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쓰면 우리 말이 깨끗하다
 (241) 공통의 1 : 공통의 목적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공통의 목적을 향해 가는 데 시간은 걸리지만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됩니다
《고다 미로누/장윤,이인재 옮김-숲을 지켜낸 사람들》(이크,1999) 76쪽

 

  “-을 향(向)해 가는 데”는 “-로 가는 데”로 다듬습니다. ‘결국(結局)’은 ‘나중에’나 ‘마침내’나 ‘드디어’나 ‘비로소’나 ‘바야흐로’나 ‘머잖아’나 ‘이내’로 손보고, “이해(理解)하게 됩니다”는 “받아들입니다”나 “껴안습니다”나 “헤아려 줍니다”로 손봅니다.


  한자말 ‘공통(共通)’은 “둘 또는 그 이상의 여럿 사이에 두루 통하고 관계됨”을 뜻한다고 해요. 국어사전을 살피면 “공통 과제”나 “두 사건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나 “이웃들이 겪고 있는 공통의 빈곤” 같은 보기글이 있어요. 낱말뜻이나 쓰임새를 살피면, 한자말로는 ‘공통’일 테지만, 한국말로는 ‘같음(같다)’이에요. 그러니까, 국어사전 보기글은 “같은 과제”와 “두 사건이 똑같이 보여주는 문제”나 “이웃들이 겪는 똑같은 가난”으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공통의 목적을 향해 가는 데
→ 같은 목적으로 가는 데
→ 똑같은 길로 나아가는 데
→ 한마음으로 뜻을 모으는 데
→ 서로 같은 길로 가는 데
→ 함께 같은 뜻을 모으는 데
 …

 

  그런데, 국어사전을 보면 “공통적 과제” 같은 보기글도 있습니다. 궁금해요. “공통의 과제”와 “공통적 과제”는 어떻게 다른 말일까요. 또 “공통 과제”는 서로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요. ‘-의’과 ‘적’을 굳이 붙여야 할 까닭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똑같은 과제”나 “모두한테 주어진 과제”라고 적으면 뜻을 제대로 밝히지 못할까요.


  같으면 ‘같다’고 말하면 됩니다. 똑같으면 ‘똑같다’고 말하면 돼요. 비슷하면 ‘비슷하다’고 말하면 되지요. 같은 길을 걸어가면 ‘한마음’이 될 테고, ‘함께 가는 길’이라 할 수 있어요. 4338.6.7.불/4346.6.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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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 하는 똑같은 길로 나아가는 데 시간은 걸리지만 끝내 서로를 잘 헤아려 줍니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782) 공통의 2 : 공통의 언어와 문화

 

또한 독일인들은 공통의 언어와 문화를 가졌고, 스스로 ‘민족’이라고 여겼으나 ‘독일’이라는 지역은 중심부도 없었고 경계선도 분명하지 않았다
《존 맨/남경태 옮김-구텐베르크 혁명》(예·지,2003) 56쪽

 

  “언어(言語)와 문화를 가졌고”는 “말과 문화가 있으며”로 다듬고, ‘민족(民族)’은 ‘겨레’로 손보며, ‘지역(地域)’은 ‘곳’으로 손봅니다. ‘분명(分明)하지’는 ‘뚜렷하지’로 손질해 줍니다. ‘중심부(中心部)’는 ‘서울’로 손질할 수 있어요. ‘경계선(境界線)’은 그대로 두어도 되는데, 이 글월에서는 “독일이라는 곳은 서울도 없었고 시골도 뚜렷하지 않았다”처럼 적어도 됩니다.

 

 공통의 언어와 문화를 가졌고
→ 같은 말과 문화가 있으며
→ 같은 말을 하고 문화가 같았으며
→ 한 가지 말을 쓰고 문화가 같으며
 …

 

  똑같은 말을 쓰니 “한 가지” 말을 쓰는 셈입니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문화를 누립니다.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사랑을 노래하며, 같은 이야기를 나누지요. 같은 말을 아름답게 씁니다. 같은 문화를 살갑게 빛냅니다. 같은 꿈을 따사로이 보듬고, 같은 이야기를 오래오래 즐거이 누립니다. 4339.10.28.흙/4346.6.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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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독일사람들은 똑같은 말과 문화가 있고, 스스로 ‘겨레’라고 여겼으나 ‘독일’이라는 곳은 서울도 없었고 경계선도 뚜렷하지 않았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099) 공통의 3 : 공통의 화제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도 노인들의 농사짓는 공통의 화제로 차 안이 금방 훈훈해진다
《공선옥-마흔에 길을 나서다》(월간 말,2003) 210쪽

 

  ‘노인(老人)’은 ‘늙은이’나 ‘어르신’으로 손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로 손보면 한결 좋습니다. ‘금방(今方)’은 ‘이내’나 ‘곧’이나 ‘바로’로 손보고, ‘훈훈(薰薰)해진다’는 ‘따뜻해진다’나 ‘따스해진다’로 손봅니다.

 

 노인들의 농사짓는 공통의 화제로
→ 어르신들은 농사짓는 똑같은 이야기감으로
→ 할머니 할아버지 들은 저마다 농사짓는 이야기로
→ 할머니 할아버지 들은 농사짓는 이야기를 나누며
→ 어르신들은 농사짓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

 

  “공통의 화제”란 “같은 이야기”나 “똑같은 이야기감”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는 ‘공통의’를 다듬으려고 하기보다는, 아예 덜어낼 때에 잘 어울립니다. “노인들의 농사짓는 공통의 화제”와 같은 글월은 여러모로 얄궂습니다. “노인들이 농사짓는 이야기”요 “노인들이 똑같이 농사짓는 이야기”일 테지요. 이러한 글월을 흐름에 맞추어 알맞게 다듬어 줍니다. 4340.9.26.물/4346.6.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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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모르는 사이인데도 어르신들은 저마다 농사짓는 이야기를 나누며 차 안이 이내 따스해진다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75) 공통의 4 : 공통의 관심사

 

공통의 관심사가 있으니 처음 만났는데도 할 얘기가 많았다
《유기억·장수길-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지성사,2013) 99쪽

 

  ‘관심사(關心事)’는 “관심을 끄는 일”을 뜻합니다. ‘관심(關心)’은 “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주의를 기울임”을 뜻해요. ‘주의(注意)’는 “(1) 마음에 새겨 두고 조심함 (2) 어떤 한 곳이나 일에 관심을 집중하여 기울임”을 뜻한다 해요. 그러면 ‘관심 = 주의’가 되고, ‘주의 = 관심’이 되는 셈일까요. 쉽고 또렷하게 ‘눈길’이라 적어도 되지 않을까요. 자리에 따라 ‘마음씀’이나 ‘마음쓰다’처럼 적을 수 있고, ‘관심사’ 같은 한자말이라면 ‘좋아하는 일’이나 ‘좋아하는 것’으로 적어도 돼요.

 

 공통의 관심사가 있으니
→ 같은 관심사가 있으니
→ 눈길 두는 곳이 똑같으니
→ 같은 일을 좋아하니
→ 똑같은 일을 하니
 …

 

  이 글월은 “서로 제비꽃을 좋아하니”라든지 “두 사람 모두 제비꽃을 좋아하니”처럼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제비꽃을 이야기하는 책이거든요. 더 살핀다면, “우리는 제비꽃을 아끼니”라든지 “그분과 나는 제비꽃을 사랑하니”처럼 손볼 수도 있습니다. ‘똑같은 일’이나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밝히면 더 살갑고 알맞게 글을 쓸 수 있어요. 4346.6.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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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을 좋아하니 처음 만났는데도 할 얘기가 많았다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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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책

 


  글을 많이 쓰기에 책을 많이 읽지는 않는다. 책을 많이 읽기에 글을 잘 쓰지는 않는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 글을 쓴다. 생각을 사랑하는 사람이 책을 읽는다. 마음을 움직여 글을 쓴다. 마음을 곱게 아끼면서 책을 읽는다.


  글쓰기는 삶쓰기이기에, 삶을 돌볼 줄 안다면 글매무새 곱게 돌볼 수 있다. 책읽기는 삶읽기이기에, 삶을 사랑할 줄 안다면 책빛 환하게 밝힐 수 있다.


  삶은 어렵지도 않고 쉽지도 않다. 글쓰기는 쉽지도 어렵지도 않으며, 책읽기 또한 쉽지도 어렵지도 않다. 그예 삶이듯, 그예 글이요 책이다. 꾸밈없이 누리면서 가꾸는 삶이듯, 꾸밈없이 누리면서 쓰는 글이고, 꾸밈없이 누리면서 읽는 책이다.


  삶을 아름답게 북돋우고 싶다면, 글을 아름답게 북돋운다. 삶을 사랑스레 살찌우고 싶다면, 책을 사랑스레 쓰다듬으며 가슴에 품는다. 4346.6.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글쓰기 삶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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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에서는 알거나 보거나 느끼기 어려운 북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삼천 장 안팎 그러모아서 사진책을 하나 엮었다고 한다. 사진을 그러모은 분은 북녘에서 나고 자라서 동독에서 일하다가 서독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이분은 북녘에서 태어나서 자랐기에, 또 북녘을 고향으로 둔 이웃들을 알고 지냈기에, 이와 같은 사진들을 그러모아서 책으로 엮을 수 있었겠지. 거꾸로, 남녘에서 나고 자란 누군가 어떤 삶자락 좇아 다른 나라로 떠나 지내다가 ‘북녘에서 남녘 모습 되새기는 사진책 엮어 내놓’는 일이 있을까 궁금하다. 아마, 북녘에서는 ‘남녘 예전 모습 돌아보는 사진책’이 나오기 어렵겠지. 남녘사람한테 북녘사람 여느 모습 알 길이 없거나 만나기 힘들듯, 북녘사람한테 남녘사람 여느 모습 알 길이 없거나 만나기 힘들리라. 그렇다고, 남녘 정부에서 힘을 기울여 이런 책 수수하거나 곱게 내놓아 주지 않는다. 남과 북이 서로 남이 아닌 이웃이요 동무이며 살붙이인 줄 느끼며, 우리가 나아갈 길은 바로 ‘함께 사랑스레 살아가는’ 길을 들려주는 사진책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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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삼 컬렉션- 독일인이 본 전후 복구기의 북한
신동삼 지음 / 눈빛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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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문하면 "12월 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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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새 14
데즈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49

 


무기를 든 평화란 없다
― 불새 14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02.7.25./4500원

 


  농약을 쓰는 유기농은 없습니다. 비료를 쓰는 유기농도 없습니다. 비닐을 쓰거나 항생제를 쓰는 유기농 또한 없습니다. 석면(슬레트) 조각이나 시멘트 부스러기 깃든 땅에서 짓는 유기농도 없어요.


  농약을 많이 쓰는 화학농은 사람몸에 좋을 일이 없고, 땅에도 좋을 일이 없으며,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풀벌레와 들풀과 나무한테도 좋을 일이 없습니다. 들새와 멧새한테도 좋을 일이 없으며, 들짐승과 멧짐승한테까지 좋을 일이 없어요.


  그러나, 1960∼70년대 새마을운동은 시골집 지붕을 온통 슬레트지붕으로 바꾸었습니다. 군대에서는 슬레트에 연탄불 피워 고기를 구워먹습니다. 석면 때문에 끔찍한 환경병 생겨 사람이 죽고 아이들이 괴로워 하는 줄 이제서야 조금 깨닫지만, 슬레트지붕을 정부에서 팔 걷어부치며 거두어들이지 않습니다. 거두어들인다 한들 버릴 데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끔찍한 환경재앙 꾸러미라고 할 슬레트지붕을 씌우도록 닦달한 새마을운동을 나무라는 사람조차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2010년대인 오늘날에도 시골에는 새마을운동 깃발 나부끼고, 도시에서조차 이런 깃발이 펄럭입니다.


  요즈음은 석면을 함부로 안 씁니다. 그러나 시멘트를 어마어마하게 씁니다. 시멘트도 석면 못지않게 환경병을 부르지만, 아직 시멘트 환경병을 제대로 깨닫는 사람이 얼마 없습니다. 시멘트로 짓는 아파트에서 아이들이 아토피를 비롯한 온갖 환경병 걸리는 줄 뻔히 지켜보면서도 시멘트집을 끝없이 짓습니다. 길바닥을 시멘트로 깔고, 시골 논자락 흙도랑을 시멘트도랑으로 갈아치우기까지 해요. 게다가 온 나라 골골샅샅 냇바닥에 있던 흙을 긁어내어 시멘트를 퍼붓습니다. 1960∼70년대 새마을운동은 저리 가라 할 만큼 무섭게 시멘트나라가 됩니다. 앞으로 2030년이나 2040년쯤 되어야 비로소 ‘2000년대 시멘트바람’이 얼마나 우리 삶터 망가뜨리는 줄 깨달을까요.


- “장군은 500명의 목을 바라고 계신다! 우리 군의 대승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500명의 희생을 바라시는 거다. 두 명의 목을 더 준비해라. 어서 서둘러!” (9쪽)
- “너를 편히 죽도록 놔두지 않겠어. 산 채로 짐승으로 만들어 들판에서 개죽음하게 해 주지. 이 들판에서 잡은 늑대다. 그 늑대의 머리가죽을 벗겨라. 그리고 백인대장! 너는 저 애송이의 얼굴 가죽을 벗겨라. 산 채로 벗겨야 한다! 절대로 죽이지 마!” “흐흐흐, 알겠습니다.” (15∼16쪽)

 

 


  시험공부만 시키는 교육은 교육이 아닙니다. 교과서를 외우게 하고, 점수가 떨어지면 몽둥이로 두들겨팰 때에는 교육이 아닙니다. 건물만 번듯하게 세운대서 학교가 아닙니다. 시설을 으리으리하게 갖춘대서 학교가 아닙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아이들을 많이 보낸대서 명문학교가 아닙니다.


  교육이라 할 때에는, 삶을 보여주고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사랑을 키울 때에 교육입니다. 학교라 할 때에는, 꿈을 이야기하고 사랑을 속삭이며 맑은 넋 북돋울 수 있는 곳이라야 학교입니다. 나무가 자라고, 풀이 돋으며, 꽃이 피는 운동장이 있을 때에 학교입니다. 아이들이 활짝 웃으며 노래를 부르고, 어른들이 씩씩하게 춤을 출 때에 학교입니다.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빚는 길을 슬기롭게 보여주면서 함께 일굴 때에 학교입니다.


  곰곰이 따지면, 한국에는 교육이 없고 학교가 없습니다. 스웨덴 학교라느니, 핀란드 교육이라느니, 네덜란드와 영국과 독일과 노르웨이와, 더욱이 부탄이나 뉴질랜드에는 교육도 있고 학교도 있습니다만, 참말 한국에는 교육도 학교도 없어요. 한국사람 누구나 알듯, 한국에는 입시지옥만 있어요.


  그런데, 한국땅 어버이들은 아이들을 그저 학교로 보내어 졸업장을 따게 합니다. 한국땅 어버이들은 아이들이 서울에 있는 대학교 졸업장 거머쥐도록 내몹니다.


  한국땅 여느 어른들은 월급쟁이 구실을 하는 교사 자리를 차지합니다. 참답게 교사가 되려 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삶을 노래하는 교사는 자취를 감춥니다. 더 높은 학교로 보내는 데에만 마음을 기울입니다. 아이들은 노예가 되고, 어른들 또한 스스로 노예로 삶을 흘려보냅니다.


- “이제 생각났다. 나 얼굴 가죽이 벗겨진 뒤 늑대 가죽을 뒤집어썼던 거야. 그대로 늑대 가죽이 내 피부에 동화되고 만 거지. 하하. 아, 으으으. 등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 정신이 점점 몽롱해진다. 제일,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난 살아남고 말 테다.” (39쪽)
- “나, 난 인간이여! 평생 이런 짐승의 얼굴로 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왜 날 살린 거지?” “왜 살렸냐고? 그럼 묻겠는데, 그렇게 죽고 싶다면 왜 여태 자살하지 않았지?” (51쪽)

 

 


  무기를 든 평화란 없습니다. 주먹을 휘휘 흔드는 평화란 없습니다. 총칼을 앞세운 평화란 없습니다. 탱크가 달리고 전투기가 날며 미사일이 터지는데 평화란 자라지 않습니다.


  무기를 만드는 과학자와 기술자와 노동자가 있으면 평화란 없습니다. 공장과 대통령과 기업인이 무기를 만들어 큰돈과 권력을 얻는다면, 평화란 깃들지 않습니다. 군대로 지키는 평화가 아니라, 평화로 지키는 평화입니다. 군대로는 군대끼리 서로 맞부딪히면서 전쟁이 이어집니다. 군대는 전쟁을 부르고, 전쟁은 새로운 군대를 부르며, 새로운 군대는 끝없이 전쟁을 먹고 자랍니다.


  지구별 발자국은 모든 이야기를 잘 보여줍니다. 군대가 있은 뒤로 전쟁이 터지기만 했지, 평화로운 아름다움이 깃들지 못했습니다. 군대를 거느리는 권력자는 이녁 권력을 더욱 단단히 다지려고 사람들을 전쟁무기로 윽박지르면서 ‘군대에 가야 나라사랑을 하는’ 듯 길들였습니다. 젊은이는 사랑과 꿈이 아닌 전쟁 기술을 배워야 했고, 젊은이는 젊고 푸른 힘을 숲을 돌보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 죽이는 솜씨 익히는 데에 들였어요.


  더할 나위 없이 마땅한 소리인데, 바다 한복판에 띄운 항공모함에서 평화협정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총칼 번뜩이는 군인 지키는 외로운 건물에서 평화협정을 맺을 수 없습니다. 숲속 한복판에서 평화를 다짐하겠지요. 논밭 아름다운 들판에서 평화를 생각하겠지요. 물결 소리 싱그럽고 바람 노랫소리 가득한 멧골에서 평화를 이야기하겠지요.


- “네 덕분에 보다시피 내 딸은 건강을 회복했다.” “치료한 지 겨우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너의 자비심이 상처를 치유한 거지.” (123쪽)
- “당신들은 대륙에서 왔다고 했죠? 드문드문 소문은 듣고 있었습니다. 대륙에서 온 인간들과 함께 야마토의 왕을 홀려 수호신이 되었다죠?” “홀려? 무례하게 입을 놀리면 용서치 않겠다.” “당신들은 우리에게 사귀 운운 하지만, 우리는 평화롭게 이 땅을 지켜 왔기에 무기도 없습니다.” (133쪽)

 


  데즈카 오사무 님은 만화책 《불새》(학산문화사) 열넷째 권에서 평화가 어디에서 오는가를 넌지시 들려줍니다. 전쟁은 왜 일어나고, 전쟁에 길든 사람들 마음자리가 어떤 빛이나 결이나 무늬인가를 보여줍니다.


  어릴 적부터 전쟁에 길든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전쟁만 생각합니다. 어린 날부터 평화를 누리며 사랑을 먹으며 자란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평화를 꿈꿉니다. 어린 날부터 입시지옥에 허덕인 아이들은 푸름이가 되고 젊은이가 되어도 입시지옥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젊은이가 짝꿍을 만나 아이를 새로 낳는다 하더라도 이녁 아이들을 다시 입시지옥 굴레에 집어넣지, 새로운 삶이나 새로운 교육이나 새로운 학교나 새로운 사회나 새로운 나라를 생각하지 못해요.


  입시지옥에서 시달리는 동안 아이들은 ‘창조·창의·상상’ 모두 날개가 꺾이거든요. 입시지옥에서 들볶이면서 동무를 아끼는 사랑을 배우지 못하거든요. 입시지옥에서는 동무 아닌 맞수나 적군으로만 생각합니다. 입시지옥에서는 나 스스로 바보가 되는 주입식 시험지식만 머리에 잔뜩 채웁니다. 고운 넋을 마음에 담지 못하지요. 맑은 빛을 마음에 품지 못해요.


- “왜의 왕족이 자신들의 신이라 칭한 건 다름아닌 현인신이라는 인간신이다.”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닙니까? 인간이 스스로 신이라 칭하다니요?” “그러게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지금 정권을 잡고 있는 잡고 있는 나카노오오에 왕자는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고 있다.” “아니, 왜죠?” “권위를 위해서겠지.” (152쪽)
- “저는 사실 이 가모우노노에서 짐승을 죽이는 게 내키지 않습니다. 형님도 아시겠지만, 이 부근은 원래 이 지역의 주민들이 향토신들을 위해 제를 올렸던 곳입니다. 그리고 이 들판의 생물은 신들의 소유물로 여겨 함부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형님은 그걸 의식적으로 깨기 위해 사냥을 계획하셨습니다. 이건 왕의 권위를 앞세운 폭거 아닙니까?” (183쪽)

 


  권력은 언제나 권력을 바라봅니다. 전쟁은 언제나 전쟁을 바라봅니다. 독재는 언제나 독재를 바라보지요. 곧, 평화는 늘 평화를 바라봅니다. 사랑은 늘 사랑을 생각해요. 꿈은 늘 꿈을 살찌웁니다.


  이 나라 아이들이 시험지와 문제집과 참고서와 교과서만 붙잡아야 한다면, 이 아이들 마음자리에는 입시지옥 수렁만 또아리를 틉니다. 이 나라 아이들이 드넓은 들판에서 뛰놀며 푸른 숲속에서 맨발로 어울려 놀 수 있다면, 이 나라 아이들은 스스로 어떤 삶 일굴 때에 즐거우며 아름다운가를 깨달아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아이들과 어떤 삶 누려야 할까요. 아이들한테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까요.


- “하지만 앞날이 너무 걱정이야. 이 늑대 얼굴로는 언젠가 이 마을 사람들도 날 따르지 않게 될 텐데.” “아니요,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누구지?” “당신은 상냥하고 모두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자비심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199쪽)
- “그래, 이누가미. 자네는 불교 신도인가, 아니면 향토신들을 믿나?” “저는 어느 쪽도 믿지 않습니다. 백제에 있었을 때부터 선조의 영혼만을 받들 뿐입니다.” “그래? 그럼 오늘부터 불교의 가르침을 믿고 불교에 귀의하도록 하게. 이건 전국의 호족들에게 공문을 돌려 확인하고 있는 일이야.” “말씀은 고맙지만, 제 신앙은 제가 직접 결정합니다. 그런 권유는 필요없습니다.” (213쪽)

 


  유월 한복판을 지나가는 시골마을 한낮에는 멧새 노랫소리 가득합니다. 시골집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내내 멧새 노랫소리를 익숙하게 듣습니다. 저녁이 되어 해가 떨어지면 개구리 노랫소리를 듣지요. 곳곳에 있는 풀섶에서는 풀벌레가 노래를 해요. 아이들은 길을 가다가도 풀섶에서 고운 소리 들리면 발걸음 멈춥니다. 풀벌레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아이들은 어떤 소리를 들을까요. 도시 아이들은 하루 내내 어떤 소리를 귀로 담아 마음에 묻을까요. 시골 아이라 하더라도 입시지옥에 붙잡혀 하루 내내 기숙사와 학교 건물에 갇힌 채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 보내는 아이들은 어떤 소리를 들으면서 푸른 나날 보낼까요. 시골 아이라 하지만, 막상 풀포기 하나 못 만지고 꽃송이 하나 못 보는 삶은 아닌가요.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요. 풀노래 바람노래 햇살노래 못 듣고 자라는 오늘날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어느 시골에나 아직 풀노래 바람노래 햇살노래 가득한데, 이 고운 노래를 들을 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우리 어른들은 어떤 소리를 듣는가요. 우리 어른들은 어떤 소리를 만들어서 아이들한테 들려주는가요.


  해맑은 노랫소리 못 듣고 자란 아이들은 ‘해맑음’을 알 수 없습니다. 시끄러운 자동차와 기계와 손전화와 텔레비전 소리를 늘 듣고 자란 아이들은 ‘시끄러움’은 잘 압니다. 싸우고 다투고 죽이고 괴롭히고 등치고 들볶는 이야기 가득한 연속극과 영화와 문학이 텔레비전과 극장과 무대를 그득그득 채우는 오늘날, 이 나라 어른과 아이는 어떤 모습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갈고닦는지 궁금합니다. ‘무기를 든 평화’라는 거짓말에 휩쓸리면서 군대로 끌려가 ‘거짓 사나이’ 되어도 두 눈 돌리거나 참모습에는 등돌리는 사람들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4346.6.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만화책 즐겨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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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24] 살림살이

 


  밥을 손수 하고
  옷을 스스로 기우며
  집을 몸소 짓습니다.

 


  그림틀을 나무조각으로 손수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천에 사진을 붙여 사진틀을 삼을 수 있습니다. 나무를 몸소 깎아 젓가락이나 숟가락 삼을 수 있습니다. 그저 스스로 만들면 됩니다. 아이들 놀잇감을 가게에서 사지 않고, 집에서 뚝딱뚝딱 만들 만합니다. 어느 회사 이름이 붙거나 어떤 캐릭터여야 재미나게 갖고 놀지 않아요. 아이들 손에 맞고, 아이들 눈을 밝히며, 아이들 마음을 살찌운다면 모두 좋은 놀잇감이 됩니다. 밥그릇 하나가 예술품이며, 밥상 하나가 예술품입니다. 집에서 쓰는 살림살이는 모두 예술품입니다. 삶을 살찌우는 연장이기에 예술품이요, 삶을 살리는 연장이니까 예술품이에요. 살림살이마다 새롭고 새삼스러운 이야기 깃듭니다. 어떤 주제를 내세워 돈을 들여 만들어야 예술이 되지 않습니다. 4346.6.23.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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