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값, 책방, 책사랑, 도서정가제

 


  한국에 책방이 처음 생긴 때는 언제였을까요. 나는 잘 모릅니다. 따로 알아보고 싶은 마음조차 없습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아볼 수 있으나, 첫 책방이 언제쯤 태어났는 지는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다만, 보통교육을 베푸는 작은 학교가 하나둘 늘면서 학교 둘레에 책방이 생깁니다. 학교 둘레 책방에서는 책도 다루지만 문방구도 다룹니다.


  학교 둘레에 문방구와 책을 함께 다루는 책방이 자리잡으면서, 책만 따로 다루는 책방이 마을과 동네마다 하나둘 태어납니다. 시골 읍내뿐 아니라 면소재지에까지 책방이 섭니다. 출판사 영업부 일꾼은 시외버스나 기차를 타고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골골샅샅 돌면서 ‘시골 책방’이나 ‘중소도시 책방’에서 한 달 동안 판 책을 살피고 책값을 거둡니다. 시골 책방에는 도시 책방처럼 수많은 책이 골고루 있기 어렵던 지난날이지만, 여러 날 기다리면 시골 책방에도 ‘도시 책방 책시렁에 있는 책’이 들어옵니다. 큰도시로 마실을 다녀오는 어른한테 말씀을 여쭈어 ‘도시 책방 책시렁에 있는 책’을 장만해 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고속도로가 늘고 기찻길이 늡니다. 고속버스가 생기고 고속국도가 생깁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중소도시나 큰도시로 옮겨 돈을 더 벌거나 이름값을 더 얻는 길로 나아가려 합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더 큰 도시를 바라고, 맨 나중에는 ‘서울사람’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 인구가 그리 많지 않던 지난 어느 날,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뿐 아니라 시골 읍내와 면내에조차 조그마한 책방이 여럿 있어, 면소재지보다 훨씬 작은 두멧시골 사람들도 십 리 길이나 이십 리 길을 걸어 책방마실을 즐깁니다. 보따리에 책 한 권 담아 들뜬 마음으로 다시 먼길을 걸어서 돌아가지만, 두멧시골부터 면소재지 또는 읍내까지 오가면서 바라보는 숲과 논밭과 하늘과 멧골과 시내와 바다가 넓으며 깊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구름하고 노래합니다. 풀벌레와 춤을 춥니다. 멧새랑 노닙니다. 들꽃하고 어깨동무합니다.


  두멧시골 자그마한 학교가 하나둘 문을 닫습니다. 이제 시골에서 뿌리내리려는 사람보다 도시로 가서 일자리 얻으려는 사람이 부쩍 늘기 때문입니다. 두멧시골 자그마한 학교가 차츰 문을 닫으면서, 면소재지 작은 책방도 나란히 문을 닫습니다. 중소도시 또한 큰도시로 빠져나가려는 사람 많아, 중소도시 작은 책방 또한 문을 닫습니다. 큰도시에서도 물결은 똑같습니다. 큰도시에 몰린 사람들은 돈과 이름값 거머쥐기에 바빠 ‘마음을 살찌우는 책’을 가까이할 겨를이 없습니다. 일이 너무 고되어 겨를이 없기도 하지만, 스스로 겨를을 안 내기도 합니다.


  큰도시는 더욱 커집니다. 중소도시도 큰도시 못지않게 커집니다. 시골은 자꾸 작아집니다. 작아진 시골 한쪽 귀퉁이는 도시한테 잡아먹힙니다. 커지는 도시는 새로 아파트와 공장 지을 땅을 찾아 시골 논밭을 잡아먹습니다.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간 사람들은 오랜 나날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은 논밭을 도시사람한테 내다 팔면서 ‘도시 노동자’가 됩니다.


  도시 노동자가 ‘주 5일 하루 8시간 일하기’ 권리를 누린 지 얼마 안 됩니다. 도시 노동자는 주 6일이나 주 7일 일하면서, 또 하루에 12∼16시간 일하면서, 시골을 떠날 무렵 스스로 내려놓은 ‘책읽기’는 아예 잊습니다. 바야흐로 노동환경이 나아지며 ‘주 5일 하루 8시간 일하기’ 권리를 누린다지만 오래도록 길든 ‘책하고 멀어진 삶’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자가용을 타고 시골숲으로 마실을 가거나 비행기를 타고 나라밖으로 나들이를 다니더라도,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 책방으로 ‘삶읽기’ 하러 가는 발걸음은 뚝 끊어집니다.


  이윽고,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아주 커다랗고 역사 깊은 책방까지 문을 닫습니다. 서울 아닌 커다란 도시나 중소도시에 있던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던 책방 또한 하나둘 문을 닫습니다. 학교 앞에서 문방구이자 책방 구실을 하던 곳도 이제 참고서나 문제집이나 색칠그림책 몇 가지 아니고는 책을 들이지 않습니다. 학교 둘레, 또 마을 언저리 작은 책방은 벌써 씨가 말라서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이동안 ‘책을 좋아하면서 누리고 싶은 사람’들은 마을이나 동네 가까이에서 찾아갈 책방이 없는 탓에 ‘인터넷에서 목록 찾아보는 책방’으로 옮깁니다. 처음에는 마을이나 동네 작은 책방으로 찾아가서 주문을 넣고는 며칠 기다려 책을 받아서 읽다가, 나중에는 집이나 일터에서 셈틀을 켜서 주문을 넣고는 적립금 쌓으면서 가만히 앉아 책을 받아보는 ‘아늑함’에 젖어듭니다. 동네 작은 책방 일꾼은 나날이 줄어드는 책손을 기다리다가 소리도 소문도 남기지 않고 자취를 감춥니다. 동네 작은 책방이 있던 자리에는, 손전화 파는 가게·옷 파는 가게·고기 굽는 가게 들이 나란히 들어섭니다.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책방은 책을 파는 곳입니다. 오늘날에도 씩씩하게 제자리 지키는 작은 책방이 여럿 있습니다. ‘많이’는 아니고 ‘여럿’ 있습니다. 지난날처럼 출판사 영업부 일꾼은 ‘책 판 돈 거두러’ 다니지 않습니다. 오늘날 출판사 영업부 일꾼은 시골 읍내 작은 책방이나 중소도시 작은 책방에는 아예 책을 안 넣곤 합니다. 물류비나 인건비 여러모로 따지면 ‘밑지는 장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작은 책방에는 ‘서울에 있는 책방 책시렁’처럼 여러 갈래 책이 눈부시게 꽂히기 어렵습니다. 애써 여러 갈래 책을 알뜰히 갖추었어도, ‘시골에서 책을 읽을 만한 사람’이나 ‘중소도시에서 책 좀 사랑할 만한 사람’은 웬만큼 큰도시로 빠져나가고 없습니다. 시골 고등학교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시골을 떠납니다. 중소도시 고등학교 아이들도 학교를 마치자마자 중소도시를 떠납니다. 물이 좋은 서울에서 놀려 하고, 물이 넓은 큰도시에서 노닥거리려 합니다.


  지난날부터 오늘날에 이르도록 책방은 책을 사랑하는 곳입니다. 물건을 다루는 곳인 책방은 없습니다. 책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값을 매겨 사고팔기는 하되, 책은 나무한테서 얻은 새 숨결입니다. 나무한테서 얻은 새 숨결을 빚기까지, 작가들은 나무한테서 얻은 연필로 나무한테서 얻은 종이에 글을 씁니다. 책 하나에 깃드는 이야기는 ‘숲을 이루는 나무 목숨’으로 태어납니다. 곧, 책이란 숲입니다. 책이란 푸른 숨결입니다. 그래서, 값을 매겨 돈으로 사고판다 하더라도 책을 물건으로 치거나 다루는 일꾼이나 책손은 없었어요.


  마을 책방이나 동네 책방에서 사랑을 나누던 사람들은 ‘읽고픈 책을 장만할 값’을 그러모으려고 땀을 흘려 일했습니다. 마을 책방과 동네 책방이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한 오늘날 물질문명 도시 사회에서는 인터넷책방 적립금과 에누리에 사람들 눈길과 손길이 끄달립니다.


  누가 잘못인가, 하고 따질 수 없습니다. 삶이 이처럼 흐를 뿐입니다.


  나는 우리 네 식구와 함께 깊디깊은 두멧시골에서 살아갑니다. 두멧시골에서 살아가기에 책방마실이 퍽 힘듭니다. 아니, 책방마실보다 숲마실을 늘 생각하고 바라며 누립니다. 숲에서 얻은 숨결로 빚은 종이책을 읽어도 즐겁지만, 숲에 아이들과 깃들며 숲내음 맡는 나무삶도 즐겁습니다.


  나무 한 그루를 알고 싶으면, 나무 곁에서 나무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속삭이면 됩니다. 나무 한살이를 다룬 그림책이나 인문책을 읽는대서 나무 한 그루를 알 수 없어요.


  책도 책방도 책손도 책일꾼도 푸른 숨결 들이마시며 살아갑니다. 맑은 바람이 목숨을 살리고, 싱그러운 먹을거리가 몸을 살찌웁니다. 마음을 살찌우는 이야기는 어디에서 얻을 때에 즐거울까요. 도서정가제라 하는 법이나 규범은 왜 태어나야 할까요. 도서정가제라는 이름 없던 지난날, 이 땅 사람들은 어떤 책을 어떤 마음으로 나누면서 살았을까요. 4346.1.23.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