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값, 책방, 책사랑, 도서정가제

 


  한국에 책방이 처음 생긴 때는 언제였을까요. 나는 잘 모릅니다. 따로 알아보고 싶은 마음조차 없습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아볼 수 있으나, 첫 책방이 언제쯤 태어났는 지는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다만, 보통교육을 베푸는 작은 학교가 하나둘 늘면서 학교 둘레에 책방이 생깁니다. 학교 둘레 책방에서는 책도 다루지만 문방구도 다룹니다.


  학교 둘레에 문방구와 책을 함께 다루는 책방이 자리잡으면서, 책만 따로 다루는 책방이 마을과 동네마다 하나둘 태어납니다. 시골 읍내뿐 아니라 면소재지에까지 책방이 섭니다. 출판사 영업부 일꾼은 시외버스나 기차를 타고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골골샅샅 돌면서 ‘시골 책방’이나 ‘중소도시 책방’에서 한 달 동안 판 책을 살피고 책값을 거둡니다. 시골 책방에는 도시 책방처럼 수많은 책이 골고루 있기 어렵던 지난날이지만, 여러 날 기다리면 시골 책방에도 ‘도시 책방 책시렁에 있는 책’이 들어옵니다. 큰도시로 마실을 다녀오는 어른한테 말씀을 여쭈어 ‘도시 책방 책시렁에 있는 책’을 장만해 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고속도로가 늘고 기찻길이 늡니다. 고속버스가 생기고 고속국도가 생깁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중소도시나 큰도시로 옮겨 돈을 더 벌거나 이름값을 더 얻는 길로 나아가려 합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더 큰 도시를 바라고, 맨 나중에는 ‘서울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 인구가 그리 많지 않던 지난 어느 날,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뿐 아니라 시골 읍내와 면내에조차 조그마한 책방이 여럿 있어, 면소재지보다 훨씬 작은 두멧시골 사람들도 십 리 길이나 이십 리 길을 걸어 책방마실을 즐깁니다. 보따리에 책 한 권 담아 들뜬 마음으로 다시 먼길을 걸어서 돌아가지만, 두멧시골부터 면소재지 또는 읍내까지 오가면서 바라보는 숲과 논밭과 하늘과 멧골과 시내와 바다가 넓으며 깊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구름하고 노래합니다. 풀벌레와 춤을 춥니다. 멧새랑 노닙니다. 들꽃하고 어깨동무합니다.


  두멧시골 자그마한 학교가 하나둘 문을 닫습니다. 이제 시골에서 뿌리내리려는 사람보다 도시로 가서 일자리 얻으려는 사람이 부쩍 늘기 때문입니다. 두멧시골 자그마한 학교가 차츰 문을 닫으면서, 면소재지 작은 책방도 나란히 문을 닫습니다. 중소도시 또한 큰도시로 빠져나가려는 사람 많아, 중소도시 작은 책방 또한 문을 닫습니다. 큰도시에서도 물결은 똑같습니다. 큰도시에 몰린 사람들은 돈과 이름값 거머쥐기에 바빠 ‘마음을 살찌우는 책’을 가까이할 겨를이 없습니다. 일이 너무 고되어 겨를이 없기도 하지만, 스스로 겨를을 안 내기도 합니다.


  큰도시는 더욱 커집니다. 중소도시도 큰도시 못지않게 커집니다. 시골은 자꾸 작아집니다. 작아진 시골 한쪽 귀퉁이는 도시한테 잡아먹힙니다. 커지는 도시는 새로 아파트와 공장 지을 땅을 찾아 시골 논밭을 잡아먹습니다.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간 사람들은 오랜 나날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논밭을 도시사람한테 내다 팔면서 ‘도시 노동자’가 됩니다.


  도시 노동자가 ‘주 5일 하루 8시간 일하기’ 권리를 누린 지 얼마 안 됩니다. 도시 노동자는 주 6일이나 주 7일 일하면서, 또 하루에 12∼16시간 일하면서, 시골을 떠날 무렵 스스로 내려놓은 ‘책읽기’는 아예 잊습니다. 바야흐로 노동환경이 나아지며 ‘주 5일 하루 8시간 일하기’ 권리를 누린다지만 오래도록 길든 ‘책하고 멀어진 삶’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타고 시골숲으로 마실을 가거나 비행기를 타고 나라밖으로 나들이를 다니더라도,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 책방으로 ‘삶읽기’ 하러 가는 발걸음은 뚝 끊어집니다.


  이윽고,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아주 커다랗고 역사 깊은 책방까지 문을 닫습니다. 서울 아닌 커다란 도시나 중소도시에 있던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던 책방 또한 하나둘 문을 닫습니다. 학교 앞에서 문방구이자 책방 구실을 하던 곳도 이제 참고서나 문제집이나 색칠그림책 몇 가지 아니고는 책을 들이지 않습니다. 학교 둘레, 또 마을 언저리 작은 책방은 벌써 씨가 말라서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이동안 ‘책을 좋아하면서 누리고 싶은 사람’들은 마을이나 동네 가까이에서 찾아갈 책방이 없는 탓에 ‘인터넷에서 목록 찾아보는 책방’으로 옮깁니다. 처음에는 마을이나 동네 작은 책방으로 찾아가서 주문을 넣고는 며칠 기다려 책을 받아서 읽다가, 나중에는 집이나 일터에서 셈틀을 켜서 주문을 넣고는 적립금 쌓으면서 가만히 앉아 책을 받아보는 ‘아늑함’에 젖어듭니다. 동네 작은 책방 일꾼은 나날이 줄어드는 책손을 기다리다가 소리도 소문도 남기지 않고 자취를 감춥니다. 동네 작은 책방이 있던 자리에는, 손전화 파는 가게·옷 파는 가게·고기 굽는 가게 들이 나란히 들어섭니다.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책방은 책을 파는 곳입니다. 오늘날에도 씩씩하게 제자리 지키는 작은 책방이 여럿 있습니다. ‘많이’는 아니고 ‘여럿’ 있습니다. 지난날처럼 출판사 영업부 일꾼은 ‘책 판 돈 거두러’ 다니지 않습니다. 오늘날 출판사 영업부 일꾼은 시골 읍내 작은 책방이나 중소도시 작은 책방에는 아예 책을 안 넣곤 합니다. 물류비나 인건비 여러모로 따지면 ‘밑지는 장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작은 책방에는 ‘서울에 있는 책방 책시렁’처럼 여러 갈래 책이 눈부시게 꽂히기 어렵습니다. 애써 여러 갈래 책을 알뜰히 갖추었어도, ‘시골에서 책을 읽을 만한 사람’이나 ‘중소도시에서 책 좀 사랑할 만한 사람’은 웬만큼 큰도시로 빠져나가고 없습니다. 시골 고등학교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시골을 떠납니다. 중소도시 고등학교 아이들도 학교를 마치자마자 중소도시를 떠납니다. 물이 좋은 서울에서 놀려 하고, 물이 넓은 큰도시에서 노닥거리려 합니다.


  지난날부터 오늘날에 이르도록 책방은 책을 사랑하는 곳입니다. 물건을 다루는 곳인 책방은 없습니다. 책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값을 매겨 사고팔기는 하되, 책은 나무한테서 얻은 새 숨결입니다. 나무한테서 얻은 새 숨결을 빚기까지, 작가들은 나무한테서 얻은 연필로 나무한테서 얻은 종이에 글을 씁니다. 책 하나에 깃드는 이야기는 ‘숲을 이루는 나무 목숨’으로 태어납니다. 곧, 책이란 숲입니다. 책이란 푸른 숨결입니다. 그래서, 값을 매겨 돈으로 사고판다 하더라도 책을 물건으로 치거나 다루는 일꾼이나 책손은 없었어요.


  마을 책방이나 동네 책방에서 사랑을 나누던 사람들은 ‘읽고픈 책을 장만할 값’을 그러모으려고 땀을 흘려 일했습니다. 마을 책방과 동네 책방이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한 오늘날 물질문명 도시 사회에서는 인터넷책방 적립금과 에누리에 사람들 눈길과 손길이 끄달립니다.


  누가 잘못인가, 하고 따질 수 없습니다. 삶이 이처럼 흐를 뿐입니다.


  나는 우리 네 식구와 함께 깊디깊은 두멧시골에서 살아갑니다. 두멧시골에서 살아가기에 책방마실이 퍽 힘듭니다. 아니, 책방마실보다 숲마실을 늘 생각하고 바라며 누립니다. 숲에서 얻은 숨결로 빚은 종이책을 읽어도 즐겁지만, 숲에 아이들과 깃들며 숲내음 맡는 나무삶도 즐겁습니다.


  나무 한 그루를 알고 싶으면, 나무 곁에서 나무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속삭이면 됩니다. 나무 한살이를 다룬 그림책이나 인문책을 읽는대서 나무 한 그루를 알 수 없어요.


  책도 책방도 책손도 책일꾼도 푸른 숨결 들이마시며 살아갑니다. 맑은 바람이 목숨을 살리고, 싱그러운 먹을거리가 몸을 살찌웁니다. 마음을 살찌우는 이야기는 어디에서 얻을 때에 즐거울까요. 도서정가제라 하는 법이나 규범은 왜 태어나야 할까요. 도서정가제라는 이름 없던 지난날, 이 땅 사람들은 어떤 책을 어떤 마음으로 나누면서 살았을까요. 4346.1.2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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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65

 


어떤 이웃하고 살아가는 사진인가
― I dream a world
 Brian Lanker 사진·글
 Stewart,Tabori & Chang 펴냄,1989

 


  브라이언 랭커(Brian Lanker) 님이 일군 사진책 《I dream a world》(Stewart,Tabori & Chang,1989)를 들여다보면 미국 사회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흑인 여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진책에 나오는 미국 흑인 여성은 널리 이름난 사람일 수 있고, 미국 사회에만 잘 알려진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알려지지 못한 사람이라 할 때에 옳지 싶어요.


  사진쟁이 브라이언 랭커 님은 ‘오늘과 같은 미국 사회를 빚은’ 사람으로 ‘흑인 여성’을 꼽았다고 합니다. 다만, ‘오늘과 같은 미국 사회’라 할 때에는, 전쟁미치광이가 있는 미국 사회가 아니요, 작은 나라 씨앗을 모두 사들여 유전자 건드린 채 비싸게 팔려는 미국 사회가 아닐 테지요.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이름으로 이웃나라를 괴롭히는 미국이라든지, 전쟁무기 끔찍하게 만들어 이 지구별에 전쟁판 불러일으키는 미국도 아니리라 느껴요.


  자유와 민주와 평화와 평등을 꽃피우면서 널리 퍼뜨리려고 힘쓴 사람들이 있는 미국 사회라 할 테지요. 사랑을 속삭이고 꿈을 노래하는 미국 사회라 할 테지요. 어둡고 퀴퀴한 정치와 사회와 경제 먼지띠를 걷어내면서, 따사롭고 너그러우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길어올리려 하는 미국 사회라 할 테지요.


  사람을 담는 사진쟁이들은 으레 ‘여러 갈래 여러 자리’에서 일하거나 힘쓰는 사람들 얼굴을 담곤 합니다. 어느 사진쟁이는 달동네 가난한 이웃 얼굴을 담고, 어느 사진쟁이는 정계·재계 권력층 이웃 얼굴을 담습니다. 글쟁이나 그림쟁이 얼굴을 담는 사진쟁이가 있고, 굿을 하는 사람이나 인간문화재 얼굴을 담는 사진쟁이가 있어요. 아이들 얼굴을 담는 사진쟁이가 있으며, 나라밖에서 맑은 웃음빛을 찾으려는 사진쟁이가 있어요.

 

 

 


  모두 이웃을 찾으려는 사진쟁이입니다. 사진쟁이 스스로 어떤 이웃이 당신한테 가장 살가우며 반갑고 아름다운가 하는 삶결을 찾으려는 몸짓입니다. 달동네 가난한 이웃 얼굴이든 정계·재계 권력층 이웃 얼굴이든 똑같습니다. 모두 우리 이웃이에요. 한국에서 인간문화재 이름을 얻은 분들 얼굴이든, 티벳이나 인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얼굴이든, 모두 똑같습니다. 저마다 우리 이웃입니다.


  누구를 찍느냐 하는 대목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누구라도 찍으면 됩니다. 누구를 찍었기에 더 낫지 않고, 누구를 아직 못 찍었기에 값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는 ‘나’는, 나를 둘러싼 ‘이웃’을 어떤 마음으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싶은가 하는 꿈을 생각할 수 있으면 돼요.


  사진학교를 안 다녔어도 사진을 즐겁게 찍습니다. 사진책을 얼마 못 읽었어도 사진을 재미나게 찍습니다. 사진강의를 모르지만 사진을 웃으며 찍습니다. 사진이론을 들은 적 없어도 사진을 해맑게 찍습니다.


  마음이 있을 때에 찍는 사진입니다. 마음이 있을 때에 서로서로 이웃으로 지냅니다. 마음이 따사로울 때에 따사로운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사진입니다. 마음이 따사로울 때에 서로서로 따사롭게 어깨동무할 수 있는 이웃입니다.

 

 

 


  이웃을 사진으로 찍고 싶다면 꿈을 꾸면 됩니다. 내 살가운 이웃이 누구인가 하고 꿈을 꿉니다. 나는 누구하고 살가운 이웃으로 지낼 때에 즐거운가 하고 꿈을 꿉니다. 내 이웃하고 어떤 사랑을 나누고 싶은지 꿈을 꿉니다. 나하고 이웃한 사람하고 어떤 사랑을 꽃피우며 활짝 웃고 싶은지 꿈을 꿉니다.


  ‘꿈을 찍는 사진’이라는 말이 찬찬히 퍼지는 까닭을 생각해 봐요. 사진이 어떻게 꿈을 찍을 수 있는지 헤아려 봐요. 내 사진은 ‘내 꿈’을 얼마나 담는지 곱씹어 봐요. 내 사진이 ‘내 이웃 꿈’을 얼마나 담는지 되새겨 봐요.


  꿈을 찍지 못할 때에는 이웃을 찍지 못합니다. 꿈을 찍을 때에는 이웃을 찍습니다. 꿈을 찍지 못한다면 ‘내 사진’이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꿈을 찍기에 ‘내 사진’이 싱그럽게 이루어집니다.


  어떤 사진이 즐거울는지, 어떤 사진이 사랑스러울는지, 어떤 사진이 싱그럽게 빛날는지, 어떤 사진이 고운 이야기 꽃피울는지, 곰곰이 생각을 기울여요. 사진 하나로 주고받는 이웃사랑·이웃잔치·이웃노래입니다. 4346.1.2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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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작은 집 작은 칸에서 이불 서로 나누어 겹겹이 덮으면, 혼자 하나씩 맡아 덮을 때보다 한결 따뜻하다. 이래서 여럿이 함께 살아가는지 모른다. 이래서 서로 사랑을 하고, 사랑을 꽃피우며 아이들을 낳고, 아이들과 나란히 새롭게 사랑을 일구며 하루하루 누리는지 모른다. 4346.1.2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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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만났어요 - 겨울 계절 그림책
이미애 글, 이종미 그림 / 보림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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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40

 


아름다운 겨울살이
― 겨울을 만났어요
 이종미 그림,이미애 글
 보림 펴냄,2012.12.10./10800원

 


  화요일에 겨울비 내리고, 수요일에 해가 나고, 목요일에 다시 겨울비 내립니다. 퍽 예전에는 전남 고흥에도 눈이 많았고 겨울이 꽁꽁 얼어붙었다고 하지만, 오늘날 전남 고흥은 그예 포근한 시골입니다. 얼음 구경이 어렵고, 눈 구경은 더욱 어렵습니다. 겨울에 겨울눈 아닌 겨울비라니, 참 한국에서는 대단한 곳이네 싶으면서, 이렇게 따순 시골이기에 전남 고흥 들판이나 숲에 여러 들짐승과 날짐승이 둥지를 틀며 함께 살아갈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작은짐승 잡아먹는 들짐승이라면 겨울나기 수월하지 않을 테지만, 풀 뜯어먹는 들짐승이라면, 한겨울에도 돋는 들풀을 뜯어먹으며 겨울나기 할 수 있거든요. 논이 얼어붙지 않으니, 멧비둘기는 겨우내 논자락을 들락거리며 마지막까지 남았을 이삭을 훑을 수 있어요.


  자동차 뜸한 시골마을에 눈이 내리면, 눈은 하얗습니다. 오래오래 하얗습니다. 자동차 뜸하기에 굳이 눈을 쓸지 않습니다. 사람이 다닐 길이라면 사람 발자국으로도 눈자국이 생겨 천천히 거닐 만합니다.


  눈이 온대서 길을 쓸거나 길에 모래라든지 염화칼슘을 뿌려야 하지 않아요. 눈이 올 적마다 이것저것 길바닥에 잔뜩 뿌리는 도시를 보면, 눈으로 하얗게 바뀌지 않습니다. 지저분하고 질척거리는 빛과 소리와 느낌이 어우러집니다. 길도 자동차도 사람도 집도 모두 지저분하고 질척거립니다. 겨울이면서 겨울답지 않고, 눈이면서도 눈답지 않아요.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눈을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까요. 하늘에서 송이송이 떨어질 때에만 바라볼 눈이어야 할까요. 학교와 학원으로 바쁘느라 눈놀이를 할 겨를이 없을까요. 눈이 내리자마자 치우거나 뭔가를 뿌리느라, 도시 아이들은 ‘지저분해진 눈’을 스스로 만질 엄두 안 내려나요.


  나는 군대에서 겨울행군에 지칠 무렵 으레 눈을 퍼먹었습니다. 눈을 너무 퍼먹으면 배앓이 한다 했지만, 물도 밥도 안 주며 열 시간 스무 시간 겨울행군 시키는데 눈을 안 퍼먹을 수 없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지난날 시골 아이들은 누구나 눈을 퍼먹으며 살았어요. 눈을 녹여 물을 얻고, 눈을 뭉쳐 놀고 생각하며 서로 이웃했어요.

 

 


.. 내 옆에서 겨울이 함께 들길 걷고 있었어요 ..  (4쪽)


  겨울비 드리우는 시골 들판은 샛노랗게 바뀝니다. 가을 지나 겨울 동안 시든 풀줄기는 차츰 꺾이고 쓰러집니다. 따로 사람이 손으로 베거나 뽑지 않아도 시든 풀은 스스로 눕습니다. 따사롭게 흙을 적시는 겨울비 찾아드니, 샛노랗게 빛나는 시든 풀포기 사이사이 앙증맞게 작은 푸른 싹이 고개를 내밉니다. 너희는 왜 이리 일찌감치 고개를 내미니, 이러다가 추위 다시 오면 얼어죽을 텐데, 하고 속삭입니다. 아마, 어느 풀은 꽃샘추위를 맞이해 얼어죽을는지 모르고, 어느 풀은 꽃샘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씩씩하게 자랄 테지요. 한겨울에 몇몇 송이 붉게 타오르는 동백꽃처럼, 들풀 몇몇 줄기도 한겨울에 다부하게 잎을 틔우거나 꽃대를 올리곤 해요.


  겨울빛이란 어떤 무늬일까 그려 봅니다. 사람들은 겨울빛을 으레 흰빛으로 여기지만, 요즈음 사회에서는 겨울빛을 흰빛으로 그리기는 어렵다고 느낍니다. 도시는 봄이든 겨울이든 늘 잿빛이거든요. 도시는 겨울에 눈이 오면 더 지저분하고 질척거리는 잿빛이거든요.


  지리산이나 태백산이나 금강산이나 백두산은 앞으로 봄이 올 때까지 흰빛이겠지요. 제법 추운 시골마을은 봄이 올 때까지 들과 숲 모두 흰빛이겠지요. 겨울에도 푸르게 싱그러운 잎사귀 건사하는 나무는 하얗게 빛나는 눈송이를 그득 짊어질 테지요.


  겨울비 내리며 조용합니다. 들짐승도 날짐승도 겨울비에 오들오들 떨지 않으려고 꼼짝을 않는지, 겨울비 내리는 시골마을은 조용합니다. 드문드문 겨울눈 찾아올 적을 떠올리면, 겨울눈 내리는 밤이나 낮은 매우 고요합니다. 바람도 없고 마실하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없습니다. 오가는 자동차도 없으며, 흐르는 구름도 느릿느릿 흐르다가 멈춘 듯합니다.


  봄비는 귀여운 아이들 춤사위 같고, 여름비는 씩씩한 아이들 웃음빛 같으며, 가을비는 푸른 땀방울 흘리는 아이들 몸짓 같습니다. 겨울비는 새근새근 맑은 얼굴로 잠든 아이들 자장노래 같아요.
  이종미 님 그림이랑 이미애 님 글이 어우러진 그림책 《겨울을 만났어요》(보림,2012)는 어떤 빛깔이라 할 만할까요. 도시 한복판 아닌 시골 한복판에서 맞이하며 누리는 겨울눈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 《겨울을 만났어요》는 어떤 삶빛을 보여준다 할 만할까요.


  아이들은 자동차 걱정을 않고 천천히 걷습니다. 아이들은 자동차가 밟아 지저분해지거나 납작해지지 않는 눈송이를 뭉치거나 굴리면서 놉니다. 아이들은 뒷동산에 올라 연을 날립니다. 아이들은 눈밭에서 뒹굴고, 논이나 밭을 천천히 가로지르기도 합니다. 마당에서만 놀아도 한껏 흐드러지는 눈잔치입니다.


  아름답게 이웃하는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마을에서는 아름다운 겨울나기입니다. 곱게 동무하는 사람들이 얼크러지는 동네에서는 고운 봄맞이입니다. 우리 삶은 어떻게 흐르는가요. 내 삶은 스스로 어떻게 짓는가요. 겨울을 겨울답게 받아들이며 누리는 하루는 어떤 빛깔일까요.

 

 


.. 겨울은 멈칫거리는 노루에게 빨간 찔레 열매를 찾아 주었어요 ..  (20쪽)


  어여쁜 그림책을 즐겁게 읽다가, 곳곳에서 턱턱 걸립니다. 어버이가 아이들한테 읽어 주기에 알맞지 않다 싶은 글월이 자꾸 나옵니다. 글 몇 줄 싯노래와 같이 싣는 그림책이라 한다면, 말 한 마디 글 한 줄 더 마음을 기울이면 기쁘겠습니다. 이를테면, 한국 말투 아닌 “-고 있다” 꼴이 다섯 차례 나옵니다. 한국 말투에는 현재진행형이 없습니다. “들길을 걷고 있었어요”가 아닌 “들길을 걸어요”라 적어야 알맞고, “눈이 흩날리고 있어요”가 아닌 “눈이 흩날려요”라 적어야 알맞으며, “하늘과 바다가 엉기며 만나고 있어요”가 아닌 “하늘과 바다가 엉기며 만나요”라 적어야 알맞습니다.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어요”는 “반짝반짝 빛나요”로 바로잡고, “해가 밝게 비추고 있었지요”는 “해가 밝게 비추지요”로 바로잡아야 알맞습니다.


  일본사람이 즐겨쓰다가 한국사람한테까지 퍼진 ‘시작(始作)’이라는 낱말도 아이들 그림책에는 안 쓰면 고맙겠습니다. “눈은 … 내리기 시작했어요”라면 “눈은 … 내립니다”로 손질합니다. “손발이 나른나른 녹기 시작했어요”라면 “손발이 나른나른 녹아요”로 손질합니다.


  그리고, “시끄럽게 떠들던 계곡물”은 “우렁차게 노래하던 골짝물”로 적바림해야 예쁘겠지요. 골짝물은 시끄럽지 않아요. 냇물도 바닷물도 시끄럽지 않아요. 아이들은 골짝물 소리를 듣고 스르르 잠들기도 해요. 아름다우면서 맑은 물소리예요. ‘시끄럽게’라는 낱말은 자동차 빵빵대거나 텔레비전 웅웅대는 소리를 가리킬 때에 써야 알맞습니다. 골짝물은 ‘노래하는’ 소리라고 해야 올바르리라 생각합니다. “공기가 꾸물꾸물 흐려졌어요”는 “하늘이 꾸물꾸물 흐려요”로 손봅니다. 날이 흐리다고 할 적에는 ‘하늘’이 흐리다고 말하지, 공기가 흐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구름이 두터워졌어요”는 “구름이 두꺼워졌어요”로 바로잡습니다. 구름도 눈덩이도 ‘두껍다’고 가리킵니다. 마음이나 생각이나 사랑이나 믿음을 가리킬 때에만 ‘두텁다’고 합니다. “우리 집에 겨울을 초대했어요”는 “우리 집에 겨울을 불렀어요”라 다듬고, “겨울이 좀 더 머물러 줄 거란 걸”은 “겨울이 좀 더 머무르리라고”라 다듬어 봅니다. 어른들은 ‘초대(招待)’ 같은 한자말을 아주 자주 쓰는데, 아이들한테까지 이 낱말을 써야 할는지 생각하면 좋겠어요. 또, ‘것(거)’을 잇달아 자꾸 쓰는 말버릇이 아이들한테 스미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으기를 빕니다.


  그림과 글만 어여쁘대서 그림책 한 권 오롯이 어여쁠 수 없습니다. 말마디와 이야기 모두 어여쁘고, 생각과 꿈과 사랑 모두 어여쁠 수 있도록, 더 땀을 쏟고 더 눈길을 쏟기를 빌어요. 4346.1.2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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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그리는 강풀 님이 그림책을 내놓았구나. 반갑다. 예쁜 마음으로 빚은 그림책이 예쁘게 사랑받을 수 있기를 빈다. 어른도 아이도 모두 예쁜 꿈을 꾸면서 하루하루 누릴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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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친구야
강풀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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