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en War Photographers: From Lee Miller to Anja Niedringhaus (Hardcover)
Anne-marie Beckmann / Prestel Publishing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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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빛꽃 / 사진비평 2025.10.2.

사진책시렁 171


《Women War Photographers : From Lee Miller to Anja Niedringhaus》

 Anne-marie Beckmann·Felicity Korn 엮음

 Prestel Publishing

 2019.첫/2020.2벌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사랑이라면, 찰칵 담거나 안 담거나, 언제까지나 푸르게 빛나는 오늘 모습을 서로 마음에 담는다고 느껴요. 찰칵 찍지 않더라도 서로 함께 살아온 나날을 언제라도 고스란히 마음으로 떠올리는구나 싶습니다. 이와 달리 사랑을 잊은 채 찰칵찰칵 찍어대기만 한다면, 수두룩하게 찍거나 해마다 꾸준히 담더라도 마음에는 하나조차 안 남아서 못 떠올리는구나 싶습니다.


  아이를 아직 낳기 앞서, 또 곁님을 만나기 앞서, “나중에 내가 짝을 맺고 아이를 낳으면, 우리집 살림살이를 어떻게 찍거나 담아야 스스로 사랑으로 빛나면서 아름다울까?” 하고 한참 생각하고 곱씹고 헤아려 보았습니다.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거나 지내거나 어울리면서 ‘어버이 여든, 아이 예순’이라는 나이에 이르도록 해마다 같은 곳에서 얼굴빛을 담은 일본사람과 하늬사람을 보았는데, 어쩐지 영 제 마음에는 안 와닿았습니다. 두 사람(사진가)은 ‘사진기록’은 했구나 싶되, ‘늙어가는 주름살’을 담았을 뿐, ‘어버이와 아이로서 어울린 사랑’은 못 담았더군요.


  우리는 해마다 손을 찍을 수 있습니다. 발바닥을 찍을 수 있습니다. 뒷모습이나 옆모습을 찍을 수 있습니다. 손글씨를 찍거나 밥자리를 찍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늘 다르면서 새롭게 찍을 수 있습니다. 아기를 갓 나을 무렵에는 어버이가 차리고 젖을 물리는 모습을 담을 만하고, 아이가 자라는 동안 손수 수저를 쥔 모습을 담을 만하고, 아이가 무럭무럭 크면서 부엌일을 거들고 손수 밥을 차리는 나날을 담을 만합니다. 우리는 “담에 몸을 붙이고 얼굴만 새기”는 ‘죄수 사진기록’을 굳이 남겨야 하지 않습니다. 싱그럽게 살아숨쉬는 길을 스스로 누리고 나누고 노래하면서 문득 담으면 넉넉합니다.


  글감을 잘 뽑거나 골라야 글이 빛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담아내야지요. 이야기에 삶·살림·사랑을 숲빛으로 풀어내고 품어야지요. 오늘을 살아가고, 어제를 살아냈고, 모레를 그리는 나날을 적어야지요. 삶만 적는대서 글이지 않습니다. 살림만 보여준대서 글이지 않습니다. 삶과 살림이 사랑으로 어울리면서 시나브로 푸른숲과 푸른들과 파란하늘과 파란바다를 고루 담는 숨결이 흐르기에 글이 빛나고 그림이 빛납니다.


  그림감을 잘 뽑거나 빛감(사진소재)을 잘 골라야 그림이나 빛이 아름답지 않아요. 무엇을 어떻게 쓰거나 그리거나 찍어야 한다는 틀(방법·표현법)은 아예 없습니다. 글길(문장작법)조차 아예 없습니다. 글을 쓰면서 맞춤길과 띄어쓰기를 따박따박 맞춰야 하지 않습니다. 찰칵찰칵 찍으면서 안 흔들려야 하거나 결(색조·콘트라스트)을 꼭 맞춰야 하지 않습니다. 다 다른 사람이기에 다 다르게 쓰고 그리고 찍는 동안 다 다르게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다만, 다 다른 나와 너와 우리로서, 다 다른 오늘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흐를 적에만 비로소 아름답습니다.


  그저 오늘 이곳에서 사랑으로 노래한 눈물과 웃음을 고스란히 쓰거나 그리거나 찍어 보기를 바라요. 눈물웃음이 나란하게 피어나는 꽃을 느껴서 담아내기에 ‘글(문학)’이고 ‘그림(문화)’이고 ‘빛(예술)’입니다. 시늉은 시늉입니다. 흉내는 흉내입니다. 척과 체는 척과 체입니다. ‘사진시늉’과 ‘예술흉내’란 그저 덧없습니다. ‘사진인 척’할 까닭이 없습니다. ‘예술가인 체’한다면 그야말로 안쓰럽습니다.


  이렇게 써야 노래(시)가 되지 않습니다. 저렇게 써야 글(소설)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노래요 글이라는 길은, 내가 나로서 나를 사랑으로 바라보고 품는 하루를 스스로 배우면서 너랑 나누는 눈빛을 담아내는 살림자락입니다. 어느 누구도 글쓰기나 그림그리기나 사진찍기를 못 가르치고 못 배웁니다. 누구나 스스로 이 삶에서 묻어나는 하루를 저희 손끝으로 가꾸고 달라면서 꽃피울 뿐입니다.


  《Women War Photographers : From Lee Miller to Anja Niedringhaus》 같은 책이 있습니다. 빛돌이(남성 사진작가)가 아닌 빛순이(여성 사진작가)는 무엇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그런데 이 책을 가만히 펴면, 빛순이라서 빛돌이가 못 보거나 못 담은 모습을 알아보거나 지켜보거나 살펴보거나 들여다보면서 담아내지 않습니다. 싸움짓이 얼마나 바보짓인지 알아보는 사람이라면, 빛순이나 빛돌이 누가 다가가서 찍어도 ‘나란’합니다. 싸움짓이 얼뜨기짓인 줄 못 알아본다면, 빛돌이 아닌 빛순이가 찰칵찰칵 찍어도 겉치레로 그칩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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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10-02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몇몇 상영관에서 <리 밀러 : 카메라를 든 여자> 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어요. 2025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만들었더군요.

파란놀 2025-10-02 19:35   좋아요 0 | URL
와. 영화가 나왔군요!
저는 이 영화를 파일로 내놓을 때까지 기다려야겠군요.
네이버영화에서 영화파일이 나오려는지, 안 나오려는지,
아직은 먼 듯싶군요.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시골에서는 극장에 갈 수 없지만,
기다리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날이 있으리라고 느껴요.

파란놀 2025-10-02 19:41   좋아요 0 | URL
아, 설마 싶어서 찾아보니
이 영화를 누리집에서 볼 수도 있군요.
비록 프랑스말에 프랑스글로만 나오지만...
ㅠㅜ

https://www.youtube.com/watch?v=30Qd2uURZFQ

고맙게 누리겠습니다.
 
Dear Mom 엄마, 고마워요 블루 데이 북 The Blue Day Book 시리즈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 지음, 신현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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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빛꽃 / 사진비평 2025.10.2.

사진책시렁 169


《Dear Mom》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

 신현림 옮김

 바다출판사

 2001.12.5.



  한때 구름처럼 팔리다가 잊히는 책이 수두룩합니다. 책은 바람(유행)이 아닙니다만, 온나라는 으레 바람타기를 좋아하더군요. 이 바람에 휩쓸려 어느 책과 보임꽃(영화)이 우루루 기울고, 저 바람에 휘말려 다른 줄거리에 와르르 쏠립니다. 한가을로 접어든 열쨋달 첫날에 우리집 마당에 살며시 내려앉은 반딧불이가 어느새 부엌으로 들어왔더군요. 어디에 틈이 있어서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마루에서 마당으로 드나드는 길에 슬쩍 묻어서 들어올 만합니다. 반딧불이는 들숲이 아닌 사람집에 깃들어 무엇을 보았을까요? 큰아이가 살살 잡아서 마당으로 내보냈는데, 작은풀벌레는 어떤 밤을 보낸 셈일까요? 《Dear Mom》이 갓 나온 2001년 무렵을 돌아봅니다. 우리나라 책숲(도서관)은 아직도 빛책(사진책)을 거의·아예 안 들이기 일쑤이지만, 이 책은 용케 책숲에 깃들었고 꽤 읽혔습니다. 나쁘다고 할 책은 아니지만, 빛꽃(사진)이라면 꼭 ‘재미나거나 우스꽝스럽거나 남다르게 비틀거나 꾸며서 찍어야 하는’ 줄 잘못 알리고 퍼뜨린 책 가운데 하나로 삼을 만합니다. 더구나 한글판이 왜 “엄마한테”나 “엄마야”가 아닌 “Dear Mom”이어야 했을까요? 빛으로 담는 그림이란, 그저 빛이란 뜻입니다. 반딧불이마냥 밤을 밝힐 만한 빛이기에 찰칵 하고 담는 오늘 하루입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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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자와 셔터 걸
키리키 켄이치 지음, 우서윤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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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빛꽃 / 사진비평 2025.10.2.

사진책시렁 180


《카나자와 셔터 걸》

 키리키 켄이치

 우서윤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9.12.15.



  멀리 찾아가서 찍어야 훌륭하거나 대단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곳’이 멀 테지만, ‘그곳’에서 사는 사람은 ‘집’이고 ‘마을’입니다. 숱한 사람은 ‘먼길(출사)’을 가야 제대로 멋있게 찍어서 빛난다(예술)고 여기는데, 참말로 빛나게 담는 ‘빛꽃’을 이루자면 “오늘 내가 살아가는 집과 마을과 이웃”을 찰칵찰칵 담을 노릇입니다. 《카나자와 셔터 걸》은 일본에서 카나자와라는 어느 고을에서 나고자란 아이가 그저 ‘카나자와 한켠과 골목과 마을’을 찰칵찰칵 담으면서 ‘빛길’을 걷고 싶은 꿈을 조촐히 키우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이러면서 ‘멋’을 찾고 담는 여러 또래를 보여주고, ‘그리운 엄마’를 찾아서 독일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젊은이를 보여줍니다. 누구나 스스로 좋아하는 대로 찍을 수 있되, 좋아하는 대로 찍으면 좁다른 틀에 갇힙니다. 저마다 바라보는 대로 찍을 만하되, 바라보기만 하면 다가서지 못 하고 스미지 않습니다. 손에 쥔 조그마한 쇠로 담을 모습이란 언제나 ‘나·너·우리·집·마을·둘레’부터입니다. 내가 나부터 담는 눈일 적에 둘레를 알아채요. 내가 나를 담고 너를 마주할 적에 우리가 있는 집과 마을을 알아봅니다. 이윽고 “빛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묻고 풀어요. 멀리 가면 겉멋입니다.


ㅍㄹㄴ


‘오래된 민가를 개축한 정취 있는 고서점 〈오요요쇼린〉. 요 며칠 시간이 나면 들르고 있다. 그곳엔 지금까지 몰랐던 일본 사진가의 사진집이 많이 있다.’ (48쪽)


“밤하늘이 예뻐. 분명 아빠는 이 사진을 찍고 싶었던 걸 거야.” (78쪽)


“사진은 잔혹해. 마음과는 다르게, 엄마의 생기 넘치고 아름다운 모습을 비추잖아.” (104쪽)


“전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카나자와 거리 스냅사진을 찍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실감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표현하고 싶은 것도 찾지 못하고 그저 의미 없이 셔터를 누르는 그게 진짜 사진일까요?” (124쪽)


“별 뜻 없이 찍은 사진이 어떤 사람에게는 일생을 좌우하는 커다란 계기가 되는 힘을 갖고 있어. 그 사진을 본 이후로 우연이 아니라 사진가가 될 수 있게 노력해서 사진가가 된 거야.” (129쪽)


‘힘든 순간, 도망치고 싶어지는 순간, 지루한 순간, 벽에 부딪치는 순간, 틀림없이 네 곁에는 카메라가 있을 거야. 어떤 일이 일어나도 분명 괜찮을 거야. 셔터를 누르고 사진을 찍자.’ (167쪽)


#桐木憲一 #金澤シャッタ-ガ-ル


+


《카나자와 셔터 걸》(키리키 켄이치/우서윤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9)


이번 달부터 은어 낚시가 해금됐거든

→ 이달부터 은고기 낚시가 풀렸거든

23쪽


“루어낚시로 은어를 낚는걸세.” “오오, 드라이피싱이네요.”

→ “제물낚시로 은고기를 낚네.” “오오, 미끼낚시네요.”

→ “허방낚시로 은고기를 낚네.” “오오, 미끼낚시네요.”

23


오래된 민가를 개축한 정취 있는 고서점

→ 오래집을 고쳐서 고즈넉한 옛책집

→ 오랜 살림집을 바꾼 그윽한 헌책집

48쪽


평범한 저는 장래에 사진의 길을 선택하는 건 무리일지도 몰라요

→ 저는 수수해서 앞으로 빛길을 고르기는 어려울지도 몰라요

→ 저는 그저 그래서 나중에 빛꽃길을 가기는 힘들지도 몰라요

124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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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2025.10.2. 운동권 아닌 작은이



  ‘대학교’에 들어가서 ‘학생운동’을 한 탓에 억지로 싸움터(군대)에 끌려간 사람도 제법 있지만, 모든 ‘운동권 대학생’이 끌려가지는 않았다. 나는 1995년 4월에 수원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고서 11월에 싸움터에 끌려가듯 들어갔는데, 대학교를 그만두려고(자퇴) 하니 한 달 만에 데려가더라. 그무렵 1995년에 신체검사를 받을 때에도, 1995년 11월에 훈련소에 들어간 때에도, 훈련소를 마치고서 ‘자대배치’를 받는 기나긴 길에도, 위(상관)는 우리(훈련병)더러 “너희 집안이나 친인척 빽”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국회의원이나 고위공무원이 있으면 꼭 말해야 한다고 하더라.


  수원병무청 신체검사를 받을 적에는 국가대표 여자농구선수인 어느 분 동생이 옆에 있었는데, 나더러 “넌 면제받을 눈과 코가 있는데 왜 면제를 안 받니? 면제받는 법을 알려줄까?” 하면서 차근차근 알려주기까지 했다. 그때 신체검사를 하던 의무관 여럿도 내 눈과 코를 보더니 ‘넌 왜 진단서를 안 떼오’느냐면서 ‘진단서를 떼오면 면제인데, 집에 전화해서 어머니한테 진단서 떼는 비용 25만 원을 보내라’고 하라고, 신체검사 그 자리에서 얘기했다. 공중전화 있는 곳을 문득 보았는데, 줄줄이 서서 누구한테 전화하는 사람이 많더라.


  1995년에 나는 새뜸나름이(신문배달부)로 일하며 한 달에 16만 원 일삯을 받는 터라 25만 원이라는 돈은 무척 컸다. 그래서 무슨 뜬금없이 목돈을 내라 하는지 알 길도 없고, 면제대상이면 면제를 매기면 될 텐데, 왜 집에 전화해서 어머니더러 수원병무청 의무관 앞으로 25만 원을 보내야 하는지 알 턱도 없어서 전화도 안 하고 의무관이 들려준 말도 흘려넘겼다. 이리하여 그냥 군대에 척 들어갔고, 강원도 양구 꽃등(최전방 철책)까지 갔다.


  적잖은 ‘운동권 대학생’이 틀림없이 군대에 억지로 끌려가서 이슬(의문사)로 눈물앓이를 해야 했지만, ‘빽있는 운동권 대학생’은 안 끌려갔다. ‘운동권 아닌 대학생’조차 이미 군부대에서는 ‘신상조사’를 해놓은 줄 군대에 들어가서 알았는데, ‘운동권 아닌 시위 단순참가자’조차 강원도 철책(지오피)으로 끌려온 줄 지켜보기도 했다. 또한 운동권도 대학생도 아니지만 이슬(의문사)로 떠난 사람이 수두룩하다. 2008년에 나온 《돌아오지 않는 내 아들》이 군의문사를 다룬 첫 책이다. 2009년에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종합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2025년에 《파괴된 청춘》이라는 책이 나온다. 숱한 사내가, 아니 돈없고 이름없고 힘없는 사내가 겪고 치르며 아파야 하던 멍을 다룬 책이다. 책겉에는 ‘강제징집이라는 국가폭력에 대한 최초고발’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그렇지만 어쩐지 쓸쓸하다. 이미 피눈물로 애쓴 사람들이 일군 책이 여럿 있는걸. 굳이 ‘첫목소리’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까? 무엇보다도 ‘운동권 대학생’만 이슬로 떠나야 하지 않았는데, 그저 수수하게 살던 숱한 젊은이가 이슬이 되어야 했는데, 이슬이 되지 않았어도 어마어마하게 두들겨맞고 시달리고 들볶이고 추레질(성폭력)로 다쳤는데, 너무 ‘운동권 대학생’한테만 눈길을 맞춘 듯싶다.


  그들(운동권 대학생)도 몸바쳤을 테지만, 그들이 아닌 ‘우리(수수한 순이와 돌이)’가 있다. ‘훈련병 가혹행위 여중대장 의문사’가 2024년에 벌어졌는데, 이런 일을 짚거나 따질 수 있을까? ‘여중대장’이 아닌 ‘남중대장’과 ‘남소대장’과 ‘남하사관’과 ‘남장교’ 들이 저지르는 끔찍한 짓은 아직도 고스란하다. 우리는 어제와 오늘과 앞날을 나란히 놓고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언제쯤 온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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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보존식품



 보존식품을 철저히 준비했다 → 동고리를 살뜰히 챙겼다

 매일 보존식품만 먹었다 → 늘 건사밥만 먹었다 / 내내 오래밥만 먹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는 보존식품으로 → 뜻밖일을 헤아리는 살림밥으로


보존식품(保存食品) : [식품] 오래 보존할 수 있도록 알맞게 가공한 식품



  오래도록 두는 밥이 있습니다. 나중을 헤아려서 건사하는 밥입니다. 이때에는 ‘오래밥·건사밥·나중밥’이라 하면 됩니다. ‘곁거리·곁감·곁밥’이라 할 만합니다. ‘덧·덧거리·덧감·덧밥·덤밥’이라 할 수 있어요. ‘도시락·동고리’라 해도 어울립니다. ‘살림밥·든든밥’이나 ‘하루밥’이라 할 만하고요. ㅍㄹㄴ



보존식품 주제에

→ 건사밥 주제에

→ 덧밥 주제에

→ 나중밥 주제에

《후다닥 한끼》(오카야 이즈미/한나리 옮김, 대원씨아이, 201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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