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이 즐거워

 


  큰아이는 무엇이든 일손을 거들고 싶다. 큰아이로서는 놀이일 수 있지만 큰아이한테는 새롭게 땀을 흘리면서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요 며칠 부엌에서 “나도 칼로 썰 수 있는데. 저번에 달걀 썰었어. 얼굴도 안 다치고 손도 안 다쳤어.” 하고 말하면서, 저도 무를 썰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칼질을 하는데 왜 얼굴이 다칠까 궁금했지만, 그냥 아이 입에서 터져나온 말이겠지.


  짐을 들어서 나를 적에 큰아이는 저도 한몫 거들고 싶다. 두 손으로 영차영차 힘을 모아 나르고 싶다. 꽤 무거워도 씩씩하게 나른다. 오랫동안 먼길을 나르지 못하지만 다문 몇 걸음이라도 나르는 매무새가 고마우면서 반갑다. 이렇게 천천히 온몸과 손아귀에 힘을 붙이면서 자라겠지. 이렇게 몸을 쓰고 움직이면서 튼튼하게 크겠지. 4347.1.2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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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곁에 서면 작다

 


  아이들은 작다. 아이들은 참 작다. 키도 작고 몸도 작다. 얼굴도 작고 손과 발도 작다. 그런데, 여느 때에는 아이들이 작은 줄 으레 잊는다. 밥을 차리면서 수저를 밥상에 얹다가 ‘그래, 아이들은 작지.’ 하고 깨닫는다. 아이들한테 밥을 먹이면서 조그마한 입을 보며 ‘그래, 아이들은 작아.’ 하고 깨닫는다. 아이들 옷을 갈아입히고 빨래를 하면서 ‘그래, 아이들은 작은걸.’ 하고 깨닫는다. 졸리거나 힘들다는 아이를 안고 거닐면서 ‘그래, 아이들은 작잖아.’ 하고 깨닫는다. 그리고, 마당에 이불을 널어 해바라기를 시키는데, 이불 사이사이 오락가락하면서 머리를 디밀며 놀곤 하는 아이들을 보다가 ‘그래, 아이들은 작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얼마나 작은 아이들인가. 이렇게 작으면서 얼마나 곱게 빛나는 아이들인가. 이처럼 작은 숨결에서 예쁜 웃음은 얼마나 사랑스레 피어나는가. 사람이 만드는 문화와 문명이 끝없이 발돋움하더라도, 갓 태어난 아기가 자라는 빠르기는 도무지 발돋움하지 않는다. 예나 이제나 아기는 똑같이 아기이다.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을 살고,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도 열 몇 해를 천천히 큰다. 생명공학이나 유전자공학이 사람 목숨을 어떻게 헤집거나 건드릴는지 모르나, 사람한테 ‘아기’와 ‘어린이’란 얼마나 커다란 빛이요 꿈인가. 이 작은 사람들이 콩콩 뛰고 달리는 모습이란, 어른들한테 얼마나 고마운 빛살이요 꿈날개인가. 아이들이 천천히 자라는 뜻이 있다. 4347.1.2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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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한 마리

 


  읍내마실을 한다. 설에 가져갈 선물을 생각하다가 ‘고흥에서 쉽게 구경하지만 음성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것으로 하면 좋겠다고 느낀다. 읍내 저잣거리 한켠에서 할매들이 숯불에 물고기를 굽는다. 숯불구이 물고기라 할 텐데, 고흥에서는 제사상에 으레 올린다고 한다. 여느 때에는 얼렸다고 따뜻하게 덥히기만 하면 어느 때라도 먹을 수 있다고 하니, 며칠 얼린 뒤 잘 싸서 들고 가면 되리라. 음성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가져갈 몫을 빼고, 집에서 아이들 먹일 몫을 챙긴다. 밥상을 차리며 물고기를 올린다. 얼마만에 밥상에 ‘고기’가 올라왔는지 모르겠으나, 아이들이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다. 고기를 너무 안 주었나? 그렇지만 얘들아, 설이 되어 며칠 할머니 밥상을 받으면, 끼니마다 고기가 오른단다. 우리는 시골집에서만큼 단출하게 풀내음 밥상을 누리자. 아무튼 아직 두 아이는 젓가락으로나 손가락으로나 고깃살을 바르지 못한다. 내가 손으로 척척 발라서 두 아이 밥그릇에 골고루 얹는다. 두 아이는 밥그릇에 얹은 고깃살을 바지런히 집어서 먹는다. 네 살 작은아이는 물고기 껍데기가 조금 있으면 못 씹는다. 한참 씹다가 뱉는다. 그래, 너한테는 이 맛있는 껍데기를 못 주네. 일곱 살 큰아이한테만 껍데기를 조금 주고 나머지는 내가 먹는다. 아이들은 고깃살을 먹고 어버이는 껍데기를 먹는다. 손으로 고깃살을 바르고 가시를 훑다가 예전 모습을 그림처럼 떠올린다. 우리 어머니도 형과 내 밥그릇에 손으로 고깃살 발라서 얹으셨고, 이녁은 껍데기를 드셨다. 그래, 어른들은 껍데기를 먹는구나. 어릴 적에 고깃살을 실컷 먹었을 테니, 어른이 되면 껍데기를 실컷 먹으면 되는구나. 4347.1.2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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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와 읍내 장보기

 


  설을 앞두고 읍내로 장을 보러 다녀온다.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며 읍내로 장을 보러 다녀오던 날을 돌이켜보면, 아침을 차리느라 부산을 떨면 너무 힘들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에 아이들한테 밥을 안 차려 준다. 능금 두 알을 썰어 나누어 먹고, 배 한 알을 깎아 함께 먹는다. 이렇게만 먹이고 아침 열한 시 십오 분 군내버스를 탄다.


  아침을 차리느라 부산을 떨면 아이들은 배가 불러 느긋할 테지만, 작은아이는 으레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기 일쑤이다. 이러면 읍내마실이 꽤 고되다. 살짝 배고픈 채 마실을 한 뒤, 오늘 하루는 읍내에서 장만한 먹을거리로 아침과 주전부리를 내주면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똥을 누고, 배를 알맞게 채운 뒤 작은아이는 느즈막한 낮잠을 잘 재울 만하다.


  읍내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장만하는데 모두들 나를 보고 묻는다. “애 엄마는?” 나는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는다. 아이들더러 “너네 엄마는 어디 있니?” 하고 물으니, 큰아이가 “엄마는 집에서 자요.” 하고 말한다. 그래, 네 어머니는 집에서 주무시지. 네 어머니 몸이 튼튼하다면 읍내마실 함께 나올 테고, 한결 느긋하게 돌아다니면서 장을 볼 테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택시를 부른다. 돌아가는 군내버스는 읍내에서 열두 시 반에 있는데, 읍내 버스역에 닿은 때는 열두 시 삼십팔 분. 다음 버스는 두 시 반에 있다. 이웃마을 지나가는 버스는 한 시 반인데, 한 시 반 버스를 타면 집까지 아이들과 삼십 분을 걸어야 한다. 버스역에서 가방을 내려놓고 삼 분쯤 생각해 본다. 어떻게 할까. 가만히 헤아리니, 내 어릴 적 우리 어머니가 나랑 형을 데리고 신포시장으로 장보러 다녀오실 적에 가끔 택시를 탔다. 나는 택시를 탄다고 그저 좋아하기만 했는데, 그때 어머니로서는 여러모로 생각이 많으셨지 싶다. 버스를 타면 돈이 얼마요 택시를 타면 돈이 또 얼마요 하고 생각하셨겠지. 생각을 하고 하다가 택시를 타셨겠지.


  큰아이가 앞으로 한두 살 더 먹으면 택시 탈 일이 줄어들까. 모르겠지. 그러나, 타야 할 때에는 타야겠다고 느낀다. 읍내에서 장을 보니, 어느 할매가 우리더러 “차에까지 짐 실어다 주마.” 하고 말씀하시지만, 우리 식구한테는 자가용이 없다. 버스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니까. 아무튼, 집까지 잘 돌아왔다. 택시 타느라 들인 돈은, 이것저것 더 일하면서 벌면 된다. 4347.1.2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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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을 잡으렴

 


  한참 자장노래를 부르는데, 오른쪽에 누운 큰아이가 왼손을 뻗으면서 “아버지, 손.” 하고 부른다. 그래, 손을 잡으렴. 손을 잡아도, 손을 안 잡아도, 늘 네 곁에 있으니, 마음 포옥 놓고 새근새근 잠들렴. 가장 아름다운 꿈을 꾸고, 가장 즐거운 사랑을 누리는 한밤이 되기를 빈다. 네 무지개꿈에는 고운 노래가 흐를 테니, 이 노래를 언제나 가슴 가득 담으면서 푸른 넋 될 수 있기를 빈다. 4347.1.2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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