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봉숭아
박재철 글 그림 / 길벗어린이(천둥거인)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처럼 큰길에서 태어나는 아기도 있을까?’
 [그림책이 좋다 46] 박재철, 《행복한 봉숭아》



- 책이름 : 행복한 봉숭아
- 글ㆍ그림 : 박재철
- 펴낸곳 : 천둥거인(2004.8.12.)
- 책값 : 8000원



 (1) 골목과 시멘트와 풀


.. 깜깜한 밤이었어요. 별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큰길에서 조그만 싹이 돋았어요. 봉숭아 씨앗이 눈을 뜬 거예요. 봉숭아는 기쁨에 겨워 중얼거렸어요. “세상은 참 아름답구나. 얼른 자라서 예쁜 꽃을 피워야지.” 그런데 바로 옆에서 활짝 핀 꽃들이 퉁명스레 말했어요. “쯧쯧, 그런 더러운 데서 어떻게 꽃을 피운다는 거야?” 봉숭아는 기분이 나빴지만 못 들은 체했어요. ‘내일은 꼭 좋은 일이 생길 거야.’ ..  (4쪽)


 도시 골목길은 어디를 가든 길바닥이 시멘트로 뒤덮여 있습니다. 예전에는 모두 흙길이었을 텐데, 비 한 번 오면 질척거리고, 차가 다니기 나쁘다고 해서 시멘트로 모두 발라 놓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시멘트로 발라 놓은 길은 걸어다닐 때 신발에 흙이 묻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기에 괜찮고 차가 다니기에도 걱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멘트 골목길에서 넘어지면 무릎이 팍팍 깨집니다. 흙길에서 넘어지면 살짝 까지기만 할 뿐 무릎이 깨질 일이 없지만, 시멘트길에서 넘어지면 크게 다쳐요. 아스팔트길에서 넘어질 때에도 크게 다칩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덮이는 길은, 신나게 뛰놀거나 마음 가벼이 어울릴 만한 자리가 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시멘트길에서는 풀이 고개를 내밀 수 없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틈 하나 찾아내어 고개를 내미는 풀이 드물게 있지만, 씨앗이 떨어질 틈도, 떨어진 씨앗이 마음껏 줄기를 올릴 틈도 없습니다. 그래도 그 좁고 딱딱한 틈바구니에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려 꽃까피 피워올리는 풀을 보면, 자연이란 대단하구나 하고 느끼는 한편으로, 우리 사람들이 참 몹쓸 짓을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골목길을 거닐면서 집집마다 마련한 크고작은 꽃그릇을 실컷 구경합니다. 어쩌면, 흙길이 사라진 골목길 한쪽에서 크고작은 꽃그릇을 키우는 분들은, 떠나버린 흙을 그리워하면서, 사라지거나 숨어 버린 흙을 애달파하면서 꽃그릇을 키우지 않는가 싶습니다. 시멘트만 가득한 도시에서 지내는 아쉬움을 달래고, 당신들 딸아들이 비록 도시에서 일자리를 얻어서 도시에서만 살아가게 된다고 하더라도 흙내음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꽃그릇 하나에 담지 않느냐 싶습니다.

 당신들이 좋아서 흙을 퍼 오고, 빈 광주리나 바구니 들을 주워 모아 꽃그릇으로 삼고, 예쁘다고 느끼니 날마다 따로 물을 주고 북을 돋우면서 돌봅니다. 그런데 이 사랑스러운 꽃그릇을 집안에만 모셔 놓지 않아요. 집안에 모셔 놓는 꽃그릇도 있으나, 시멘트와 벽돌로 높인 울타리에도, 옥상에도, 골목길 한쪽에도 가지런히 늘어놓거나 모아 놓습니다. 날마다 돌보는 이 꽃그릇을 당신들 스스로도 즐기지만, 이웃사람도 즐기고, 이웃 아닌 길손도 지나가면서 즐깁니다.

 문득, 예전 도시 골목길은 어떠했을까 궁금합니다. 제가 골목길에서 부모님하고 살던 때는 1970년대일 텐데 그때 모습은 거의 떠오르지 않습니다. 너무 어려서. 하는 수 없이 책에 기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김기찬 님이 1970년대부터 담은 서울 골목길 사진을 《골목안 풍경》에서 뒤적여 봅니다. 김기찬 님은 거의 ‘사람 중심’으로 찍어서, 골목길 둘레가 넓게 드러나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이사이 깃들어 있는 ‘사람 없는 한갓진 골목길 한켠’을 담아낸 사진에는 꽃그릇이 소담하게 모여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사람들 북적이는 골목 한쪽에는 꽃그릇이 거의 안 보입니다. 사람들 발길이 조금 뜸하다고 할 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크고작은 꽃그릇이 보입니다. 차가 들어올 수 있는 골목과 조금 넓은 골목에는 꽃그릇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만 드나드는 호젓한 골목길에는 어김없이 꽃그릇이 보입니다. 손바닥 만한 집 안뜰에도 웬만한 집마다 꽃그릇이 있습니다. 푸성귀를 기르는 꽃그릇이기도 하지만, 말 그대로 ‘구경하는 꽃’만 심은 꽃그릇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꽃그릇 도둑이 있기 때문에 호젓한 안쪽 길에만 놓는다고 느낍니다. 차에서 내뿜는 배기가스 때문에라도 사람 발길 잦은 데에는 꽃그릇을 못 놓을 테고요. 2008년 5월 28일, 바로 지금 제가 사는 인천 동구 금창동 골목길에서 보는 꽃그릇과 1970∼80년대와 90년대 서울 골목길 한쪽에 놓인 꽃그릇은 가짓수나 크기나 생김새가 비슷비슷합니다.




 (2) 외로운 봉숭아 한 포기


.. 다음날이 되어도 단이가 돌아오지 않았어요. 봉숭아는 이파리가 타들어 가는 듯 아팠어요. 그 다음날에도 단이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이파리들이 누렇게 시들어 떨어졌어요. 봉숭아는 몸이 축 늘어졌어요 ..  (20쪽)


 그림책 《행복한 봉숭아》를 펼칩니다. 《행복한 봉숭아》에 나오는 어린이 ‘단이’는 길에서 힘겹게 뿌리를 내리고 가까스로 잎을 틔운 봉숭아를 살며시 뽑아다가는 빈 우유곽에 옮겨심고 잠자리맡에 놓고는 사랑해 줍니다. 봉숭아쯤 되면, 꽃집에서 얼마든지 씨앗을 받아서 심을 수 있고, 또 다 자란 봉숭아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단이는 사람들 북적거리는 길 한복판 틈바구니에서 어렵게 목숨줄 붙이고 있는 봉숭아를 알아봅니다.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면서 물을 주고 힘을 돋우고, 봉숭아도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면서 우유곽이 좁아집니다. 단이와 어머니는 큰 그릇으로 봉숭아를 옮겨 줍니다. 이제 방에 놓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고 느껴서 창가에 놓고는 해바라기를 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단이는 봉숭아를 내버려 두고 어딘가로 떠납니다. 방학을 맞이해서 어디 시골집에라도 놀러갔을까요. 나라밖으로 영어 유학을 떠났을까요. 여태 알뜰히 돌보며 가꾸던 봉숭아였는데, 봉숭아 동무를 잊고 이처럼 오래도록 집을 비울 수 있었을까요.

 꽃집에서 얻은 봉숭아가 아니더라도 워낙 길봉숭아였으니, 물을 주며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어도 햇볕을 먹고 빗물을 마시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만, 기나긴 가뭄이 이어진다면, 제아무리 들풀이라 해도 말라 갈 테지만.

 하늘에서 비가 먼저 올 지, 고이 돌보던 단이가 먼저 돌아올 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가운데 봉숭아는 외롭습니다. 그렇지만 외롭고 힘든 가운데에도 꽃을 피우려고 애를 씁니다. 타고난 제 목숨에 따라서, 타고난 제 살아갈 길을 따라서 안간힘을 쓰고, 이 안간힘을 하늘에서 알아주었는지 목마른 봉숭아한테 한 줄기 빗줄기를 선사해 줍니다.

 가까스로 숨을 돌린 봉숭아는 새힘을 내며 싱싱한 꽃잎을 피워올리고, 수많은 벌나비 동무들이 찾아듭니다. 자기를 거두어 준 사람(단이)은 자기를 잊었지만, 혼자힘으로 꿋꿋하게 새 동무를 사귑니다. 아마, 단이가 길 한복판에서 봉숭아를 뽑아서 집으로 옮기지 않았더라도, 더 고단하고 더 힘겨웠을지라도, 봉숭아는 제 깜냥껏 꽃을 피워, 골목길이든 도심지이든 한 귀퉁이에서 사람들한테 꽃내음을 선사하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작은 벌나비한테 쉼터 노릇을 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3) 어머니 마음을 품은 봉숭아


.. ‘단이가 내 꽃을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봉숭아는 날마다 마음 졸이며 기다렸어요. 그런데 큰일이 생겼어요. 단이가 엄마 아빠를 따라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거예요 ..  (16∼17쪽)


 그림책 《행복한 봉숭아》를 덮고 생각에 잠깁니다. 그림책을 지은 분은 앞머리에, “사랑하는 딸 선화와 어릴 적 봉숭아 물을 들여 주던 셋째 누나에게”라고 적었습니다. 딸과 누나한테 바치는 그림책입니다. 봉숭아잎으로 바알간 물을 곱게 들이던 어린 날 애틋한 이야기를 딸아이한테 보여주고 싶고, 또 자기한테 좋은 이야기를 남겨 준 누나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보내고 싶었다고 느낍니다.

 봉숭아 꽃잎 같기도 하고, 손가락에 바알갛게 물든 봉숭아물 빛깔 같기도 한 그림결은 푸근합니다. 어린 봉숭아가 어른 봉숭아로 자라고 마지막으로 씨를 맺는 모습까지 죽 보노라면, 봉숭아 한 가지만 빛깔을 입혔습니다. 가녀린 봉숭아를 알아본 단이 모습마저도 흑백으로만 그립니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그림책을 열 번쯤 보면서도, 스무 번쯤 되넘기면서도 언뜻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서른 번쯤 다시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덮어야지 헤아리던 때, 비로소 느낌이 옵니다. 어린 단이는 어린 봉숭아를 알아본 첫 사람이었지만, 알아보기만 할 뿐 더욱 살뜰히 보듬어 주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단이 탓이라고만 할 수 없이, 단이네 부모님들 탓이 아니겠느냐 싶어요. 어린 단이가 꾸준하게 봉숭아 한 포기를 사랑하며 보듬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부모님 마음씀이 모자라지 않았겠느냐 싶습니다. 지금 우리네 부모 된 어른들은 아이들이 ‘길가 자그마한 목숨 하나에도 눈길을 두고 사랑을 쏟도록’ 착한 마음을 길러 주지 못합니다. ‘우리 이웃집 힘겨운 살림살이를 지나치지 않으며 눈길을 두며 어깨동무를 하도록’ 아름다운 마음씨를 북돋워 주지 못합니다.

 아이로서는, 아이다움이 아직 남아 있기에 봉숭아는 알아봅니다. 그러나 봉숭아를 어떻게 돌보면 좋을지, 아니면 봉숭아와 어떻게 동무로 사귀면 좋을지까지는 모를 수 있어요. 이때 곁에서 도움말을 건네며 함께 봉숭아하고 동무가 될 어른(어버이,이웃)이 있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봉숭아는 아기들이 날아가는 걸 끝까지 지켜보았어요. 눈이 사르르 감겼어요. ‘나처럼 큰길에서 태어나는 아기도 있을까?’ 귀여운 단이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봉숭아는 빙그레 웃고는 깊이깊이 잠이 들었어요 ..  (34쪽)


 처음에는 가냘프기만 했던 봉숭아 한 포기는, 고달픔 한 줌과 사랑 한 줌과 외로움 한 줌과 선물 한 줌을 받으면서, 마음과 몸에 고운 열매(씨앗)를 맺고는 조용히 흙으로 돌아갑니다. (4341.5.28.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이름 살펴보기
 (118) 외로운 떠돌이 라스무스


 퍽 어릴 적 라스무스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때가 언제인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국민학교 다닐 때라고만 떠올립니다. 어쩌면 국민학교 3학년 때가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그 3학년 때, 또는 4학년 때인데, 학급문고 간수를 맡은 계집아이한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하나 있고, 이해에는 모범생으로 착하게 보내 보자는 마음이 있어서 책읽기에 무던히 시간을 쏟았습니다. 국민학교 1학년 때에는 얌전한 아이로, 2학년 때에는 말썽꾸러기로, 3학년 때에는 다시 얌전한 아이로, 4학년 때에는 또다시 장난꾸러기로 …… 이렇게 한 해 한 해 보냈던 국민학생 때입니다. 아, 그러면 3학년 때로군요.

 ―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 (계몽사)

 지금도 떠오르는데, 그 3학년 때(1984년), 햇볕이 따사롭게 들어오는 창문가에 앉아서 빠알간 겉싸개로 되어 있는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하나인 ‘라스무스’ 이야기를, 그때는 몰랐고 지금 와서 돌아보니 책이름이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인 어린이책을 읽었습니다. 그 어릴 때 ‘방랑’은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고아’라는 말은 알았습니다. 고아 라스무스가 나오는 이야기라, 퍽 재미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한창 삐삐와 앤으로 우리들 눈시울을 적시던 때입니다. 저는 그레이트마징가 만화영화도 보았지만 삐삐 연속극도 보았고 앤 만화영화도 보았습니다. 미래소년 코난도 보았고요.

 ┌ 방랑아 라스무스 (교연사,1987)
 ├ 라스무스와 방랑아 (민음사,1991)
 ├ 라스무스와 방랑자 (시공주니어,1997)
 ├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 (계몽사,1981)
 └ 하느님의 굴뚝새 (빛남,1995)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이 외로운 라스무스는 고아원에서 삽니다. 고아원에 살면서 ‘자기 같은 외톨이 아이’를 귀엽게 보아주면서 데려가 줄(입양) 돈 많고 마음 좋은 사람을 기다리는 형편입니다. 그렇지만 라스무스는 번번이 떨어집니다.

 ┌ 방랑(放浪) : 정한 곳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님
 │   - 방랑 생활 / 김삿갓은 방랑 시인으로 유명하다 /
 │     발길 닿는 대로 며칠씩 여기저기 방랑도 해 보다가
 ├ 방랑아(放浪兒)
 │  (1) [북녘말] 정한 곳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사는 어린이
 │  (2) 방랑 생활을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 방랑자(放浪者) : 정한 곳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사람


 그러던 어느 날, 라스무스는 고아원에서 벗어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고아원에서 빠져나가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끝내 뜻을 이룹니다. 자칫, 늙어죽는 날까지 고아원 울타리에 갇혀 있어야 했을지 모르는 라스무스는 새 삶을 찾습니다.

 ― 떠돌다 / 떠돌이 . 나그네

 그렇지만 라스무스를 반기는 세상은 어떻든가요. 따뜻했던가요. 넉넉했던가요. 아름다웠던가요.

 생각해 보면, 라스무스가 살았던 먼 옛날 유럽땅에서뿐 아니라 2008년 대한민국 땅에서도 아이들은 더할 나위 없이 외롭고 힘들고 슬프고 답답한 삶을 보내야 하지 않느랴 싶습니다.

 사회복지 틀거리도 그렇지만, 이 나라 사람들 눈길과 매무새가 어린 떠돌이 아이한테 얼마나 따뜻하게 다가가는지요. 집이 없고 길을 헤매는 어린 양한테 우리들 집 있고 돈 있는 어른들은 어떻게 마주하고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는지요.

 → 외로운 떠돌이 라스무스
 → 쓸쓸한 나그네 라스무스
 → 외로운 길을 걷는 라스무스
 → 라스무스는 홀로 길을 걷네


 책을 읽으면, 라스무스는 세상에 둘도 없는 외톨이입니다. 그렇지만 라스무스는 어느 때에도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머물 곳이 없는 어린 나그네이건만, 늘 웃으면서 살고 언제나 밝게 살아갑니다. 이런 라스무스한테는 더없이 반가운 벗(어른 : 오스카)이 있어요.

 그러고 보면, 아스트리드 린드그랜 할머님이 지은 이 이야기책 ‘라스무스 이야기’는 “외로운 떠돌이 라스무스”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는 한편, “씩씩한 나그네 라스무스”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멋진 떠돌이 라스무스”인지 모릅니다. “야무진 나그네 라스무스”인지 모르고요. (4341.3.30.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책이름 살펴보기
 (119) Good Morning INCHEON


 - 1 -

 부산에 ‘인디고서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INDIGO+ING》라는 잡지를 펴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책쉼터 이름을 나라밖 말로 지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내는 잡지이름도 나라밖 말로 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인디고서원’이라는 말은 한글로 적어 주니 낫다고 할는지 모릅니다.

 이곳 인디고서원에서는 오는 8월에 닷새에 걸쳐서 ‘인디고 유스 북페어(INDIGO YOUTH BOOK FAIR)’를 연다고 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 ‘청소년 책’을 함께 모두어 내는 ‘세계잔치’로 꾸린다는군요.

 생각해 보면, 책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서울국제도서전’을 열고 있습니다. 이 책잔치 이름은 한글로 ‘서울국제도서전’이고, 알파벳으로 적으면 ‘SEOUL INTERNATIONAL BOOK FAIR’입니다. 한국사람한테는 ‘도서전’이고, 나라밖 사람한테는 ‘BOOK FAIR’입지요.

 ┌ 국제도서전 / INTERNATIONAL BOOK FAIR
 └ 유스 북페어 / YOUTH BOOK FAIR


 해마다 치르는 서울국제도서전 행사를 가 보면, 날이 갈수록 ‘국제’라는 이름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안타까움은 잠깐 접어 놓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들이 나라 안팎에 있는 사람들을 모시고 잔치를 나눈다고 할 때에, 이와 같은 잔치판을 알리는 이름은 어떻게 붙여야 알맞을까요. 아니, 어떻게 붙여야 좋을까요.

 ┌ 청소년 책잔치
 └ 푸름이 책잔치


 우리 말은 ‘청소년’입니다. 또는, ‘푸름이’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 말은 “책으로 벌이는 잔치”, 곧 ‘책잔치’입니다. ‘책’을 ‘圖書’라는 한자로 옮기고, ‘잔치’를 ‘典’이라는 한자로 옮기면 ‘圖書典’이 됩니다.

 인천시는 준비가 안 된 ‘도시엑스포(-expo)’를 치른다고 나섰다가, 세계엑스포위원회한테 쓴소리를 듣고는 잔치 크기와 이름을 모두 바꾸면서 ‘도시축전(-祝典)’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한자로 적어서 ‘祝典’인데, 이 ‘축전’이란 ‘엑스포’하고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우리 말로는 ‘잔치(또는 한마당)’이고, 한자말로는 ‘祝典(또는 祝祭)’이고, 영어로는 ‘Expo(또는 festival)’이며, 이탈리아말로는 ‘biennale’입니다.

 ┌ 인디고 청소년 세계 도서전
 └ 인디고 푸름이 세계 책잔치


 나라밖 사람을 불러들이는 잔치판이라고 해서 잔치이름을 아예 알파벳으로 적을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한국사람 누구한테나 글을 쓰는 자유가 있고, 이름을 붙이는 자유가 있습니다. 알파벳 아닌 히라가나나 가타가나로 적는다고 한들, 한자로 적는다고 한들 어느 누가 법으로 따지겠으며, 어느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겠습니다.

 한국사람만 즐기는 잔치판 이름을 외국말로 지어서 쓰든, 온통 알파벳으로 적바림하든, 누가 무어라 탓하겠습니까. 나라밖 사람을 모으든 안 모으든, 이리하여 서울시에서 ‘Hi Seoul Festival’이라고 외친들, 쑹얼쑹얼 따질 수 없습니다.

 다만, 이런 이름을 들을 때마다 여러모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영어에 온마음을 바치는 밑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하고. 한국땅을 찾아와서 한국사람을 만나는 나라밖 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은 이 잔치를 어떤 한국말로 가리킬까’ 하고 궁금해 하지 않겠느냐고. 어쩌면 한국땅까지 찾아오는 그 나라밖 사람들이 ‘한국말-한국 문화-한국 삶터-한국 이야기’에는 눈길 한 번 안 둘 수 있습니다. 영어로 ‘thank you’를 한국말로 ‘고맙습니다(고마워/고맙네/고맙구나/…)’라고 하는 줄 모르고, ‘good-bye’를 한국말로 ‘잘 가(잘 가렴/잘 가게/…)’라고 하는 줄 모르더라도, 그 나라밖 사람한테는 아무 피해 될 일이 없습니다. 한국에는 한국말과 한국글이 있어서, 영어로 ‘BOOK FAIR’를 한국사람들은 ‘책잔치’로 적고 있음을 모른다고 하여, 이 사람들로서는 무어 아쉬울 노릇조차 없습니다.

 - 책 / 書籍,圖書,冊 / book

 우리들한테는 ‘책’입니다. 한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는 ‘書籍,圖書,冊’입니다. 영어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는 ‘book’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를 찾아오는 나라밖 사람들이 한글로 ‘책’을 쓰고 있음을 모른다고 해서, ‘한국 관광’이 빛을 잃지는 않아요.



 - 2 -

 인천시에서 시 살림돈으로 엮어서 거저로 보내주는 잡지가 있습니다. 인천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아볼 수 있고, 인천사람이 아니어도 받아볼 수 있는 줄 압니다. 이달 2008년 5월로 173호가 나온 이 잡지는 《Good Morning INCHEON》입니다. 이 잡지는 나라밖 사람한테는 보내지 않고 나라안 사람한테만 보냅니다. 한글판만 찍으니까요.

 그러나, 잡지 이름에는 한글이 하나도 없습니다. 겉장을 넘겨 차례를 봅니다. 틀림없이 차례이지만 ‘차례’라는 말은 없습니다. ‘CONTENTS’라는 말만 있습니다. 그 옆으로, “May 2008 통권 173호”라고 적혀 있습니다. 응? ‘5월’이 아닌 ‘May’로 적는다면, ‘통권’이 아닌 ‘vol’을 적어야 하지 않나?

 ‘차례’ 아닌 ‘CONTENTS’는 모두 세 갈래로 크게 나뉘어 있습니다. 첫째 갈래는 ‘Fly Incheon’입니다. 둘째 갈래는 ‘Incheon Life’입니다. 셋째 갈래는 ‘Incheoner’입니다.

 ┌ 날자 인천 / Fly Incheon
 ├ 인천 삶 / Incheon Life
 └ 인천사람 / Incheoner


 글꼭지를 보니, “Fly Incheon News”, “시의회 Zoom in”, “Eduport Incheon”, “Healthy Life 건강백세”, “Info Box” 같은 말이 보입니다.

 잡지를 덮습니다. 이와 같은 잡지 꾸밈새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인천시 한 곳 모습만도 아닙니다. 대구를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산을 가도 다르지 않습니다. 서울이라고 남다를 모습은 없습니다. 대전은? 광주는? 울산은? 우리 나라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딱히 새로울 만한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아직 법으로 ‘영어 함께쓰기’가 되지 않았을 뿐이지, 전국 여러 도시마다 ‘영어마을’이 만들어졌습니다. 원어민 영어강사가 모셔지고 이 나라 아이들은 이 영어마을에 영어체험을 하러 찾아갑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영어마을을 만드는 까닭이라면, 우리 나라 적잖은 사람들이 영어마을을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마을을 바라는 사람이 드물다면, 또는 없다면, 굳이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으며 만들 까닭이 없습니다. 공문서에도 버젓이 영어를 집어넣고, 동사무소는 어느 날 아침에 ‘주민센터’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동사무소 간판과 지도와 길알림판 갈아치우는 데에 들어간 큰돈을 놓고 예산낭비라고 외치는 목소리는 거의 못 들었습니다. 한글학회에서나 잠깐 외쳤달까.

 ┌ 안녕하셔요, 인천입니다
 ├ 어서 오셔요, 인천입니다
 ├ 반가워, 인천
 └ …


 우리들이 우리 삶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쏟을 수 있다면, 또한 공무원들이 동네사람들 삶터에 살짝이나마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나아가 이 나라 지식인들이 이 나라 문화에 털끝만큼이나마 마음을 둘 수 있다면, 지자체에서 주민들한테 보내주는 홍보잡지 이름을 붙일 때에도 《반가워, 인천》쯤으로 붙인 다음에, 이 글월 밑에다가 ‘Good Morning INCHEON’을 집어넣었으리라 봅니다. 영어로 이름을 붙이고 알파벳으로 적는 글월을 꼭 넣어야 한다고 해도, 《어서 오셔요, 인천입니다》쯤으로 잡지이름을 삼은 다음에, 이 밑이나 오른쪽에 넣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생각있는 사람들이 벌이는 문화잔치조차 ‘INDIGO YOUTH BOOK FAIR’인걸요. 책이름도, 책방이름도, 이름쪽에 적는 이름도, 물건에 붙이는 이름도, 우리가 몸담은 일터이름도, 길거리 빵집에서 파는 빵조각에 붙는 이름도, 모두모두 영어로 되어 있고 알파벳으로 적는걸요. (4341.5.26.달.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 포토 라이브러리 6
조나단 콕스 글.사진, 김문호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진찍기란
 [잠깐 읽기 4] 조나단 콕스,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


- 책이름 :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
- 글ㆍ사진 : 조나단 콕스
- 옮긴이 : 김문호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2008.4.15.)
- 책값 : 17000원



 (1) 시간을 들여 배워야 하는 사진


.. 이제 문제는 디지털 카메라를 살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디지털 카메라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다 ..  (14쪽)


 몇 해 앞서, ‘헌책방’을 사진감으로 삼아서 찍는 사람이 제법 많았습니다. 그때 문득, ‘이제는 내가 굳이 헌책방을 사진으로 찍어서 남기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헌책방 사진찍기’는 잠깐 반짝하고는 수그러들었습니다. 헌책방에 와서 책은 안 보고 사진만 찍던 그 많던 사람들은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예나 이제나, 조용히 책을 즐기는 사람만 헌책방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헌책방 사진찍기’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하는 듯, 어디에서나 사진질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저부터 늘 사진기를 어깨에 걸쳐메고 다니기는 합니다만, 길을 걸어가는 데에도 사진기를 들이대고 전철에 서서 책을 읽는 데에도 사진기 불꽃을 터뜨리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보면서, ‘이 젊은이들이 자기 사진기에 담는 이 엄청난 사진을 어디에 어떻게 쓰려고 할까?’ 궁금했습니다. 제 차림새가 뭔가 도드라져 보여서 사진세례를 받는가 싶기도 했으나, 사진이란 ‘어딘가 눈에 뜨이는 모습을 담는 일’이 아닌데, 이 젊은이들은 기계는 대단히 좋은 녀석을 장만하면서도, 정작 이 기계를 왜 다루고 어떻게 다루고 언제 다루어야 하는가는 까막눈이구나 싶었습니다.


.. 나는 피사체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는가 하는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미지가 실물 크기의 몇 배로 나타나는지는 관심이 없다. 다만 피사체를 가장 좋은 빛에서 포착하려 하고, 적정한 노출과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미지를 얻고자 할 뿐이다 … 나는 얼마나 고배율의 이미지를 얻어내느냐 하는 문제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 접사사진을 촬영하려면 먼저 당신이 사용하는 장비에 통달하고, 뛰어난 이미지를 포착하기 위해서 장비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  (18쪽)


 요즈음도 새로운 디지털사진기는 쏟아져 나옵니다. 새로운 디지털사진기를 장만하는 사람도 꾸준히 늘어납니다. 사진 모임도 제법 많고, 공원이나 옛 궁궐에 ‘출사’ 나가는 사람도 많으며, 골목길 모습을 찍는다며 출사를 오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는 분들이 출사를 다녀왔다고 이야기를 건네면, 그분 인터넷방이나 블로그를 찾아가보고 무슨 사진을 어떻게 찍었나 들여다보곤 합니다. 찍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노라면 참 부지런히 많이도 찍던데, 정작 올려놓는 사진은 몇 장 안 되기도 합니다.

 씁쓸하게 웃으면서 ‘이이는 뭘 했나?’ 하고 생각해 봅니다. ‘사진 찍기 좋다는 곳’에 가서 무얼 했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출사는 핑계고, 그냥 술 마시는 모임을 한 셈인지? 출사랍시고 모여서 빈둥빈둥 수다만 떨지는 않았는지? 출사를 했으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더 나은 사진을 헤아려 보는 자리를 마련해야 할 텐데, 당구장에서 공치기 놀이나 하고 있지는 않으셨는지?


..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이라면, 카메라를 꺼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나는 항상 학생들에게 말한다. 만일 너희가 촬영하는 사진이 카메라를 망가뜨려도 좋을 만큼 대단한 사진이 아니라면, 카메라를 가방에 넣어 두라! ..  (43쪽)


 곰곰이 헤아리면, 사진 모임에 나가고 출사에도 나가는 분들이 늘 보아 온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은, ‘퍽 그럴싸해 보이는 모습’이기 일쑤입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 마음이 담긴 사진이라기보다는 ‘남들이 보기에 멋지구나 싶은 모습’이곤 합니다. 사진을 찍은 사람 스스로 자기 삶을 알뜰히 담고, 사진에 찍힌 사람 삶이 사뿐히 담긴 사진이라기보다는 ‘분위기 있다고 하는 모습’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을까요.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읽었어도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는 못 읽었으니, 《태백산맥》은 읽었어도 《광주 전남 현대사》는 모르고 있으니, 《외딴 방》은 읽었어도 《마흔에 길을 나서다》는 건드려 보지도 않으니, 어찌할 길 없는 노릇일까요.

 신락균을 알든, 임응식을 모르든, 강운구를 읊든, 한정식을 따르든, 최민식 이름 석 자를 되뇌이든, 김기찬 이름 석 자를 새기든, 육명심 강의를 들었든, 이명동 말고 저 명동도 있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든, 먼저 자기 나름대로 시간을 들이고 품을 들여서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곱씹고 되새겨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림 좋은 사진을 바라든 뜻이 있는 사진을 바라든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사진 찍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가슴에 새기고 나서야 사진기를 들 일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내 손가락을 까딱거려서 눌러대는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뒤돌아보고 나서야 사진기를 들 일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2) 사진기를 들기 앞서 생각하기


.. 빛을 연구하려면 카메라를 내려놓고 피사체의 모습이 빛에 따라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찰해 보라 ..  (62쪽)


 훌륭한 사진쟁이든 훌륭하지 않은 사진쟁이든,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내가 사진으로 담을 대상하고 가까워진 다음에 사진기를 들자. 그렇게 해도 늦지 않다’고. 백두산에 오른 기쁨과 벅참을 사진에 담고 싶다면서 여기저기 막 찍는다고 하여, 내 가슴으로 다가온 기쁨과 벅참이 사진에 담기지 않습니다. 모르지요. 헐레벌떡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헐레벌떡 사진이 가장 뜻있는지도. 대충대충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대충대충 사진이 가장 재미있는지도. 그냥저냥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그냥저냥 사진이 가장 값진지도. 겉치레와 겉멋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겉치레 사진이나 겉멋 들린 사진이 가장 알맞는지도.


.. 카메라가 내 팔의 연장이라고 느껴질 때면 시간을 벗어난 것 같은 초월의 순간을 경험하면서 그 장면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장면의 일부가 된다 … 사진가들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볼 때 현실을 떠나 다른 장소로 가는 느낌을 주고 싶어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사진가가 사진 속에 몰입하는 것이다 … 장비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기에 그들의 창조적인 측면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 렌즈의 선택을 제한하면 피사체들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된다 ..  (85∼86쪽)


 제 사진감인 ‘헌책방’과 ‘골목길’, 여기에 ‘자전거’까지 해서 사진에 담을 때마다 늘 혼자말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모습을 담을지가 머리에 떠오르거나 마음에서 샘솟기 앞서까지는 사진기를 손에 쥐지 말자고. 한쪽 어깨에 언제나 사진기가 걸려 있어야 하지만, 반드시 찍어야 할 모습이 아니라면 섣불리 사진기를 손에 쥐지 말자고. 사진기 구멍으로 ‘찍을 대상’을 요모조모 살피지 말고, 두 눈으로 먼저, ‘찍을 대상’을 살피자고.

 그러고 나서, 내가 꼭 찍어야 하는지, 나 아니면 찍을 사람이 없는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흔히 찍고 있지는 않은지를 생각합니다.

 돈 떨어질 걱정이 없는 디지털사진을 찍는다고 해도, 저장장치에 쓰레기 사진을 모아 놓는 일은 반갑지 않습니다. 쓰레기 사진을 모아 놓으면 어차피 다 지워야 합니다. 게다가, 쓰레기 사진을 치우느라 소중한 시간이 빼앗깁니다. 엉뚱한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시간이 버려지고, 엉뚱한 사진을 지우느라 또 시간이 버려집니다. 또한, 엉뚱한 사진을 찍는다고 설레발을 치는 바람에, 정작 제가 즐겨야 할 헌책방이나 골목길이나 자전거하고 함께하는 시간마저 줄어들어요.


.. 사진가가 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보는 방법’을 배우고, 환경적 조건에 따라 신속하게 적응하는 것이다 … 접사 이미지를 포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움직이는 것임을 나는 거듭 깨닫고 있다. 또, 피사체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도 잘 도망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거듭 놀란다. 사실 피사체가 자리를 뜨기 전에 내가 먼저 뜨는 경우가 더 많다 ..  (91,108쪽)


 사진을 찍어서 한 가지 모습을 종이나 파일로 남긴 뒤부터는, 두 눈으로 바라보고 온몸으로 부대끼던 삶터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모습이, 오늘 다르고 어제 다르고 내일 또 달라지겠구나 하고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 누구나 보는 모습이 아닌, 내 나름대로 뜻과 값을 두면서 바라보는 모습이 하나둘 늘어납니다. 사진 한 장에 이야기 한 자락이 생기고, 사진 두 장에 삶 한 자락이 새겨집니다. 사진 석 장에 눈물 한 방울 담기고, 사진 넉 장에 웃음 소담스레 묻어납니다.

 찍고 나서 두 번 거듭 보고, 찍었기 때문에 세 번 다시 보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찍은 뒤에 다시 찾아오고 또 찾아갈 곳을 사진에 담아야 하는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찍은 그날부터 사랑하게 되거나 애틋하게 바라보는 무엇인가를 사진에 담아야 하는구나 하고 알아갑니다.


 (3)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이라는 책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가까이 찍기’를 말하는 ‘접사’는 제 사진하고는 거리가 멀지 않나 생각하면서 읽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생각을 바꿉니다. 사진은 모두 똑같은 사진이구나. 다만, 모두 똑같은 사진을 다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 찍을 뿐이구나. 다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 찍는 사진이 아니라면 모두 똑같은 사진이라고 말할 수 없구나. 다 다른 길을 걸어가면서 찍으니, 다른 사람들 사진을 구경하고 다른 사람들 사진책을 장만하면서 즐기는 맛이 있구나.


.. 하루가 끝나고 유리상자 안에 갇혀 죽어 있는 수집물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있는 피사체를 관찰하는 일은 훨씬 만족스러운 일이다! ..  (7쪽)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을 쓴 조나단 콕스 님은 말합니다. 디지털파일을 RAW파일로 남겨 놓으라고. “JPEG포맷이 아닌 RAW 포맷을 사용하면 디지털 메모리 용량을 더 늘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촬영할 수 있는 이미지의 수는 줄어들 것이다. 물론 촬영속도는 느리게 하고 촬영 이미지 수는 줄이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디지털 메모리 저장 공간을 아끼기 위해서 좋은 피사체들을 보고도 충분히 촬영하지 않고 지나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139쪽)”라고 말합니다.

 저는 어떤 파일로 사진을 남겨 두고 있었나 살펴봅니다. JPEG로 남기고 있었군요. 그랬나? RAW 파일로 형식을 바꿉니다. 그랬더니, 저장 장치에 담을 수 있는 사진 장수가 1/3로 줄어듭니다. 헉! RAW 파일은 원본파일이고, 이 원본파일을 쓸 수 있도록 줄이거나 만지려면 새 프로그램 하나를 배워야 합니다. 헉헉!! 시험 삼아 RAW 파일로 사진을 담은 뒤 새 프로그램을 만지작만지작하다가, 애써 찍은 사진 1/2을 날렸습니다. 헉헉헉!!!

 파일 형식을 바꾸고 나서 보니, 예전 JPEG 형식이었을 때보다 빛느낌이 한결 살아납니다. 그렇구나. 이러한 파일 형식을 쓰는 까닭이 있었구나. 그러나 예전에 찍은 사진은 그 사진들대로 좋습니다. 싸구려 렌즈를 끼고 찍은 사진이든, 비싸구려 렌즈를 끼고 찍은 사진이든, 제가 담아야 할 사진감을 제 깜냥껏 사랑하고 믿고 아끼는 가운데 담아낸 사진이었다고 한다면, 좀더 나은 파일 형식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제 마음에 기쁘게 느껴집니다. 이제부터는 한결 나은 파일 형식으로 쓰면 되고, 또, 여태껏 소홀히 여기거나 가볍게 지나쳤던 대목을 다시금 찬찬히 돌아봐야겠다고 마음을 다집니다.

 한 자리에 머무는 사진을 바라지 않으니까요. 고여 있는 사진을 바라지 않으니까요. 용두질하며 즐기는 사진을 바라지 않으니까요.


.. 이미지를 보는 사람과 당신의 이미지를 연결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피사체의 눈높이에서 촬영하는 것이다. 거북이나 두꺼비가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 생각해 보라. 당신이 피사체의 시점에서 사진을 촬영하면, 사진을 보는 사람은 피사체만 보는 것이 아니라, 피사체가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방법까지도 보도록 만드는 것이다 ..  (110쪽)


 사진책 오천 권을 보았다고 해서 더 나은 사진을 알아보는 눈길을 길렀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진책 만 권을 보았다고 해서 더 나은 사진을 찍는 손길을 길렀다고 할 수 없습니다. 몇 권 읽었느냐는 껍데기입니다. 예전에 읽은 권수가 아닌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합니다. 지금 읽는 책을 덮은 다음, 새로운 책을 읽으려고 마음을 기울이느냐가 중요합니다.

 멋들어진 작품 하나 빚어내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멋들어진 작품은 일찌감치 이루어 놓은 하나로 그칠 수 없습니다. 그 하나를 처음으로 삼아 두 번째를 이루고 세 번째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차근차근 하나씩 밟고 일어서야 합니다. 열 며칠 동안 책상맡에 놓고 있던 《뛰어난 사진을 위한 접사의 모든 것》을 마무르고 책꽂이 한켠에 얌전히 꽂아 놓습니다. 곧 책방 나들이를 해야겠습니다. (4341.5.24.흙.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송건호 전집 - 전20권
송건호 지음, 강만길 외 엮음 / 한길사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현대인물사론》


 송건호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2001년에 세상을 떠났고, 2002년에 스무 권짜리 ‘송건호 전집’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전집이 나오면서, 당신이 써 온 낱권책은 모두 품절이나 절판이라는 길을 걸었고, 40만 원짜리 전집이 아니고서는 당신 글을 읽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2008년 오늘날, 송건호라고 하는 분 책을 하나씩 따로 읽고 싶다면 헌책방을 가야 합니다. 헌책방에는 당신이 쓴 《민족지성의 탐구》며 《한국민족주의의 탐구》며 《서재필과 이승만》이며 《김구》며 《의열단》이며 《한국현대사》며 《한나라 한겨레를 향하여》며 《분단과 민족》이며 《드골 평전》이며 《민중과 자유언론》이며 《소크라테스의 행복》이며 《민주언론, 민족언론》이며 《무지개라도 있어야 하는 세상》이며 《민족통일을 위하여》며 《동양의 고사》며, 또 아이들한테 읽히려고 쓴 위인전이며, 수많은 책을 어렵잖이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1984년에 펴낸 《한국현대인물사론》이라는 책은, 김구ㆍ여운형ㆍ김창숙ㆍ안재홍ㆍ이동녕ㆍ안창호ㆍ이승만ㆍ김교신ㆍ한용운ㆍ신채호ㆍ함석헌ㆍ이광수ㆍ최남선ㆍ이용구, 이렇게 열네 사람 이야기를 담습니다. 김교신 꼭지를 읽어 봅니다. “김교신은 45세의 젊은 나이로 그렇게도 그리던 민족의 광복을 몇 달 앞두고 세상을 떴다. 그의 평생은 파란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생전에 높은 요직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낱 중학교의 평교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대주의가 도도히 흐르는 기독교계에서 그처럼 기독교의 민족화를 위해 헌신한 사람은 없고 그토록 독실하게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교회와 서양 선교사를 외면하고 오로지 하느님과 성경만을 의지한 기독교인은 없었다(276쪽).”는 대목에 눈이 멎습니다.

 교과서에 이름이 실려 익히 알 만하거나, 이래저래 무슨 행사 때마다 들먹여지거나, 우리 나라 곳곳에 크고작은 기념관이나 기념빗돌이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했고, 어떤 마음과 넋으로 이 땅에서 살아갔는가를 얼마만큼 헤아리고 있습니까. 북한산국립공원이 왜 국립공원인지, 지리산국립공원은 국립공원으로서 얼마나 뜻이 있는지 헤아리면서 그곳을 찾아가십니까. 우리가 날마다 일터에 가서 하루 여덟 시간, 또는 더 길거나 짧은 시간을 바치면서 하는 일은 우리 은행계좌에 들어오는 돈을 넘어서 얼마나 우리 삶터를 북돋우거나 돌보고 있습니까. 우리가 날마다 먹고 마시는 밥과 물과 바람은 우리 몸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밥과 물과 바람이 지금 어떤 형편인지 알고 있습니까.

.. 일제 36년 간 조선에는 숱한 인물들이 나왔으나 지식 청년이나 일반 청년에 관계 없이 조선 청년대중에게 가장 폭넓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마 춘원 이광수를 따를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이광수는 세상이 다 아는 문인이었으나 지금과는 달리 일제 때의 춘원에 대한 기대는 단순한 문인으로서보다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로서였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얼마 후 1946년 여름쯤 되지 않았을까. 어느 날 이광수에 관한 기사가 신문에 조그맣게 보도된 일이 있다. “초췌한 모습의 이광수, 아내와 합의 이혼 수속차 종로구청에 출현”, 대체로 이런 내용의 기사였는데 머지않아 친일파로 단죄될 이광수가 재산을 보호하고자 아내 허영숙과 합의 이혼하고 재산을 아내의 이름으로 명의 변경했다는 보도였다. 8ㆍ15 후의 춘원은 온데간데 존재도 없었다. 8ㆍ15 전까지만 해도 민족의 우상처럼 존경받던 춘원이 해방이 되자 ‘친일파 이광수’로 변해 욕설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던 것이다. 세상이 변하니까 하룻밤 사이에 사람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달라지나 싶어 인생의 무상함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  (이광수 꼭지/348쪽)

 송건호 님이 거쳐간 〈조선일보〉와 〈한국일보〉와 〈경향신문〉과 〈동아일보〉, 여기에다가, 온몸 바쳐 태어나게 한 〈한겨레〉는 오늘날 얼마나 힘차고 야무진 붓끝으로 우리한테 밝고 고운 이야기를 건네고 있습니까. 〈조선〉 기자와 〈한겨레〉 기자는 얼마나 송건호 님 발자취를 톺아보면서 당신들 발걸음을 튼튼하게 이 땅에 내딛고 있습니까.

 책이 없어서 사람을 못 보지는 않을 테지요. 사람이 없다고 책을 안 보지는 않을 테지요. 마음이 없고 뜻이 없어서 몸을 안 움직이고 어깨동무를 안 할 뿐일 테지요. (4341.5.15.나무.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