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을 가르치는 어린이

 


  큰아이는 작은아이를 제 놀이동무로 삼는다. 작은아이가 차츰차츰 자라는 결에 맞추어 함께 놀 만한 무언가를 자꾸 가르친다. 가만히 보면, 가르친다기보다 큰아이 스스로 이렇게 놀고 저렇게 놀 뿐이요, 작은아이는 누나 곁에 찰싹 붙이서 이렇게 따라하고 저렇게 따라한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서로서로 모든 모습 지켜보면서 배우고, 아이들은 둘레 어른들 삶을 살펴보면서 배운다. 4346.7.23.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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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 10. 작은 집, 작은 아이
― 생각을 키워 빛내는 말

 


  여섯 살 큰아이 긴치마를 한 벌 사려고 읍내로 마실을 갑니다. 어여쁜 옷과 신을 알뜰히 갖춘 옷집으로 갑니다. 큰아이는 알록달록 빛나는 옷보다 하얀 바탕에 꽃무늬 깃든 긴치마를 좋아합니다. 한 벌 골라서 장만합니다. 옷집 일꾼은 비닐가방에 옷을 담아서 줍니다. 비닐가방에는 ‘little house’라는 이름이 적힙니다.


  어른 옷을 파는 곳이든 아이 옷을 파는 곳이든, 한국말로 이름을 지어서 붙인 데가 매우 드뭅니다. 으레 영어로 이름을 짓고, 아예 알파벳으로 이름을 적습니다. 더 돌아보면, 양말 만드는 회사도, 신발 만드는 회사도 거의 영어 이름이요 알파벳 이름입니다. 한국말로 이름을 지어 한글로 이름을 적는 데가 퍽 드물어요.


  새 긴치마를 얻어 빙글빙글 웃는 큰아이가 손에 쥔 ‘little house’라는 이름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한국말로는 “작은 집”입니다. 옷 만드는 회사에서는 “작은 집”처럼 수수하고 쉽게 이름을 붙일 수 있었어요. “작은 마을”이라든지 “작은 아이”라든지 “작은 마음”이라든지 “작은 사랑”이라든지 “작은 누리”라든지 “작은 햇살”이라든지 “작은 나무”와 같은 이름도 좋아요. 이렇게 한국말로 수수하게 이름을 지어서 붙인 자그마한 회사가 틀림없이 몇 군데 있으리라 생각해요. 이를테면, “작은 빵집”이나 “작은 밥집”이나 “작은 신집”이나 “작은 (구멍)가게”라는 이름 쓰는 데가 한 군데쯤은 있지 않을까요.


  천종호 님이 쓴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우리학교,2013)라는 책 281쪽을 보면 “철수가 이곳에서 쉼과 회복을 얻고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시간들이 되기를”과 같은 글월이 나와요. 글쓴이는 “쉼과 회복(回復)”을 말하는데, 요즈음 떠도는 말로 하자면 ‘힐링(healing)’이겠지요. ‘힐링’이란 “마음 치유(治癒)”를 뜻해요. ‘치유’는 다시 “치료(治療)”를 뜻하고, ‘치료’는 “아픈 데를 낫게 함”을 뜻해요. 처음부터 영어만 쓴다면 그냥 ‘힐링’일 텐데, 이 영어를 쓰기 앞서 ‘치료’나 ‘치유’라는 한자말이 여러모로 쓰였어요. 그리고 이 한자말을 쓰기 앞서는 “아픈 마음을 낫게 하는 일”이란 ‘쉼/쉬기’였으니 ‘쉰다’고 했고, ‘마음씻기’나 ‘마음씻이’ 같은 말을 썼어요.


  예부터 한겨레는 ‘씻김굿’을 했고 ‘호미씻이’나 ‘책씻이’를 했습니다. 이 같은 삶을 헤아리면 ‘마음씻이’뿐 아니라 ‘넋씻이’라든지 ‘아픔씻이’ 같은 새 낱말 얻을 수 있어요. ‘상처씻이’나 ‘생채기씻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슬픔씻이’나 ‘눈물씻이’를 떠올릴 만하고, ‘몸씻이’도 떠올려 봅니다. 우리가 누리는 삶을 돌아보며 이러한 삶을 잘 드러낼 낱말을 떠올립니다. 아플 때에는 어떻게 아픈가를 헤아리면서, 이 아픔을 어떻게 가시도록 하는가를 살핍니다. 곰곰이 헤아리고 찬찬히 살피면서 가장 알맞으며 따사로운 낱말을 떠올립니다.


  김영희 님이 쓴 《엄마를 졸업하다》(샘터,2012)라는 책을 봅니다. 236쪽에서 “책이 없을 때는 읽었던 것을 읽고 또 읽으며 되새김질 독서를 했다.” 같은 글월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재독(再讀)’이나 ‘삼독(三讀)’처럼 말하는 분도 있으나, 손쉽게 “또 읽다”라 말하면 돼요. “다시 읽다”나 “거듭 읽다”라 말해도 되고, “되새김질 읽기”라 말해도 되지요. 빨래를 하거나 도자기를 구울 적에 ‘애벌’과 ‘두벌’이라고 말해요. 책읽기에서도 이 낱말을 받아들여 ‘애벌읽기’와 ‘두벌읽기’와 ‘세벌읽기’처럼 쓸 수 있습니다. 한글 자판에 두벌식과 세벌식 있잖아요. 생각을 더 이으면 ‘애벌찾기·두벌찾기’, ‘애벌듣기·두벌듣기’, ‘애벌사랑·두벌사랑’, ‘애벌밥·두벌밥’, ‘애벌놀이·두벌놀이’처럼 차츰차츰 쓰임새를 넓힐 만합니다.


  어느 말이든 스스로 쓰면서 익숙해요. 즐겁게 쓰는 말이 즐겁게 녹아들어요. 사랑스럽게 듣고 쓰는 말은 사랑스럽게 젖어듭니다. 기쁘게 나누는 말은 기쁘게 다가오지요.


  생각을 키울 때에 빛나는 말입니다. 생각을 키우면서 빛내는 말입니다. 어린나무 한 그루를 심어 꾸준히 돌보면 우람하게 자라 좋은 그늘을 드리우고 예쁜 꽃을 피우며 맛난 열매 베풀어요. 작은 씨앗 한 톨을 심어 천천히 아끼면 곧 싹이 트고 줄기가 오르며 고운 빛 베풀어요. 나무를 심듯 생각을 키워 말을 빛냅니다. 씨앗을 심듯 생각을 북돋아 말을 가꾸어요.


  아이들 옷 만드는 회사를 비롯해서, 아이들 책 만드는 회사에서는 “작은 집”이나 “작은 사랑” 같은 이름 아리땁게 쓸 만합니다. “큰 집”이나 “큰 사랑” 같은 이름을 써도 아름답습니다. “작은 아이 큰 마음”이라든지 “작은 사랑 큰 웃음” 같은 이름을 써 볼 수 있어요. 이름을 띄어서 적을 수 있고, 이름을 붙여서 “큰마음 작은아이”라든지 “큰사랑 작은꿈”처럼 적을 수 있어요. 즐겁게 부를 이름을 즐겁게 지을 때에 빛나고, 기쁘게 나눌 이름을 기쁘게 붙일 때에 환합니다. 조그마한 이름 하나에도 우주가 깃든다고 할 테니, 이름 몇 글자는 무척 값있고 뜻있어요.


  그러고 보면, 예부터 한겨레는 냇물이 작으면 ‘작은내’라 했고, 냇물이 크면 ‘큰내’라 했어요. 골짜기나 멧골이 깊거나 크면 ‘큰골’이라 했고, 작다 싶으면 ‘작은골’이라 했습니다. 또 ‘고을’을 줄여 ‘골’이라고도 하고, ‘마을’을 줄여 ‘말’이라고도 했기에, ‘큰골’과 ‘큰말’ 같은 땅이름도 있습니다. ‘한터’나 ‘한밭’이나 ‘한벌’ 같은 땅이름에서 ‘한’도 ‘크다’를 뜻해요.


  우리 집 작은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작은 아이들은 작은 손을 놀려 작은 연필을 쥐고는 작은 공책에 작은 글씨로 작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적습니다. 작은 아이는 작은 눈망울로 작은 사랑을 밝힙니다. 어른과 어린이가 나란히 서면 어린이 키는 작아요. 크기가 작으니 작다고 합니다만, 둘은 똑같은 숨결이요 삶입니다. 어른 둘이 나란히 설 적에 키가 작은 사람 있을 텐데, 둘 모두 똑같이 아름다운 목숨이며 사랑이에요. 땅덩이 큰 나라이든 작은 나라이든 모두 아름다운 삶터예요. 굳이 ‘작은숲’이나 ‘작은누리’처럼 이름을 붙인다면, 스스로 다소곳하게 서며 이웃을 살며시 높이는 한결 깊은 넋과 사랑을 보여주는 셈이 되리라 느껴요. 4346.7.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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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혁명 1
막스 갈로 지음, 박상준 옮김 / 민음사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63

 


목아지 따는 전쟁은 혁명이 아니다
― 프랑스 대혁명 1
 막스 갈로 글,박상준 옮김
 민음사 펴냄,2013.6.28./18000원

 


  사람들이 으레 ‘프랑스 대혁명’이라고 일컫는 역사를 다시 엮어서 새롭게 보여주는 《프랑스 대혁명》(민음사,2013) 1권을 읽습니다. 1700년대 끝무렵 이야기인데,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날 이야기를 마치 오늘날 이야기처럼 들려줍니다. 프랑스는 참 놀라운 나라로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이 나라에서 1800년대 끝무렵 농사꾼들 동학 이야기라든지, 1980년대 전남 광주 사람들 이야기를 이처럼 들려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이 나라에는 어떤 자료와 기록이 있어 우리들 살아온 모습을 우리 뒷사람한테 조곤조곤 들려줄 만한지 궁금합니다.


.. “국가 만세!” “공화국 만세!” “평등 만세!” “자유 만세!” 파랑돌 춤을 추는 무리가 사형 집행대를 둘러쌌다. 몇몇 남녀가 이전의 프랑스 왕, 루이 카페의 피로 손수건이나 편지 봉투 따위를 적시려고 기요틴에 다가왔다. 그들은 붉은 승리의 기념물들을 흔들어댔다 … 왕비는 왕에게 이 ‘반란’을 끝내라고 고집했다. 루이는 거기에 동의했다. 자신이 상속받은 왕조가 몰락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 이들은 7월 28일 일흔네 살 먹은 풀롱 드 두에를 붙잡았다. 농민들은 비리 성의 석빙고 안에 숨어 있던 그를 내몰았다. 그의 머리 위에는 건초 한 더미를 놓고, 목에는 엉겅퀴 목걸이를 걸고 입에는 풀을 가득 넣었다. 빵이 없으면 건초를 먹으면 된다고 그가 말하지 않았던가..  (16, 163, 208쪽)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인 《프랑스 대혁명》입니다. 막상 이 이야기책에는 ‘혁명’이나 ‘큰 혁명’에 걸맞다 싶은 모습은 거의 안 나타납니다. 《프랑스 대혁명》에 나오는 ‘프랑스 대혁명’에 나오는 모습은 하나같이 죽음과 죽임입니다. 슬프게 죽는 사람들 모습과 괴롭게 죽이는 사람들 모습이 나옵니다. 힘있는 이는 힘없는 이를 죽입니다. 힘있는 이한테 짓밟혀 죽기만 하던 이들이 창과 칼을 들고 일어서면서 그동안 저희를 괴롭힌 힘있는 이를 사로잡아 죽입니다.


  죽음과 죽음이 되풀이됩니다. 죽임은 죽임을 낳습니다. 아름다운 삶이나 즐거운 삶을 노래하는 혁명이나 큰 혁명은 안 보입니다. 힘있는 이들이 겉발림으로 내세우는 ‘혁명’이 있고, 힘없는 이들이 창과 칼을 들고 일어선 ‘앙갚음’이 있습니다.


  백성들이 죽어야 혁명이 일어날까요. 애꿎게 죽은 백성들이 똘똘 뭉쳐서 권력자를 끌어내려 죽이면 혁명이 이루어질까요.


  이제 1961년 5월 16일 일을 가리켜 ‘혁명’이라 일컫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절대권력 누리려 하던 이들은 아주 오랫동안 1961년 5월 16일 일을 가리켜 ‘군사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지난날 독재를 새로운 독재로 바꾸었을 뿐이지만, 독재자는 스스로 ‘독재’라는 이름을 안 씁니다. ‘혁명’이라는 이름을 썼어요.


  그러고 보면, 오늘날 절대권력 누리는 이들은 ‘독재’나 ‘불평등’이나 ‘반민주’로 나아가면서 막상 겉으로는 ‘민주’라는 이름을 내겁니다. 조금도 ‘민주’스럽지 않은 권력자들이 스스로 민주라는 이름을 써요.


  ‘교육’이라는 이름도, ‘문화’라는 이름도, ‘경제’라는 이름도, 저마다 허울로는 퍽 곱상하게 붙이지만, 제대로 교육을 하거나 문화를 하거나 경제를 한다고는 느끼기 어렵습니다. 교육이 아니라 입시지옥이기 일쑤이고, 문화가 아니라 자본주의이기 마련이며, 경제가 아니라 독점재벌이곤 합니다.


.. 사람들은 굶주려 죽어 가고, 세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수탈하며 고혈을 짜내고 있었으나, 귀족들과 사제들은 손댈 수 없는 존재들 같았다. 그들은 더더욱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자신들을 위한 세금을 올리고, 심지어 모든 것을 독차지하려고 할 만큼 탐욕스러웠다. 기마 사냥을 하면서 여문 이삭들을 뭉개 놓으면서도, 농부들에게 밀렵 혐의를 씌워 그들을 법정으로, 때때로는 심지어 사형대에까지 끌고 갔다 … 마리 앙투아네트 ‘진영’이 있었다. 이들 진영은 왕궁 지출의 여하한 감축도 거부했다. 그들이 보기에 왕가는 특권층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왕가 자체가 특권층의 표현이기 때문이었다 ..  (28, 38쪽)


  권력을 손에 쥐려 하는 이들은 이녁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짓지 않습니다. 권력과 가까이하려는 이들도 이녁 손과 몸과 발을 움직여 삶을 지으려 하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권력자는 스스로 땅을 일구지 않고, 스스로 바느질을 하지 않으며, 스스로 밥을 짓지 않아요. 텃밭을 일구는 대통령이 있던가요. 텃밭을 돌보는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있는가요. 모두들 책상맡에서 서류를 만지작거립니다. 저마다 권력자 앞에서 계획을 세우고 행정을 꾸린다고 합니다.


  정치나 문화나 교육이나 경제나 무엇무엇 하는 이들 가운데, 또 과학이나 철학이나 문학이나 무엇무엇 하는 이들 가운데, 이녁 보금자리에서 아이들 돌보거나 가르치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집 바깥에서 정치를 하거나 문화를 하거나 과학을 하거나 철학을 하느라 바빠, 아이들 돌보는 몫은 ‘집식구’한테 도맡기거나 보육시설에 맡깁니다. 저마다 스스로 ‘전문가’ 되어 정치 전문가나 경제 전문가나 언론 전문가 되지만, 정작 집에서 아이들한테 삶을 물려주거나 보여주거나 가르치는 일이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교육 전문가’ 손에서 자랍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교육 전문가’들이 몰아넣는 ‘입시지옥’에서 시달립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집짓기나 밥짓기나 옷짓기를 배우지 않아요. 오늘날 아이들은 사랑이나 꿈이나 삶을 배우지 않아요. 오늘날 아이들은 오직 대학입시와 전문지식만 달달 외워요.


  가만히 보면, 지난날 아이들도 이와 비슷해요. 시골에서 태어나 시골사람으로 살던 아이들이 아닌, 권력자 집안에서 태어나 다시금 권력자로 크는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사랑이나 꿈이나 삶을 물려받지 않아요. ‘새끼 권력자’가 되는 훈련을 받습니다.


.. 기아와 추위가 1783년부터 1785년까지 겨울 동안에 온 나라를 괴롭혔다. 소작료가 올랐다. 실질 통화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이었다. 빵값은 비쌌다. 집 없는 빈민들은 파리의 거리에 큰 불을 피웠고 그 곁에 모여서 서로에게 몸을 붙였다. 배고픔으로 인한 폭동이 여기저시거 터져 나왔다 … “반란이야.” 루이 16세가 둔탁한 목소리로 우물우물 말했다. “아닙니다, 전하. 혁명입니다.” … 죽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기에, 능욕하고, 약탈했다. 누가 감히 손이 피로 붉게 물든 무장한 남자들에게 맞서겠는가? 살인자들은 시계와 목걸이, 보석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빨리 해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귀고리가 달린 귓바퀴를 잡아 뜯었다 ..  (98, 190, 417쪽)


  프랑스 임금이나 조선 임금은 왜 스스로 ‘임금 자리’를 떠나지 못했을까요. 왜 이들은 권력다툼에 끝까지 사로잡혀 죽음길로 내달려야 했을까요. 어버이가 애써 권력을 물려주려 한다 하더라도 사랑과 꿈과 삶이 아닌 만큼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조용한 시골숲으로 깃들어 아름답게 살아갈 길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요. 씨앗을 심고 풀과 나무를 돌보며 하늘과 땅과 바람을 아끼는 길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요.


  이 나라 조선 임금들 가운데 숲바람 마시면서 들노래 부른 이는 한 사람이라도 있었을까요. 프랑스 임금들 가운데 손수 밀씨 심고 손수 밀포기 베며 손수 밀알 훑어서 손수 반죽을 하고는 손수 빵을 굽는 즐거움 누린 이는 한 사람이라도 있었을까요.


  궁궐을 짓고 군대를 두니 전쟁이 태어납니다. 궁궐을 안 짓고 군대를 안 두면 평화가 이어집니다. 궁궐을 짓고 군대를 두니 밥·옷·집 짓는 사랑과 꿈과 삶하고 멀어집니다. 궁궐도 군대도 모르는 채 흙을 만지고 햇살과 바람과 냇물을 누리면 언제나 밥·옷·집 가장 싱그럽게 일구면서 사랑이랑 꿈이랑 삶을 빛내는 길을 걸어갑니다.


  중국 옛말에 내 몸부터 바르게 다스리고 집안을 알뜰히 돌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나라를 슬기롭게 다스리며 평화를 부른다고 했어요. 대통령이 되거나 국회의원이 되거나 임금님이 되거나 황제가 되어야 올바른 정치를 펼치지 않아요. 모든 정치권력은 없애면 돼요. 신동엽 시인이 스칸디나비아 대통령을 노래하며 쓴 싯말에 나오는 대목처럼, ‘막걸리병 짐받이에 꽂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에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져요.


  대통령도 흙을 만져야지요. 임금님과 황제도 갓난쟁이 똥기저귀를 갈고 손빨래를 해야지요. 시장도 군수도 아이들 도시락을 싸야지요. 교사도 교수도 교과서나 교재는 집어치우고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읽어 주어야지요.


.. 하루가 저물 즈음, 신선한 산들바람을 느끼기 위해 루이가 창문에 다가가면, 절규하는 욕들이 솟구쳐 올랐다. ‘바보’, ‘돼지’, ‘배신자’, ‘비겁자’. 사람들은 루이의 피를 뽑겠다고, 그를 잘게 자르겠다고, 그의 심장을 뜯어 먹겠다고 위협했다 … 루이는 언젠가 백성이 자기를 죽이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 왕을 재판하는 것, 그에게 형을 언도하는 것, 그를 처형하는 것은 또한 왕이 그 현현이자 상징인 힘 있는 자들에 대해 공화국이 무자비하다는 것을 인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편리한 방법이었다. 왕을 죽인다면, 어떤 부농이, 어떤 주식 투기업자가, 어떤 징세 청부인이, 어떤 의원과 장관이 처벌로부터 안전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어떻게 빈곤과 싸워야 할지는 몰랐다. 그러나 왕을 재판하고 효수할 줄은 알았다 ..  (300, 360, 484쪽)


  총과 칼을 든 자리에 혁명은 없습니다. 낫과 쟁기를 든 자리에 혁명이 있습니다. 바보스러운 권력자 머리를 열 백 천 만 베어서 숨통 끊는대서 혁명을 이루지 않습니다. 씨앗을 심고 풀과 나무를 사랑할 때에 혁명을 이룹니다.


  군대를 늘릴 적에는 전쟁만 찾아오듯, 땅을 아끼고 사랑할 때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정치 행정과 경제 정책 이래저래 꾀한대서 나라살림 북돋우지 못해요. 컴퓨터에서 손을 떼어 텃밭에 한 발 디디면 나라살림 북돋웁니다.


  철학을 하지 말아요. 멧새 노래를 읽어요. 과학을 하지 말아요. 냇물 노래를 들어요. 문학을 하지 말아요. 풀벌레 이야기를 들어요. 교육을 하지 말아요. 아이들과 손을 잡고 들길을 걸어요. 정치나 경제를 할 까닭이 없어요. 하늘을 올려다보고 흙땅을 두 다리로 디디면서 바람을 마셔요. 혁명도 큰 혁명도 아닌 삶을 느끼고 사랑을 헤아리며 꿈을 돌아볼 수 있기를 빌어요. 4346.7.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삶을 밝히는 책, 인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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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얼마 앞서까지는 어디에서나 ‘도시락’을 누렸다. 이제 학교에서는 ‘급식’이 되어야 문화나 교육이 되는 듯 여긴다. 회사에서는 ‘식당’을 간다. 어머니 손길 담긴 도시락이건, 옆지기 손길 담은 도시락이건, 내 손길 담아내는 도시락이건, 도시락을 만날 길은 차츰 줄어든다. 나들이를 가더라도 김밥집이나 분식집이나 가게나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 파는 데에서 사면 그만이라고 여긴다. 영양소 먹는 밥이 아닌 사랑을 먹는 밥일 텐데, 사랑을 먹는 밥하고 자꾸 멀어진다면, 우리 삶은 어디로 나아가는 셈일까. 사랑을 짓는 밥을 누리지 못하면서 하는 일은 얼마나 즐겁거나 보람찰 만할까. 대통령도 의사도, 교사도 청소부도, 모두 이녁 손으로 정갈하게 도시락을 꾸려 하루를 누리는 길 걸어간다면 우리 살림살이와 마음과 이야기는 얼마나 한껏 달라질 수 있을까 꿈을 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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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의 시간- 도시락으로 만나는 가슴 따뜻한 인생 이야기
아베 나오미.아베 사토루 지음, 이은정 옮김 / 인디고(글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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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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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가’도 ‘직업’일까? 직업이라면 직업이 되리라 느낀다. 곰곰이 따지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도 이러한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환경운동가’라는 이름은 어딘가 걸맞지 않다고 느낀다. 이분들이 하는 일을 살피면 ‘환경운동’이라기보다 ‘환경지킴’이고, 지킴을 넘어 ‘환경보살피기’라고 느낀다. 그러면 ‘환경’이란 무엇일까? 생태와 자연을 환경이라 할는지 모르는데, 생태는 무엇이고 자연은 무엇일까? 바로 숲이겠지. 풀이 돋고 나무가 자라는 숲, 새가 살고 짐승이 사는 숲, 냇물이 흐르고 골짜기 있으며 멧자락 펼쳐지는 숲. 숲과 바다가 이어지고 숲과 하늘이 닿는다. 숲과 들이 만나고 숲과 마을이 어울린다. 그러니까 숲을 지킬 줄 알 때에 ‘숲지킴이’, 곧 ‘환경운동가’가 될 테고, 숲을 돌보며 사랑할 줄 알 때에 ‘숲돌봄이’, 곧 ‘시골사람’이 되리라. 아이들이 직업으로서 환경운동가로 될 수 있을 텐데, 이에 앞서 시골사람 되어 시골숲 아끼는 어른으로 자란다면 참으로 반갑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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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새야 함께 살자- 환경운동가
강문정 글, 이광익 그림 / 사계절 / 2013년 5월
13,800원 → 12,420원(10%할인) / 마일리지 69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6월 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3년 07월 2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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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싹 2013-07-23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환경지킴이가 되고파 눈길이 가네요.^^

숲노래 2013-07-23 05:54   좋아요 0 | URL
예쁜 환경지킴이 되어 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