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
송기원 지음, 이인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시와 그림
[시를 말하는 시 15] 송기원,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

 


- 책이름 :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
- 글 : 송기원
- 그림 : 이인
- 펴낸곳 : 랜덤하우스중앙 (2006.2.3.)
- 책값 : 8500원

 


  시는 언제나 사람들 가슴속에 있습니다. 시를 잘 쓰는 사람이 따로 없고, 시를 못 쓸 사람 따로 없습니다.


  학교에서 시를 배워야 시를 쓰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시를 배운 적 없기에 시를 못 쓰지 않습니다. 가슴속에 깃든 싯노래 들을 수 있으면 시를 씁니다. 가슴속에서 물결치는 싯말 사랑할 수 있으면 시를 써요.


.. 네가 남긴 눈부심에 싸여, 오늘은 / 각시붓꽃을 바라보며 나도 눈부시다 ..  (각시붓꽃)


  마을 할매가 아이들 바라보며 “오매, 저 이쁜 것들.” 하고 한 말씀합니다. 마을 할매는 오상순이라는 시인을 모르고, 오상순이라는 시인이 읊은 시를 모릅니다. 그러나, 마을 할매는 이녁 살아온 나날을 사랑하면서 한 마디 내놓습니다. “오매, 저 이쁜 것들.”


  개구지게 뛰노는 아이들이 이쁩니다. 봄을 맞이하며 피어나는 들꽃이 이쁩니다. 쑥쑥 자라는 마늘밭이 이쁩니다. 논에 갓 심은 모가 이쁩니다. 무럭무럭 자라서 누렇게 익는 나락이 이쁩니다. 나락을 벤 논자락 노르스름한 흙바닥이 이쁩니다. 하늘빛이 이쁘고, 햇살이 이쁩니다. 구름이 이쁘고, 나무그늘이 이쁩니다. 온통 이쁜 것투성이예요. 내 마음도, 이웃 마음도, 동무 마음도, 살붙이 마음도 한동아리 되어 이쁜 이야기 길어올립니다.


  새삼스럽지만, 시뿐 아니라 그림 또한 누구나 그립니다. 사람들 가슴속에는 그림으로 그릴 맑은 빛이 있어요. 대학교를 다녀야 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어떤 그림쟁이한테서 배워야 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그렇다고 붓 가는 대로 그리는 그림은 아니에요.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이야기 있을 때에 저절로 붓이 움직여요. 가슴속에서 샘솟는 사랑과 꿈 있기에 시나브로 붓을 움직여요.


  사람들 가슴속에는 시도 있고 그림도 있으며, 노래도 있고 춤도 있어요. 기쁜 날 곱게 웃으며 정갈한 춤을 춥니다. 기쁜 때 맑게 웃으며 아리따운 노래를 부릅니다.


  등 굽은 할매한테 어떤 힘이 있기에 넓고 넓은 밭에서 풀을 뽑으며 씨앗 심어 열매 거둘까요. 바로 이녁 가슴속에 서린 사랑 있으니, 지팡이 짚고 들판으로 나와, 흙바닥에 엉덩이 깔고 하루를 누릴 수 있습니다.


.. 흐르는 물에 우선 마음을 맡기네 ..  (개구리밥)


  송기원 님 시집 《단 한번 보지 못한 내 꽃들》(랜덤하우스중앙,2006)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송기원 님은 마음속에서 꽃말 그득그득 샘솟아 어느새 꽃을 노래하는 시를 후두둑 적바림했다고 합니다. 흐르는 물결처럼 흐르는 시입니다. 넘실넘실 찰랑이는 물결처럼 알록달록 빛나는 시입니다.

  머리를 쥐어짜야 시를 쓰겠습니까. 머리를 쥐어뜯어야 비평이나 평론을 쓰겠습니까.


  생각해 봐요. 머리를 쥐어짜서 쓴 시라 한다면, 이런 시를 읽는 내 마음이 즐거울 수 있을까요. 헤아려 봐요. 머리를 쥐어뜯어서 쓴 비평이나 평론이라면, 이런 글을 읽는 내 마음에 즐거움이 감돌 수 있나요.


.. 왜 나는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몰랐을까 /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죽음이라고만 여겼을까 ..  (눈꽃 1)


  마음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마음으로 시를 씁니다. 마음으로 사랑을 합니다. 마음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마음이 있기에 무엇이든 합니다. 마음이 있어 밭을 갈고, 밥을 지으며, 빨래를 합니다. 마음이 없기에 사랑을 못 나누고, 꿈을 못 그리며, 시를 못 써요.

  송기원 님은 마음속에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요. 송기원 님은 어떤 사랑을 마음그림으로 그려서 싯말 하나 내놓았을까요. 봄날 봄바람 쐬거나 봄꽃 누리면서 시를 쓴 송기원 님일까요.


  한껏 무르익은 그림쟁이는 골방에 앉아서도 구름과 해와 잠자리와 개구리 멋들어지게 그린다고 해요. 한껏 무르익은 글쟁이는 골방에 앉아서도 바람과 흙과 꽃과 나무 멋있게 적바림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림쟁이라면 들판에 종이 한 장 들고 나와서 그림을 그릴 때에 비로소 그림쟁이로구나 싶어요. 들판을 느끼며 들판을 그려야지요. 곧, 글쟁이라면 들판에 쪽종이 하나 들고 나와서 글을 쓸 때에 시나브로 글쟁이로구나 싶어요. 꽃을 마주보고, 꽃이 뿌리내린 흙을 만지며, 꽃이 바라보는 하늘과 해와 구름과 바람을 한껏 들이켜면서 꽃을 노래해야지요. 4346.3.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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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3-26 13:17   좋아요 0 | URL
머리를 쥐어짜야 시가 되는 게 아니라 할매가 아이들 바라보며 저절로 나오는 한 말씀,“오매, 저 이쁜 것들.” 이것이 아름다운 시군요. 오늘도 배워 갑니다. ^^

숲노래 2013-03-26 15:29   좋아요 0 | URL
즐겁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사랑스럽게 쓰면,
시도 되고 수필도 되고 소설도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