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돌보는 어버이



  두 아이를 데리고 마실을 다니니 ‘힘들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퍽 많다. 버스나 전철을 탈 적에도 이런 소리를 듣고, 가까운 둘레에서도 이런 말을 듣는다. 나는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하거나 느낀 적이 없기에, 이 말을 가만히 헤아려 본다. 왜 힘들어야 할까? 무엇이 힘들다고 할 만할까? 아이들 옷가지와 짐을 내 큰가방에 잔뜩 짊어지고 다녀야 하니까 힘들까? 아이들이 잠들면 짐은 짐대로 메고 아이는 아이대로 안아야 하니까 힘들까? 짐을 짊어진 채 여덟 살 다섯 살 두 아이를 두 팔에 안으면 힘들까? 아이들이 무척 어릴 적에는 밤새 기저귀를 갈고 빨래를 하느라 부산했다. 밤잠을 거의 이룰 수 없었다. 이무렵부터 낮잠을 조금씩 쪽잠처럼 자는 버릇이 생겼다. 낮이고 밤이고 갓난쟁이는 똥오줌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 아기를 돌보는 어버이는 ‘쉴 만할 때’를 스스로 챙겨서 쉬어야 하고, ‘눈 붙일 만한 때’에 스스로 눈을 붙여야 한다. 아무튼, 밤새 두 아이를 건사하면서 이불깃 여미는 일은 그러려니 하면서 하고,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놀리고 읽히고 하는 모든 삶도 고스란히 내 하루로 여기면서 맞이한다.


  아이를 어버이가 스스로 맡지 않으면서 학교나 학원에 맡기려고 하면, 이때에는 힘들밖에 없으리라 느낀다. 아이가 사회의식에 젖어들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야말로 어버이로서 힘든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날마다 새롭게 꿈을 꾸면서 놀도록 이끄는 하루는 언제나 즐거운 삶이 된다고 생각한다. 무거운 짐은 무겁네 하고 느끼면서 들면 되고, 가벼운 짐은 가볍네 하고 느끼면서 들면 된다. 우리는 우리 길을 씩씩하게 가면 된다. 아침마다 기쁘게 동이 터서 햇볕을 듬뿍 쬔다. 4348.2.9.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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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9. 뛰노는 마음


  어른이 된 사람은 집에서 뛰는 일이 드물다. 어른끼리 사는 집에서는 딱히 시끄러운 소리가 날 일이 없다. 그러나,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아이가 뛰고 싶다. 아이는 뛰고 구르면서 놀려 한다. 노래도 목청껏 부르고 싶으며, 때때로 길게 소리를 지르고 싶다. 그러면, 어른은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보금자리를 어떻게 가꾸어야 한다고 생각할까.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면 되는 곳이 보금자리일까?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곳이 집일까? 뛰놀지 못하는 집에서 아이는 ‘뛰놀면 안 된다’는 삶을 보면서 배운다. 뛰놀지 못하는 보금자리에서 어버이는 ‘뛰놀지 말라’는 윽박지름을 보여주면서 가르친다. 나는 두 아이와 뛰면서 놀려 한다. 나는 두 아이와 곁님하고 노래하면서 놀려 한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어우러져서 뛰놀고, 어른과 아이가 같이 아끼면서 웃고 노래하려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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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방으로



  인천에서 큰아버지와 걷는다. 큰아이는 큰아버지 손을 잡고 작은아이는 혼자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면서 콩콩 달린다. 작은아이는 아주 기쁜 몸짓으로 뛰놀다가 그만 고꾸라진다.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고꾸라졌기에 볼이 바닥에 쓸리고 코가 빵바닥에 찧는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본다. 아이들은 넘어지는 모습도 참으로 놀랍다고 다시금 생각하고는, “보라야, 괜찮아. 자 털고 일어서자.” 하고 부른다. 이렇게 말한 뒤 아이를 일으켜세운다. 일으켜세우기 앞서 말부터 들려준다. 작은아이는 으앙 울지만, “자, 보라야, 어제부터 네가 노래한 기차 (장난감) 사러 가야지?” 하고 한 마디 붙이니, 바로 울음을 뚝 그친다. 난 네가 울음을 그칠 줄 알았지. 길바닥에 쓸린 볼을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면서 “괜찮아. 곧 나아.” 하고 달랜다.


  작은아이는 기차 장난감을 하나 장만하고, 큰아이는 ‘로봇으로 몸을 바꾸는 자동차’ 장난감을 하나 장만한다. 두 아이는 장난감을 저희 가방에 담는다. 저희 장난감은 저희 가방에 담아 저희 등에 멘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두 아이 가방까지 아버지가 맡아서 들어야 했으나, 올해에는 두 아이가 저희 가방을 끝까지 맡아서 멘다. 아주 대견하면서 씩씩하다. 앞으로도 너희 장난감과 연필과 공책과 만화책은 너희 가방에 담아서 들고 다닐 수 있기를 빌어. 아무렴. 4348.2.8.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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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바라는 아이들



  두 아이가 퍽 예전부터 ‘기차’를 타고 싶다면서 노래를 불렀다. 고흥에서 기차를 타려면 순천까지 나가야 하는데, 기차를 탈 일이 없었다. 우리 집 사람들이 기차를 타는 때는 한가위나 설이니, 한 해에 두 차례쯤 탄다고 할까. 올해 설을 앞두고 인천과 일산으로 마실을 하기로 하면서 두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길에, 인천버스역에서 내려 전철을 탄다. 두 아이는 ‘전철 타러 땅밑으로 들어가는 어귀’를 곧 알아보고는 소리친다. “보라야! 저기 전철 타는 구멍이야!” “응, 그래! 기차 타자!” 시골에서 도시로 놀러온 아이들은 전철을 타면서 아주 새롭다. 자리를 얻어 앉으면 창밖을 보느라 바쁘다. 땅밑을 달릴 적에는 새까만 것만 보이는데, 그래도 신난다. 새로운 전철로 갈아타니 빈자리가 없는데, 빈자리가 없어도 마냥 서서 전철과 함께 흔들리며 웃는다. 전철을 타면서 웃는 어른은 거의 볼 일이 없으나, 우리 집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큰소리로 웃는다. 날마다 지겹게 타야 해서 여느 어른은 전철에서 웃을 일이 없을까? 모두 손과 손에 전화기를 들고 무언가 꾹꾹 누르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기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을까? 우리 집 두 아이는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리면서 논다. 너희는 여덟 살과 다섯 살이어도 이렇게 노는구나. 앞으로 열 살과 일곱 살이 되어도 이렇게 놀까? 아무쪼록 언제나 어디에서나 재미있게 놀자. 4348.2.7.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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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2-07 06:30   좋아요 0 | URL
지하로만 달리는 지하철보다 바깥구경도 할수있는 전철이 저는 좋아요. 휴대폰에 집중하고 있으면 바깥풍경볼일은 없겠지만요.
아이들 즐거움이 여기까지 전해지네요

숲노래 2015-02-08 04:11   좋아요 0 | URL
어제는 인천에서 일산까지 전철길에 아주 신나게 놀면서 잘 왔습니다.
웃을 줄 아는 아이들과 다니는 마실은 참으로 늘 즐거워요~
 

우리집배움자리 8. 물 한 모금



  물병이 하나만 있으면 목이 마른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기다려야 한다. 서로 먼저 마시겠다고 다툴 만하다. 이때에 나는 두 아이한테 말한다. 먼저 큰아이한테는 “자, 누나는 늘 동생한테 먼저 마시라고 하렴.” 하고 말한 뒤, 작은아이한테는 “자, 동생은 늘 누나더러 먼저 마시라고 하렴.” 하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두 아이는 물을 마시거나 주전부리를 먹을 적에 으레 서로서로 내민다. “자, 네가 먼저 마셔.” “자, 네가 먼저 먹어.” 이렇게 여러 날이 흐르고 여러 달이 흐른다. 어느덧 이런 삶이 여러 해째 된다. 마실을 하다가 큰아이가 아주 목이 말라서 “물 주셔요.” 하고 말한다.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어 큰아이한테 건넨다. 큰아이는 발갛게 달아오른 볼로 물병을 열고는 동생한테 내민다. “자, 보라야 너 먼저 마셔.” 동생도 몹시 목이 말랐기에 누나가 건네는 물병을 받아 벌컥벌컥 마신다. 이러고서 누나한테 돌려준다. 누나는 동생이 다 마시기를 기다렸다가 마신다. 이런 뒤 동생은 다시 물병을 받아 한 모금 더 마신다. 두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머리를 쓰다듬는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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