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식구들 먹을거리 장만하려고 읍내에 나가는 길에 장바구니 여럿 챙긴다. 등에 메는 가방에는 가장 무거운 것을 넣고, 가방이 꽉 찬 뒤에는 장바구니를 하나씩 꺼내어 담는다. 그런데 큰아이 손을 잡고 길을 거닐며, 또 다리 아프다는 큰아이를 품에 안고 길을 걷자니, 장바구니 여럿 들고 지고 하자니 퍽 힘들다. 가만히 보면, 저잣거리로 나들이 다니는 살림꾼은 장바구니 여럿 챙긴다 하더라도 너무 힘들겠구나 싶다. 차라리 가방을 하나 더 챙길 때가 나으리라 본다.


  군내버스에 탄다. 장바구니 여럿이니 발밑에 두면서 이 녀석들 건사하느라 애먹는다. 참말 장바구니로 물건 챙겨서 다니기란 수월하지 않다. 할머니들은 가게에서 내주는 비닐봉지를 여럿 손에 쥐고, 보자기로 짐을 묶어 들기도 하는데, 손아귀가 참 아프시겠지. 서른 해 쉰 해 예순 해, 오직 손아귀힘으로 짐을 들어 나르는 나날이었으리라. 하루하루 알이 배기고 굳은살 박혀 딱딱해지는 손바닥은 나무를 닮는다. 군내버스에 탄 할머니 한 분, 오늘 마침 읍내 장날이라 사람 북적북적대니, “오늘은 옴시롱 감시롱 차가 되다.” 하고 한 마디. 4346.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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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냄새 책읽기

 


  설날을 앞두고 우리 식구 먹을거리를 장만하려고 읍내에 나가는 길, 군내버스를 기다린다. 작은아이는 집에서 어머니와 있고 큰아이는 아버지하고 저잣거리 마실을 나간다. 아버지 손을 잡고 신나게 뛰는 큰아이는 버스 타는 곳 둘레에서 이리 달리고 저리 기웃거리면서 논다. 길바닥에 구르는 돌을 주워 도랑에 휙 던지기도 하고, 마늘밭 풀잎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한다. 이윽고 군내버스가 들어온다. 버스가 가까이 다가오며 설 즈음, 갑자기 큰아이는 코를 손으로 감싸쥐면서 “으, 버스냄새! 버스냄새 싫어.” 하고 말한다.


  문득 나도 느낀다. 아니, 큰아이가 코를 손으로 감싸쥘 즈음 나도 버스에서 기름 타는 냄새를 느꼈다. 그런데, 큰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도 그냥 지나쳤을 냄새였구나 싶다.


  큰아이는 버스를 타든, 택시를 타든, 기차를 타든, 전철을 타든, 배를 타든, 언제나 코를 감싸쥔다. 냄새가 난다며 “아우, 냄새!” 하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나도 이것을 타든 저것을 타든 냄새를 느낀다. 오늘날 문명사회 탈거리는 모두 기름을 태워서 움직이고, 기름을 태워서 움직이는 만큼 차 안팎에 기름 타는 냄새가 난다. 전철이라면 기름 타는 냄새는 안 난다 할 텐데, 다른 끔찍한 냄새가 아주 많다. 전기 무시무시하게 먹는 냄새, 쇳바퀴 긁으며 나는 냄새, 쇳덩이와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차몸뚱이에서 피어나는 냄새 …….


  택시를 타든 자가용을 얻어 타든, 또 짐차를 타든, 참 냄새 때문에 고단하다. 겨울이라 하더라도 창문을 열며 바람을 갈고 싶다. 바깥바람을 쇠면서 어질어질한 머리를 쉬고 싶다. 군내버스가 정갈한 시골길을 달리더라도 버스 안팎에는 기름 타는 냄새가 흐르니 머리가 아프다. 이른봄이나 늦가을에는 에어컨을 안 켜기에 이때에는 창문을 열며 바람을 쐬니 시원하지만, 한여름에는 군내버스도 으레 에어컨을 켜니까, 기름 타는 냄새에 에어컨 바람 냄새가 섞여 아주 골이 띵하다.


  도시사람은 참말 어떻게 견디나. 나도 도시에서 나고 자라며 퍽 오랫동안 도시에서 살았는데, 나는 참말 도시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 식구가 정갈한 두멧시골에서 살고, 군내버스조차 거의 안 타고 사는 일이란, 서로서로 얼마나 숨결을 지키는 일인가 하고 새삼스레 돌아본다. 4346.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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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놀이 3

 


  겨울날 방바닥에 깔개를 놓는데, 아이들은 날마다 무언가를 쏟고 엎으며 어지른다. 하루에 두세 번씩 깔개를 털다가, 볕 좋은 날 깔개를 빨아 마당에 넌다. 작은아이는 이불놀이를 하고, 큰아이는 빨래대 동그란 막대에 올라탄다. 어라, 네가 아무리 몸무게가 가볍다 하더라도 쇠막대가 휘는걸. 거기는 놀이터 쇠막대가 아니걸랑. 다른 데를 올라타며 놀아 주라. 4346.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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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카
우미노 치카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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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215

 


좋아하는 꿈대로 살아가기
― 스피카
 우미노 치카 글·그림,서현아 옮김
 시리얼 펴냄,2012.8.25./7000원

 


  추운 겨울날 포근한 겨울비가 내립니다. 여섯 살 큰아이는 겨울비를 바라보며 묻습니다. “왜 눈이 안 오고 비가 와?” 왜 눈이 안 오고 비가 올까요. 네 식구 살아가는 두멧시골 고흥은 따스한 곳이기 때문일 테지요. 다른 데에는 눈이 펑펑 내리더라도 이곳은 비가 살살 흩뿌리거든요.


  빗물이 온 들과 숲을 적십니다. 마당 한켠 후박나무와 동백나무도 빗물에 젖습니다. 포근한 겨울비라지만, 아직 들풀한테는 차가운 빗물일 수 있어요. 엊그제 해가 따사로이 비추며 막 봉오리 벌린 들꽃은 ‘아이 추워!’ 하면서 서둘러 봉오리를 닫고 오들오들 떨는지 몰라요. 냉이꽃도 봄까지꽃도 광대나물꽃도 모두 벌벌 떨며 얼른 봄 오기를 빌는지 모릅니다.


- 아빠랑 나는 자동차로 바닷가를 달려 언젠가 셋이서 왔던 먼 동물원에 찾아왔다. 오늘은 생일이다. 아빠 생일은 아니다. 내 생일도 아니다. 엄마 생일이다. (3쪽)


  눈이 드문 시골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퍽 서운합니다. 눈밭에서 손과 볼이 꽁꽁 얼더라도 눈놀이 하는 즐거움이 몹시 큰 줄 알거든요. 눈을 뭉치고 싶고, 눈을 먹고 싶고, 눈을 맞고 싶습니다. 눈밭에서 구르고 싶고, 눈송이를 만지고 싶습니다.


  그래, 이곳에는 눈이 드물어요. 그렇지만, 바람이 있어요. 구름이 있어요. 맑은 햇살이 있어요. 일찍 깨어나는 들꽃이 있어요. 한갓지게 먹이를 찾는 들새와 멧새가 있어요.


  아이한테 바람내음 맡아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바람은 어떤 내음을 실어 우리한테 찾아오는가 묻습니다. 들에서는 어떤 내음을 맡을 수 있고, 풀잎을 쓰다듬을 때에 어떤 느낌인지 헤아려 보라 이야기합니다.


  올겨울에는 12월 첫머리에 제법 추웠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 동백나무는 12월에는 꽃봉오리가 열리지 않았어요. 나중에 살피니 잘 안 보이는 깊숙한 데에서 두세 송이 피었다가 찬바람에 꽁꽁 얼었는데, 엊그제 살피니 새로 한 송이 막 피어났더군요. 아침에 아이들이 일어나면 동백꽃 보자고 해야지요. ‘아이야, 우리 시골에 눈은 얼마 없지만, 이렇게 꽃이 있단다. 아직 찬바람 부는데 이처럼 곱게 피어나는 꽃이 있어. 너도 알지? 우리 살아가는 이 마을 이름은 동백마을이잖아.’


- “아, 진짜 어딜 가나 똑같네. 우리 집도 그래. ‘성적 떨어지면 발레 그만둬!’ 하고.” (20쪽)
- “그런데 너, 몇 번이나 하는 말이지만, 발레는 이제 그만하지 그러니? 대학입시가 더 중요하잖아. 물론 좋아하는 건 엄마도 이해하지만, 발레로 먹고사는 사람은 수천 명 중 하나도 안 되는 거 알아?” (23쪽)


  아직 마을 어르신들이 풀약을 안 치셨을 때, 봄풀을 한껏 누리려고 생각합니다. 이 풀을 뜯고 저 풀을 캐면서 손과 몸과 마음을 살찌우려고 생각합니다. 날이 더 풀리면 톱을 들고 대밭에 가서 잘 자란 대나무 몇 그루 자를 생각입니다. 대나무로 짐시렁을 만들어 보려고요. 그럼, 아직 이럭저럭 추운 이 겨울에는 무엇을 할까요. 음, 방에서 그림을 그리며 놀까. 옷 두툼하게 입고 마실을 다닐까. 자전거수레를 끌고 겨울자전거를 탈까. 밥 맛있게 지어 먹고 서재도서관 나들이를 할까.


  아침 햇살 살며시 스며듭니다. 빗방울은 거의 그칩니다. 먹이 찾는 멧새 몇 마리 마당을 가로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마을 사이로 흐르는 조용한 바람을 느낍니다. 구름이 짙게 끼었지만 날은 퍽 밝습니다. 구름이 끼면 빛이 줄지만, 구름이 끼기에 그늘이 생기고, 그늘이 생기며 풀과 나무는 얼마쯤 쉽니다. 구름이 걷히며 따스한 볕이 드리우고, 따스한 볕은 새삼스레 풀과 나무를 살찌웁니다.


  사람도 볕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볕을 살갗으로 쬐며 숨결을 북돋웁니다. 볕을 듬뿍 머금은 풀과 곡식과 열매를 먹으며 목숨을 잇습니다. 볕이 없거나 빛이 없으면, 어느 누구도 사람답게 숨결을 건사할 수 없어요. 그리고, 볕이 드리울 흙이 있어야겠지요. 볕이 흙으로 드리우며 풀과 나무가 볕을 먹어야 합니다. 또한, 볕이 드리우는 따스한 기운 머금는 바람이 흐르며 사람과 풀과 나무가 푸르게 숨을 쉬어요.


- “뭔가를 좋아한다는 게 그렇게 나쁜 일이야? 웃음거리가 될 만큼?” (28쪽)
- “그래도, 울어도 그만둘 수 없을 만큼 좋아하는 게 있다는 건, 분명 굉장한 일일 거야.” (31쪽)


  우미노 치카 님 만화책 《스피카》(시리얼,2012)를 읽습니다. 좋아하는 꿈대로 살아가고픈 사람들 이야기를 읽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스스로 좋아하는 꿈을 누리면서 살아가고프지, 어떤 눈치나 눈길에 휘둘리면서 살아가고프지 않습니다.


  꿈은 숫자로 따지지 않습니다. 꿈은 성적이나 시험이나 등수로 매기지 않습니다. 꿈은 사랑으로 헤아립니다. 꿈은 스스로 좋아하는 마음으로 돌아봅니다.


  내가 일구는 삶이기에, 내가 좋아하는 길을 걷습니다. 내가 누리는 하루이기에, 내가 꿈꾸는 길을 걷습니다. 그렇지요. 내 삶을 다른 사람 말에 휘둘리며 일굴 까닭 없어요. 내 삶을 다른 사람 눈치에 휩쓸리며 걸어갈 까닭 없어요.


  하늘을 좋아해 주셔요. 해를 아껴 주셔요. 빗물과 눈송이를 사랑해 주셔요. 흙을 보살펴 주셔요. 풀과 나무를 안아 주셔요. 풀벌레와 들짐승과 멧새를 두루 지켜 주셔요. 4346.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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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2-04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꿈대로 살아가기 - 를 지지합니다. 어떤 강요가 필요없어요. 어떤 강요가 해악일 때가 많아요. 제 딸들한테 꿈에 관한 한, 자유를 줬어요.

저는 하늘을, 해를, 빗물을, 눈송이를, 풀과 나무를 사랑하는 1인이에요. ^^

파란놀 2013-02-04 21:19   좋아요 0 | URL
모든 아이도,
또 모든 어른도,
좋아하는 꿈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기를 빌어요~~~
 

 내 삶에 한 줄, 춤추며 읽는 책

 


  백 권을 읽든 만 권을 읽든, 책읽기는 삶읽기로구나 하고 늘 깨닫습니다. 삶을 읽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많다 싶은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읽기’ 아닌 ‘훑기’를 한 셈이요, 삶을 읽을 수 있으면, 한 권이나 열 권을 읽었다 하더라도 사랑과 꿈을 가슴에 품을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한 해에 백 권 읽기라든지 열 해에 천 권 읽기 같은 뜻을 세우는 일이 나쁘다고 느끼지 않아요. 다만, 몇 권을 읽자 하는 뜻은 좀 부질없어요. 나이 몇 살을 먹자는 뜻이 부질없고, 어떤 지위나 계급으로 오르자는 뜻이 부질없으며, 얼마쯤 되는 돈을 모으자는 뜻이 부질없어요. 삶을 누리려는 뜻을 품어야지요. 삶을 사랑하고, 삶을 아끼며, 삶을 나누려는 뜻으로 하루를 빛내야지요.


  비오는 소리를 들으며 비를 느낄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안개 드리우는 소리를 들으며 안개를 느낄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무지개 나타나는 소리를 들으며 무지개를 느낄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해 뜨는 소리를 들으며 햇살을 느낄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생뚱맞다고 느낄 분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그럴 테지요. 오늘날 물질문명 사회에서는 ‘달 뜨는 소리’나 ‘구름 흐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게 가로막는 자동차 소리와 기계 움직이는 소리와 손전화 떠드는 소리가 너무 커요. 송전탑에서 웅웅거리는 소리와 기차나 전철 지나가는 소리가 대단히 큽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움직여 바람결 느낄 겨를이 없다 할 만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사람 아니고서야 풀벌레 노랫소리 듣는 사람이 없어요. 시골에서 텔레비전 없이 아이들과 복닥이는 사람 아니고서야 개구리 노랫소리 즐기는 사람이 없어요.


  시골에서 살아간다면 숲을 걸어요. 도시에서 살아간다면 공원 풀밭을 걸어요. 내 눈과 마음을 살포시 쉬어요. 푸른 숨결 싱그러운 풀빛을 느끼며 살아요. 몸과 마음이 푸르게 거듭나도록 온힘을 기울여요. 사랑을 속삭이고 꿈을 노래해요. 사람으로 태어난 즐거움을 생각해요.


  《거인을 바라보다》(양철북,2011)라는 책 54쪽을 보면, “사람이 고래의 규모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수백 킬로미터 거리를 마치 우리가 한 블록 거리를 걷듯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는 이 동물에게 세계는 과연 무엇으로 느껴질까?”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오늘날 사람들로서는 고래 움직임을 헤아릴 길이 막혔겠지요. 그러나, 내가 사람이라면, 내가 산 목숨이라면, 내가 푸른 숨결이라면, 고래 움직임이든 참수리 움직임이든 나비 움직임이든 거미 움직임이든, 또렷하게 느끼면서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회사일과 입시공부에 쳇바퀴처럼 휘둘리면서 참마음을 잃고 참사랑을 잊기에, 소리도 느낌도 잃거나 잊지 싶어요.


  《애니미즘이라는 희망》(달팽이,2012)이라는 책 225쪽을 보면, “배운다고 하면 무슨 대단한 공부라도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게 아니라 감동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래요, 마음이 뭉클하게 움직이는 일이 배움이라 하겠지요. 즐거움을 느낄 때에 무언가 배워요. 기쁨을 느낄 때에 무언가 깨달아요. 슬프거나 괴로울 때에도 무언가 배웁니다. 고단하거나 아플 적에도 참말 무언가 알아채요.


  삶은 언제나 배움입니다. 삶은 날마다 새롭기에 날마다 새롭게 배웁니다. 하루하루 새삼스레 찾아오니, 하루하루 새삼스레 배웁니다. 아이는 어른한테서 배우고, 어른은 아이한테서 배웁니다. 우리는 풀잎 하나를 마주하면서 새 숨결을 배우고, 바람 한 닢 살결로 느끼며 새 넋을 배웁니다. 별빛을 바라보면서도 배우고, 도시를 가득 메운 전깃불빛을 바라보면서도 배워요.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삼인,2008)이라는 책 60쪽을 보니, “일반 서민들은 아끼고 또 아끼고, 나아가 인생 자체를 소모하다시피 하며 아파트에 매달리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다.” 하는 이야기가 쏙 튀어나옵니다.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그러네, 하고 무릎을 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사람들 스스로 삶을 찾지 못하고 삶을 덧없이 흘리고 말아요. 삶을 어떻게 누려야 하는가 생각하지 못해요. 삶을 아름답게 즐기는 길을 걷지 못해요.


  대학교에 갈 까닭이 없어요. 자격증을 따야 할 까닭이 없어요. 학문을 하거나 책을 읽을 까닭조차 없어요. 왜냐하면, 삶을 누려야 하거든요. 아니, 삶을 누리려고 태어난 목숨이거든요. 사랑을 하려고 태어난 우리들입니다. 꿈을 키우며 환하게 빛내려고 얻은 목숨이에요.


  《도화동 사십계단》(청사,1990)이라는 시집에 실린 〈불타는 눈〉이라는 작품을 읽습니다. “신문팔이 새끼야아! / 신문팔이 새끼야! / 심술궂은 아이가 따라오며 놀렸다 / 때려주고 싶었지만 / 누가 들을까봐 도망치다가 / 목구멍이 뜨거워졌었다 / 신문팔이에겐 막 대해도 된다고 / 어디서 배웠을까 / 아이보다 세상이 더 무서웠던 / 그날부터 / 삼키는 눈물은 주먹처럼 굵어졌지만 / 눈이 눈물없이 불탔었다.” 삶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이 막말을 일삼고 맙니다. 사랑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이 이웃을 아끼지 못합니다. 꿈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이 도시에서 톱니바퀴 같은 노예가 되어 멍한 눈으로 바쁘게 구릅니다. 아이들 어깨가 너무 무겁습니다. 아이들 눈망울에 빛이 감돌지 못합니다.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이 없습니다. 아이들 목소리에 고운 노래가 감돌지 않습니다. 좋은 삶을 춤추도록 이끌 책 하나 어디에 있을까요. 4346.2.4.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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