 같다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동안 엄마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한 것에 대해 관용구로 뼈에 사무칠 정도로 회한이 들었다. 진짜로 종아리 뒷편이 당기고 머리가 울렸다. 접수처며 검사실이며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잠을 못자고 울었으니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이러다가 진짜 돌아가시면 책에 나오는 대로 하늘이 무너질듯하겠지. 하지만 곧 이어 천만 원이 넘는다는 장례비와 코로나도 오지 못할 조문객들 생각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중환자실 앞에서 대기하니 주치의 선생님이 나오셔서 엄마 상태를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2년 전과 달리 코로나로 가족도 중환자실 면회 시간에 면회할 수 없다며 돌아가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하릴없이 동생 집에 가니 아이들은 아무 생각없이 휴대폰을 보거나 아주 어린 이종사촌과 놀아주고 있었다. 꼬박 하룻밤을 응급실에서 지새운 탓인지 일찍 잠이 들어 새벽에 잠이 깨어 6시에 무작정 부천성모병원으로 향했다. 면회도 되지 않는 중환자실 앞에서 8시경이 되니 교수님과 회진을 도는 무리들이 보였다.

 

뒤이어 한 떼의 대가족이 손수건을 손에 들고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어제 간신히 막아두었던 눈물샘이 다시 터지면서 그 가족들 곁에서 먼 친척이라도 되는 양 함께 울게 되었다. 몇 분 후 중환자실 문이 열리고, 진짜 임종하실 것 같다고 들어오라고 하셨다, 그때 중환자실 너머에 계시던 우리 엄마 담당 간호사님이 예외적으로 나도 잠시 엄마를 보고 가도 된다고 하셨다. 명부를 작성하고 손을 소독하고 엄마 병상으로 향했다. 기도에서 관을 제거한 상태로 산소마스크를 쓰고 계셨고 이틀 전과는 달리 표정에도 한결 생기가 돌았다.

 

좀 어떠시냐는 나의 첫 질문에 우리 엄마의 첫 대답은 상상을 초월했다.

여기 성모 의사들이 핸섬하고 젠틀하잖아. 좋아.”

그 순간 안도하면서도 아득해졌다. 진짜 사고뭉치 우리 엄마로 돌아온 거 맞네.

 

밖에서 마음 졸일 가족들이 걱정되어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이대는 진상짓을 나도 모르게 했지만 찍은 2초간의 영상을 삭제하지 않아도 되니(의료진은 엄마가 찍힌 자체를 모르고 계셨다. 급하게 제지하셨고 나도 사과를 했다) 안도감이 들었다. 걱정하시는 이모님들과 여동생에게 전송하고 버스를 탔다.

 

환승하는 지점에 마침 버거킹이 있어 아이들에게 줄 햄버거와 음료를 사서 버스에 올랐다. 내릴 때 여러 짐을 허둥지둥 챙기다가 그만 콜라를 쏟아버렸다. 아저씨의 지청구를 뒤로 하고 내리면서 얼른 아이들 먹여서 진짜 우리집으로 다시 갈 궁리만 했다. ‘이제 얼른 버거를 먹이고 콜택시를 부르고 고속버스 뒷좌석을 앱으로 예매하면 10프로 싸니 얼른 해야 되겠지. 아차차. 마스크도 더 사야 하는데 신애한테 얻어야지

 

버거를 나누어주고 다 먹을 시간이 없어 밖으로 무작정 나왔다. 코로나 19로 고속도 하루에 두 번 다니고 콜택시 전화도 연결이 안 되어 간신히 차를 잡아타고 아슬아슬하게 세 식구가 고속버스에 올랐다. 두 번 다시 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이상하게 엄마가 편찮으셔서 친정동네에 오면 두 번 다시 집에 못갈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한다) 버스를 잡아타고 나니 맥이 풀렸다.

 

나의 며칠간의 행적을 더듬으니 한없이 창피해서 누군가에게 언젠가 이야기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는 집에 와서 동생에게 마구 떠들어댔다. 내 수준이 이렇군, 하는 생각에 허탈해서 웃었다.

 

그렇지만 헛헛한 웃음도 오래가지 않았고 미간에 다시 주름을 만들게 되었다.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와 일반 병실로 가실지 또 그곳에서는 어느 병원으로 옮길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단 한 가지 이상한 확신이 나를 감쌌다. 우리 엄마 아직은 그래도 가시지 않을 거야. 안도되면서 두려운 이 감정 누가 또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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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고단한 일정을 마치고 어제는 간만에 단잠을 잤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은 오래 전에 감명 깊게 읽은 책인데, 어제야 비로소 실천을 했다.

 

엄마 병원에 계신 동안에 집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보관 이사를 신청하면서 무시무시한 잡동사니 더미와 마주했다. 

 

남편의 이동 때문에 이사를 여섯 번이나 다녔지만 어제 이사가 제일 힘들었다.

 

이 나이 먹어서 똥멍청이 짓을 한 탓인데 급하게 업체를 알아보고 사무실 말만 믿고 신청했더니 반포장 이사였다.

 

싸게 견적받았다고 좋아한 바보.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엇이든 가격만큼 하는 것이다. 싸고 편한 것이란 없다. 

 

주방이모님도 오지 않고 아저씨 두 분뿐이어서 내가 거의 이사업체 이모님처럼 일했다. 그 좁은 집에 두 대나 있는 엄마의 냉장고는 엄청났다. 깊이가 엄청난 옛날 냉장고와 작년에 새로 들인 김치냉장고에 있는 엄청난 양의 김치와 종류별로 썩은 과일들, 각종 양념, 여러 가지 담금 액체류를 버리는데 너무나 힘이들었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도 엄청 들었다.

 

그러고 나서 씽크대 상하부에 묵은 옛날 그릇을 전부 버렸다. 저장 강박이 있는 엄마는 밀가루도 몇 포대, 엄청난 장류, 다시마, 미역, 말린나물 등 끝도 없이 뭔가를 모아두셨다. 화를 낼 기력도 없이 기계적으로 일했다.

 

그리고 내가 결혼하기 전에 쓰던 작은 방에 있던 책장 하나분의 책들을 거의 전부 버렸다. 알라딘 중고로 팔 것을 분류할 기력도 없어 그냥 다 버렸고, 오래된 테이프(이런 게 아직 있다니!)나 씨디들도 거의 다 버렸다.

 

엄마의 이불과 옷도 엄청났지만 그건 건드리지 않았다.

 

하나 살 때 품질 좋고 비싼 제대로 된 걸 사기보다는 그때그때 싸고 편한 것을 구매하는 엄마가 안타깝지만 불안정한 소득 때문에 생긴 오랜 버릇이라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이다. 숱하게 싸우고 좋은 걸로 사드리기도 하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내가 선택해서 그때그때 사들이는 기쁨을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니.

 

그래도 다이소(진짜 싫은 다있소!)에서 기분대로 산 여러 플라스틱 류에는 진짜 한숨이 나오고 여기서 생활비가 줄줄 샜다는 생각에 화가 났지만 편찮으신 분이니 어떻게 해볼 노릇이 없는 일이다. 병원에 입원한 동안 늘 해온 일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아저씨들도 나중에는 내 사정을 딱하게 여기며 반포장인데도 쓰레기도 다 내려주시고 많이 도와주시고 가셨다. 내려가서 경비 아저씨한테 엄청 버렸다고 한소리 듣고 대형폐기물 처리하고 동생이 와서 마저 정리했다.

 

다음은 인테리어 업체와 미팅이 있었다. 블로그에서 본 업체는 디자인이 좋았지만 예산을 엄청 초과해서 그냥 집앞 상가에 맡기기로 했다. 오랫동안 소형 평수 전문으로 하셨고 연세가 있어 감각적이진 않지만 소박하고 실용적으로 잘 바꿔주시리라 믿고 계약했다. 이러면 될 것을.

 

블로그 여러 개 보고 찾아가고 고생한 게 아깝다. 특히 집닥이나 숨고 같은 앱에서 견적 받아 엄청난 전화 공세에 시달린 게 바보 짓이었다. 힘든 때에는 뭐든지 편하고 단순하게.

 

이제 병원에서 퇴원하시면 고친 집에 살게 되실지 고친 집을 세를 주고 광주로 내려와 사시게 될지 아니면 다른 기관을 알아봐야 할지 모르는 일이다.

 

이 책들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한 여자>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 로 시작되는 이야기.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면서도 딸은 남부럽지 않은 교육을 받게 하고 그 딸이 꿈을 펼치도록 살림을 맡아 해주기도 했지만 결국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은 어머니를 회상하는 책이다.

 

나는 내 딸이 행복해지라고 뭐든지 했어.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걔가 더 행복한 것은 아니었지.

102쪽 

 

정말 그랬다.

어딘가 영화 <보이후드>를 떠올리게 하는 구절이다.

 

 

<나의 엄마 시즈코 상>

사노 요코의 어머님도 모진 삶을 살아내셨다. 이 책에도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낸 후의 죄책감, 회한 등이 그려진다.

 

왜 엄마와 딸들은 서로 애써 노력하는데도 종국에는 이런 관계에 놓이게 되는 것일까?

 

혈육이란 몰라도 되는 것까지 알게 하는 집단이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샅샅이 알기에 잔인해질 수 있고, 가장 가까운 집단이다 보니 알 게 모르게 실망과 상처를 주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228쪽

 

옮긴이의 말에 나오는 구절도 공감이 간다. 진짜 엄마랑 있다보면 내 바닥을 보일 때가 많다.

 

 

*

<나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는 오며 가며 읽으려고 했는데 머릿속이 복잡해 많이 읽지는 못했다. 생각보다 분량이 많이 적어 아쉽다.

 

 

 

 

 

 

 

 

 

 

 

 

 

 

 

 

 

 

집 비우는 동안 애들 보라고 주문했는데 ㅜ.ㅠ

책은 안 보고 안 봐도 그냥 유튜브다.

 

딸은 <수화 배우는 만화>에 나오는 오빠라는 표현의 손동작이 법규랑 비슷하다며 좋아했다.

 

꼭 오빠를 수화로 부르겠다고.

 

*

 

오며 가며 휴게소에 들러도 점포들도 편의점말고는 거의 문을 닫았고, 이용객도 거의 없었다.

이 시국에 이동할 일들이 자꾸 생기니 큰일이다.

 

개학이 언제 될지도 알 수 없고

어서 진정되면 좋으련만.

 

이렇게 자가 격리, 강제 휴식하는 동안 열심히 집에서 비울 것 비우고 나눔하며 보내봐야겠다.

 

 

*

 

미사를 못 드리니 이렇게라도  

 

 

하느님 아버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부터

저희를 보호해주시길 청하며 당신께 나아갑니다.

 

이 질병의 성격과 원인을 연구하며

더 이상 전염되지 않도록 분투하고 있는

이들을 위한 당신의 도우심을 청합니다.

 

의료진들이 환자들을 잘 돌볼 수 있도록

능력과 연민을 더해주시고,

정부와 담당자들이 치료 방법과

이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찾도록,

이들의 마음과 손길에 함께해 주십시오.

 

또한 이 질병으로부터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의 쾌유를 위해 기도드리며,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해 일하고

특별히 곤경 중에 있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은총을 저희에게 내려주시길 간구합니다.

 

성부와 성령과 함께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 모든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마리아,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대천사 라파엘,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Oratio Imperata" (2020년 1월 29일, 필리핀 주교회의) PRAYER FOR PROTECTION against the spread of N-CORONAVIRUS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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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어딘가를 오고 갈 때 꼭 이 잡지들을 사서 읽고 다니셨다.

 

사회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명사들과 평범한 소시민의 글이 교차 편집되는 구성을 하고 있다. 

 

두 잡지의 성격이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한결같이 '감사'나 '봉사' 같은, 개인이나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나에게는 그리 와닿지 않는 가치와 논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지하철 역사 게시판에 짧게 올라오는 글들 혹은 교회나 성당의 주보에서 볼 수 있는 글들이 많지만 소박한 삶 속에 성찰이 보이는 글도 있고 진짜로 힘겨운 어느 날에는 아, 그 잡지에서 본대로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잠시 먹은 적도 있다.

 

푸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같은 옛날 연습장에 조잡한 글씨체로 적힌 그 구절같이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날도 있다.

 

이렇게 단정한 잡지들을 들고 다녔던 엄마의 실제 생각과 말투는 이 잡지들의 논조와는 달랐다.

 

마음에 안 드는 딸들의 행실에 분개하여 말다툼 끝에는 내가 다시는 여기 오나봐라, 내가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ㄴ 등등 저주의 말들로 이별을 맞곤 했다.

 

아주 요즘말로 영혼이 탈탈 털려 기진해서 동생에게 하소연을 하다보면 우리 엄마는 안 어울리게 왜 저런 잡지들을 들고 다니는 걸까, 월간 <나쁜 생각>이나 <하수처리장> 이런 잡지 발행인 되어서 찰지게 사회와 딸들에 대한 불만을 욕쟁이 할머니 욕으로 랩하듯이 토로하면 될 텐데라고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기도 했다.

 

엄마가 다시 병원에 입원하셨고 코로나 19 사태로 언제 면회가 가능할지 알 수 없다. 간단한 간식과 두 잡지의 3월호를 큰글씨 판으로 사서 부쳐 드리고 싶다. 그리고 나도 잡지들을 새로 사서 정독해야겠다.

 

진짜 3월에는 감사하고 온유하게 살기로 다짐하며.

 

어제도 역시나 집 근처 학교에 면접을 가게 되었다. 인력시장 끝물이라서 시간강사뿐.

 

이 학교는 이 지역 전통을 자랑하는 지역 사학재단 중 하나로 특성화학교인데 대기 장소가 교내 카페이고 모르는 분이 커피도 내려주셔서 대기시간 중에 잘 마셨다.

 

면접장에 들어가니 진지하게 진짜로 이 자리 시간강사 자리인 줄 아느냐고 물으신다.

그리고 이 학교에 왜 지원하냐고 물으셨는데 엄마도 여상을 나오셨고 나 역시 그 옛날에 서울여상을 갈 뻔한 적이 있다는 답을 했다. 장황하고도 뜬금없는 TMI.

 

그냥 이 지역 취업 명문이자 진학 명문인 이곳의 교육환경을 경험해보고 싶었다고 짧게 말할 것을.

 

버스를 기다리다가 그냥 날이 좋아 걸었다. 코로나 19 영향인지 거리와 가게에 사람들이 진짜 드물었다.

 

집에 새로 필요한 가구가 있어 가구점에 들렀다가 가격에 크게 실망했다. 

 

당근마켓이나 뒤져보아야겠다.

 

그제인가는 딸아이 의자 바꾸고 남은 의자를 올렸다가 바로 팔아서 이 지역 말로 진짜 오졌다리.

이것저것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주소 묻고 에누리 같은 것도 없이 바로 사간 아저씨 리스펙.

 

나름대로 의자를 깨끗하게 썼고 다시 매직스펀지로 닦고 해서 팔았지만

의자구매자 아저씨가 부인에게 이 지역 최고가로 사왔냐고 한소리 듣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다.  나도 참 별 잔걱정이 많아 탈이다.     

 

 

 

 

 

 

 

 

 

 

 

 

 

 

 

 

 

코로나 19로 도서관도 오랫동안 휴관이라 있는 책들이나 다시 잘 읽어야겠다.

 

병원을 다니며 수면 패턴을 다시 잡는 중인데 여전히 많이 걷고 너무 일찍 잠들다 보니 새벽에 자꾸 깨게 된다. 스마트폰을 바닥에 진동으로 두고 새벽마다 일어나는 윗집 덕분에 강제 기상하게 되는 날도 많았다.

 

쉬는날이면 사람들 초대해 여러 집에서 모인 게 분명한 아이들은 마구 뛰고 부모들은 한켵에서 부어라 마셔라가 연상되는 윗집이 어제 이사를 나가서 수면의 질이 조금은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그리고 진부하지만 책에 나오는 대로 감사할 일들 찾기.

 

저녁에 어인 일인지 분리수거하러 나가고 싶어 나갔다가

중학교 가는 아들 자습서들 득템.

 

아이가 갈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는지 다행히도 출판사들이 꼭 맞아 좋았다. 역시 자유학기를 시행하는 1학년에는 자습서를 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불끈.

 

아들은 사실 문제집을 끝까지 푼 적이 거의 없고 딸에게 고이 물려주는 편이다.    

 

 

 

 

 

우리집도 <수학의 정석> 이렇게 쓸 판이다.

 

 

 

 

 

 

 

 

 

 

 

 

 

 

 

 

 

 

 

그래도 딸아이가 있으니 이 작품집은 구매해야겠다. 굽시니스트 팬인 아들이 몇 주 전에 이 책들을 사달라고 해서 사서  보여주는 중이다. 특유의 아재개그와 드립에 반해서 구석에서 깔깔거리며 보는 아들이 진짜 신기하다. 역사만 이렇게 좋아할 수 있는지.

 

날이 밝으면 올 시즌 마지막 면접을 보고 와서 엄마 병원에 계신 동안에 진행할 집 인테리어 일정을 짜야 한다.

 

보관이사 업체와 인테리어 업체를 선정하느라 전화 주고 받고 하다보니 한달치 말을 다한듯하다.

 

딸이 필통을 가지고 싶어 문제집들을 사달라고 했는데 아들이 물려준 문제집이 한 가득이라 금액을 채울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편집은 깔끔하지만 기본 내용이 아쉽다.

 

 

 

 

 

 

 

 

 

 

 

 

 

 

 

그냥 이런 구성으로 사야겠다.  

 

머릿속에 이런저런 일들로 가득 차 있는 이 시기이지만

어디까지나 좋은 생각 또 좋은 생각.

 

아니지 그보다는 생각을 비워내고 멍 때리며 자주 쉬고 또 쉬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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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뜻밖의 장소에서 읽고 싶은 책을 만나기도 한다. 

 

요며칠 여전히 서류 제출과 면접의 날을 보내고 있었다. 면접을 10시 반까지 오라고 해서 갔더니 지원자 전체를 부른데다가 다른 과목까지 섞어서 불러서 대기실이 인력시장 같았다. (사실 그렇지) 

 

대기실 한켵에 책이 꽂혀 있는데 의외로 읽을 만한 책이 가득했다. 특히 이 학교에 <정신병동 이야기>가 있어서 무지 반가웠다. 다른 지원자들이 흘끔거리는데도 불구하고 몰입해서 읽어나갔다. 이런 책은 도서관에 없는 경우가 많아서리.

 

책을 빨리 읽기는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내 차례가 거의 12시 가까워져 시작되어 한 시간 반이나 기다린 셈이 되어 거의 다 읽었다.

 

대개 지원자끼리 말을 섞지 않는 편인데 하도 오래 기다려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어떤 과목이시고 어디서 일을 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이 학교 성격상 인내심이 많아야 해서 그거 테스트 하느라 잡아두나보다 하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여기는 지원자들.

 

역시나 이번에도 내가 최고령인듯하고 나머지 분들은 이 학교 지원자들 중 유독 어린분들이 많았다. 경력단절 여성과 각 졸업한 무경력 청년 지원자들. 공통된 삶의 경험이 없지만 이 인력시장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야지.

 

대릴 커닝엄은 정신병동에서 근무했을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신병동 이야기>를 그렸다.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알고 두려워하는 질병에 대해 과학적 설명을 곁들이고 환자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 목적으로 썼다. 장을 마칠 때마다 각각의 정신질환에 대한 전문의의 간략한 소개가 이어진다.

 

양극성장애라고 하는 조울병, 과거 정신분열병으로 통했던 조현병, 치매, 우울증, 경계성 인격장애 등 살아가면서 한번은 들어보았으나 가족이나 내 자신이 걸리고 싶지 않은 그런 질병들이 소개된다.  

 

대릴 커닝엄이나 다른 전문의들이 말하듯이 정신질환자가 강력범죄를 일으키는 비율은 일반인이 강력범죄를 일으키는 비율보다 낮지만 그들이 워낙 눈에 띄고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평소 자주 해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강화된다.

 

일상에서도 자신에게 조금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정신병자'라고 하거나 나 '조증'이 올라오나봐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가까운 이들이 오래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것을 지켜보았다면 함부로 할 수 없는 말들이다. 그리고 유명인들 중에는 정신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창작 활동을 하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보려고 노력한 사람들도 꽤 많다.

 

치매의 여러 종류에 대해 소개하고 가족들이 어떻게 도울지 이야기한 부분이 좋았다. 망상을 보일 때 무조건 교정하려고 하지 말고 망상이 나타난 배경을 이해하고 참을성 있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가 가족들이 돈을 가져갔다고 의심한다면 화내지 말고 돈이 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식이면 된다.

 

어제야 알았는데 책을 너무 열심히 봐서 면접을 망쳤는지 그 학교는 잘 안 되었다.

 

우리네 헛짚는 면접살이

한 세상 걱정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래도 책 한 권은 건졌잖소. 우하하하핳

 

다행히 다른 중학교가 하나 되어서 시간표를 조정해서 다른 학교 하나만 더 되면 일년 농사는 어찌될듯하다.

 

 

 

 

 

 

 

 

 

 

 

 

 

 

면접 마치고 병원에 가느라 아이에게 도서관에 가 있으라고 했다.

이때 누군가가 반납해서 눈에 들어와 읽어내려간 책.

 

서현진 팬이지만 기간제 교사를 소재로 한 <블랙독>을 일부러 보지 않았는데 이 책은 어쩌다 읽게 되었다. 15년차 중등 기간제 선생님이 세월호 때 순직한 기간제 교사 분이 순직 인정을 받는데만 한참이 걸린 현실을 알리려고 쓰신 책이다.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지금은 집안사정상 전일로 매이면 안 되어서 수업노동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래도 학교에 내 자리라도 있던 시기의 일들이 그립고 부럽다.

 

익숙한 에피소드라서 그런지 술술 읽히면서도 어느 장에서는 막혔다.

 

그래도 대부분 잠시 있다가는 손님에게 친절하신 정규직 분이 더 많았는데 학생에게 받은 상처는 오래갔다.

 

당시에 동아리 축제 때 부스를 운영하던 중에 평소 좀 뺀질거렸던 친구가 부스 지키는 것을 이탈하고 다른 데로 놀러 가려고 했다. 아이들과 내가 뭐라고 힐난하자 난 내 시간 다 채우고 가는거다, 나도 기간제거덩.

 

놀라서 한동안 말을 잃고 대꾸를 못했다.

지금이라면 나는 기간은 잘 채우고 성실하게 일하는데 네가 이러면 시간 관념도 없고 일도 못하는 거야, 라고 웃으며 훈육했을 텐데.

 

저자의 문제의식에는 동의하지만 기간제교사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보다는 사학법이 개정되어 사학재단도 공동으로 임용을 치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난 이제 임용과는 인연이 없고 그저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혹여나 사립 선생님들도 많으실 테니 노파심에서 한 말씀. 모든 재단이 다 비리로 얼룩져서 친인척만 뽑는 것도 아니고 재단에 맞는 인력을 뽑는 것이니 현직에 계신 분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국민정서상 교사가 수업노동자라는 개념도 없고, 기간제 교사들의 처우 개선 문제가 나오면 늘 민이든 관이든 억울하면 임용 통과하든가로 일관한다.

 

교원수급정책 실패, 출산율 저하 그리고 고교학점제 등 다양한 교육정책 변화로 임용으로 인원을 충원하기보다는 계속 수업노동자가 수업의 많은 부분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현실인데 일반의 인식은 한참 떨어져서 그게 답답하다. 국가자격증도 있고 한번 계약하면 동일노동이거나 기피업무를 맡고 있는데도 실력 없는 잉여 취급하는 학부모나 관리자들이 종종 있다.

 

앞에서는 선생님은 기간제같지 않다는 요상한 칭찬을 하고 연말정산 기간에 모모는 6개월짜리였나 했던 어떤 감님도 기억에 남는다.

 

그래도 일부 아이들은 내가 어떤 신분이든 개의치 않고 다가와 쿠키도 주고 편지도 써주었다. 학교에는 참으로 다양한 아이들이 있어 미숙한 사람도 가끔 어떤 아이들에게는 간택받아 사랑받기도 한다.

 

*

 

면접 일정을 마치고 금요일 아침

비장하게 마스크로 무장하고 본가에 가는 버스에 올랐다. 

 

도착하여 힘들게 사설구급차를 불러 엄마를 다시 입원시켜드렸다. 작년 11월에 정형외과 통합간호병동에서 열흘 넘게 보내고 나서 다시 또 병원이라니 지긋지긋해 하시지만 연락도 안 되고 식사도 안 되어 할 수 없이 초강수로 입원을 했다.

 

여기저기 병원을 수배해 구로구의 한 병원으로 가는 길. 

이제 17개월이 된 조카가 손바닥보다 작은 마스크를 쓰고 함께 동행했다. 아기띠에 안겨 땀을 뻘뻘 흘리고 자는 모습을 보니 안스럽기만 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이 시국에 이 어린아이가 왠말이냐며 빨리 수속하고 가라고 하셨다. 면회는 가능한데 코로나 19로 당분간은 병실에 아무도 가볼 수가 없다고 하니 안타깝다.

 

늘 입원할 때면 애틋해하다가 퇴원하면 잘 못해드렸다.

이번에는 언제 퇴원할지도 기약이 없고.

 

집에 가서 대기하는데 다음날 두유를 주고 가야고 한다고 해서 지하철로 병원에 가는데

주말에 사람이 없어 앉아가다니 충격.

 

막차로 집에 도착하려고 하는데

기사님이 대구에서 온 신천지 환자가 유숙헤어 영풍문고점에서 쓰려져서 조선대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빨리 귀가하라고 안내방송을 하셨다.

 

내리니 방역복을 입은 분들이 있고

다들 바쁘게 택시를 잡아 타러 가는 손님들이 약간 있었다.

 

택시에서 내릴 때 기사님께 환자가 쓰러진 소풍 터미널에서 출발해 또 역시 환자가 쓰러진 유숙헤어에서 탔으니 기사님 여기저기 꼭 손소독제 쓰시라고 했다.

 

당분간은 미사 취소이니

이번 주일은 집에 콕 박혀서 밀린 예능이나 봐야겠다.

 

책이 있어 다행이라며 마무리는 예능이라니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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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려고 나는 이런 제목들의 책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는 것일까?

 

제목이 무시무시하지만 한번쯤 일독해보고 싶은 책들이다.

 

어제였는지 그제였는지 이런 시기의 어떤 날의 풍경.

 

원서를 내려고 들어보지도 못한 학교를 찾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도로명주소도 알고 구글 앱도 켰는데 길을 찾지 못하는 미스터리.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에게는 길을 잘 묻지 않는다. 언젠가 학교 근처에서 학생에게 길을 물었더니 귀에서 콩나물도 뽑지 않고 내 휴대폰을 가리킨 적이 있다. 

 

대개 길을 물을 때는 마스크 쓰고 목도리를 친친 감고 동네를 슬슬 다니시는 어르신에게 묻는 편이 낫다. 아니면 택배기사분들이 잘 알고 계신 때가 많다.

 

학교 근처에서 뱅뱅 돌다 근처 택배기사님에게 길을 묻고 그 방향으로 열심히 가는 중이었다. 빵빵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니 그분이 차에 타라고 하셨다. 죄송해서 망설이니 자기 이상한 사람 아니고 근처 가니 타라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무려 학교 안으로 데려다 주셨다. 멀리 교문이 보이기 시작하자 내려달라고 했는데 어차피 차를 돌려야 하니 괜찮다고 하시며 아이들 가르치기 힘들지 않냐고 하신다. 아마 내 서울말?을 듣고 새로운 부임지로 가는 교사라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친절에 감사하여 가방 안을 뒤지는데 거의 구비하고 다니는 마카다미아 초컬릿 하나 없어서 아쉬웠다.  

 

무사히 원서를 내고 전화벨이 울려서 받아보니 집에서 한참 먼 중학교에서 면접에 오라고 한다. 공립인 이 중학교는 면접 대상자를 선정한 지 두 시간만에 면접에 오라는 것이다. 아마도 열일 젖혀두고 올 의지가 투철한 사람만을 뽑겠다는 의지인 건지.

 

생각보다 환승버스가 일찍 와서 학교 근처 편의점에서 아메리카노를 샀다. 삼십 분 이상을 있어야 할듯해서 투 플러스 원으로 묶인 과자를 나중에 애들 주려고 여러 뭉치 샀다. 학교 앞의 테이블이 많은 생각보다 큰 편의점 안에 오후의 햇살이 스며들어 깜박 졸 수도 있었는데 흥미로운 사연이 들려와 잠이 깼다.

 

황혼 시기에 이르러 바람이 난 아버지 때문에 분노한 딸들과 사위가 엄마를 대동하고 늙은 상간녀의 가게를 찾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상간녀에게 무려 이천만 원이나 빌려준(아니 그냥 준) 상태이고 상간녀인 아줌마는 외로운 사람끼리 의지하는 것이라며 방패막을 굳게 친다. 상간녀의 아들 역시 사연을 보낸 이의 말에 따르면 너희들이 아버지를 얼마나 외롭게 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겠냐고 뻔뻔하게 항변한다. 

 

심각한 사연인데 딸이 이런 상간녀 모자의 행동에 화가 나서 너희 엄마는 꽃뱀이고 너는 그 뱀의 자식이라고 핏대를 올리는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피식해버렸다. 아르바이트 직원이 아닌 편의점 사장님이 분명한 아주머님도 나랑 같은 부분에서 빵.

 

분명히 내용은 엄청 슬프고 비참한데 역시 타인의 불행은 그저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니 이런 정도인 것인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노년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소송을 진행하고 상간녀 소송도 진행해서 이천만 원을 돌려받았고 딸들 근처?인지 딸들과 함께인지 아무튼 아버지와 떨어져  살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소송 과정에서 상간녀 아줌마가 너무 지쳐서인지 그 아줌마와도 헤어져서 쓸쓸하게 산다고. 반면 어머니는 한 딸은 약사이고 다른 딸들이나 사위도 유복하고 다감해서 힘들지만 비교적 잘 버티고 있다고 한다.

 

이후로 한 아가씨가 파혼한 사연을 이야기한다고 하는 부분에서 아쉽게도 학교에 면접보러 갈 시간이 되었다. 목소리도 낯설고 해서 어느 주파수의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모르겠지판 라디오판 사랑과 전쟁은 꽤 흥미율율했다.  

 

도착하니 방학 중의 한가한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또 무심한 척 소머즈급으로 엄청 귀기울여 들었다. 달리 이유가 없다. 그저 무료했으므로.

 

미취학 아동부터 초딩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를 기르는 서너 분의 선생님들이 방학중 육아의 고충에 대해 토로하고 있었다.

 

뒤이어 도착한 면접대상자 분과 어색한 미소를 주고 받고 내 차례가 되어 교장실에서 짧게 면접을 마치고 나왔다. 비슷비슷한 형식적인 질문이 오갔고 교감인 듯한 분이 대뜸 원서를 몇 장이나 내셨냐고 온다고 하시고는 못 오면 곤란하다고 희망 고문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다. 살짝 기대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내 뒷 번호분이 워낙에 포쓰가 있어 보여서 큰 기대는 하지 않은 터였다.

 

면접을 마치고 집에 갈 시간을 계산하니 밥하기에 빠듯 밥도 하기 귀찮아서 미리 치킨 체인에 전화를 해두었다. 배다른민족 등 어플사용에 반감이 있어 그런지 서툴러 늘 전화를 하는 편이다.

 

정류장 근처 시장에서 귤과 내일 저녁에 먹일 목살, 가래떡 등등 아이들이 좋아할 먹거리를 사고 가방을 푸니 애들이 엄청 좋아한다. 가방 안에 아까 편의점에 산 과자까지 들어 있고 곧 취킨이 온다는 소식에 애들이 일제히 열광한다. 조삼모사 원숭이들같이.   

 

아침에 돌려둔 빨래를 깜박하고 널지 않아 널고 아이들끼리 점심 먹고 치우지 않은 것들 설거지하고 동생 전화를 받았다.

 

거의 일주일? 열흘간을 엄마가 전화도 받지 않고 식사도 하지 않아 입원이 필요한 시기인듯.

 

예상했던 패턴이기에 며칠 전에 미리 병원에 예약도 해두었는데 사실 그날 가봐야 아는 일이라서 갑갑하기만 했다.

치킨이 와서 애들과 <검사내전>을 다시보기로 보았다.

 

 

 

 

 

 

 

 

 

 

 

 

 

 

 

 

 

진짜 뜬금없이 4학년 딸아이 꿈이 검사여서 보기 시작했는데 저자의 현재 근황이나 검찰의 현실과는 별개로 나름 볼 만하다.

 

검사 미화가 양념같이 있지만 범죄와 수사, 재판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이 흥미로워 현실 도피하기엔 딱이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고 반장 모임에서 가끔 본 친구가 드라마의 배경인 통영에서 검사로 있던 적이 있다고 하자 딸이 놀란다.

 

엄마는 왜 그런데 공부 잘했다며 법대 갈 생각은 안 했어?

그러게 말이다. 중학교 때까지는 나도 사실은 막연하게 법조인이 꿈이기는 했다. 아버지의 죽음이 미제 사건으로 남아 파헤쳐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실은 모든 죽음이 약간은 미제 사건일 수도......

모든 죽음은 실제 알려진 것과 많이 다르기도 하다.

 

황당한 에피소드에 깔깔 웃고 치우고 나서 핸드폰을 보니 그날 무려 10891보나 걸었다고.

이 시기에 뚜벅이인 나는 만보 선생이 되곤 한다.

어제는 엄마가 치료받고  광주로 내려오시면 살 집을 보러다니느라 거의 또 만보를 찍었다.

그래도 살은 빠지지 않는다는.

 

다음날 아침에 눈이 하도 빡빡해서 눈 온찜질팩을 했더니 진짜 포근했다. 

금요일에 본가 가는 버스 타기 전에 하나 사서 챙겨서 숙면을 취하며 집에 가야겠다.

 

 

*

 

참참,

 

월요일에는 눈구경 한번 못했던 이 남도에도 대설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눈이 많이 와서 단지 근처와 공원에 눈이 쌓여 딸아이가 무척 좋아했다.

 

 

 

 

 

 

 

 

 

 

 

 

 

 

 

 

 

지난 겨울에 아껴가며 읽었던 에세이들

다시 꺼내보고 눈팩 수면안대 챙겨서 가야지

 

본가 가면 진짜 또 본격적인 간병? 투병이 시작될 예정이니 다시 마음 단단하게 먹고.

부디 엄마가 그날까지 잘 버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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