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찍기
― 사진은 어떤 빛을 찍는가

 


  사진은 빛을 찍습니다. 다만, 스스로 느끼는 빛을 찍습니다.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빛까지 담는 사진이란 없습니다. 스스로 느끼지 못하던 빛을 아주 놀랍고 대단한 사진기가 담아 준다 하더라도, 사진 찍는 이 스스로 빛을 못 느끼면, 아무런 이야기 태어나지 못하고 어떠한 사진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빛을 느끼는 사람한테는 숱한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사진이요, 빛을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온갖 빛깔과 무늬와 결이 싱그러이 꿈틀거리도록 북돋우는 사진입니다.
  빛을 느껴요. 예쁜 빛이 아닌, 내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빛을 느껴요. 빛을 생각해요. 아리따운 빛이 아닌, 내 눈길을 맑게 틔우는 빛을 생각해요. 빛을 사랑해요. 사진기로 바라보는 빛이 아닌, 따사로운 꿈과 포근한 삶 바라면서 빛을 사랑해요.


  사진에는 등수가 없어요. 사진에는 1등이나 2등이 없을 뿐더러, 꼴등도 없어요. 왜냐하면, 사진은 고스란히 삶이거든요. 사람들마다 다 다르게 꾸리는 삶이 사람들마다 다 다르게 즐기는 사진이에요. 사람들마다 서로 다르게 누리는 사랑이 사람들마다 서로 다르게 빛내는 사진이에요.


  빛은 나예요. 빛은 남이 아닌 나예요. 내 가슴속에서 찬찬히 타오르는 빛이 고스란히 사진으로 태어나요. 빛은 바로 나이지요. 빛은 남한테서 나오지 않고 바로 나한테서 나와요. 내 마음속에서 시나브로 밝게 타오르는 빛이 곧 사진이 돼요.


  사진은 빛을 담는다고 말한다면, 사진은 내 가슴속 빛을 담는다는 뜻이에요. 사진은 빛으로 빚는 예술이나 문화라고 말한다면, 사진은 내 마음속에서 샘솟아 나 스스로 누리는 삶을 예술이나 문화로 일굴 때에 이루어진다는 뜻이에요.


  105만 원짜리 렌즈가 있으면 105만 원짜리 렌즈를 가장 잘 살리는 사진을 찍으면 돼요. 12만 원짜리 렌즈가 있으면 12만 원짜리 렌즈를 가장 잘 살리는 사진을 즐기면 돼요. 200만 원짜리 렌즈나 2000만 원짜리 렌즈가 있으면, 200만 원짜리 렌즈로 가장 잘 찍을 수 있는 사진을 찍거나 2000만 원짜리 렌즈로 가장 곱게 빛낼 만한 사진을 찍으면 돼요. 내 살림살이 가난해서 12만 원짜리 렌즈를 쓴대서 내 사진이 빛이 안 날 까닭 없어요. 내 살림살이 넉넉해서 2000만 원짜리 렌즈를 쓰니까 내 사진이 남다르게 빛이 날 까닭 없어요. 이런 글 쓰는 나는, 살림돈 없어 형한테서 얻은 사진기와 렌즈로 날마다 신나게 사진을 찍습니다. 내 ‘소유’라 할 사진기 하나 없지만, 나한테 사진기 빌려준 분들 넋을 헤아리면서, 눈빛 환하게 밝힐 삶 즐기며 사진을 찍습니다. 값싼 사진기와 렌즈로는 ‘접사’ 사진 못 찍는데, 외려 이런 값싼 사진기와 렌즈이기 때문에 우리 집 마당에서 아주 놀랍고 눈물 찡하면서 웃음나는 어여쁜 사진 하나 얻습니다. 다만, 내 눈에는 아주 놀랍고 눈물 찡하면서 웃음나는 어여쁜 사진이에요. 다른 사람한테는 어떻게 보일는지 모르고, 굳이 다른 사람 눈길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4346.3.2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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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뱅클럽

 


  지난 2012년 4월, 영화 〈뱅뱅클럽〉이 한국말로 나와 디브이디로 사서 볼 수 있다. 올 2013년 3월, 이야기책 《뱅뱅클럽》이 한국말로 나왔다. 이야기책 《뱅뱅클럽》은 총알이 빗발치는 싸움터에서 죽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을 찍어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고 나쁜가’를 밝히려 하던 네 사람 삶자락을, 이들 가운데 두 사람이 죽고 두 사람이 남은 뒤 2000년에 내놓은 책이다. 자그마치 열네 해만에 《뱅뱅클럽》이 한국말로 나왔다. 한국사람은 이 책이 한국말로 나오기까지 ‘케빈 카터’를 비롯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사진기자들 삶과 넋을 조금도 제대로 살피지 못했으리라. 아니, 제대로 살필 틈이 없었겠지. 왜냐하면, 한국말로 된 이야기가 알려지지 못했을 테니까. 그러나, 정보가 없더라도 마음이 있으면 알 수 있으리라. 죽음과 삶 사이에서 죽음하고 훨씬 더 가까운 자리에 서면서 죽느니만 못하다고 느끼는 모습을 날마다 숱하게 부대끼며 사진으로 담아야 했던 사람들 가슴에는 무엇이 있을까. 죽은 사람 곁에서 죽음을 사진으로 찍어야 하고, 곧 죽을 사람들 언저리에서 이들이 삶 쪽으로 돌아가도록 손끝 하나로도 돕기 어려운 형편에 놓인 사진기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동냥하는 사람 곁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내 옆지기도 우리 아이들도 동냥꾼 곁을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내 옆지기는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넓어, 주머니에 5만 원짜리가 있으면 그냥 이 5만 원짜리를 내려놓고 가는 사람이다. 나는 집살림을 조금 돌아보면서 차마 5만 원짜리는 내려놓지 못하고 1만 원짜리로 바꾸어 내려놓는다. 그렇지만, 하루치 살림돈조차 없어 허덕일 때에는 100원짜리 쇠돈 하나 내려놓지 못하고 지나가는 때가 있다. 이때에는 마음만 내려놓고 간다. 우리 식구들은 살림돈 없어 100원 아닌 10원조차 내려놓지 못하지만, 우리 아닌 다른 아름다운 분들이 넉넉히 사랑 베풀리라 믿습니다, 하는 마음을 내려놓는다.


  뜬금없는 소리라 할 테지만, 영화 〈뱅뱅클럽〉을 보고 싶은데 아직 못 본다. 디브이디 살 돈이 못 되어 아직 못 본다. 이야기책 《뱅뱅클럽》도 읽고 싶지만 입에 군침만 흘리면서 못 읽다가, 고마운 어느 분이 이 책을 선물해 주어 이틀에 걸쳐 찬찬히 읽었다. 아이들 밥 차려 주면서 읽고,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읽었다.


  사람들이 ‘사진과 윤리’ 또는 ‘사진과 도덕’이라는 말을 함부로 내걸며 뭇칼질하는 도마에 오르는 케빈 카터라고 하는 사진기자는 고작 서른셋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케빈 카터라고 하는 사진기자는 ‘콘도르가 지켜보는 아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았으나, 이녁 스스로 퓰리처상 받을 생각이 없었을 뿐 아니라, 퓰리처상이 있는 줄조차 몰랐다. 케빈 카터로서는 남아프리카뿐 아니라 아프리카땅 이웃나라 어디에서나 너무 쉽게 마주하는 슬프고 힘들며 고단한 사람들 삶을 사진으로 널리 알려 이들한테 사랑어린 손길이 닿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사진을 찍었다.


  케빈 카터한테 퓰리처상을 주지 않았다면, 아니 뉴욕에 있는 〈뉴욕타임즈〉 편집자가 ‘뉴스위크 잡지에서는 아직 퓰리처상 받은 사진기자 내놓지 못한 아쉬움’을 풀려고 ‘이 사진 한 장을 일부러 내놓아 상을 받으려 한 꿍꿍이’를 품지 않았다면, ‘이 사진이 퓰리처상을 받은 뒤에라도 이 사진에 깃든 넋과 마음을 슬기롭게 헤아려서 사진기자한테 무거운 짐덩이 들씌우지 않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모르는 사람들은 너무 쉽게 말한다. ‘콘도르가 지켜보던 아이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고. 그래, 그러면 그 다음도 물어야지. ‘이 사진 찍은 사람은 그 뒤 어떻게 되었느냐’ 하고.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도 물어야지. ‘이 사진으로 〈뉴욕타임즈〉 이름값 올리려고 애쓴 그 편집자들은 어떻게 하면서 살아가느냐’ 하고. 마지막으로, ‘이 사진을 본 당신은 오늘 어느 곳에서 어떤 삶 일구느냐’ 하고. 그런데, 이에 앞서 물어야 할 이야기가 있지 않나. ‘왜 그 아이는 굶주린 나머지 콘도르가 지켜보는 앞에서 엎드려 쉬어야 했을까’ 하고. ‘왜 권력자들은 독재정권 뱃살 불리기만 하고, 평화를 외치는 인도주의 나라는 군사무기 만드는 데에 어마어마한 돈을 펑펑 쏟아붓는가’ 하고. 4346.3.2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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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3.24.
 : 배추꽃 구경하는 자전거

 


- 작은아이가 누나 자전거에 올라타려고 용을 쓴다. 아직 세발자전거 발판 구를 줄 모르는 녀석이 누나처럼 두발자전거에 올라타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넌 아직 키가 작아서 못 올라가잖니. 아버지가 번쩍 들어 안장에 앉혀도 그냥 앉기만 할 뿐이잖니.

 

- 바람이 퍽 불지만, 두 아이 자전거에 태우고 마실을 해 볼까 생각한다. 논둑에서 흐드러지게 자라는 자운영 뜯고 유채잎 뜯으면서 나물 반찬 삼아야지 생각한다. 큰아이 앉는 샛자전거 붙고 수레 붙인 자전거를 마당으로 내린다. 어른 하나 아이 둘, 이렇게 세 식구 다니는 자전거는 퍽 길다. 멀리서 보아도 쉬 눈에 뜨인다. 아이들 데리고 다니는 자전거인 만큼 눈에 잘 띄어야 좋다. 그래야 자동차들이 싱싱 달리다가도 자전거 보일 즈음 빠르기를 늦추며 천천히 달릴 테니까.

 

- 사진책도서관에 들른다. 새로 장만한 책을 책꽂이에 꽂으려 했으나, 아이들은 도서관에 안 들어오고 기다리겠단다. 그래서 가방에서 책을 꺼내 책상에 올려놓기만 한다. 큰아이가 수레를 붙잡으며 기다린다. 참 예쁘지. 동생 앉은 수레 뒤에서 붙잡아 주는구나. 바람이 좀 세긴 세지.

 

- 논자락 옆으로 끼는 길을 달린다. 큰아이는 샛자전거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작은아이는 아직 노래를 부르면서 자전거를 달리지 못한다. 말이 더디니까. 그래도, 자전거로 싱 하고 좀 빠르게 달리거나 울퉁불퉁한 논둑길을 달릴라치면, 두 아이 모두, 아아아, 하고 소리를 지른다. 좋아서 웃는다.

 

- 서호덕마을 끝자락 얕은 멧골 따라 진달래 피어난 빛깔을 본다. 멀리에서 보아도 곱고, 가까이에서 보아도 곱다. 바야흐로 멧골마다 알록달록 울긋불긋 아리따운 봄빛을 베풀겠구나. 멧벚꽃까지 피면 더없이 예쁘겠지.

 

- 동호덕마을 지날 무렵, 배추밭에 가득한 배추마다 장다리꽃 피우는 모습 본다. 자전거를 세운다. 배추밭으로 들어가서 가만히 바라본다. 큰아이도 아버지 따라 배추꽃을 보겠거니 했으나, 아버지를 따라오지 않고 자전거를 붙잡는다. “바람 불어 자전거 넘어지잖아요!” 괜찮아. 자전거 눕혀 놓고 꽃구경 하면 되지. 그래도, 큰아이는 자전거를 붙잡아야겠단다. 그나저나 바람이 퍽 세게 불기에 꽃구경은 살짝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배추꽃이 하루이틀 피었다 지지 않으니, 바람 잔잔한 날 맞추어 다시 배추꽃 보러 오자.

 

- 신기마을 어귀에 선 빗돌 곁에 유채꽃 터지고, 봄까지꽃 물결치며, 자운영꽃 발그레 고개 내민다. 자전거를 한 번 더 세워 꽃구경 하려 했더니,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아버지 바람 많이 불어요. 꽃 그만 보고 집에 가요!” 하고 외친다. 그래, 아버지가 잘못했다. 그냥 집으로 가자.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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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아가는 말 137] 쉼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힐링’을 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힐링’이 무엇인지 모르고, 이 낱말이 어떤 영어인지 알아보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힐링’을 말하던 사람들이 예전에는 ‘명상’을 말했고 ‘치유’를 말했거든요. 어느 무렵부터인지 사람들은 ‘멘붕’을 한다고 얘기합니다. 나는 ‘멘붕’ 또한 무엇인지 모르며, 이 낱말을 어떻게 엮어서 쓰는지 살피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멘붕’을 얘기하던 사람들이 예전에는 ‘분열’과 ‘정신’을 얘기했어요. 나는 내 말을 하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 내 말을 하자고 생각합니다. 내 몸이 힘들면 나 스스로 쉽니다. 내 마음이 지치면 나 스스로 차분히 눈을 감고 쉽니다. 눈을 쉬고 귀를 쉬며 마음과 몸을 쉽니다. 고즈넉하게 쉬면 다시금 기운이 차오르고 힘이 솟아요. 누군가 때문에 마음이 다칠 때가 있을 테지만, 나 스스로 씩씩하면서 튼튼하면, 어느 누구한테서건 마음이 다칠 일이 없습니다. 남 때문에 무너지는 마음이라면, 참 하찮은 것에도 무너지는 마음입니다. 어떤 일 때문에 흔들리는 마음이라면, 참 아무것 아닌 일에도 흔들리는 마음이에요. 곧, 스스로 삶을 세우고 마음을 일으키면, 마음이 다치지도 무너지지도 흔들리지도 않습니다. 즐겁게 생각하고 맑게 일하며 환하게 사랑할 때에는, 홀가분하게 쉴 수 있고 따사롭게 노래할 수 있어요. 4346.3.2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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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그림자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 식구한테 부추나물 실컷 베푸는 밭자락 한켠에 제비꽃 피어난다. 곁에 쪼그려앉아 말끄러미 바라본다. 햇살은 따사로이 내리쬔다. 문득 꽃그림자 생긴다. 앉은뱅이처럼 흙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피어나는 너 제비꽃한테도 이런 꽃그림자 생기는구나. 개미한테는, 지렁이한테는, 달팽이한테는, 나비한테는, 벌한테는, 쇠똥구리한테는, 개똥벌레한테는, 모두모두 네 꽃그림자가 꽃그늘과 같겠네. 사람은 나무그림자인 나무그늘 누리고, 작은 벌레는 꽃그림자인 꽃그늘 누리는구나. 4346.3.2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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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9 09:32   좋아요 0 | URL
'개미한테는, 지렁이한테는, 달팽이한테는, 나비한테는, 벌한테는, 쇠똥구리한테는, 개똥벌레한테는, 모두모두 네 꽃그림자가 꽃그늘과 같겠네.' 그렇네요..^^
문득, 조동진님의 '제비꽃'이란 노래가 생각나네요. 뜬금없이...

파란놀 2013-03-29 09:42   좋아요 0 | URL
어른 새끼손톱보다 조금 더 큰 자그마한 제비꽃인데,
이 제비꽃이란 참
사람들한테 고운 이야기 들려준다고 늘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