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리 데이즈 1
나가하라 마리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23

 


즐겁기에 아름다운 나날
― 슬로우리 데이즈 1
 나가하라 마리코 글·그림,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2010.6.15./4200원

 


  깊은 밤에 여행가방을 솔로 복복 문지르며 빨래합니다. 여행가방 빨래한 지 얼마나 되었나 어림합니다. 이 가방을 처음 쓴 지 열 해 남짓 되는구나 싶은데, 처음으로 빨래를 하네 싶습니다. 아이들 옷가지와 옆지기 옷가지까지 차곡차곡 담는 큰 가방을 지난달에 빨래했습니다. 커다란 가방 하나 빨래하자면 품이 제법 들고, 말리기까지 하루 꼬박 지냅니다. 옷도 빨고 신도 빨며 몸도 씻으면 가방도 빨아야지요. 마루도 훔치고 방바닥도 훔치며 그릇도 부시면, 가방이라고 빨래하지 않을 까닭 없습니다. 자전거도 닦아 주고, 평상도 닦을 일입니다. 마당도 쓸고 밭자락에 바람 따라 날려온 쓰레기도 치울 일입니다.


  내 몸을 씻고, 아이들 몸 씻기면서 때를 벗습니다. 때를 벗은 몸은 한결 가볍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한자말로 으레 ‘목욕’이라 하지만, 몸을 씻을 적에는 참말 한국말 그대로 ‘몸씻기’나 ‘몸씻이’라 해야 걸맞으리라 느낍니다. 이와 아울러 ‘마음씻기’나 ‘마음씻이’를 헤아려야겠구나 싶습니다. ‘눈씻기’와 ‘입씻기’와 ‘귀씻기’, 여기에 ‘머리씻기’도 돌아봅니다. 살결에 밴 때만 씻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어지럽히는 온갖 때를 씻는 삶을 곱씹습니다.


- ‘손을 놓지 마. 언제까지나 함께 있고 싶어.’ (4쪽)
- “낡고 좁아도 좋으니까, 집세가 싸고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아파트에 감이랑 딸기랑 과일나무가 잔뜩 있고, 열매가 열리면 주인아주머니가 과일을 나눠 주는 데라면 더 좋을 텐데.” (6쪽)

 

 


  즐겁기에 아름다운 나날입니다. 책을 수천 수만 권 읽기에 아름다운 나날이지는 않습니다. 참으로 즐겁기에 아름다운 나날입니다. 돈을 얼마쯤 벌어들였으니 아름다운 나날이지는 않아요. 더할 나위 없이 즐겁기에 아름다운 나날입니다. 이름값이나 무슨무슨 졸업장이나 자격증 때문에 아름다운 나날이지 않지요.


  스스로 즐거울 수 있으면, 책도 즐길 노릇입니다. 책읽기를 즐기고, 돈벌기도 즐길 노릇입니다. 억지스레 벌 돈이 아니요, 우악스레 긁어모을 돈이 아닙니다. 참으로 즐겁게 일하면서 참말로 즐겁게 벌 돈입니다.


  즐겁게 번 돈은 즐겁게 쓰겠지요. 악착같이 번 돈을 즐겁게 쓸 수 있을까요. 악착같이 번 돈은 악착같이 쓰지 않던가요.


  그러니까, 시험공부를 악착같이 하는 동안, 내 동무를 밟고 올라서야 악착같이 1등이건 2등이건 할 테니, 서로 악다구니가 되어요. 시험공부를 즐겁게 한다면, 내 점수보다 내 동무와 함께 배우는 즐거움을 헤아릴 테고, 대학교에 붙느냐 안 붙느냐, 또는 내신점수가 이러거나 저러거나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어요. 돈벌기이든 시험공부이든, 언제나 즐겁게 해야지, 악에 받쳐서 하면 스스로 무너져요.


- “둘이서 맛있는 걸 먹는 행복. 이 이상의 행복은 없을 거야. 앞으로도 계속 매달 여기 함께 오자.” “응!” (13쪽)
- ‘실수를 하면서도 마음속 어디선가 기대하고 있었다. 나가루라면 웃으면서 용서해 줄 거라고. 언제나.’(36쪽)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때에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자가용을 멈추고 두 다리로 걸을 때에 바람결을 느낍니다. 머릿속에 자잘한 걱정근심 두지 않아야 비로소 바람내음 맡습니다.


  봄바람은 꽃바람입니다. 봄에 부는 바람에는 들풀과 숲나무에서 뿜는 꽃가루 듬뿍 담깁니다. 아니, 봄바람은 들꽃가루와 나무꽃가루 잔뜩 머금으며 휘휘 붑니다. 겨우내 지치고 힘들었을 목숨들한테 봄꽃가루 나누어 주면서 새 기운 북돋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시골에서고 도시에서고 사람들은 자가용만 타려고 해요. 자전거조차 거의 안 타요. 봄에도 봄바람을 쐴 일이 너무 없어요. 봄날 들판에서 일손 놀리는 할매와 할배는 마늘밭에 농약 치느라 부산합니다. 애써 흙 밟거나 만지며 봄바람 쐴까 싶은 할매와 할배도 농약 뿌리느라 바쁜 나머지, 봄바람하고 멀어지고 말아요. 농약 뿌리는 기계 저리 치우고, 맨손으로 미나리 뜯고 쑥 뜯어야 비로소 봄바람 쐴 만해요.


- “전 하나를 지켜 주고 싶은 것뿐인데, 누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니.” (24쪽)
- ‘식어 버린 크로켓. 별로 맛이 없다. 하지만 이것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체념하는 것이 어른이 된다는 걸까? 둘이서 발견한 최고의 행복. 그걸 버리면서까지 손에 넣을 가치가 있는 게 정말 있을까?’ (42쪽)

 


  나가하라 마리코 님 만화책 《슬로우리 데이즈》(대원씨아이,2010) 첫째 권을 읽습니다. 책이름처럼 “느린 하루”, 또는 “천천히 누리는 삶”을 바라는 젊은 두 사람이 나옵니다. 젊은 두 사람은 하루를 온통 두 사람 것으로 누리고 싶습니다. 사회에서 일컫는 이름값이나 돈이나 권력에는 눈길조차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을 둘러싼 ‘어른’들은 너희가 그렇게 뜬금없는 생각을 품어 어찌 집을 장만하고 어찌 돈을 벌며 어찌 집살림 꾸리느냐고 걱정하면서 잔소리 퍼붓습니다. 젊은 두 사람은 ‘어른들 말씀’에 주눅이 들고 말아, ‘번듯한 회사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러는 사이 두 사람은 서로 만날 틈이 줄어듭니다. 아니, ‘회사원 될 공부를 하고 준비를 하면’서 두 사람은 아예 못 만납니다. 회사원이 되고 나서는 회사일에 바빠 또다시 두 사람은 거의 못 만납니다.


  번듯한 회사라는 이름값이, 번듯한 회사에서 받는 높은 일삯이, 이리하여 집을 장만하거나 자가용을 몰거나 온갖 물건 사들일 수 있는 은행계좌가, 젊은 두 사람 ‘사랑과 꿈’을 지켜 줄까요.


- ‘무엇을 선택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46쪽)
- “요정은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에게만 보이지. 오빠랑 누나한테는 요정이 보인단다! 너희도 보이니?” (160쪽)
- ‘바보 같고 멍청하고 가난하고 한심한 어른인데도, 왜 저 두 사람은 저렇게 즐거워 보이는 걸까? 그치만 이왕이면 ‘즐겁지 않은’ 것보다 ‘즐거운’ 게 좋겠지. 나도 오늘은 좀 다른 놀이를 해 볼까.’ (184쪽)


  즐겁지 않다면 아름답지 않습니다. 즐겁다면 아름답습니다. 대통령 자리는 즐거울까요? 국회의원 자리는 즐거울까요? 시장이나 군수 자리는 즐거울까요? 대학생 자리는 즐거울까요? 공무원 자리는 즐거울까요?


  무엇이 삶을 즐겁게 할까요? 봄날 봄꽃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삶은 얼마나 즐거울까요? 봄날 봄들 누비면서 봄풀 뜯어 봄밥 차려서 먹지 못하는 사람들 삶은 얼마나 즐거울까요?


  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만, 봄은 그리 짧지 않습니다. 봄꽃은 오래도록 피어나지 않지만, 봄꽃은 하룻밤 사이에 지지 않습니다. 봄이 한껏 무르익는 요즈음, 우리들이 즐기면서 누려 아름답게 꾸릴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4346.3.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골사람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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