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아이 299. 2015.9.2. 걷는 책순이



  책순이가 시골길을 걸으면서 책을 읽는다. 도서관하고 집 사이를 걸으면서 이 틈을 참지 못하고 책을 펼친다. 풀밭도 들판도 하늘도 바람도 바라보지 않고 책을 바라본다. 책순아, 책은 집에서 얼마든지 볼 텐데, 이 길을 걷는 동안에는 이 길을 한껏 누려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내가 어릴 적에 바로 이 책순이처럼 살았기 때문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아니, 내가 어릴 적에 우리 책순이처럼 길을 걸어가며 ‘둘레 다른 것’이 내 마음으로 스며들지 않아서 책을 들여다보며 걸어다니곤 했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적에도 시내 한복판을 걸으면서 책을 읽었고, 흔들리는 버스에서도, 늦은 밤에 자율학습 마치고 돌아가는 버스에서도, 학교에서 도시락을 먹을 적에도 언제나 책하고 함께 살았다. 그악스러운 입시지옥 굴레에서 볼 것이 없었다고 할 만하고, 도시 한복판에서도 눈을 둘 데가 없다고 할 만하지만, 도시에서도 곳곳에 골목꽃이 있고 손바닥만 하더라도 하늘이 있다. 우리 사는 시골에 있는 아름다운 것을 먼저 마음으로 느끼면서 책을 펼치자, 요 귀여운 아이야.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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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순이 18. 사진놀이 할래 (2015.9.2.)



  우리 집 사진돌이한테도 작은 사진기를 하나 주고 싶다. 사진돌이도 아버지처럼 사진을 찍고 싶지만, 작은 사진기는 누나 것이고, 어떻게 다루어야 할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도서관에는 작은아이 혼자 마음껏 갖고 놀 수 있는 세발이가 있다. 이 세발이도 사진순이가 어릴 적에 신나게 다루면서 사진놀이를 했다. 너희 둘이 이래저래 만져서 몇 가지 부품이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오물딱조물딱 마음껏 갖고 놀아라.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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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사고가 난 9월 2일 이야기를 이제서야 차분히 돌아보면서 적는다.

9월 2일 도서관일기를 오늘에서야 겨우 쓴다.

9월 17일 11시 50분에 라디오 방송이 나왔는데

내 목소리를 차마 내가 듣기는 어렵다.

방송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글을 쓰는 나는

내 글이 실린 책을 들여다보는 일이 처음에 무척 낯설고 힘들었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지만, 아니, 그래도 내 책을 내가 읽을 적에

두근두근 설레지만,

내 목소리를 다른 곳에 녹음된 소리로 듣는 일은

아주 낯설고 아득하다.


..


 라디오방송 취재 (사진책도서관 2015.9.2.)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구월 이일은 우리 아버지가 태어난 날이다. 우리 어머니가 태어난 날은 음력으로 한가위 다음주이다. 마흔 해 남짓 살며 아버지와 어머니 생일을 알뜰히 챙긴 일은 드물지만, 두 아이와 살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생일을 챙기고 싶어서 아이들을 이끌고 할아버지 할머니 댁을 찾아가곤 한다. 올해에도 구월 이일을 맞이해서 고흥에서 음성으로 마실을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날 문화방송 라디오에서 취재를 왔다. 텔레비전 아닌 라디오 방송이기에 취재가 오래 가지 않으리라 여겼고, 낮 열두 시가 되기 앞서 일을 마쳤다. 이제 우체국을 바삐 다녀오면 밤 늦게라도 음성에 닿도록 갈 수 있으리라 여겼다.


  방송국 일꾼이 돌아가고 나서 면소재지 우체국으로 가려고 아이들이랑 자전거를 달린다. 그런데 마을 어귀 논둑길에서 덩어리가 진 물이끼를 밟고 그만 미끄러졌다. 아주 크게 엎어졌다. 아이들은 하나도 안 다쳤지만 내가 크게 다쳤다. 논둑에 엎어지고 한동안 일어설 수 없었고, 살았나 죽었나 하고 가늠해 보니 살았기에 숨을 몰아쉬면서 겨우 일어서는데 오른다리에 힘이 잘 안 들어갔다. 피가 줄줄 흐른다는 얘기는 뒤에서 작은아이가 알려주었다. 일어설 힘이 안 되어 도로 주저앉은 뒤에 큰아이더러 흙탕이 된 옷을 갈아입으러 집으로 가면서 수건을 챙기고 어머니를 불러 달라고 얘기한다.


  한동안 논둑에 주저앉아서 숨을 그러모은 뒤에 새로 기운을 내어 일어선다. 마을 어귀 샘터로 절뚝절뚝 걸어가서 무릎에 박힌 시멘트 조각하고 모래를 물로 씻어낸다. 이렇게 한 뒤 곁님이 소독을 해 주고 약을 발라 준다. 자전거하고 우체국을 어찌하나 생각하다가 면소재지 약국에 들러서 약을 사 와야겠다 싶어 어떻게든 자전거를 달렸다. 그러나 면소재지 의원에도 약국에도 약이 제대로 없다. 갑갑한 노릇이다. 곁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읍내마실을 하면서 약을 사 왔기에 소독을 하고 생채기를 다스릴 수 있었다.


  저녁 늦게 음성으로 전화를 걸어 자전거 사고가 난 일을 말씀드린다. 다리가 다쳐 걷지 못하기에 찾아뵙지 못한다고 여쭌다. 이날 마침 출판사에서 교정지를 보내 왔다. 그러나 교정지를 볼 기운이 없다. 어지럽고 아프고 힘들어서 교정지조차 들여다보지 못하고 앓아눕는다.


  밤새 끙끙거리다가 하루 일을 조용히 돌아본다. 방송 취재를 안 받고 그냥 음성으로 갔다면? 여태 방송 취재를 몽땅 손사래쳤는데 이날은 왜 방송 취재를 받아들였을까? 텔레비전이 아닌 라디오라서 괜찮겠지 하고 여기면서 방송을 받아들였는데, 아무래도 바보스러운 생각이었을까? 우체국은 굳이 오늘 안 가고 다음에 가면 어떠했을까? 도서관 소식지를 띄워야 한다는 생각은 핑계가 아니었을까? 요즈음 이곳저곳에서 막바지 농약치기로 어지러운데, 자전거를 몰지 말고 군내버스 타고 읍내로 가서 읍내 우체국에 들러서 소식지를 보낸 다음 시외버스를 타고 음성으로 가려고 했다면 다칠 일은 없지 않았을까?


  아무튼, 나는 다쳤고, 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이제 할 일은 얼른 낫는 일 하나이다. 큰아이와 작은아이는 방송국 아저씨가 마이크를 주면서 한 마디 해 보라고 할 적에 아무 말을 못 했다. 그러나 취재가 끝나고 방송국 아저씨하고 마을 어귀 평상에서 함께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 풀벌레 노랫소리가 가득한 하루이다. 아무리 농약바람이 불어도 풀벌레는 꿋꿋하게 살아남는다. ㅅㄴㄹ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을 보태 주셔요 *

☞ 어떻게 지킴이가 되는가 : 1평 지킴이나 평생 지킴이 되기

 - 1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1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10만 원씩 돕는다

 - 2평 지킴이가 되려면 : 다달이 2만 원씩 돕거나, 해마다 20만 원씩 돕는다

 - 평생 지킴이가 되려면 : 한꺼번에 200만 원을 돕거나, 더 크게 돕는다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가 되신 분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0.5341.7125.) *


http://mini.imbc.com/v2/index.html?page=http://www.imbc.com/broad/radio/fm/humanradio/v2/js/jarvis.pagedata.js&channel=0&service=podcast&program=1002788100000100000&src=http://www.imbc.com/broad/radio/fm/humanradio/index.html&ref=http://mini.imbc.com/v2/index.html?src=http://mini.imbc.com/&ref=http://www.imbc.com/broad/radio/#http://www.imbc.com/broad/radio/fm/humanradio/v2/js/jarvis.pagedata.js?pid=2497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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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꽃방 2015-09-22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요. 많이 다치셨나봐요.
얼른 쾌차하셔서 좋은숲노래 들려주셔야죠.
힘내세요!!!

숲노래 2015-09-22 09:56   좋아요 0 | URL
어느새 스무 날이 되었고
이제 이럭저럭 걷기는 하지만
걸을 때마다 송곳이 무릎을 쿡쿡 찌른답니다 ^^

아이들 앞에서 아픈 척을 안 하고 싶지만
자리에 누울 적마다 앓는 소리가 나오고
아무튼...
이렇게 앓는 소리를 자꾸 글로 쓰네요.

아픔을 견디고 이기려 하면서
이렇게 글로 흘러나오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고맙습니다 ^^
 

요즘 시골 아이들



  요즘 시골 아이들 가운데 고무신을 꿰는 아이는 거의 아무도 없다. 그러나 시골에서 논일 밭일 들일을 하는 할매와 할배는 아직 고무신을 신는다. 때로는 맨발로 일한다. 흙밭을 돌아다니며 일할 적에는 고무신만 한 신이 없으니 다른 신을 발에 꿸 일이 없다. 그래서 밭일이나 논일을 하다가 경운기를 타고 면소재지나 읍내를 나가는 할매나 할배는 언제나 고무신 차림이다.


  깊은 두멧자락 할매나 할배도 읍내에 버스 타고 나갈 적에는 구두로 바꿔 신기 마련이다. 읍내마실을 하는 할매와 할배 가운데 그냥 고무신을 꿰는 분은 이제 매우 드물다. 나처럼 고무신을 늘 신는 사람도 없고 아이한테 고무신을 사 주는 어버이도 없다. 이런 시골 모습이다 보니, 시골 아이도 하나같이 읍내에서 ‘서울하고 똑같이 이름난 상표 붙은 값비싼 신’을 발에 꿴다.


  두 아이가 면소재지 놀이터를 노래하기에 주말이 아니면 굳이 면소재지 놀이터에 안 가지만, 어제 모처럼 월요일인데 가 보았다. 초등학교 아이 몇이 놀이터에 있다. 아무도 없기를 바랐지만 다른 아이들이 있는데, 이 아이들이 하는 말이 참 재미나다. 무엇이 재미난가 하면, “요즘 같은 시대에 고무신을 신냐?” 하고 우리 큰아이한테 큰소리로 묻는다. 큰아이는 아뭇소리를 못 한다. 면소재지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어른들이 으레 하는 말을 따라했을 뿐일 테지만,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면소재지 아이들 때문에 제대로 놀지 못한다. 이래서는 안 될 노릇이기에 큰소리로 두 아이를 부른다. 면소재지 아이들은 ‘어른’을 보면 꼼짝없이 아무 말을 못 하니까.


  시골에서 살며 늘 흙을 밟고, 거의 맨발로 놀기를 좋아하는 우리 집 아이들은 고무신을 무척 즐긴다. 고무신은 빨아서 말리기에도 좋고, 빨래터나 골짜기나 바닷가에서 신을 꿰고 찰방거리며 놀기에도 좋다. 값비싼 운동신이나 가죽신으로는 이렇게 물놀이를 못 하거나 안 하겠지.


  시골에서 사니까 고무신을 신지. 시골에서 살며 시골살이를 노래하니까 고무신을 발에 꿰지. 하기는. 요즈음 사람들 가운데 누가 시골에서 살겠다면서 시골로 오는가. ‘요즘 같은 시대’에 시골은 관광지일 뿐이겠지. 시골에서 사람이 사는 줄, 시골 읍내나 면소재지 아이와 어른조차도 모르겠지. 4348.9.22.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람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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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9.21.

 : 달리기 힘든 자전거



오른무릎을 크게 다친 지 열여섯새 만인 사흘 앞서 자전거를 다시 달렸는데, 사흘 앞서 자전거로 면소재지 우체국을 다녀온 이튿날 무척 오랫동안 끙끙 앓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아주 천천히 달렸어도 오른무릎은 그만 한 발판질조차 견디지 못한 셈이다. 사흘 앞서 자전거를 달린 뒤에 집에서 아이들한테 저녁을 겨우 차려 주고 나서 곧바로 자리에 드러누웠고 이튿날 한낮이 되어서야 비로소 절뚝절뚝 일어설 수 있었다.


오늘 자전거를 사흘 만에 달리면서 생각한다. 굳이 오늘 우체국에 가야 할까 하고. 그렇지만 아이들한테 가을바람을 쏘여 주고 싶은 마음이 훨씬 크다. 내 무릎은 무릎대로 얼른 낫도록 힘쓰면서, 아직 무릎이 성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가을바람을 쐬면서 들길을 달리면서 들내음을 누리도록 하고 싶다.


사흘 사이에 들빛은 더욱 노랗게 물든다. 앞으로 더욱더 샛노랗게 빛날 테지. 그야말로 천천히 발판을 구르면서 끙끙거린다. 아침하고 낮에 무릎에 파스를 뿌리기는 했으나 자전거를 끌고 나오면서 새로 뿌리지 않았다. 이리하여 면소재지로 가는 내내, 또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무릎이 쿡쿡 쑤시도록 아파서 눈물이 나왔다. 파스를 뿌리면 한동안 괜찮기는 하지만, 파스 기운이 떨어지면 그야말로 모질게 아프다.


우체국에 들르고, 면소재지에서 헌 건전지를 버린 뒤 초등학교 놀이터에 들른다. 해가 기울어지는 때라 놀이터에 오래 머물 수 없다. 아이들은 고작 이십 분 즈음 뛰논 뒤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면소재지 아이들은 그런 것을 모를 테지. 면소재지에 사는 아이들은 해가 저물어도 그저 슬슬 집으로 돌아가도 되지만, 면하고도 제법 떨어진 마을에서 사는 아이들은 해가 고개 너머로 지기 앞서 바지런히 돌아가야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돌콩을 본다. 저 돌콩을 훑어야 하는데 하고 사흘 앞서도 생각했지만 그날은 무릎이 너무 아파서 엄두를 못 냈다. 오늘도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마침 돌콩 열매가 잔뜩 맺힌 코앞에 비닐 하나가 구른다. 자전거를 돌려서 비닐 앞에 세우고는 큰아이하고 돌콩을 훑는다.


돌콩을 훑을 적에는 꼬투리를 단단히 움켜쥐어야 한다. 돌콩은 꼬투리를 가볍게 훑으면 그 자리에서 퍽 소리를 내면서 콩알이 모조리 튀어나간다. 그래서 돌콩은 꼬투리를 훑으면서 손아귀로 단단히 움켜쥐어야 한다. 여덟 살 시골순이는 여러 해째 돌콩을 훑은 손놀림이 몸에 남았는지 야무지게 잘 훑는다. 멋져! 대단해! 훌륭해! 둘이 함께 돌콩을 훑으면서 큰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웃는다.


작은아이는 수레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 잠든다. 많이 졸립지? 오늘 네가 낮잠을 안 잤는걸. 아까 낮잠을 잤다면 안 졸고 함께 돌콩을 훑었을 텐데. 아직 우리가 훑을 돌콩은 많으니까 다음에는 너도 함께 돌콩을 훑자.


집에 닿은 뒤 작은아이는 이부자리에 눕힌다. 이러고 나서 바로 오른무릎에 파스를 뿌린다. 평상에 걸터앉아서 숨을 몰아쉰다. 큰아이한테 저녁을 차려 주고 무릎을 고이 달랜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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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9-21 21:06   좋아요 0 | URL
많이 나아지신 것 같아 반갑습니다^^
벌써 가을 들녘이 느껴지는 사진입니다.
참 포근하고 따뜻해 보이며 기분 좋게하는 사진들입니다. ^^

숲노래 2015-09-22 03:07   좋아요 0 | URL
어서 털고 일어서야겠으나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다른 뒤끝 없이 말끔하게 낫도록
그야말로 천천히 달래고 다스려요.

하늘도 바람도 날도 모두 고운 요즈음이라
누구라도 이 들길에 서면
사진가가 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

해인삼매 2015-09-21 23:34   좋아요 0 | URL
달리고 싶습니다. 가슴 두근 거리는 길 입니다.

숲노래 2015-09-22 03:05   좋아요 0 | URL
요즈음은 그냥 걷기만 해도 아주 멋진 가을 들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