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224) -여餘 1 : 3년여의 투병

 

네 번의 대수술과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3년여의 투병 끝에 1970년 2월 그레이스가 결국 숨을 거두었을 때, 페트라는 슬픔을 감당 못해서 여러 번 자살까지 생각했다
《새라 파킨/김재희 옮김-페트라 켈리, 나는 평화를 희망한다》(양문,2002) 75쪽

 

  “네 번의 대(大)수술”은 “네 차례 큰 수술”이나 “큰 수술 네 번”으로 다듬고, ‘고통(苦痛)스럽기’는 ‘괴롭기’나 ‘힘들기’로 다듬으며, “투병(鬪病) 끝에”는 “병과 싸운 끝에”나 “병에 시달린 끝에”나 “병치레 끝에”로 다듬습니다. ‘결국(結局)’은 ‘마침내’나 ‘끝내’나 ‘끝끝내’로 손질하고, “감당(堪當) 못해서”는 “이기지 못해서”나 “견디지 못해서”나 “참지 못해서”로 손질하며, ‘자살(自殺)까지’는 ‘목숨을 끊으려고까지’나 ‘죽으려고까지’로 손질합니다.


  ‘-여(餘)’는 “‘그 수를 넘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라고 합니다. “십여”나 “이십여 년”이나 “백여 개”나 “십오 년여의 세월”처럼 쓰는 한자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수를 넘는다는 뜻을 더하는 뒷가지라 한다면, 한국말에는 ‘남짓’이 있어요. “열 남짓”이나 “스무 해 남짓”이나 “백 개 남짓”이나 “열다섯 해 남짓 한 나날”처럼 적을 수 있어요. 한쪽은 한자말로 적는 말투요, 다른 한쪽은 한국말로 적는 말투입니다. 뜻이 같지만 한국사람은 두 가지 말을 쓰는 셈입니다.

 

 3년여의 투병 끝에
→ 세 해 남짓 병과 싸운 끝에
→ 세 해 넘게 병에 시달린 끝에
→ 세 해씩이나 병치레를 한 끝에
 …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말을 알맞고 쉬우며 바르게 쓸 수 있기를 빕니다. 차근차근 가다듬으면서 생각을 빛내고 북돋우면 좋겠습니다. 외마디 한자말 ‘-여’를 쓰기 때문에 토씨 ‘-의’까지 붙이는 말투가 퍼집니다. 처음부터 한국말을 슬기롭게 쓰면 토씨 ‘-의’를 함부로 못 붙이리라 느껴요. 그러나 한국말 ‘남짓’을 잘 헤아리며 쓰더라도 “삼 년 남짓의 투병”처럼 글을 쓰면 토씨 ‘-의’가 그대로 남습니다. 얼마 동안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 하는 대목을 찬찬히 밝혀서 적어야 비로소 ‘-의’을 안 붙이는 홀가분한 말씨를 가다듬습니다. 4338.8.20.흙/4346.4.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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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수술 네 번과 괴롭기 짝이 없는 세 해에 걸친 병치레 끝에 1970년 2월 그레이스가 끝내 숨을 거두었을 때, 페트라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서 여러 번 죽으려고까지 생각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03) -여餘 2 : 한 달여

 

한 달여를 같이하는 동안 나는 점잖은 척 썼던 탈을 벗고 점차 내 본성을 소탈하게 보이게 되었다
《김영희-엄마를 졸업하다》(샘터,2012) 167쪽

 

  ‘점차(漸次)’는 ‘차츰’이나 ‘조금씩’이나 ‘천천히’로 다듬고, “내 본성(本性)”은 “내 모습”이나 “내 참모습”으로 다듬습니다. ‘소탈(疏脫)하게’는 ‘수수하게’나 ‘털털하게’로 손봅니다. 국어사전에서 ‘소탈하다’를 찾아보면 “수수하고 털털하다”로 풀이하는데, ‘털털하다’를 다시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까다롭지 아니하고 소탈하다”로 풀이해요. “보이게 되었다”는 “보여주었다”로 손질합니다.

 

 한 달여를
→ 한 달 남짓을
→ 한 달 즈음을
→ 한 달 언저리를
→ 달포를
 …

 

  한 달 남짓 같이한다 하니까, 한 달 넘게 같이하는 셈입니다. 한 달 넘는 동안은 따로 ‘달포’라는 낱말로 가리키곤 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달포를 같이하는 동안”처럼 적으면 군더더기 하나 없습니다. 4346.4.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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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포를 같이하는 동안 나는 점잖은 척 썼던 탈을 벗고 차츰 내 모습을 털털하게 보여주었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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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02) 위하다爲 24 : 돕기 위해

 

어린이들을 시인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자라도록 돕기 위해 시 쓰기를 지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주영-이오덕,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보리,2011) 121쪽

 

  “시 쓰기를 지도(指導)하는 것이기”는 “시 쓰기를 가르치기”나 “시를 쓰도록 이끌기”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시를 쓰도록 하기”나 “시를 쓰게 하기”로 다듬어도 잘 어울립니다.

 

 시인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 시인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 시인으로 만들 생각이 아니라
→ 시인으로 만들 뜻이 아니라
 …

 

  앞 글월과 뒷 글월이 서로 어울리면서 “만들기 위해서”와 “돕기 위해”가 나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앞뒤 글월을 함께 손질해야 글흐름이 살아납니다. 앞쪽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로 손질한다면, 뒤쪽을 “도와야 하기 때문에”로 손질합니다. 앞쪽을 “만들 생각이 아니라”로 손질하면, 뒤쪽을 “도울 생각이기”로 손질합니다. 앞쪽을 “만들 뜻이 아니라”로 손질하고 난 다음에는, 뒤쪽을 “도울 뜻으로”로 손질해요. 4346.4.7.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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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을 시인으로 만들 뜻이 아니라 마음이 자라도록 도울 뜻으로 시 쓰기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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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는 얼굴 책읽기

 


  아이들 자는 얼굴 바라보며 온갖 생각 갈마든다. 이 아이 잠들기까지 나는 얼마나 사랑스러운 놀이동무 되어 아이들과 하루를 누렸는가. 새근새근 자는 아이 느긋하게 쉴 만한 보금자리를 어느 만큼 알뜰히 돌보았는가. 아이들은 배불리 먹고 나서 잠이 들었는가. 아이들은 온 하루 새로운 이야기와 사랑 듬뿍 받아들이고서 곱다시 잠들었는가.


  고흥에서 순천으로 먼 바깥마실 나오는 길에 시외버스에서도 잠든 아이들은 조금 걷다가 택시를 다시 타니 이내 졸린 기운 감돈다. 큰아이는 억지스레 버티지만 작은아이는 곧바로 까무룩 곯아떨어진다. 곧 내려야 할 곳에 닿을 테지만, 1분이건 2분이건 곱게 쉴 수 있기를 빈다. 3분이건 4분이건 네 아버지는 너를 품에 안고 다닐 테니, 부디 꿈나라에서 훨훨 날면서 실컷 놀기를 바란다. 4346.4.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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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 트라우마>를 읽고 나서 살펴보니, 2004년에 나온 <박헌영 전집> 9권은 아직 판이 안 끊어졌다. 다행이로구나 싶으면서, 9권에 60만 원이라는 값을 언제쯤 기쁘게 치러내어 장만할 수 있을까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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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박헌영 전집 - 전9권
이정 박헌영전집 편집위원회 엮음 / 역사비평사 / 2004년 4월
600,000원 → 600,000원(0%할인) / 마일리지 30,000원(5% 적립)
2013년 04월 07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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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97 : 마음이 읽는 책

 


  사월 육일 아침부터 봄비 내립니다. 봄에 내려 봄비인데 바람이 되게 드셉니다. 웬 봄날에 이리도 드센 봄바람 부는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그러나, 불 만하니 이런 바람 불겠지요. 그리고, 이 드센 바람이 제아무리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쯤 몰아친다 하더라도 가라앉을밖에 없습니다. 봄이거든요.


  갑자기 몰아치는 봄바람 때문에 앵두꽃 모두 떨어질는지 모릅니다. 드세게 몰아치는 봄바람 맞으면서도 꽤 많은 앵두꽃 씩씩하게 나뭇가지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떨어진 앵두꽃은 흙으로 돌아갈 테고, 나뭇가지에 남은 앵두꽃은 차츰 꽃잎을 지면서 바알간 앵두말로 거듭날 테지요.


  브뤼노 몽생종 님이 쓴 《음악가의 음악가, 나디아 불랑제》(포노,2013)를 읽습니다. 음악가를 가르친 음악가라는 나디아 불랑제 님과 나눈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나디아 불랑제 님은 당신이 바흐를 참 사랑한다면서, 문득 “바흐가 제게 하도 큰 기쁨을 주었기에 저도 그 기쁨의 어느 정도는 다른 이들에게 전해 주려고 하는 것이죠(112쪽).” 하고 말합니다. 기쁨이로군요. 기쁨을 누렸기에 노랫길 걸었고, 노랫길 걸어가며 이웃과 동무한테 기쁜 노랫가락 나누는 사랑 펼칠 수 있군요.


  들에서 자라는 머위꽃 한 줄기 꺾습니다. 들에서 자라니 들머위라 할 만합니다. 머위꽃 여럿 꺾을 수 있지만, 앞으로 더 널리 퍼져 머위밭 되기를 바라며 한 줄기만 꺾습니다. 이 머위꽃은 내가 안 먹고 건사했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옆지기한테 건넵니다. 나는 들에서 머위꽃 바라보면서 마음이 넉넉하게 불렀거든요. 입으로 먹어도 배가 부르고, 눈으로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귀로 들어도 온몸이 따스하고, 가슴으로 들어도 온몸이 따스해요. 봄빛이 내 몸을 곱게 안아 줍니다.


  책이란 무엇이 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책은 눈으로 읽는지, 머리로 읽는지, 곰곰이 따져 봅니다. 아마, 눈이 아니라면 숱한 글책 못 읽겠지요. 한국에는 점글로 찍는 책 얼마 없어 내 눈이 안 밝으면 날마다 수없이 쏟아지는 글책 못 읽겠지요. 그런데, 날마다 쏟아지는 ‘눈으로 읽는 글책’은 사람들한테 얼마나 마음밥 될까요. 얼마나 마음밭 일굴 밑거름 될까요.


  그레그 마리노비치 님과 주앙 실바 님이 함께 쓴 《뱅뱅클럽》(월간사진,2013)을 읽습니다. 퓰리처상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을 온누리에 밝히며 이녁 고향나라에 평화 찾아오기를 바란 발자국을 담습니다. 여기에, 두 사람 오랜 사진벗인 케빈 카터 님이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 지구별 이웃한테 사랑을 나누고 싶었는가를 들려줍니다. “주앙은 두려웠고, 혼란스러웠다. 이것은 그가 상상해 오던 종류의 전쟁 사진이 결코 아니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지만, 그는 뒤로 물러서면서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사진을 찍어 나갔다(76쪽).”와 같은 외침처럼, 젊은 사진벗 네 사람 마음은 총알 빗발치고 죽음 흐드러지는 싸움터에서 아프게 시듭니다. 죽음과 같은 북새통에서 스스로 빛을 찾고 싶었고, 이웃한테 빛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사진을 왜 찍는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 되새기며, 따순 눈물 한 방울이 무지개 웃음 한 자락으로 태어나기를 빌었습니다. 곧, 봄철 된바람 저물겠지요. 4346.4.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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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07 15:59   좋아요 0 | URL
아, 나디아 블랑제님이 그렇게 말하셨군요.
"바흐가 제게 하도 큰 기쁨을 주었기에 저도 그 기쁨의 어느 정도를 다른 이들에게 전해 주려고 하는 것이죠(112쪽)."
저도 바흐를 좋아해서 더 마음에 와닿고, 그 기쁨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 주려고 한다는 말씀이 감사히 마음을 울립니다.

머위잎은 쌈으로는 먹어 보았는데, 머위꽃은 또 어떻게 생겼을까요?
함께살기님 덕분에 이젠 모든 꽃이 저마다의 빛으로 피어남을 깨닫게 되어 날마다 기쁘고 행복합니다. ^^
정말 마음밥이 될 수 있는 책읽기, 마음밭을 일굴 밑거름이 되는 책읽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고 있어요.

<음악가의 음악가 나디아 블랑제>와 <뱅뱅클럽>은 꼭 읽어봐야 겠습니다.
좋은 책, 좋은 글 주셔서 감사드려요~^^

파란놀 2013-04-07 17:14   좋아요 0 | URL
오, 바흐를 좋아하시는군요.
여러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바흐는 노래를 지을 적에
'하늘나라 소리를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사람들한테 놀라운 노래를
선물할 수 있다고 하네요.

머위잎이나 머위꽃이나 다 맛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