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건호 전집 - 전20권
송건호 지음, 강만길 외 엮음 / 한길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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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현대인물사론》


 송건호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2001년에 세상을 떠났고, 2002년에 스무 권짜리 ‘송건호 전집’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전집이 나오면서, 당신이 써 온 낱권책은 모두 품절이나 절판이라는 길을 걸었고, 40만 원짜리 전집이 아니고서는 당신 글을 읽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2008년 오늘날, 송건호라고 하는 분 책을 하나씩 따로 읽고 싶다면 헌책방을 가야 합니다. 헌책방에는 당신이 쓴 《민족지성의 탐구》며 《한국민족주의의 탐구》며 《서재필과 이승만》이며 《김구》며 《의열단》이며 《한국현대사》며 《한나라 한겨레를 향하여》며 《분단과 민족》이며 《드골 평전》이며 《민중과 자유언론》이며 《소크라테스의 행복》이며 《민주언론, 민족언론》이며 《무지개라도 있어야 하는 세상》이며 《민족통일을 위하여》며 《동양의 고사》며, 또 아이들한테 읽히려고 쓴 위인전이며, 수많은 책을 어렵잖이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1984년에 펴낸 《한국현대인물사론》이라는 책은, 김구ㆍ여운형ㆍ김창숙ㆍ안재홍ㆍ이동녕ㆍ안창호ㆍ이승만ㆍ김교신ㆍ한용운ㆍ신채호ㆍ함석헌ㆍ이광수ㆍ최남선ㆍ이용구, 이렇게 열네 사람 이야기를 담습니다. 김교신 꼭지를 읽어 봅니다. “김교신은 45세의 젊은 나이로 그렇게도 그리던 민족의 광복을 몇 달 앞두고 세상을 떴다. 그의 평생은 파란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생전에 높은 요직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낱 중학교의 평교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대주의가 도도히 흐르는 기독교계에서 그처럼 기독교의 민족화를 위해 헌신한 사람은 없고 그토록 독실하게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교회와 서양 선교사를 외면하고 오로지 하느님과 성경만을 의지한 기독교인은 없었다(276쪽).”는 대목에 눈이 멎습니다.

 교과서에 이름이 실려 익히 알 만하거나, 이래저래 무슨 행사 때마다 들먹여지거나, 우리 나라 곳곳에 크고작은 기념관이나 기념빗돌이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했고, 어떤 마음과 넋으로 이 땅에서 살아갔는가를 얼마만큼 헤아리고 있습니까. 북한산국립공원이 왜 국립공원인지, 지리산국립공원은 국립공원으로서 얼마나 뜻이 있는지 헤아리면서 그곳을 찾아가십니까. 우리가 날마다 일터에 가서 하루 여덟 시간, 또는 더 길거나 짧은 시간을 바치면서 하는 일은 우리 은행계좌에 들어오는 돈을 넘어서 얼마나 우리 삶터를 북돋우거나 돌보고 있습니까. 우리가 날마다 먹고 마시는 밥과 물과 바람은 우리 몸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밥과 물과 바람이 지금 어떤 형편인지 알고 있습니까.

.. 일제 36년 간 조선에는 숱한 인물들이 나왔으나 지식 청년이나 일반 청년에 관계 없이 조선 청년대중에게 가장 폭넓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마 춘원 이광수를 따를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이광수는 세상이 다 아는 문인이었으나 지금과는 달리 일제 때의 춘원에 대한 기대는 단순한 문인으로서보다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로서였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얼마 후 1946년 여름쯤 되지 않았을까. 어느 날 이광수에 관한 기사가 신문에 조그맣게 보도된 일이 있다. “초췌한 모습의 이광수, 아내와 합의 이혼 수속차 종로구청에 출현”, 대체로 이런 내용의 기사였는데 머지않아 친일파로 단죄될 이광수가 재산을 보호하고자 아내 허영숙과 합의 이혼하고 재산을 아내의 이름으로 명의 변경했다는 보도였다. 8ㆍ15 후의 춘원은 온데간데 존재도 없었다. 8ㆍ15 전까지만 해도 민족의 우상처럼 존경받던 춘원이 해방이 되자 ‘친일파 이광수’로 변해 욕설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던 것이다. 세상이 변하니까 하룻밤 사이에 사람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달라지나 싶어 인생의 무상함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  (이광수 꼭지/348쪽)

 송건호 님이 거쳐간 〈조선일보〉와 〈한국일보〉와 〈경향신문〉과 〈동아일보〉, 여기에다가, 온몸 바쳐 태어나게 한 〈한겨레〉는 오늘날 얼마나 힘차고 야무진 붓끝으로 우리한테 밝고 고운 이야기를 건네고 있습니까. 〈조선〉 기자와 〈한겨레〉 기자는 얼마나 송건호 님 발자취를 톺아보면서 당신들 발걸음을 튼튼하게 이 땅에 내딛고 있습니까.

 책이 없어서 사람을 못 보지는 않을 테지요. 사람이 없다고 책을 안 보지는 않을 테지요. 마음이 없고 뜻이 없어서 몸을 안 움직이고 어깨동무를 안 할 뿐일 테지요. (4341.5.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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