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지기

 


책방을 사랑하고
책을 아끼며
사람을 믿는 한편
숲에서 피어나는 숨결을
서로서로 나누어
살아가려는 사람.

 

이들은 바로 책지기. 4346.3.21.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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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36] 싸목싸목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로 갑니다. 군내버스는 시골 할매와 할배로 가득합니다. 할매는 할매끼리 할배는 할배끼리 이야기꽃 한창입니다. “싸목싸목 하쇼.” 앞자리 할매와 뒷자리 할매가 주고받던 이야기 사이에서 ‘싸목싸목’이라는 낱말 귀에 살짝 들어옵니다. 곧잘 뵙는 이웃마을 아재는 말을 하다가 으레 “싸목싸목 해야지.” 하고 한 마디 섞습니다. 서울사람들 흔히 전라도사람들 말투 가리켜 뭘 말해도 ‘거시기’를 섞는다 하는데, 우리 식구 전라남도 고흥에 깃들어 세 해째 살아가며 ‘거시기’라는 낱말 얼마 못 듣습니다. ‘거그’라는 낱말 퍽 자주 듣지만, ‘싸목싸목’이라는 낱말 꽤 자주 듣습니다. 재미삼아 전라도말 ‘거시기’로 뭉뚱그리는구나 싶기도 하지만, 전라도사람 삶말은 너비가 한결 넓고 깊이도 한껏 깊습니다. 경상도말도 충청도말도 제주도말도 모두 새삼스럽고 아름다운 너비와 깊이가 있을 테지요. 그나저나, 서울사람 서울말에는 어떤 너비나 깊이가 있을까요. 서울을 보여주고 서울을 밝힐 만한 한 마디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4346.3.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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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나무 생각

 


  서울에도 나무가 있고, 인천에도 나무가 있습니다. 부산에도 나무가 있고, 광주에도 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자라는 서울나무는 흙땅을 좀처럼 마음껏 누리지 못합니다. 서울에서 자라는 서울나무도 다른 나무들처럼 푸른 숨결 내뿜으며 노래하고 싶은데, 매캐한 바람 너무 짙고 자동차 소리 너무 시끄러워, 숨결도 노래도 곱게 퍼지지 못합니다.


  전라도 시골 고흥에서 살아가는 고흥나무에는 동백꽃이며 매화꽃이며 가득합니다. 나무 곁에는 봄까지꽃 광대나물꽃 별꽃 노루귀꽃 제비꽃 유채꽃 할미꽃 흐드러집니다. 바람이 포근하게 불고, 고흥나무는 포근한 바람을 한껏 즐기면서 푸른 숨결 내뿜고는 푸른 노래 싱그러이 부릅니다.


  서울나무도 맑은 꽃빛 어여쁜 들풀하고 어울리고 싶겠지요. 서울사람도 푸른나무와 봄들꽃이랑 어울리면 한결 맑게 웃으면서 따사로운 서울 삶터 일굴 수 있겠지요. 서울에는 새 야구장이나 새 축구장이나 새 극장이나 새 아파트나 새 백화점이나 새 건물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서울에는 바로 숲이 있어야 하고, 사람들 누구나 밟고 만지면서 사랑할 흙이 있어야 해요. 4346.3.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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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1 10:14   좋아요 0 | URL
어느 집에서 작년인가, 자기네 주차장에 그 옆집의 커다란 목련나무와 라일락나무의 낙엽들이 너무 많이 떨어진다고 싸우다 결국은 집공사중에 그 나무들을 베어버린 일이 있었어요.
정말 기가 막힌 일이라..지금도 안타깝고 한숨만 나와요.
서울나무들은 이래저래 딱합니다.ㅠ.ㅠ

파란놀 2013-03-22 16:11   좋아요 0 | URL
나무에 잎이 있으니 마땅히 가랑잎 떨어지지요.
떨어지지요...
 
친구에게 주는 선물 - 친구를 위한 감동 내 친구는 그림책
후쿠자와 유미코 글.그림, 엄기원 옮김 / 한림출판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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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54

 


내가 나한테 선물한다
― 친구에게 주는 선물
 후쿠자와 유미코 글·그림,엄기원 옮김
 한림출판사 펴냄,2004.12.20./1만 원

 


  밥을 맛있게 차려서 먹습니다. 옷을 곱게 입습니다. 말을 상냥하게 합니다. 얼굴에 웃음 가득 담습니다. 하루하루 즐겁게 누리고 싶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먼 데 사는 반가운 벗한테 글월 하나 띄웁니다.


  내가 먹고 옆지기가 먹으며 아이들 함께 먹을 밥을 아무렇게나 차릴 수 없습니다. 정갈한 먹을거리로 밥상을 꾸리고 싶습니다. 내가 입고 옆지기가 입으며 아이들이 입을 옷을 아무렇게나 빨거나 건사할 수 없습니다. 정갈히 빨래하고 곱게 개어 건사합니다. 내가 누군가한테 들려줄 말이건, 내가 누군가한테서 들을 말이건, 서로서로 상냥하며 아름다운 말을 나눌 때에 즐겁습니다. 얼굴에 웃음꽃 피우며 도란도란 이야기꽃 맺을 때에 즐거워요. 지식 쌓는 책이 아니라, 삶을 사랑하는 책을 읽으며 마음이 포근해요.


.. 숲속이 나뭇잎으로 울긋불긋하게 물든 무렵, 곰네 편지통에 편지가 왔습니다 ..  (2쪽)


  언제나 내가 나한테 선물합니다. 누군가한테 골을 부린다면, 어느 다른 사람한테 골을 부린다기보다 바로 나 스스로한테 골을 부리는 노릇입니다. 누군가한테 따순 말마디 건넨다면, 어느 다른 사람한테 따순 말마디 건넨다기보다 바로 나 스스로한테 따순 말마디 건네는 셈입니다.


  고소한 밥내음 솔솔 풍기는 밥상은 옆지기와 아이들 누리는 밥인데, 나는 곁에서 밥내음만 맡아도 배부릅니다. 즐겁게 밥먹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더라도 마음이 뿌듯하면서 빛납니다. 사랑 담은 글월 하나 띄울 적에도 내 가슴속에서 따사로운 사랑이 펄떡펄떡 일어납니다. 좋은 꿈을 가슴에 품으면 좋은 이야기가 가슴에서 자라고, 맑은 생각을 가슴에 두면 맑은 슬기가 가슴에서 뻗어나옵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늘 살점을 내어줍니다. 어버이는 당신 살점이며 숨결을 모두 내어주면서 아이를 낳아 돌봅니다. 그런데, 어버이는 당신 살점과 숨결을 모두 내어주면서 새 살점이 자라고 새 숨결이 태어나요. 주면 줄수록 더 줄 수 있어요. 나누면 나눌수록 더 나눌 수 있어요. 언제까지라도 줄 수 있는 사랑입니다. 언제나 나눌 수 있는 사람입니다.


  꽁 하고 걸어 잠그면 늘 꽁 하고 걸어 잠그곤 말지요. 꽝 하고 닫아 걸면 노상 꽝 하고 닫아 걸 뿐입니다. 사랑이기에 사랑을 낳고, 미움이기에 미움을 낳아요. 꿍꿍셈은 꿍꿍셈을 낳고, 슬기는 슬기를 낳아요. 콩을 심는데 팥 나올 까닭 없고, 배추씨 뿌리는데 무 나올 일 없어요.

 


.. 큰 곰은 조그마한 빨간 조끼를 보고 생각했습니다. “이 조끼를 입은 내 친구 겨울잠쥐를 보고 싶은걸.” ..  (9쪽)


  내 어버이는 나한테 이녁 온 사랑을 내어줍니다. 나는 내 아이한테 내 온 사랑을 내어줍니다. 내 이웃은 나한테 당신 온 믿음을 베풉니다. 나 또한 내 이웃한테 내 온 믿음을 베풉니다.


  우물물은 푸면 풀수록 더 맑아요. 풀은 뜯으면 뜯을수록 더 싱그럽지요. 햇볕은 쬐면 쬘수록 더 따스해요. 삶은 일구면 일굴수록 더 즐거워요.


  노래하며 삶을 즐기는 아이들은 언제나 새 노래를 새삼스레 부르면서 하루가 한결 즐겁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며 뛰노는 어른은 날마다 새 꿈을 지으면서 하루를 한결 환하게 밝힙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아이들 스스로 선물을 빚어서 스스로 선물을 줍니다. 우리 어른들은 모두 아이였고, 좋은 사랑을 먹으며 자라 어른이 되었어요. 곧, 우리 어른도 누구나 스스로 선물을 빚어서 스스로 선물할 만합니다. 저마다 ‘내가 나를 즐겁게 사랑하는 참다운 길’을 찾을 노릇입니다. 누구나 ‘내가 나를 따사롭게 사랑하는 착한 삶’을 꿈꿀 노릇이에요.

 

 


.. 곰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다시 도토리를 찾으러 갔습니다. 겨울잠쥐는 곰이 떠나는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습니다 ..  (23쪽)


  후쿠자와 유미코 님 그림책 《친구에게 주는 선물》(한림출판사,2004)을 읽습니다. 숲속 작은 쥐하고 숲속 큰 곰은 서로서로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마음 깊이 아끼면서 선물 하나 마련합니다. 서로서로 가장 쓸모있으며 가장 즐겁고 가장 사랑스러울 선물을 생각합니다.


  웃는 삶을 생각합니다. 노래할 삶을 생각합니다. 춤출 삶을 생각합니다. 마음속에 넉넉한 품을 두고, 마음밭에 기름진 흙을 마련하며, 마음자리에 살가운 손길 어루만집니다.


.. “이거 너한테 주는 선물이야.” ..  (34쪽)


  무엇을 선물받고 싶은지 생각해 봐요. 내가 선물로 받고 싶은 한 가지를 헤아려 봐요. 그리고, 내가 선물받고 싶은 한 가지를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옆지기나 아이들이나 이웃이나 동무한테 선물해요. 내가 선물받으며 아주 즐거웠다고 느낀 한 가지를 내 살가운 사람들한테 선물해요. 4346.3.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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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1 09:59   좋아요 0 | URL
내가 나한테 선물한다.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겠습니다.
<친구에게 주는 선물>, 이 책 정말 좋을 것 같아요. ^^
살포시 담아갑니다.

파란놀 2013-03-22 02:54   좋아요 0 | URL
네, appletreeje 님 아이들한테 이 그림책 읽힐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
아이들이 나이를 많이 먹었어도
어른인 우리 스스로 즐기면
다 좋은 그림책이리라 느껴요.

저는,
아이들한테 그림책 사 준다는 생각보다
내가 좋아할 그림책을 사곤 햐요 ^^;;;;

appletreeje 2013-03-23 09:09   좋아요 0 | URL
히히..저도 제가 좋아서 읽을 그림책을 사요..
<친구한테 주는 선물>. 배송되어 읽었는데 아주 재밌고 좋더라구요. ^^
오늘 저녁엔 <둥지 상자>를 읽을 수 있겠지요.
늘 좋은 책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3-03-23 14:50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아이들이 나이 먹어도
어머니 좋아하는 예쁜 그림책 아끼면서
고운 마음 오래오래 누릴 수 있으면
참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헌책방이 하는 일

 


  여기 한 사람 있어, 삶을 하나 짓는다. 삶을 짓는 한 사람, 이녁 삶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글을 하나 일군다. 글을 둘 일구고, 글을 셋 일구더니, 어느새 글을 꾸러미로 모으고, 타래처럼 엮는다.


  삶을 짓는 동안 글을 함께 일군 이야기를 곁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던 다른 한 사람, 즐겁게 글선물 받는다. 바야흐로 책 하나 새롭게 묶는다.


  사랑을 받으며 태어난 책을 다른 한 사람 기쁘게 알아본다. 따순 마음으로 종이 한 장 넘기고 두 장을 넘기더니, 이내 책을 다 읽는다. 마음 가득 뿌듯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넘실거린다. 홀로 간직하기에는 아쉽구나 여겨, 기쁘게 읽은 책을 헌책방에 내려놓고 또 다른 한 사람 이 책 살뜰히 보듬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헌책방 일꾼은 책 하나가 또 다른 한 사람한테 이어질 수 있게끔 정갈히 모신다. 나무를 잘라 책시렁을 짜고, 등불을 달아 가게를 밝히며, 걸레를 쥐어 책에 낀 먼저아 더께를 닦는다.


  한 해가 지나야 할까, 열 해가 지나야 할까. 하루면 될까, 이레쯤이면 되려나. 또 다른 책손은 언제쯤 헌책방 한 곳 알아채어 가붓가붓 나긋나긋 발걸음으로 책마실 누리려나. 책 하나는 언제쯤 또 다른 한 사람 가슴속으로 포근히 안길 수 있을까.


  삶이 흐르고 책이 흐른다. 사람이 살고 책방이 산다. 이야기가 오가고 사랑이 오간다. 4346.3.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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