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9.21.

 : 달리기 힘든 자전거



오른무릎을 크게 다친 지 열여섯새 만인 사흘 앞서 자전거를 다시 달렸는데, 사흘 앞서 자전거로 면소재지 우체국을 다녀온 이튿날 무척 오랫동안 끙끙 앓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아주 천천히 달렸어도 오른무릎은 그만 한 발판질조차 견디지 못한 셈이다. 사흘 앞서 자전거를 달린 뒤에 집에서 아이들한테 저녁을 겨우 차려 주고 나서 곧바로 자리에 드러누웠고 이튿날 한낮이 되어서야 비로소 절뚝절뚝 일어설 수 있었다.


오늘 자전거를 사흘 만에 달리면서 생각한다. 굳이 오늘 우체국에 가야 할까 하고. 그렇지만 아이들한테 가을바람을 쏘여 주고 싶은 마음이 훨씬 크다. 내 무릎은 무릎대로 얼른 낫도록 힘쓰면서, 아직 무릎이 성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가을바람을 쐬면서 들길을 달리면서 들내음을 누리도록 하고 싶다.


사흘 사이에 들빛은 더욱 노랗게 물든다. 앞으로 더욱더 샛노랗게 빛날 테지. 그야말로 천천히 발판을 구르면서 끙끙거린다. 아침하고 낮에 무릎에 파스를 뿌리기는 했으나 자전거를 끌고 나오면서 새로 뿌리지 않았다. 이리하여 면소재지로 가는 내내, 또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무릎이 쿡쿡 쑤시도록 아파서 눈물이 나왔다. 파스를 뿌리면 한동안 괜찮기는 하지만, 파스 기운이 떨어지면 그야말로 모질게 아프다.


우체국에 들르고, 면소재지에서 헌 건전지를 버린 뒤 초등학교 놀이터에 들른다. 해가 기울어지는 때라 놀이터에 오래 머물 수 없다. 아이들은 고작 이십 분 즈음 뛰논 뒤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면소재지 아이들은 그런 것을 모를 테지. 면소재지에 사는 아이들은 해가 저물어도 그저 슬슬 집으로 돌아가도 되지만, 면하고도 제법 떨어진 마을에서 사는 아이들은 해가 고개 너머로 지기 앞서 바지런히 돌아가야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돌콩을 본다. 저 돌콩을 훑어야 하는데 하고 사흘 앞서도 생각했지만 그날은 무릎이 너무 아파서 엄두를 못 냈다. 오늘도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마침 돌콩 열매가 잔뜩 맺힌 코앞에 비닐 하나가 구른다. 자전거를 돌려서 비닐 앞에 세우고는 큰아이하고 돌콩을 훑는다.


돌콩을 훑을 적에는 꼬투리를 단단히 움켜쥐어야 한다. 돌콩은 꼬투리를 가볍게 훑으면 그 자리에서 퍽 소리를 내면서 콩알이 모조리 튀어나간다. 그래서 돌콩은 꼬투리를 훑으면서 손아귀로 단단히 움켜쥐어야 한다. 여덟 살 시골순이는 여러 해째 돌콩을 훑은 손놀림이 몸에 남았는지 야무지게 잘 훑는다. 멋져! 대단해! 훌륭해! 둘이 함께 돌콩을 훑으면서 큰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웃는다.


작은아이는 수레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가 잠든다. 많이 졸립지? 오늘 네가 낮잠을 안 잤는걸. 아까 낮잠을 잤다면 안 졸고 함께 돌콩을 훑었을 텐데. 아직 우리가 훑을 돌콩은 많으니까 다음에는 너도 함께 돌콩을 훑자.


집에 닿은 뒤 작은아이는 이부자리에 눕힌다. 이러고 나서 바로 오른무릎에 파스를 뿌린다. 평상에 걸터앉아서 숨을 몰아쉰다. 큰아이한테 저녁을 차려 주고 무릎을 고이 달랜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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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9-21 21:06   좋아요 0 | URL
많이 나아지신 것 같아 반갑습니다^^
벌써 가을 들녘이 느껴지는 사진입니다.
참 포근하고 따뜻해 보이며 기분 좋게하는 사진들입니다. ^^

숲노래 2015-09-22 03:07   좋아요 0 | URL
어서 털고 일어서야겠으나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다른 뒤끝 없이 말끔하게 낫도록
그야말로 천천히 달래고 다스려요.

하늘도 바람도 날도 모두 고운 요즈음이라
누구라도 이 들길에 서면
사진가가 되겠구나 하고 느낍니다 ^^

해인삼매 2015-09-21 23:34   좋아요 0 | URL
달리고 싶습니다. 가슴 두근 거리는 길 입니다.

숲노래 2015-09-22 03:05   좋아요 0 | URL
요즈음은 그냥 걷기만 해도 아주 멋진 가을 들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