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큼 책을 안, 못 읽은 해는 살면서 드물었던 것 같다.
넷플릭스 때문인지 줄곧 영상에 빠져 살았다. 아니, 넷플은 죄가 없지 그냥 아무 생각하고 싶지 않아 영상의 늪에만 빠져 들었다.
처음에 장르물로 유명한 <비밀의 숲>으로 시작.
3일 밤 정도를 투자해 순식간에 다 보았다. 원래부터 조승우, 배두나 팬이었고, 큰 기대 없이 보기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도서관에 가서 대본집도 빌려보았다. 조승우의 대본집과 미묘하게 다른 대사 톤에 반해서 다 보고 나서는 유튜브에 빠져 살았다.
이렇듯 뒷북은 뒤늦게 한번 울리면 정말 무섭다. 다루는 악기 하나 없다고 생각했는데 뒷북은 그냥 실용음악과 수준으로 치는구나.
사실 상황이나 대사들은 절묘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한참 개연성이 떨어졌다. 정의를 증명하기 위해 더 큰 부정을 저지른 게 되어서.
다만, 배우들의 엄청난 호연이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었다. 특히 조승우가 맡은 황시목이라는 캐릭터는 전무후무한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이성적이고 냉철하고 일처리를 잘하지만 뇌수술로 감정을 잃어 다른사람의 희노애락에 공감할 수 없다. 이런 황시목이 주변 인물들과 부딪히는 상황들이 매번 큰 웃음을 주었다.
조승우가 주변 인물들에게 팩폭하는 장면만 편집한 '지옥에서 온 주둥아리' 영상을 보고 자주 웃었다.
웃을 일이 별로 없었고 특히 뭔가 혼자 웃어야 하는 상황에 큰 힘이 되어준 고마운 드라마.
그래서 비밀의 숲 2는 본방 사수
1편에도 그랬지만 작가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 초반에는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막판에는 조금 이야기에 힘이 실렸고,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었다. 이번 시즌에서는 조직이라는 괴물과 그 안에서 개인의 선택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
큰 조직에 속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힘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마저 동경하게 된다고나 할까. ㅋ
정경유착을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못했고 이번 시즌에 팬이 된 서동재 검사가 제대로 활약을 못해서 시즌 3도 기다려 보련다. 이준혁 배우는 아주 서동재로 개명을 해도 될 정도로 얄밉게 연기를 잘했다.
이 책은 읽지 않았지만, 관심은 있다.
비숲 중반에 전개가 답답할 때 본 드라마 <365> 원작이라고 한다. <365>는 이준혁 배우가 주연이라고 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김지수 배우 연기도 좋았고 주변 여러 인물들의 삶도 돌아볼 만했다.
시간을 과거로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보여주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신의 사고를 막거나 미래에서 취한 정보를 가지고 부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꼬여만 가고 결국 닥치지 않은 미래를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것만이 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름 반전의 반전이 있는 시간 보내기 좋은 작품이었다. 책은 어떨지 궁금하다.
드라마 <365>만 봤으면 좋았겠지만, 이준혁 배우가 나온 <60일, 지정생존자>까지 밤잠을 쪼개가며 봤다.
원작은 미국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의 상황으로 옮겨서 만든 작품인데 우리나라 상황에 어느 정도는 부합했다. 인물들을 보며 현실 정치의 누군가를 떠올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그 어느 인물도 현실 정치인과는 아주 같지 않고 어느 정도 이상향을 그렸다.
이준혁 배우 보려고 보기 시작했지만 대통령 유고 시 권한 대행으로 나온 지진희 배우는 역시 멋졌고, 청와대 주변 인물들도 흥미롭게 잘 봤다.
의외로 수트핏에 환장하는 엄청나게 스투핏 상태였던 내가 그저 시간 보내기 좋은 작품이었다고나 할까.
<연년세세>
몹시 기다렸던 정은 님의 신작.
아껴가며 다 읽고 나니 아쉽기도 하다. 그건 이미 읽어본 편이 있어서 그렇다는 뜻이다.
<파묘>를 보고 탄식. 아 읽은 거잖아.
더더 많은 신작을 원했어요. ㅜ.ㅠ
작가님은 전부터 가부장제가 가족과 한 개인에게 작동하는 방식을 그리고 싶다고 하셨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본주의와 결합한 가부장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한 개인의 삶을 논하려면 역사적 상황과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 전체를 조망하는 시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다만 장편이 아니기에 어느 장면 장면에만 주목해야 하는 정도에 그쳐 아쉽기도 하다.
그냥 잘 살기, 정도도 힘든 세대와 그 후손들의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수만은 없다고 끝없이 읊조리며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 가족들을 보았다.
외할머니, 엄마, 이모들 그리고 나, 여동생의 삶이 겹쳐진다.
<복자에게>는 단숨에 읽기는 했는데 법정물을 엄청 보고 난 다음이어서 그런지 많이 아쉽다.
주인공이 법조인인데 그 장점을 살릴 여지도 없이 조금은 사건 해결이 밋밋하다고 여긴 건 역시 내가 영상을 너무 봐서일까.
잘 알아볼 수 없어 몇 번이나 찾아본 제주 방언들과 고고리 섬에 대한 묘사들은 작가의 노력을 짐작케 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금희 작가님은 법조인이나 의사보다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인물들의 내면을 더 밀도 있게 그릴 수 있는 듯하다. 강연 자리에서 판사님들을 만나고 책을 읽고 자료 조사도 많이 하셨겠지만 읽는 내내 낯설었다. 금희 작가님 맞아요? 엉엉
역시나 기대 속에 펼쳐든 김연수 작가님 신작은 아직 다 읽지 못했다.
북한이 배경이니 뜬금없이 <헬로우, 평양>이 보고 싶어져서 보다가.
백석 시인의 안타까운 삶을 제대로 살핀 적이 없어 소설을 다 보고 평전도 챙겨보려고 한다.
소설에 자주 나오는이태준 생각이 나서 문장강화나 유명한 단편들말고 다른 작품도 보고 싶어졌다.
넷플과 비티비를 끊어야 가능한 일이다.
*
역시나 긴 연휴를 마치고 일을 가야 해서 그런지 새벽에 악몽을 꾸다가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꿈에서 엄마는 뜬금없이 진주의 어느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하고 낯선 사람들이 나에게 천문학적인 금액의 병원비를 청구했다.
그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엄마가 몇 군데 전원을 거듭하는 동안 동생이랑 내가 찾아오지 않아 무연고 처리로 홀로 병원을 옮겨다녔다며 주변에서 나를 질책하는 것이었다.
사실과는 다르지만 상황은 마찬가지라 눈물을 흘리며 꿈에서 깼다.
몇 달간 여러 병원을 전원을 거듭하다 지금은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 계시고 코로나와 이런저런 사정으로 거의 네 달을 못 보고 있다.
비가 지겹게 오던 여름엔 엄마 짐을 정리하여 다른 사람을 들이고 보니
이 가을에 방문할 본가는 없어진 셈이다.
그 죄책감으로 꿈에 자주 시달리곤 했다.
그리고 깨고 나서는 영상의 늪으로 그런 패턴이었으니
생활이 어떨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훗.
이미 결정나버린 것이 많은 올가을
이제 좀 정신 차리고 영상도 책도 덜 보고 생활로 돌아가야겠다.
청소, 정리, 바른 섭식, 바른 관계에 힘쓸 것.
청소 차원에서 이렇게 서재 먼지도 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