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살펴보기
 (119) Good Morning INC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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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 ‘인디고서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INDIGO+ING》라는 잡지를 펴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책쉼터 이름을 나라밖 말로 지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내는 잡지이름도 나라밖 말로 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인디고서원’이라는 말은 한글로 적어 주니 낫다고 할는지 모릅니다.

 이곳 인디고서원에서는 오는 8월에 닷새에 걸쳐서 ‘인디고 유스 북페어(INDIGO YOUTH BOOK FAIR)’를 연다고 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 ‘청소년 책’을 함께 모두어 내는 ‘세계잔치’로 꾸린다는군요.

 생각해 보면, 책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서울국제도서전’을 열고 있습니다. 이 책잔치 이름은 한글로 ‘서울국제도서전’이고, 알파벳으로 적으면 ‘SEOUL INTERNATIONAL BOOK FAIR’입니다. 한국사람한테는 ‘도서전’이고, 나라밖 사람한테는 ‘BOOK FAIR’입지요.

 ┌ 국제도서전 / INTERNATIONAL BOOK FAIR
 └ 유스 북페어 / YOUTH BOOK FAIR


 해마다 치르는 서울국제도서전 행사를 가 보면, 날이 갈수록 ‘국제’라는 이름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안타까움은 잠깐 접어 놓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들이 나라 안팎에 있는 사람들을 모시고 잔치를 나눈다고 할 때에, 이와 같은 잔치판을 알리는 이름은 어떻게 붙여야 알맞을까요. 아니, 어떻게 붙여야 좋을까요.

 ┌ 청소년 책잔치
 └ 푸름이 책잔치


 우리 말은 ‘청소년’입니다. 또는, ‘푸름이’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 말은 “책으로 벌이는 잔치”, 곧 ‘책잔치’입니다. ‘책’을 ‘圖書’라는 한자로 옮기고, ‘잔치’를 ‘典’이라는 한자로 옮기면 ‘圖書典’이 됩니다.

 인천시는 준비가 안 된 ‘도시엑스포(-expo)’를 치른다고 나섰다가, 세계엑스포위원회한테 쓴소리를 듣고는 잔치 크기와 이름을 모두 바꾸면서 ‘도시축전(-祝典)’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한자로 적어서 ‘祝典’인데, 이 ‘축전’이란 ‘엑스포’하고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우리 말로는 ‘잔치(또는 한마당)’이고, 한자말로는 ‘祝典(또는 祝祭)’이고, 영어로는 ‘Expo(또는 festival)’이며, 이탈리아말로는 ‘biennale’입니다.

 ┌ 인디고 청소년 세계 도서전
 └ 인디고 푸름이 세계 책잔치


 나라밖 사람을 불러들이는 잔치판이라고 해서 잔치이름을 아예 알파벳으로 적을 수도 있는 노릇입니다. 한국사람 누구한테나 글을 쓰는 자유가 있고, 이름을 붙이는 자유가 있습니다. 알파벳 아닌 히라가나나 가타가나로 적는다고 한들, 한자로 적는다고 한들 어느 누가 법으로 따지겠으며, 어느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겠습니다.

 한국사람만 즐기는 잔치판 이름을 외국말로 지어서 쓰든, 온통 알파벳으로 적바림하든, 누가 무어라 탓하겠습니까. 나라밖 사람을 모으든 안 모으든, 이리하여 서울시에서 ‘Hi Seoul Festival’이라고 외친들, 쑹얼쑹얼 따질 수 없습니다.

 다만, 이런 이름을 들을 때마다 여러모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영어에 온마음을 바치는 밑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하고. 한국땅을 찾아와서 한국사람을 만나는 나라밖 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은 이 잔치를 어떤 한국말로 가리킬까’ 하고 궁금해 하지 않겠느냐고. 어쩌면 한국땅까지 찾아오는 그 나라밖 사람들이 ‘한국말-한국 문화-한국 삶터-한국 이야기’에는 눈길 한 번 안 둘 수 있습니다. 영어로 ‘thank you’를 한국말로 ‘고맙습니다(고마워/고맙네/고맙구나/…)’라고 하는 줄 모르고, ‘good-bye’를 한국말로 ‘잘 가(잘 가렴/잘 가게/…)’라고 하는 줄 모르더라도, 그 나라밖 사람한테는 아무 피해 될 일이 없습니다. 한국에는 한국말과 한국글이 있어서, 영어로 ‘BOOK FAIR’를 한국사람들은 ‘책잔치’로 적고 있음을 모른다고 하여, 이 사람들로서는 무어 아쉬울 노릇조차 없습니다.

 - 책 / 書籍,圖書,冊 / book

 우리들한테는 ‘책’입니다. 한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는 ‘書籍,圖書,冊’입니다. 영어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는 ‘book’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를 찾아오는 나라밖 사람들이 한글로 ‘책’을 쓰고 있음을 모른다고 해서, ‘한국 관광’이 빛을 잃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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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시에서 시 살림돈으로 엮어서 거저로 보내주는 잡지가 있습니다. 인천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아볼 수 있고, 인천사람이 아니어도 받아볼 수 있는 줄 압니다. 이달 2008년 5월로 173호가 나온 이 잡지는 《Good Morning INCHEON》입니다. 이 잡지는 나라밖 사람한테는 보내지 않고 나라안 사람한테만 보냅니다. 한글판만 찍으니까요.

 그러나, 잡지 이름에는 한글이 하나도 없습니다. 겉장을 넘겨 차례를 봅니다. 틀림없이 차례이지만 ‘차례’라는 말은 없습니다. ‘CONTENTS’라는 말만 있습니다. 그 옆으로, “May 2008 통권 173호”라고 적혀 있습니다. 응? ‘5월’이 아닌 ‘May’로 적는다면, ‘통권’이 아닌 ‘vol’을 적어야 하지 않나?

 ‘차례’ 아닌 ‘CONTENTS’는 모두 세 갈래로 크게 나뉘어 있습니다. 첫째 갈래는 ‘Fly Incheon’입니다. 둘째 갈래는 ‘Incheon Life’입니다. 셋째 갈래는 ‘Incheoner’입니다.

 ┌ 날자 인천 / Fly Incheon
 ├ 인천 삶 / Incheon Life
 └ 인천사람 / Incheoner


 글꼭지를 보니, “Fly Incheon News”, “시의회 Zoom in”, “Eduport Incheon”, “Healthy Life 건강백세”, “Info Box” 같은 말이 보입니다.

 잡지를 덮습니다. 이와 같은 잡지 꾸밈새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인천시 한 곳 모습만도 아닙니다. 대구를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산을 가도 다르지 않습니다. 서울이라고 남다를 모습은 없습니다. 대전은? 광주는? 울산은? 우리 나라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딱히 새로울 만한 이야기가 되지 않습니다. 아직 법으로 ‘영어 함께쓰기’가 되지 않았을 뿐이지, 전국 여러 도시마다 ‘영어마을’이 만들어졌습니다. 원어민 영어강사가 모셔지고 이 나라 아이들은 이 영어마을에 영어체험을 하러 찾아갑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영어마을을 만드는 까닭이라면, 우리 나라 적잖은 사람들이 영어마을을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마을을 바라는 사람이 드물다면, 또는 없다면, 굳이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으며 만들 까닭이 없습니다. 공문서에도 버젓이 영어를 집어넣고, 동사무소는 어느 날 아침에 ‘주민센터’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동사무소 간판과 지도와 길알림판 갈아치우는 데에 들어간 큰돈을 놓고 예산낭비라고 외치는 목소리는 거의 못 들었습니다. 한글학회에서나 잠깐 외쳤달까.

 ┌ 안녕하셔요, 인천입니다
 ├ 어서 오셔요, 인천입니다
 ├ 반가워, 인천
 └ …


 우리들이 우리 삶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쏟을 수 있다면, 또한 공무원들이 동네사람들 삶터에 살짝이나마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나아가 이 나라 지식인들이 이 나라 문화에 털끝만큼이나마 마음을 둘 수 있다면, 지자체에서 주민들한테 보내주는 홍보잡지 이름을 붙일 때에도 《반가워, 인천》쯤으로 붙인 다음에, 이 글월 밑에다가 ‘Good Morning INCHEON’을 집어넣었으리라 봅니다. 영어로 이름을 붙이고 알파벳으로 적는 글월을 꼭 넣어야 한다고 해도, 《어서 오셔요, 인천입니다》쯤으로 잡지이름을 삼은 다음에, 이 밑이나 오른쪽에 넣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생각있는 사람들이 벌이는 문화잔치조차 ‘INDIGO YOUTH BOOK FAIR’인걸요. 책이름도, 책방이름도, 이름쪽에 적는 이름도, 물건에 붙이는 이름도, 우리가 몸담은 일터이름도, 길거리 빵집에서 파는 빵조각에 붙는 이름도, 모두모두 영어로 되어 있고 알파벳으로 적는걸요. (4341.5.26.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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