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방제 농약 책읽기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사흘째 ‘항공방제’를 한다. 마을방송과 면내방송에서는 수요일 새벽 다섯 시부터 아침 아홉 시까지만 한다고 알리더니, 수요일 낮에도 하고, 목요일 아침과 낮에도, 또 금요일 새벽과 아침에도 해댄다.


  목요일 한낮에 갑작스레 ‘무인 헬리콥터’가 바로 우리 집 대문 앞까지 떠올라 농약을 뿌려댄다. 한창 이불과 옷가지를 말리다가 깜짝 놀란다. 농약냄새가 훅 끼친다. 아이들 부리나케 집으로 들어가라 말하고 이불과 옷가지 걷고 치운다.


  서둘러 이불과 옷가지를 치우고 밖으로 나간다. 헬리콥터 농약 뿌리는 ‘항공방제’ 하는 이들한테 왜 방송 하나 없이 한낮에 농약을 뿌리느냐고 따진다. 그러니, 이 사람 하는 말 ‘농약’이 아니란다. 농약이 아니면 논에 왜 뿌릴까? 게다가, 마을방송과 면내방송에서는 항공방제를 할 적에 창문 모조리 닫으라 했고, 벌이 다 죽으니 벌집 잘 건사하라고까지 알렸다. 그런데, 아이들 마당에서 노는 한낮에 함부로 농약을 하늘에서 뿌려서 온 마을 지붕과 마당에까지 농약냄새 번져도 된단 말인가.


  일본에서는 항공방제 때문에 아침에 학교에 가거나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던 아이들이 얼굴에 농약을 뒤집어써서 눈을 잃은 사고가 잇달아, 항공방제를 함부로 안 한 지 스무 해가 넘는다. 한국에는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어린이가 거의 다 사라졌으니, 시골 할매 할배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마구 항공방제를 해대도 되는가.


  벌이 몽땅 죽는다는 항공방제 농약이라면, 나비도 죽고 풀벌레도 죽으며, 작은 새들과 개구리도 모두 죽이는 농약이라는 뜻이다. 이런 농약을 헬리콥터를 띄워 들과 숲이 샅샅이 뿌리면 어떻게 될까. 해오라기도 죽고 제비도 죽고 멧비둘기도 죽고 까마귀도 죽겠지. 멧비둘기와 까마귀와 까치가 죽으면 시골사람은 콩알 캐먹는 새들 사라진다고 좋아할까. 새들이 농약 때문에 죽으면 이제 벌레 잡아먹을 새들이 사라지는 꼴이라, 한 해 내내 농약만 끝없이 뿌려야 하는 삶이 될 텐데, 농약 잔뜩 머금은 쌀과 푸성귀와 열매를 누구한테 먹일 수 있는가. 농약 머금은 매실로 효소를 담근들 누구 몸에 좋을까. 농약 머금은 감을 도시로 떠난 딸아들 먹으라고 줄 수 있을까.


  그래, 도시에서는 파리와 모기와 바퀴벌레를 죽인다며 살충제를 헬리콥터 띄워 하늘에서 마구 뿌리나. 도시에서 파리와 모기와 바퀴벌레 죽이려고 항공방제를 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벼멸구 잡겠다며 항공방제를 한다고 마을방송에서 다 말했는데, 벼멸구 잡겠다고 하는 농약을 시골마을 지붕과 마당과 장독까지 뿌리면서 지나가면, 논뿐 아니라 숲에까지 바람에 실려 농약이 퍼지게 하면, 이런 곳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가.


  바보짓 하는 고흥군 행정기관에서 항공방제를 그치지 않는다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한테 ‘고흥쌀’은 ‘거짓 친환경’으로 키운 쌀입니다, 고흥쌀도 고흥마늘도, 모두 농약덩어리입니다, 이것 먹으면 벌과 나비와 제비와 개구리와 해오라기가 모두 죽습니다, 죽고 싶으면 고흥쌀과 고흥마늘과 고흥유자 먹으셔요, 하고 외쳐야 할 판이다. 4346.7.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과 책읽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07-12 09:32   좋아요 0 | URL
에구, 무인헬리콥터가 거대한 철제 곤충처럼 보여
조금 겁이 나네요..늦가을부터 겨울 내내 고흥유자차 온식구 즐겨 마시는데요..ㅜ.ㅠ

파란놀 2013-07-12 09:40   좋아요 0 | URL
저도 고흥사람이긴 합니다만...

고흥유자는 '아는 사람' 유자나무밭에서 일손 거들러 가서
함께 따서 얻은 것 아니고는
안 먹어요.

농약을 얼마나 많이 뿌리는가를
늘 지켜보니까요...

저 무인헬리콥터는
농약 싣고 날아다니는 '죽음 기계'랍니다...

그런데, 고흥뿐 아니라 이 나라 시골마다
저런 농약 헬리콥터가 하늘을 누벼요.
 

책방 불빛

 


  어둠이 드리운 골목에 불빛이 밝다. 시골마을에 켜는 등불에는 하루살이와 밤벌레가 찾아든다. 어둠이 드리운 골목에 밝게 켠 책방 불빛은 마음밥 먹고 싶은 사람들을 부른다. 마음밥을 먹으면서 마음밭에 씨앗 한 톨 뿌리는 사람들은 마음나무를 키워서 마음꽃을 피우고 마음빛을 밝힐 수 있을까.


  나무는 열 살쯤 자라면 작은 멧새 내려앉을 만한 가지를 키울 수 있을까. 나무는 열다섯 살쯤 자라면 작은 멧새한테 고운 열매 나누어 줄 수 있을까. 나무는 스무 살쯤 자라면 아이들한테 조그맣게 그늘 내어줄 만할까. 나무는 서른 살쯤 자라면 어른들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잔치 나누는 너른 그늘 마련해 주려나.


  마음을 밝히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어두운 골목에 등불을 켠다. 책방 앞에도, 책방 안에도 그리 크지 않은 등불을 켠다. 주유소나 여관이나 술집처럼 번쩍거리는 등불을 켜지 않는 책방이다. 대학입시에 목을 매는 학교들처럼 애먼 아이들 붙들지 않는 책방이다. 책을 읽을 사람은 스스로 책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책을 아로새길 사람은 스스로 책장을 넘긴다. 책 한 줄에서 삶을 헤아릴 사람은 스스로 꿈을 키운다. 책밥 즐거이 먹은 사람은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려 이웃과 나눈다.


  해 떨어진 저녁, 조용한 골목에 등불 하나 켠 책방이 환하다. 하루일 마친 어른도, 하루놀이 끝내는 아이도, 맑은 이야기밥을 책방마실 하면서 얻는다. 4346.7.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07-12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째 비가 내리고
해 떨어진 저녁, 조용한 골목에 등불 하나 켠 책방에
가고 싶은 아침입니다. 혼자 가도 좋겠지만..고운 벗과 함께 가서
말없음표..속에서도, 등불을 켜듯 그렇게 책들을 고르고 서로에게
마음밥, 마음빛, 마음눈물, 마음길.. 선물하고 싶은 아침입니다..^^

파란놀 2013-07-12 09:41   좋아요 0 | URL
올가을 9월 마지막주에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
마실을 해 보셔요~ ^^

저녁나절 헌책방골목 불빛이
참 그윽하며 예쁘답니다.

appletreeje 2013-07-12 09:49   좋아요 0 | URL
예~꼭 그래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저녁나절 보수동 헌책방골목 가서 책들을
한꾸러미씩 골라 들고..막걸리도 한잔씩 마시고 와야겠습니다. ㅎㅎ
 

[아버지 그림놀이] 예쁜 돈 벌겠어 (2013.7.11.)

 


  나라밖으로 배움길 떠난 적 없기에, 한 사람이 나라밖에서 배우는 동안 돈이 얼마나 들는지 생각해 본 적 없다. 올해에 옆지기가 미국으로 가서 여러 달 배우는 동안 이제껏 겪지 못한 돈가뭄을 뼛속 깊이 느낀다. 그렇구나. 나는 여태 ‘예쁜 돈 그득그득 벌어 즐겁게 아름다운 곳에 쓰는 길’을 생각한 적이 없구나. 이리하여, 오늘은 “예쁜 돈 그득그득 벌어서 집숲 마련하자”는 꿈을 그림으로 그린다. 아빠 나비, 엄마 나비, 벼리 나비, 보라 나비, 이렇게 나비 넷을 그리고는 큰 잎사귀 하나를 그린다. 그러고 나서 고운 빛깔로 큰 잎사귀를 포근히 감싸 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땡볕 빨래

 


  여러 날 땡볕이 내리쬡니다. 구름 한 점 없이 내리쬐는 땡볕인 여름날에는 어디에도 나돌아다니지 않습니다. 더워서 안 돌아다니지 않아요. 이 좋은 땡볕에 이불이며 옷가지를 보송보송 말리고 싶어 바깥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옷장에 있던 이불을 꺼냅니다. 이불 안쪽에 축축한 기운 있습니다. 하나하나 마당에 넙니다. 아이들 옷가지를 내놓고, 속옷 담은 상자와 양말 담은 상자를 내놓습니다. 새로 종이상자를 더 꺼내어 말립니다. 지난겨울 아이들 입던 옷을 새로운 상자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땡볕에 말리는 이불은 삼십 분 즈음마다 뒤집습니다. 옷가지도 모두 뒤집습니다. 이렇게 서너 차례 뒤집습니다. 바짝바짝 말랐는가 살피고, 햇살내음 배었는가 맡습니다. 이불과 옷가지 뒤집는 동안 등판과 얼굴과 온몸에 땀이 줄줄 흐릅니다. 그저 옷가지 뒤집을 뿐인데 이렇게 뜨겁습니다. 바깥에서 들일을 하기 몹시 벅찬 한여름이네 싶으면서도, 지난날 소작농 일꾼은 이런 날씨에도 들일을 해야 했겠지요. 지난날 소작농 집안 아이들은 이런 날씨에도 어버이 일손 거들어야 했겠지요. 또, 도시에서는 이런 날씨에도 이불 말리기나 옷가지 말리기 아닌, 톱니바퀴처럼 꽉 짠 얼거리에 맞추어 회사원이나 노동자로 돈벌이를 해야 할 테지요.


  바쁜 일철이 훅 지나간 칠월 한복판 땡볕 한낮에 마을마다 우람한 나무그늘에 할매 할배 모여 앉습니다. 들에도 나무들이 우람하게 선다면 참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논자락이나 밭자락 조금 줄더라도 우람한 나무들이 곳곳에 서며, 들길을 걷는 동안 그늘 사이를 거닐 수 있으면 아주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숲은 더위를 식힙니다. 숲은 추위를 가라앉힙니다. 숲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고, 숲에서 시원한 냇물이 흐릅니다. 이불과 옷가지 잘 말랐으면 집안으로 들입니다. 집안에 온통 햇살내음 번집니다. 4346.7.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3-07-11 22:34   좋아요 0 | URL
오..좋은 땡볕에 보송보송 잘 말린 이불에서 자면 얼마나 포근하고 꿀잠을 잘까요~^^
정말 그렇지요. 아무리 뜨거운 땡볕이 내리 쬔다 해도, 우람한 나무 아래는 서늘한 빛깔과 그늘로
참 시원하고 다른 세계이지요~
함께살기님! 나무는 정말 좋아요...


파란놀 2013-07-11 23:12   좋아요 0 | URL
시골에서는 들판에 그늘 드리운다며 나무를 다 베어요.
참 '무식'하지요.

도시에서는 찻길 놓는다고 또 나무를 몽땅 밀어요.
너무 '무식'해요.

나무가 살아야... 시골도 도시도 살 텐데요... ㅠ.ㅜ
 

아이 글 읽기
2013.7.1. 큰아이―몽당연필 좋아

 


  긴 연필이 있지만, 몽당연필에는 공주님 그림이 있다고 몽당연필을 쥐어서 쓴다. 몽당연필 알뜰히 쓰려는 마음이 아니로구나. 그러나, 이렇게 몽당연필 쓰노라면 나중에는 차츰 익숙하게 작은 연필 잘 다룰 수 있겠지. 네 작은 손에 작은 연필을 쥐고 작은 수첩에 작은 그림 신나게 그리면서 놀아라. 4346.7.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