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불빛
어둠이 드리운 골목에 불빛이 밝다. 시골마을에 켜는 등불에는 하루살이와 밤벌레가 찾아든다. 어둠이 드리운 골목에 밝게 켠 책방 불빛은 마음밥 먹고 싶은 사람들을 부른다. 마음밥을 먹으면서 마음밭에 씨앗 한 톨 뿌리는 사람들은 마음나무를 키워서 마음꽃을 피우고 마음빛을 밝힐 수 있을까.
나무는 열 살쯤 자라면 작은 멧새 내려앉을 만한 가지를 키울 수 있을까. 나무는 열다섯 살쯤 자라면 작은 멧새한테 고운 열매 나누어 줄 수 있을까. 나무는 스무 살쯤 자라면 아이들한테 조그맣게 그늘 내어줄 만할까. 나무는 서른 살쯤 자라면 어른들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잔치 나누는 너른 그늘 마련해 주려나.
마음을 밝히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어두운 골목에 등불을 켠다. 책방 앞에도, 책방 안에도 그리 크지 않은 등불을 켠다. 주유소나 여관이나 술집처럼 번쩍거리는 등불을 켜지 않는 책방이다. 대학입시에 목을 매는 학교들처럼 애먼 아이들 붙들지 않는 책방이다. 책을 읽을 사람은 스스로 책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책을 아로새길 사람은 스스로 책장을 넘긴다. 책 한 줄에서 삶을 헤아릴 사람은 스스로 꿈을 키운다. 책밥 즐거이 먹은 사람은 스스로 사랑을 길어올려 이웃과 나눈다.
해 떨어진 저녁, 조용한 골목에 등불 하나 켠 책방이 환하다. 하루일 마친 어른도, 하루놀이 끝내는 아이도, 맑은 이야기밥을 책방마실 하면서 얻는다. 4346.7.1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