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그림 읽기
2013.3.23. 큰아이―무지개빛 그림

 


  종이에 먼저 연필로 밑그림 그린 다음, 까만 빛연필로 테두리 굵게 하고, 여러 빛연필을 써서 무지개빛을 입힌다. 큰아이와 함께 무지개빛 그림을 한 장 그리고 나서, 이번에는 서로 따로따로 종이 한 장을 채운다. 아이는 아이대로 그림을 그려 예쁘다 말하면서 벽에 붙여 달라 한다. 나도 내 그림을 아이 그림 곁에 붙인다. 다음에 또 함께 그리자. 4346.3.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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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전업주부

 


  어린이책 《아빠는 전업주부》라는 어린이문학을 읽는다. 독일사람 키르스틴 보예 님이 쓴 책이 하나 있고, 이 책과 이름이 같고 한국사람 소중애 님이 쓴 책이 하나 있다. 한국사람이 쓴 책은 아직 모르겠는데, 한국사람 어린이문학은 판이 끊어졌기에 찾아 읽자면 좀 오래 걸리겠구나 싶다.


  독일 어린이문학을 읽으며, 첫머리부터 깊고 너른 이야기를 짚는구나 하고 느끼며 즐겁다. 그런데, 이야기가 이어지고 또 이어지면서 곁가지 다른 이야기로 빠진다. 곁가지 다른 이야기를 다루면서 ‘남자가 바깥 돈벌이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삶’을 소홀하게 다룬다.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청소를 하고 아이들 돌보는 삶을 찬찬히 보여주지 못한다. 너무 얼렁뚱땅 넘어간다.


  한국 어린이문학은 어떻게 그릴까? 남자 어른이 ‘집안일은 참 어렵구나!’ 하고 깨달으며 뉘우치는 대목을 그리면서 쉬 마무리짓고 말까? 새삼스레 완다 가그 님 그림책 《집안일이 뭐가 힘들어!》가 떠오른다. 그림과 글로 아주 쉽고 단출하면서 또렷하게 ‘집안일 이야기와 삶’을 보여주는 책이다. 집안일을 하찮게 보는 남자 어른 코를 아주 납작하게 해 주되, 사랑스레 품어 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무렴, 그렇지. 여자 어른이 집안일을 오래도록 맡아서 했으니, 남자 어른이 바깥일도 할 수 있지, 남자 어른이 집안일을 맡아서 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었으리라. 남자 어른 가운데 집안일 알뜰히 잘 하는 이도 더러 있을 테지만, 여자 어른은 바깥일뿐 아니라 집안일까지 몽땅 도맡아야 하지 않을까? 그나마, 여자 어른이 집안일을 많이 맡아서 하니, 바깥일을 덜 맡아서 해도 되는(?), 그야말로 어처구니없이 알쏭달쏭한 사회 얼거리가 이루어지는구나 싶기도 하다.


  생각해 보라. 남자 어른치고 집안일 이야기를 찬찬히 쓰거나 그리거나 사진으로 찍을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니, 이런 시인이나 소설가나 사진작가나 화가가 있는가? 남자 어른 가운데 아이 돌보는 삶을 찬찬히 쓰거나 그리거나 사진으로 찍을 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두말할 것 없다. 남자 어른 스스로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제대로 쓴 책이 여태 한 권도 없는걸! 밥과 옷과 집을 옳고 바르며 슬기롭게 그리며 건사할 줄 아는 남자 어른은 어디에 있을까. 4346.3.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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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탑사 봄꽃내음

고흥 길타래 6―걸어야 만나는 꽃

 


  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꽃한테 마음을 연 사람입니다. 꽃한테 마음을 열지 못한 사람은 꽃을 보지 못하고, 꽃을 보더라도 느끼지 못합니다. 꽃은 꽃망울이나 꽃송이나 꽃잎으로만 꽃이지 않습니다. 마음밭을 꽃밭으로 일구는 숨결로 마주할 때에 비로소 꽃입니다.


  따사로운 볕살 드리우는 아침나절, 멧길을 거닐며 봄내음 마십니다. 포근한 바람결에는 봄을 맞이해 피어난 꽃마다 내뿜는 꽃가루가 실립니다. 이른바 꽃바람이 붑니다. 꽃바람을 쐬면서 비자나무숲 사이를 거닐면, 곳곳에 스스로 뿌리를 내려 자라는 진달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겨울에도 푸른 잎사귀 짙은 비자나무 사이에서도, 겨울날 잎 모두 떨군 나무들 사이에서도, 진달래는 씩씩하게 새 꽃을 틔웁니다. 분홍빛이라는 낱말로는 가리키기 어려운, 꼭 진달래빛이로구나 하는 한 마디로만 가리킬 수 있는 진달래꽃을 틔웁니다.


  금탑절 앞마당에서 자라는 명자나무, 또는 아가씨나무 꽃망울이 터질락 말락 합니다. 명자꽃, 또는 아가씨꽃은 어떤 빛이름으로 가리켜야 할까요. 빨강, 짙은빨강, 주홍, 다홍, …… 명자꽃이나 아가씨꽃 또한 다른 어느 빛이름으로도 가리키지 못합니다. 오직 명자꽃빛이나 아가씨꽃빛이라고 말할 때에 비로소 이 꽃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너른 풀밭에서도 피어나는 제비꽃이지만, 그늘진 구석자리에서도 피어나는 제비꽃입니다. 너른 풀밭에서 피어나는 제비꽃 빛깔은 살짝 옅습니다. 그늘진 구석자리에서 피어나는 제비꽃 빛깔은 한껏 짙습니다. 조그마한 제비꽃 곁에는 더 조그마한 꽃마리가 하얗게 흔들립니다. 이 작은 꽃을 마주하자면 걸어야 합니다. 이 작은 꽃을 마주하자면 신나게 걷다가도 걸음을 멈추어야 합니다. 늦겨울부터 이른봄 사이에 흐드러지는 동백꽃은 멀리에서도 곧 알아챈다지요. 누구라도 동백꽃 붉은 꽃망울 쉬 알아채리라 생각합니다. 동백꽃송이는 걸어가면서도, 때로는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면서도 알아볼 만합니다.


  그러나, 제비꽃이나 꽃마리는 자동차를 타고 지나갈 적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기 일쑤예요. 100킬로미터나 120킬로미터, 아니 80킬로미터나 60킬로미터로 달린다 하더라도 제비꽃이나 꽃마리 빛깔도 내음도 모습도 무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아주 천천히 걷다가는 걸음을 멈추어야 합니다. 걸음을 멈출 뿐 아니라 쪼그려앉아야 합니다. 쪼그려앉을 뿐 아니라, 흙바닥에 털썩 앉아서 고개를 한참 들이밀어야 합니다.


  작은 꽃은 작은 사람 작은 눈길을 바랍니다. 작은 꽃일수록 더 사랑받기를 바랍니다. 작고 가녀린 이웃들일수록 더 찬찬히 헤아려야겠지요. 작고 가녀리며 가난한 이웃을 슥슥 지나치는 눈길로 바라본다면, 서로 어깨동무할 손길을 찾을 수 없어요.

 

 

 


  자가용에서 내려 대문을 열고 들어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에, 작고 가녀리며 가난한 이웃 마음을 조금 느낄 수 있습니다. 곧, 두 다리로 숲길 천천히 거닐며 숲바람과 봄바람 느끼다가 문득 멈추어서 발밑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는, 무릎을 꿇거나 엉덩이를 흙바닥에 대고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아야 제비꽃이며 꽃마리를 알아채고는 인사를 건넬 수 있어요.


  기왓장 얹은 흙울타리 한쪽에 접시꽃잎 돋습니다. 꽃대가 오르며 꽃망울 맺히자면 더 있어야겠지요. 조글조글 보드라운 접시꽃잎은 다른 봄풀처럼 맛난 봄나물 될까요.


  제비꽃보다는 아주 조금 큰 현호색이 디딤돌 한쪽에 옹크립니다. 눈이 밝은 사람은 알아볼까요, 눈이 밝은 사람이더라도 못 알아볼까요. 이곳에 한 송이, 저곳에 두 송이, 알록달록 나란히 핍니다. 봄맞이 누리는 사람들한테 어떤 이야기 건네고 싶어, 이렇게 작은 꽃이 이렇게 구석진 자리에서 호젓하게 꽃내음 내뿜을까요.

 

 

 


  현호색 앞에서 한참 쪼그려앉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포두면 금사마을에서 금탑절까지 자동차로 싱싱 오갈 만한 길을 뚫었으면, 현호색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금탑절 곳곳에 시멘트를 깔아 비오는 날에도 질퍽거리지 않도록 한다면, 이 작은 들꽃 현호색이 금탑절 곳곳에 뿌리를 내려 마알간 꽃선물 할 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무르익으려고 한창 애쓰는 함박꽃가지 예쁩니다. 함박꽃은 함박웃음처럼 크게 벌어져도 곱고, 아직 꽃봉오리 맺지 못하고 천천히 기운을 모으며 봄볕 받는 꽃가지로 있을 적에도 곱습니다.


  꽃다지는 어떤 풀이 될까요. 겨울 이기고 봄 누리는 반가운 봄나물 내음으로 다가오는 풀일까요.


  꽃다지도, 봄까지꽃도, 코딱지나물(광대나물)도, 냉이도, 꽃마리도, 모두 반가우며 고마운 봄나물이요 봄풀이며 봄꽃입니다. 잎사귀 하나 뜯어서 먹어도 봄맛이요, 꽃대와 꽃송이까지 통째로 먹어도 봄맛입니다.

 

 

 


  나물로 먹기 앞서 오래도록 들여다보셔요. 꽃다지 노란 꽃잎과 꽃술 들여다보셔요. 얼마나 작은 꽃이요, 얼마나 사랑스러운 꽃인가 하고 마주하셔요. 그러고 나서, 즐겁게 뜯어 즐겁게 먹어요. 꽃다지 한 송이가 내 몸속으로 들어와서, 꽃다지와 내가 하나되는구나 하고 느껴요. 봄까지꽃 뜯어서 먹으며, 봄까지꽃이랑 내가 한삶으로 지내는구나 하고 느껴요.


  우리는 누구나 먹는 대로 삶을 빚어요. 우리가 먹는 밥은 모두 우리 숨결이에요. 우리가 마시는 물과 바람도 우리 숨결이에요. 맑은 밥 먹으면서 맑은 숨결 돼요. 맑은 물 마시면서 맑은 숨소리 내지요. 맑은 바람 들이켜면서 맑은 눈빛 밝혀요.


  머위꽃이 피고 머위잎이 퍼집니다. 숱한 봄풀 사이에서 머위꽃은 몹시 커다랗게 보입니다. 아직 활짝 벌어지지 않은 머위꽃은 통째로 먹는 고마운 나물이 됩니다. 머위야, 머위야, 내 몸으로 들어와서 더 아름답게 피어나렴. 톡, 하고 하나 뜯습니다.

 

 

 

 


  우람한 동백나무 곁으로 천등산 줄기를 바라봅니다. 금탑절 서림 스님이 내어주는 따스한 찻물 한 잔 받습니다. 바람 고요한 아침나절, 풍경소리 또한 고요합니다. 절집 옆에서 일찌감치 꽃을 피우고는 진 복수초는 씨앗을 맺느라 바쁩니다. 복수초는 꽃으로도 어여쁜데, 이렇게 씨앗 맺는 푸른 빛깔 또한 앙증맞고 어여쁩니다. 아예 밭을 이룬 수선화들은 꽃송이 벌어질 적에도 예쁘지만, 꽃송이 벌어질까 말까 망설이는 때에도 예쁩니다.


  푸른 물결일까요. 노란 물결일까요. 바다는 파란 물결이다가도 때로는 푸른 물결인데, 봄들판은 어떤 물결 되어 우리들 마음속으로 젖어들까요.


  수선화밭 가장자리에는 할미꽃이 곱다시 핍니다. 할미꽃과 수선화 사이에는 봄까지꽃이 돋습니다. 수선화만 예쁘다 여기면 봄까지꽃이고 할미꽃이고 뽑히겠지요. 서로 다른 봄꽃이 서로 다르게 어여쁘다 여기면, 모두 한 자리에서 즐겁게 피어나면서 봄빛 베풀겠지요.


  서림 스님 옷소매 닳은 모습을 뒤에 서서 바라봅니다. 스님이 한손을 뻗어, 저기 닥종이 만드는 닥나무에 핀 꽃을 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삼지닥나무라 한다는데, 꽃이 필 적에 저렇게 예쁘다고 이야기합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닥종이로 다시 태어나도 어여쁘며, 닥나무에 꽃망울 맺혀 온통 꽃잔치를 이루어도 어여쁩니다. 절집에 와서 부처님한테 절은 않고, 절집을 둘러싼 작고 작은 꽃이랑 소담스럽고 소담스러운 꽃을 마주하며 끝없이 허리를 숙입니다. 자꾸자꾸 고개를 숙입니다.

 

 

 

 


  키 작은 꽃을 찬찬히 들여다보자면, 허리를 숙일밖에 없어요. 키 작은 꽃송이 사진 하나로 담자면 고개를 숙일밖에 없어요. 아예 땅바닥에 드러눕기까지 해야 합니다.


  금탑절에서 내려오는 길에 다시금 진달래를 만납니다. 진달래 바라보며 방긋 웃습니다. 네 빛 보고 또 보아도 더할 나위 없이 곱구나. 사람들이 시멘트건물에 갇힌 채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본다든지 칠판만 쳐다본다든지 참고서만 파헤친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사람들이 너른 들판에 서서 햇살 먹으면서 너희 봄꽃하고 어깨동무할 수 있다면, 가슴 가득 꽃마음 되어 아름다운 사랑을 속삭일 텐데. 어른들도, 아이들도, 고등학교 수험생도, 누구라도 이 좋은 봄날, 숲길 천천히 거닐며 봄노래 부른다면, 우리 고흥 시골마을 아리땁게 돌보는 길을 찾을 수 있을 텐데.


  나는 금탑절에서 내려와 백치성을 끼고 지정마을 쪽으로 넘어가는 멧길을 갑니다. 군청에서는 이 멧길을 아스팔트로 깔려고 공사를 합니다. 자동차 넘나들기 좋게 아스팔트 깔아도 되겠지요. 그런데, 자동차는 안 다녀도 좋아요. 사람들 누구나 호젓하게 이야기꽃 피우며 도란도란 거니는 숲길로, 흙길로, 거님길로, 마중길로, 마실길로 고이 지킨다면, 훨씬 좋으면서 널리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자가용 몰며 싱싱 달리는 길에서는 아무런 이야기가 샘솟지 못하거든요. 한국사람은 외국으로 여행을 가면, 자가용 내려놓고 오래도록 걸어다니면서 즐거운 이야기 길어올리거든요. 막상 한국에서는 자가용을 내려놓지 못한 채 이곳저곳 쏘다니다가, 그만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말거든요. 4346.3.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고흥 길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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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3-26 13:28   좋아요 0 | URL
오늘 님의 서재에 들어오지 못했으면 놓칠 뻔한 세상의 그림들을 잘 감상하고 갑니다. ^^

파란놀 2013-03-26 15:29   좋아요 0 | URL
남녘땅은 참으로 한껏 무르익어요.
이 어여쁜 봄을
사랑스러운 이웃들 모두 맑게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
송기원 지음, 이인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시와 그림
[시를 말하는 시 15] 송기원,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

 


- 책이름 :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
- 글 : 송기원
- 그림 : 이인
- 펴낸곳 : 랜덤하우스중앙 (2006.2.3.)
- 책값 : 8500원

 


  시는 언제나 사람들 가슴속에 있습니다. 시를 잘 쓰는 사람이 따로 없고, 시를 못 쓸 사람 따로 없습니다.


  학교에서 시를 배워야 시를 쓰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시를 배운 적 없기에 시를 못 쓰지 않습니다. 가슴속에 깃든 싯노래 들을 수 있으면 시를 씁니다. 가슴속에서 물결치는 싯말 사랑할 수 있으면 시를 써요.


.. 네가 남긴 눈부심에 싸여, 오늘은 / 각시붓꽃을 바라보며 나도 눈부시다 ..  (각시붓꽃)


  마을 할매가 아이들 바라보며 “오매, 저 이쁜 것들.” 하고 한 말씀합니다. 마을 할매는 오상순이라는 시인을 모르고, 오상순이라는 시인이 읊은 시를 모릅니다. 그러나, 마을 할매는 이녁 살아온 나날을 사랑하면서 한 마디 내놓습니다. “오매, 저 이쁜 것들.”


  개구지게 뛰노는 아이들이 이쁩니다. 봄을 맞이하며 피어나는 들꽃이 이쁩니다. 쑥쑥 자라는 마늘밭이 이쁩니다. 논에 갓 심은 모가 이쁩니다. 무럭무럭 자라서 누렇게 익는 나락이 이쁩니다. 나락을 벤 논자락 노르스름한 흙바닥이 이쁩니다. 하늘빛이 이쁘고, 햇살이 이쁩니다. 구름이 이쁘고, 나무그늘이 이쁩니다. 온통 이쁜 것투성이예요. 내 마음도, 이웃 마음도, 동무 마음도, 살붙이 마음도 한동아리 되어 이쁜 이야기 길어올립니다.


  새삼스럽지만, 시뿐 아니라 그림 또한 누구나 그립니다. 사람들 가슴속에는 그림으로 그릴 맑은 빛이 있어요. 대학교를 다녀야 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어떤 그림쟁이한테서 배워야 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그렇다고 붓 가는 대로 그리는 그림은 아니에요.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이야기 있을 때에 저절로 붓이 움직여요. 가슴속에서 샘솟는 사랑과 꿈 있기에 시나브로 붓을 움직여요.


  사람들 가슴속에는 시도 있고 그림도 있으며, 노래도 있고 춤도 있어요. 기쁜 날 곱게 웃으며 정갈한 춤을 춥니다. 기쁜 때 맑게 웃으며 아리따운 노래를 부릅니다.


  등 굽은 할매한테 어떤 힘이 있기에 넓고 넓은 밭에서 풀을 뽑으며 씨앗 심어 열매 거둘까요. 바로 이녁 가슴속에 서린 사랑 있으니, 지팡이 짚고 들판으로 나와, 흙바닥에 엉덩이 깔고 하루를 누릴 수 있습니다.


.. 흐르는 물에 우선 마음을 맡기네 ..  (개구리밥)


  송기원 님 시집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랜덤하우스중앙,2006)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송기원 님은 마음속에서 꽃말 그득그득 샘솟아 어느새 꽃을 노래하는 시를 후두둑 적바림했다고 합니다. 흐르는 물결처럼 흐르는 시입니다. 넘실넘실 찰랑이는 물결처럼 알록달록 빛나는 시입니다.

  머리를 쥐어짜야 시를 쓰겠습니까. 머리를 쥐어뜯어야 비평이나 평론을 쓰겠습니까.


  생각해 봐요. 머리를 쥐어짜서 쓴 시라 한다면, 이런 시를 읽는 내 마음이 즐거울 수 있을까요. 헤아려 봐요. 머리를 쥐어뜯어서 쓴 비평이나 평론이라면, 이런 글을 읽는 내 마음에 즐거움이 감돌 수 있나요.


.. 왜 나는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몰랐을까 /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죽음이라고만 여겼을까 ..  (눈꽃 1)


  마음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마음으로 시를 씁니다. 마음으로 사랑을 합니다. 마음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마음이 있기에 무엇이든 합니다. 마음이 있어 밭을 갈고, 밥을 지으며, 빨래를 합니다. 마음이 없기에 사랑을 못 나누고, 꿈을 못 그리며, 시를 못 써요.

  송기원 님은 마음속에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요. 송기원 님은 어떤 사랑을 마음그림으로 그려서 싯말 하나 내놓았을까요. 봄날 봄바람 쐬거나 봄꽃 누리면서 시를 쓴 송기원 님일까요.


  한껏 무르익은 그림쟁이는 골방에 앉아서도 구름과 해와 잠자리와 개구리 멋들어지게 그린다고 해요. 한껏 무르익은 글쟁이는 골방에 앉아서도 바람과 흙과 꽃과 나무 멋있게 적바림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림쟁이라면 들판에 종이 한 장 들고 나와서 그림을 그릴 때에 비로소 그림쟁이로구나 싶어요. 들판을 느끼며 들판을 그려야지요. 곧, 글쟁이라면 들판에 쪽종이 하나 들고 나와서 글을 쓸 때에 시나브로 글쟁이로구나 싶어요. 꽃을 마주보고, 꽃이 뿌리내린 흙을 만지며, 꽃이 바라보는 하늘과 해와 구름과 바람을 한껏 들이켜면서 꽃을 노래해야지요. 4346.3.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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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3-26 13:17   좋아요 0 | URL
머리를 쥐어짜야 시가 되는 게 아니라 할매가 아이들 바라보며 저절로 나오는 한 말씀,“오매, 저 이쁜 것들.” 이것이 아름다운 시군요. 오늘도 배워 갑니다. ^^

파란놀 2013-03-26 15:29   좋아요 0 | URL
즐겁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사랑스럽게 쓰면,
시도 되고 수필도 되고 소설도 되지요~~~
 
슬로우리 데이즈 1
나가하라 마리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23

 


즐겁기에 아름다운 나날
― 슬로우리 데이즈 1
 나가하라 마리코 글·그림,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2010.6.15./4200원

 


  깊은 밤에 여행가방을 솔로 복복 문지르며 빨래합니다. 여행가방 빨래한 지 얼마나 되었나 어림합니다. 이 가방을 처음 쓴 지 열 해 남짓 되는구나 싶은데, 처음으로 빨래를 하네 싶습니다. 아이들 옷가지와 옆지기 옷가지까지 차곡차곡 담는 큰 가방을 지난달에 빨래했습니다. 커다란 가방 하나 빨래하자면 품이 제법 들고, 말리기까지 하루 꼬박 지냅니다. 옷도 빨고 신도 빨며 몸도 씻으면 가방도 빨아야지요. 마루도 훔치고 방바닥도 훔치며 그릇도 부시면, 가방이라고 빨래하지 않을 까닭 없습니다. 자전거도 닦아 주고, 평상도 닦을 일입니다. 마당도 쓸고 밭자락에 바람 따라 날려온 쓰레기도 치울 일입니다.


  내 몸을 씻고, 아이들 몸 씻기면서 때를 벗습니다. 때를 벗은 몸은 한결 가볍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한자말로 으레 ‘목욕’이라 하지만, 몸을 씻을 적에는 참말 한국말 그대로 ‘몸씻기’나 ‘몸씻이’라 해야 걸맞으리라 느낍니다. 이와 아울러 ‘마음씻기’나 ‘마음씻이’를 헤아려야겠구나 싶습니다. ‘눈씻기’와 ‘입씻기’와 ‘귀씻기’, 여기에 ‘머리씻기’도 돌아봅니다. 살결에 밴 때만 씻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어지럽히는 온갖 때를 씻는 삶을 곱씹습니다.


- ‘손을 놓지 마. 언제까지나 함께 있고 싶어.’ (4쪽)
- “낡고 좁아도 좋으니까, 집세가 싸고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아파트에 감이랑 딸기랑 과일나무가 잔뜩 있고, 열매가 열리면 주인아주머니가 과일을 나눠 주는 데라면 더 좋을 텐데.” (6쪽)

 

 


  즐겁기에 아름다운 나날입니다. 책을 수천 수만 권 읽기에 아름다운 나날이지는 않습니다. 참으로 즐겁기에 아름다운 나날입니다. 돈을 얼마쯤 벌어들였으니 아름다운 나날이지는 않아요. 더할 나위 없이 즐겁기에 아름다운 나날입니다. 이름값이나 무슨무슨 졸업장이나 자격증 때문에 아름다운 나날이지 않지요.


  스스로 즐거울 수 있으면, 책도 즐길 노릇입니다. 책읽기를 즐기고, 돈벌기도 즐길 노릇입니다. 억지스레 벌 돈이 아니요, 우악스레 긁어모을 돈이 아닙니다. 참으로 즐겁게 일하면서 참말로 즐겁게 벌 돈입니다.


  즐겁게 번 돈은 즐겁게 쓰겠지요. 악착같이 번 돈을 즐겁게 쓸 수 있을까요. 악착같이 번 돈은 악착같이 쓰지 않던가요.


  그러니까, 시험공부를 악착같이 하는 동안, 내 동무를 밟고 올라서야 악착같이 1등이건 2등이건 할 테니, 서로 악다구니가 되어요. 시험공부를 즐겁게 한다면, 내 점수보다 내 동무와 함께 배우는 즐거움을 헤아릴 테고, 대학교에 붙느냐 안 붙느냐, 또는 내신점수가 이러거나 저러거나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어요. 돈벌기이든 시험공부이든, 언제나 즐겁게 해야지, 악에 받쳐서 하면 스스로 무너져요.


- “둘이서 맛있는 걸 먹는 행복. 이 이상의 행복은 없을 거야. 앞으로도 계속 매달 여기 함께 오자.” “응!” (13쪽)
- ‘실수를 하면서도 마음속 어디선가 기대하고 있었다. 나가루라면 웃으면서 용서해 줄 거라고. 언제나.’(36쪽)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때에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자가용을 멈추고 두 다리로 걸을 때에 바람결을 느낍니다. 머릿속에 자잘한 걱정근심 두지 않아야 비로소 바람내음 맡습니다.


  봄바람은 꽃바람입니다. 봄에 부는 바람에는 들풀과 숲나무에서 뿜는 꽃가루 듬뿍 담깁니다. 아니, 봄바람은 들꽃가루와 나무꽃가루 잔뜩 머금으며 휘휘 붑니다. 겨우내 지치고 힘들었을 목숨들한테 봄꽃가루 나누어 주면서 새 기운 북돋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시골에서고 도시에서고 사람들은 자가용만 타려고 해요. 자전거조차 거의 안 타요. 봄에도 봄바람을 쐴 일이 너무 없어요. 봄날 들판에서 일손 놀리는 할매와 할배는 마늘밭에 농약 치느라 부산합니다. 애써 흙 밟거나 만지며 봄바람 쐴까 싶은 할매와 할배도 농약 뿌리느라 바쁜 나머지, 봄바람하고 멀어지고 말아요. 농약 뿌리는 기계 저리 치우고, 맨손으로 미나리 뜯고 쑥 뜯어야 비로소 봄바람 쐴 만해요.


- “전 하나를 지켜 주고 싶은 것뿐인데, 누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니.” (24쪽)
- ‘식어 버린 크로켓. 별로 맛이 없다. 하지만 이것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하는 것이 어른이 된다는 걸까? 둘이서 발견한 최고의 행복. 그걸 버리면서까지 손에 넣을 가치가 있는 게 정말 있을까?’ (42쪽)

 


  나가하라 마리코 님 만화책 《슬로우리 데이즈》(대원씨아이,2010) 첫째 권을 읽습니다. 책이름처럼 “느린 하루”, 또는 “천천히 누리는 삶”을 바라는 젊은 두 사람이 나옵니다. 젊은 두 사람은 하루를 온통 두 사람 것으로 누리고 싶습니다. 사회에서 일컫는 이름값이나 돈이나 권력에는 눈길조차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을 둘러싼 ‘어른’들은 너희가 그렇게 뜬금없는 생각을 품어 어찌 집을 장만하고 어찌 돈을 벌며 어찌 집살림 꾸리느냐고 걱정하면서 잔소리 퍼붓습니다. 젊은 두 사람은 ‘어른들 말씀’에 주눅이 들고 말아, ‘번듯한 회사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러는 사이 두 사람은 서로 만날 틈이 줄어듭니다. 아니, ‘회사원 될 공부를 하고 준비를 하면’서 두 사람은 아예 못 만납니다. 회사원이 되고 나서는 회사일에 바빠 또다시 두 사람은 거의 못 만납니다.


  번듯한 회사라는 이름값이, 번듯한 회사에서 받는 높은 일삯이, 이리하여 집을 장만하거나 자가용을 몰거나 온갖 물건 사들일 수 있는 은행계좌가, 젊은 두 사람 ‘사랑과 꿈’을 지켜 줄까요.


- ‘무엇을 선택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46쪽)
- “요정은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에게만 보이지. 오빠랑 누나한테는 요정이 보인단다! 너희도 보이니?” (160쪽)
- ‘바보 같고 멍청하고 가난하고 한심한 어른인데도, 왜 저 두 사람은 저렇게 즐거워 보이는 걸까? 그치만 이왕이면 ‘즐겁지 않은’ 것보다 ‘즐거운’ 게 좋겠지. 나도 오늘은 좀 다른 놀이를 해 볼까.’ (184쪽)


  즐겁지 않다면 아름답지 않습니다. 즐겁다면 아름답습니다. 대통령 자리는 즐거울까요? 국회의원 자리는 즐거울까요? 시장이나 군수 자리는 즐거울까요? 대학생 자리는 즐거울까요? 공무원 자리는 즐거울까요?


  무엇이 삶을 즐겁게 할까요? 봄날 봄꽃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삶은 얼마나 즐거울까요? 봄날 봄들 누비면서 봄풀 뜯어 봄밥 차려서 먹지 못하는 사람들 삶은 얼마나 즐거울까요?


  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만, 봄은 그리 짧지 않습니다. 봄꽃은 오래도록 피어나지 않지만, 봄꽃은 하룻밤 사이에 지지 않습니다. 봄이 한껏 무르익는 요즈음, 우리들이 즐기면서 누려 아름답게 꾸릴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4346.3.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사람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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