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지나치지 않기 (2023.8.6.)

― 부산 〈보수서점〉



  여름볕을 느끼면서 부산버스를 탑니다. 살랑이는 바람을 느끼고 싶지만, 여름버스는 찬바람을 휭휭 틀어대기에 미닫이를 못 엽니다. 찬바람 아닌 밖바람을 누리고 싶기에 일찍 내려서 햇볕을 쬐며 걷습니다. 책골목을 둘러싼 마을부터 가만히 한 바퀴를 돌고서 보수동에 닿습니다. 오늘은 〈보수서점〉에 등짐을 내려놓습니다.


  무슨 일이건 빨리빨리 마치려고 애쓰면 으레 사달이 납니다. 다치거나 아픈 곳이 얼른 낫기를 바라기에 으레 도집니다. 돌봄터(병원)에 기대어 낫는 몸이 아닙니다. 스스로 돌아보며(돌보며) 다스리는 몸입니다. 아플수록 느긋할 노릇이요, 앓을수록 드러누워서 온몸과 온마음에 시골숲과 푸른들을 그릴 노릇입니다.


  천천히 나아야 참하게 빛납니다. 천천히 걸어야 차분히 둘러봅니다. 우리는 왜 코앞에 있는 책시렁에 꽂힌 아름책을 못 알아볼까요? 까닭은 하나예요. 서두르거든요. 둘째 까닭도 있어요. 글쓴이와 펴냄터 이름값에 얽매이거든요. 셋째 까닭도 있습니다. ‘비싼책’이란 없이 ‘배움책’만 있을 뿐인데, 새책도 헌책도 그저 ‘돈’으로만 셈하기에 아름책을 지나치고 사랑책을 못 알아챕니다.


  더 느긋이 읽기에 더 넉넉히 품습니다. 제대로 쉬며 집안일을 하기에 콧노래를 부르며 보금자리를 가꿉니다. 다니라고, 다가서라고, 다다르라고, 담으라고, 다 이으라고 있는 다리입니다. 두다리로 걸어다니면서 하루빛을 읽습니다. 두다리로 마을과 고을을 만나면서 이웃살림을 마주합니다.


  ‘말모이’는 주시경 님이 빚은 낱말입니다. 말을 모았으니 수수하게 ‘말모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누구나 수월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자리를 틔워서 길목을 내었다고 여길 만합니다. 그냥그냥 ‘조선어학회’라는 이름에 앞서, 그야말로 아무도 안 쳐다보던 훈민정음이었지만, 주시경 님이 꿋꿋하게 우리글을 지켜보면서 ‘한글’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짓기도 했고, 이분은 딸아이를 고르게(평등) 돌보고 가르쳤습니다. 그나저나 첫 ‘국어사전’은 이웃(선교사)이 엮었습니다. 이 나라 말밭(국어학계)은 ‘선교사 국어사전’은 ‘꾸러미(단어장)’라 여기며 팽개치던데, ‘단어장’부터 있어야 ‘사전’을 엮을 수 있는걸요.


  누구나 오늘 이곳에 있는 수수한 나를 바라보고 받아안을 적에 스스로 눈을 틔웁니다. 잎눈도 꽃눈도 살림눈도 남이 안 틔웁니다. 저마다 가만히 틔워요. 바쁘다는 핑계를 붙이기에 지나치면서 고개를 돌려요. 바쁘기에 틈을 내고 짬을 마련하고 말미를 들여서 다가가기에 새삼스레 배울 이야기를 두 손에 쥡니다. 하루에 2만 원씩 책값을 쓰는 ‘어른’이 천천히 늘어나기를 빕니다.


ㅍㄹㄴ


《티베트 의학의 지혜》(다이쿠바라 야타로/박영 옮김, 여강, 1991.7.30.)

《簡明 實業修身書 券三》(勝部謙造, 英進社, 1938.7.10.첫/1941.7.25.고침3벌)

- 大本營發表

- 金山漢奎

《輓近圖法敎科書 卷一》(馬場秋次郞, 右文書店, 1937.6.1.첫/1937.12.20.고침2벌)

《輓近圖法敎科書 卷二》(馬場秋次郞, 右文書店, 1937.6.1.첫/1937.12.20.고침2벌)

- 朝鮮工業技術學校 土木科 壹年 四七號

- 現住所 京機府 新堂町 石山洞 二八-二二號 (서울 신당동)

- 1949.9.9. ‘김한규’로 새로 새기다

《ATALA》(Chateaubriand, Didier & Mericant, ?)

- 1983.3.13. 봄이 시작하는 일요일 아침. 그와 함께 찾아낸 조그만 기쁨.

《ヒュ-マン·ファグタ-》(グレアム·グリ-ン/宇野利泰 옮김, 早川書房, 1983.12.31.첫/1988.1.31.5벌)

- 記號番號 25 鶴本書店. 日本の古本屋 ¥250

#GrahamGreen

《藥이 되는 自然食 上》(심상룡, 창조사, 1974.5.15.첫/1976.5.15.재판)

《藥이 되는 自然食 下》(심상룡, 창조사, 1974.9.20.)

- 인천교육쎈타 3-4800 책은 마음의 신성한 마취제이다

《이안의 산책, 자폐아 이야기》(로리 리어스 글·카렌 리츠 그림/이상희 옮김, 큰북작은북, 2005.5.10.첫/2006.4.1.2벌)

《재미있는 수학탐험》(R.N.펠레리만 외/편집부 엮음, 팬더북, 1989.7.31.)

《사회란 무엇인가》(송건호·오연호·다까하시·나까마, 참한, 1984.3.1.첫/1988.3.10.증보)

《佛敎의 성전》(에드워드 콘제/정병조 옮김, 고려원, 1983.11.25.첫/1988.10.20.재판)

《민요기행 2》(신경림, 한길사, 1989.7.27.첫/1989.11.25.3벌)

《詩作法》(테드 휴즈/한기찬 옮김, 청하, 1982.5.5.첫/1985.2.15.중판)

《新譯版 어린 왕자》(쎙떽쥐뻬리/전성자 옮김, 문예출판사, 1982.10.30.첫/1986.1.30.중판)

《맑스주의자와 자유주의자의 대화》(홍기석 엮음, 백산서당, 1991.4.25.)

《국민학생·중학생을 위한 바둑교실 1∼5》(加藤劍正/조훈현 옮김, 지문사, 1982.9.10.)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46 세계명작동요동시집》(윤석중 엮음, 계몽사, 1975.11.1.)

《오늘의 내 몫은 우수 한 점》(이형기, 문학사상사, 1986.12.22.)

《범우문고 274 세계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헤르만 헤세/박환덕 옮김, 범우사, 2012.10.5.)

《詩精神과 遊戱精神》(이오덕, 창작과비평사, 1977.4.25.첫/1981.1.10.3벌)

《사랑을 느낄때면 눈물을 흘립니다》(김현희, 고려원, 1992.7.15.)

《붓다 1 카필라성》(데스카 오사무/장순용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0.10.30.)

《붓다 6 제자 아난다》(데스카 오사무/장순용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0.12.1.첫/1991.1.20.재판)

《붓다 8 빛의 성지 기원정사》(데스카 오사무/장순용 옮김, 고려원미디어, 1990.12.31.첫/1991.1.20.재판)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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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5-09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사진속 오래된 책들은 이젠 서울의 헌책방에서 더 이상 보기 힘든것 같습니다.

숲노래 2025-05-09 09:06   좋아요 0 | URL
그래도 서울 여러 헌책집에서 아직 쉽게 볼 수 있어요.
주머니만 든든하다면 말이지요 ^^;;;;
 

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4.30.


《불태워라》

 릴리 댄시거 엮음/송섬별 옮김, 돌베개, 2020.10.19.



인천 주안나루 곁 길손집에서 아침을 연다. 책짐을 이고 지면서 연수동으로 간다. 전철을 갈아타며 손으로 글을 쓰다가 내릴 곳을 지나친다. 부랴사랴 내려서 건너간다. 숨을 고른다. 밖으로 나오니 온통 네모반듯한 잿마을이다. 이 잿마을이 보기싫어서 1995년 4월 5일에 인천을 떠났다. 이때부터 땅밑집과 하늘집과 골목집에서만 살았고, 2011년에는 아주 시골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서른 해 만에 걷는 예전 잿길은 똑같이 휑뎅그렁하되, 그새 나무가 꽤 자라서 크고작은 새가 노래한다. 새노래를 들으며 땀을 훔친다. 〈열다책방〉에 들러서 책을 읽는다. 늘어난 책짐을 즐거이 이고 진 채 시내버스를 탄다. 낯익은 ‘송도놀이터(유원지)’하고 바닷가 옆을 달린다. 어릴적 보던 모습하고 그대로이되, 바닷가에 무섭게 있던 가시울타리는 사라졌네. 〈나비날다〉에서 책을 더 읽는다. 저녁에 〈아벨서점 시다락방〉에서 말밑수다(어원강의)를 펴고는 일찌감치 곯아떨어진다. 《불태워라》를 읽었다. 첫머리는 ‘사내놈’한테 불길(분노)을 퍼붓는 글이라면, 1/6부터는 ‘왜 사내녀석은 삶과 살림과 사랑을 안 배우려 하지?’ 하고 궁금한 마음에 새길을 찾는 글이 흐르고, 이윽고 ‘사내를 바보로만 여기고 미워하고 불태우면 같이 죽는 수렁’인 줄 알아차리는 글로 맺는다.


다만, 숱한 사내가 바보라는 대목은 맞다. 틀림없는 말이다. 그래서 ‘바보돌이’를 미워하거나 불태우기만 하면, 바보돌이는 총칼을 들고서 싸우려 한다. 이와 달리 ‘바보돌이’를 토닥이면서 살림길을 가르치고 삶길을 알려주고 사랑길을 보여주면, 어느새 ‘사람돌이’로 거듭난다. 사내라는 몸은 애벌레와 같다. 사내는 애벌레처럼 입과 똥구멍만 있는 몸으로 잎갉이만 하는 얼거리이다. 사내는 고치를 틀어서 날개돋이를 하기 앞서까지는 ‘아직 바보’이기에, 사내 스스로도 받아들이면서 가다듬을 길이요, 가시내는 곁과 둘레에서 차분히 기다리며 지켜볼 일이기도 하다.


왜 사람은 번거롭게 ‘가시내·사내’라는 두 가지 몸으로 태어나겠는가? 이미 깨달은 몸으로 태어나서 아기를 밸 줄 아는 가시내는 ‘어진순이’이다. 어진순이는 어질게 가르칠 몫을 타고난다. 갖은 일살림을 도맡는 나날을 한참 보내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사내는 ‘바보돌이’인 터라, 끝없이 듣고 배우고 고치고 손보면서 드디어 눈을 뜬다.


집안일은 마땅히 둘이 함께해야지. 한 사람이 아프거나 앓으면 반드시 다른 한 사람이 도맡을 일이지 않은가? 사내는 ‘일하려고’ 태어난다. 가시내는 ‘일을 가르치고 물려주려고’ 태어난다. 총칼을 쥐거나 돈만 벌려고 하는 사내는 끝까지 안 배우려고 하면서 얼뜬 몸으로 치닫는다. 그런데 가시내도 총칼을 쥐거나 돈만 벌려고 하면 그만 사내하고 똑같이 수렁에 잠긴다.


아무리 가시내가 아기를 밸 줄 아는 몸이라 하더라도, 가시내 혼자 아기를 못 낳는다. 가시내하고 사내는 ‘하나를 이룰 두 가지 다른 아기씨’를 저마다 하나씩 몸에 품는다. 서로 돕고 북돋우고 가르치고 배우면서 천천히 스스로 사랑을 익히라는 뜻으로 두 갈래 몸으로 태어난다. 어느 쪽이 좋거나 나쁘지 않다. 그냥 다른 몸이다. 다르기에 다른 줄 받아들이고 바라보면서 바다처럼 아늑하고 바람처럼 맑게 서로 아끼고 돌보는 눈빛을 가꾸면, 바야흐로 새길을 일구면서 둘 다 ‘사람’으로 거듭나는 사랑을 씨앗(아기)으로 이룰 수 있다.


그러니 불태우려고 하지 말자. 불태우기가 아닌 북돋우기를 하면 된다. 불질이 아닌 붓질(글쓰기)을 하면 된다. 불수렁이 아닌 풀꽃나무로 숲을 이루는 보금자리를 지으면 너나없이 아름답게 푸른별이 깨어날 만하다. 우리는 서로 뜻과 눈과 손과 마음을 모아서 푸르고 파란 이 조그마한 별을 ‘사랑별’로 틔울 몫을 맡으려고 이곳에서 하루를 누린다고 느낀다.


#BurnItDown #WomenWritingaboutAnger #LillyDancyger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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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4.26.


《내 몸과 지구를 지키는 화장품 사용 설명서》

 배나린·배성호 글, 철수와영희, 2025.4.5.



후박꽃이 바람에 수북수북 떨어진다. 떨어진 꽃을 고이 주워서 맛본다. 달곰한 한봄꽃이다. 예부터 아이어른 누구나 후박꽃을 알뜰히 주워서 봄밥으로 누렸으리라 본다. 오늘날 우리는 나무꽃이건 풀꽃이건 모두 나물인 줄 잊는다. 먹어서 안 될 꽃송이란 없다. 다 다른 곳에 다 다른 길로 쓰는 나물인걸. 귀염꽃이라면 몸살림에는 이바지하지 않되, 숲들메에서 스스로 돋아서 푸르게 한들거리는 모든 풀꽃은 누구나 북돋우는 밥살림이다. 《내 몸과 지구를 지키는 화장품 사용 설명서》를 읽었다. 꽃물(화장품)을 쓰는 사람도 많지만, 안 쓰는 사람도 많다. 꽃물을 쓰는 탓에 살결이 망가지는 사람도 많고, 그럭저럭 멀쩡한 사람도 많다. 들일이나 바닷일을 한다면 꽃물을 바를 겨를도 없지만, 발라서는 안 된다. 아기한테 젖을 물리거나 아이를 돌볼 적에도 꽃물은 안 발라야 한다. 이제 우리도 조금은 바꾸지만, 일본에서 나오는 ‘샤본다마’라는 비누는 ‘합성계면활성제·형광증백제·방부제·화학향료·합성색소’를 하나도 안 넣는다. 우리나라 꽃물이며 비누에는 ‘화학·합성’을 얼마나 넣을까? 꽃물을 안 쓰더라도 어떤 비누로 씻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느냐에 따라서도 살갗이 망가질 수 있다. 이뿐인가? 꽃물과 비누를 쓸 적마다 구정물이 땅과 바다로 스미니, 어떤 꽃물과 비누를 쓰느냐에 따라 우리 스스로 들숲바다를 망가뜨리거나 살리는 갈림길에 선다. 집과 배움터와 일터에서는 어떤 비누를 놓을까? 나는 바깥일을 보려면 으레 먼길을 나서면서 길손집에 깃드는데, 손비누와 빨래비누를 따로 챙긴다. 잇물(치약)에도 갖은 ‘화학·합성’을 넣기에, 우리가 아무 잇물이나 쓰면 들숲바다를 날마다 더럽히는 셈이다. 배움터와 돌봄터(병원)는 “이를 잘 닦자”만 얘기하지만, 어떤 잇물을 써야 하는지 아예 안 살피기 일쑤이다.


언뜻 본다면 고작 비누 하나요 잇물 하나에 꽃물 한 가지일는지 모르나, 지난날에는 누구나 손수 지어서 쓰던 살림이다. 지난날에는 땅과 바다를 정갈히 돌보는 길로 살림을 지었다. 오늘날에는 더 값싸게 많이 팔아치우려고 ‘알림(광고)’을 퍼붓고 사람들을 길들이려 한다. 손수짓기가 가장 나은 길이되, 손수짓기가 버겁다면 ‘꼼꼼찾기’는 해야 마땅하다. 사람만 살아가는 푸른별이 아니고, 나만 살면 되는 터전이 아니니까. 땅과 바다가 망가지면 바로 나(사람)도 나란히 죽는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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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5.4.25.


《푸른 눈의 독립운동가 스코필드 박사의 3.1운동 일기》

 김영숙 글·장경혜 그림, 풀빛, 2019.2.27.



볕이 넉넉한 이틀이다. 담가 놓은 빨래는 작은아이한테 맡긴다. 낮밥도 스스로 차리라고 이른다. 이윽고 작은아이랑 저잣마실을 가려는데 마을논에서 큰새 한 마리가 우리 둘을 알아보고는 어기적어기적 논 복판으로 걸어간다. 어느 새일까? 마침 찰칵이를 챙겼기에 찍어 놓는다. 뒷모습은 뜸부기하고 닮았지만, 나중에 들여다보니 꿩이네. 같이 걸어다니며 한참 이야기한다. 우리는 오늘 하루 무엇을 먹을는지, 옷은 어떻게 입을는지, 집안은 어떻게 돌볼는지, 무엇을 스스로 배우고 싶은지, 하나부터 열까지 남이 아닌 나로서 짚으면서 길을 찾아야 한다고. 몸으로 나서서 배운 뒤에, 마음으로 가다듬어 익히려 해야 비로소 사람으로 살아간다고 들려준다. 《푸른 눈의 독립운동가 스코필드 박사의 3.1운동 일기》를 읽는 내내 아쉬웠다. 1919년 언저리에 이 땅에서 일하는 이웃이 제법 많다. 이들은 꼭두(영웅)에 서려는 마음이 아니었다. 이 땅에서 만난 수수한 사람하고 어깨동무하려는 씨앗마음이었다고 여길 만하다. 어떤 씨앗을 마주하고 나누고 새롭게 심는 길이었는가 하고 짚는다면 넉넉할 텐데, 숱한 ‘위인전’은 자꾸 추킴길로 치닫는다. 어린이도 어른도 ‘추켜세워서 따라갈 꼭두’가 아니라 ‘저마다 스스로 설 빛’을 볼 일이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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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멋진 새 있어? 국민서관 그림동화 215
매리언 튜카스 지음, 서남희 옮김 / 국민서관 / 2018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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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5.5.8.

그림책시렁 1574


《나보다 멋진 새 있어?》

 매리언 튜카스

 서남희 옮김

 국민서관

 2018.9.27.



  새는 언제나 새이고, 사람은 언제나 사람이며, 나무는 언제나 나무입니다. 새를 말하고 싶으면 새한테서 이야기를 들으면 되고, 새를 오래오래 지켜볼 노릇입니다. 사람을 말하고 싶다면 사람한테서 이야기를 들으면 돼요. 나무를 말하고 싶으면 나무가 들려주는 얘기를 귀담아들을 노릇입니다. 《나보다 멋진 새 있어?》는 ‘다 다른 숨결한테 깃든 다 다른 빛’을 밝히는 얼거리 같지만, 막상 ‘사람’을 ‘새 모습’으로 꾸며서 들려줍니다. ‘새를 이야기하는 줄거리’가 아닌 ‘사람을 이야기하는 줄거리’요, 이 가운데에서도 ‘서울(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다룹니다. 새는 부리를 여러 빛으로 바른다든지 이모저모 안 꾸며요. 새는 오직 하늘을 날고 나무에 앉고 바람을 타고 벌레잡이를 하고 하루를 노래하고 짝하고 낳는 새끼를 사랑으로 돌보는 둥지를 헤아리는 숨빛입니다. 새를 그리고 싶으면 ‘새를’ 그려야지요. ‘서울에서 멋부리면서 다른 겉모습으로 꾸미는 사람’을 이렇게 덧입히는 얼거리라면, 서울사람한테도 온누리 아이들한테도 이바지를 못 한다고 느낍니다. 오히려 아이들한테 겉모습을 꾸미라고 내모는 셈입니다. 모든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받으며 태어난 몸과 마음 그대로 빛나요. 속빛이 아닌 겉옷에 얽매인다면, 우리 스스로 갉거나 할퀴는 굴레입니다.


#BobTheArtist #MarionDeuchars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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