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마당에 그가 머물다 갔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38
강세환 지음 / 실천문학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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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3.14.

노래책시렁 396


《앞마당에 그가 머물다 갔다》

 강세환

 실천문학사

 2015.12.18.



  술을 술술 넘기는 하루를 끝없이 이으면서, 이 술판을 고스란히 옮기는 웃사내가 그득그득합니다. 술푸념을 그려야 글(문학)인 줄 아는 분이 제법 많은데, 가만 보면 중국을 섬기며 한문만 끄적이던 옛사람도 으레 술타령입니다. 스스로 넋을 차리거나 세우기보다는, 다른나라 틀(이론)에 따라서 글을 요모조모 얽는 길(기법)을 펼쳐야 한다고 보는 셈입니다. 《앞마당에 그가 머물다 갔다》를 읽다가 술냄새가 너무 고약해서 얼른 덮었습니다. 더구나 ‘미당 서정주’하고 얽힌 노닥술 이야기는 차마 보아주기가 어렵고, “가난한 시인의 아내”를 말술로 들볶는 발걸음이란 글도 노래도 아닌, 그저 술판일 뿐이라고 느낍니다. 술김에 쓰는 글은 술에 찌듭니다. 술기운으로 읊는 말은 술에 빠진 채 허우적입니다. 우리나라 글판은 온통 술마당 같습니다. 사람들한테 길잡이로 눈밝은 글이 아닌,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는 참한 글이 아닌, 끼리끼리 놀고 마시는 술짓이란, 이제부터 모조리 씻어내고 털어낼 사슬이지 싶어요. 아이들이 마당이며 온 집안에서 신나게 뛰어놀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이들하고 어울려 놀고 옛이야기를 사랑으로 들려주는 자리에서 한두 모금 가볍게 홀짝이는 술이 아니라면, 몽땅 걷어치우고 갈아엎어야지 싶습니다.


ㅅㄴㄹ


한 잔 더 하고 나오다 술집 문턱에 넘어졌다 / 와르르 와르르 무너졌다 / 부딪친 건 정강이인데 마음이 먼저 아팠다 / 마음의 벽도 무너지면서 / 마음에 가두었던 이들에게 / 휴대폰의 통화 버튼을 조금씩 눌러 보았다 (술/20쪽)


가난한 시인의 집 마당 술 취한 발자국들을 / 시인의 아내가 거둬들이고 / 시인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 퍼 올린 슬픔도 거둬들이고 (정릉 명호 호프집에서/32쪽)


소주 한 병은 그대 풀 위에 가지런히 눕혔고 / 또 한 병은 내 가슴에 눕혔다 / 술병을 내려놓다 / 시비에 깊게 패인 글자를 (김수영 무덤에 관한 기억/46쪽)


+


《앞마당에 그가 머물다 갔다》(강세환, 실천문학사, 2015)


너의 고단하고 힘겨운 하루가

→ 네 고단하고 힘겨운 하루가

→ 고단하고 힘겨운 네 하루가

11


내게 와서는 한 줄의 시가 되어라

→ 네게 와서는 한 줄 노래 되어라

→ 네게 한 줄 노래로 오라

11


내 잔에다 자작하고

→ 내가 그릇에 붓고

→ 손수 부어 마시고

20


큰 술 또 꺼내놓던 미당의 환호작약!

→ 큰 술 또 꺼내놓고 기뻐하는 미당!

→ 큰 술 또 꺼내놓고 활짝대는 미당!

32


소주 한 병은 그대 풀 위에 가지런히 눕혔고

→ 불술 한 담이는 그대 풀에 가지런히 눕혔고

46


삼베 수의(壽衣)도 관두고

→ 삼베 주검옷도 관두고

→ 삼베 저승옷도 관두고

51


타관의 여관에 들어

→ 낯선 길손집에 들어

→ 먼 길손채에 들어

66


눈길 닿는 곳마다 돼지 내장 부속물 같다

→ 눈길 닿는 곳마다 돼지 속 곁거리 같다

12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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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의자 걷는사람 시인선 69
정정화 지음 / 걷는사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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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4.3.14.

노래책시렁 411


《알바니아 의자》

 정정화

 걷는사람

 2022.9.25.



  배움터도 일터도 삶터도 모름지기 어우러지면서 즐겁습니다. 얼싸안기에 따뜻하고, 어루만지기에 반갑습니다. 어긋나니 고단하고, 엇갈리니 헤매지요. 억누르니 고단하고, 어거지로 밀어대니 슬픕니다. 기쁘게 얹으면 하나도 안 어렵지만, 섭섭하거나 서운하게 얹어대면 짐입니다. 아기를 업는 마음은 오롯이 사랑입니다. 마냥 업히거나 업으려고 들면 사랑하고 멉니다. 삶은 뚝딱 만들 수 없습니다. 물처럼 흐르면서 모든 곳에 스미거나 드나드는 삶입니다. 삶을 다독이면 살림이고, 삶에 옭매이면 굴레예요. 살림을 하는 길이니 스스로 생각하면서 하루를 짓고, 이동안 문득 사랑이 깨어나면서 활짝 꽃피웁니다. 《알바니아 의자》를 읽고서 덮습니다. “낱말을 엮거나 짜야 글(문학)”인 듯 여기는 분이 많습니다만, 바느질이나 뜨개질 모두 힘을 들여 억지로 하려고 들면, “겉보기로는 예쁘되, 입기에는 뻑뻑하거나 작거나 크”게 마련이에요. 밥짓기도 옷짓기도 집짓기도 오직 사랑이라는 마음 하나로 풀어놓을 적에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뚝딱뚝딱 올라가는 높다란 잿집은 “집을 짓는 길”하고 먼 “시멘트를 들이부어 똑같이 짜맞추는 굴레”입니다. 짜맞추려고 하면 굴레예요. 짜거나 엮지 말아요. 삶을 노래하면 될 뿐입니다.


ㅅㄴㄹ


빨갛게 물든 피클을 포크로 찔러대면서 / 소라게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다 / 왜 넌 자꾸 숨어 버리는 거니 / 재미없는 갑각류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 난 기차에 대해 이야기했을 뿐인데 (늪이었을 거야, 아마도/26쪽)


폴란드에서는 코를 치켜세우고 있는 코끼리들이 행복을 물어다 준다고 합니다 (폴란드 그릇/31쪽)


+


《알바니아 의자》(정정화, 걷는사람, 2022)


식탁 아래에서는 아이들 발바닥이 날마다 넓어졌다

→ 밥자리 밑에서는 아이들 발바닥이 날마다 늘어난다

11쪽


종 모양의 단추를 찾았습니다

→ 방울꼴 단추를 찾았습니다

16쪽


어둠을 이끌고 가고 있다

→ 어둠을 이끌어 간다

→ 어둠을 이끈다

19쪽


잔디밭 스프링클러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을 이해해

→ 잔디밭 물뿜개에서 나오는 물을 알아

20쪽


퉁퉁 부은 심장은 불규칙적이고 테이블보를 깔면

→ 퉁퉁 부은 가슴은 들쑥날쑥이고 자리천을 깔면

21쪽


소라게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다

→ 소라게를 이야기하려 했다

→ 소라게 이야기를 하려 했다

26쪽


벤치 위에 해변과 파도를 올려놓고

→ 걸상에 바닷가와 물결을 올려놓고

50쪽


이어폰을 꽂고 있으면 여행자가 된 것 같아

→ 소릿줄을 꽂으면 나그네가 된 듯해

66쪽


수평을 맞추지 못하지

→ 똑바로 맞추지 못하지

→ 나란히 맞추지 못하지

104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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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숲속에서는 웅진 세계그림책 238
필리프 잘베르 지음, 김윤진 옮김 / 웅진주니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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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4.3.13.

그림책시렁 1377


《오늘 숲속에서는》

 필립 잘베르

 김윤진 옮김

 웅진주니어

 2023.5.22.



  나무는 스스로 새롭게 나아가는 길을 밝히려고 꽃을 피웁니다. 새를 부르고 벌나비를 불러서 숲을 이루려는 뜻입니다. 새는 꽃송이랑 열매랑 씨앗을 누리면서 노래를 베풉니다. 나무는 꽃과 열매와 씨를 베풀면서 노래를 누립니다. 나무에 꼬이는 벌레는 새가 잡습니다. 나무는 새가 벌레잡이를 하니 홀가분합니다. 다만, 모든 벌레가 잡으라 하지 않아요. 나중에 나비로 깨어나는 애벌레가 꽃가루받이를 할 테니까요.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은 들숲바다를 품을 적에 아름답습니다. 들도 숲도 바다를 잊는 사람들은 서울로 우르르 몰리면서 불꽃과 피를 튀기면서 싸웁니다. 어우러지고 나누고 베푸는 마음으로 만나기에 사랑이라면, 다투고 겨루고 빼앗는 서울살림이랑 사랑을 등진 죽음수렁입니다. 《오늘 숲속에서는》은 숲에서 살림을 짓는 여러 이웃을 숨은그림찾기처럼 돌아보라고 이끕니다. 워낙 들빛을 잊고 숲빛을 잃다고 사람빛을 등돌린 사람들이니, 이만 한 그림책이 나올 만합니다. 그렇다면 푸르게 반짝이는 숲에는 누가 있을까요? 숲에서 어디에 눈을 두어야 사람다울까요? 꽃내음은 어떻게 맡고, 새소리는 어떻게 들을까요? 바다와 숲과 들을 품으려면 서울을 떠나거나 갈아엎을 노릇입니다. 서울을 비우지 않으면 모두 덧없습니다.


ㅅㄴㄹ


#PhilippeJalbert


《오늘 숲속에서는》(필립 잘베르/김윤진 옮김, 웅진주니어, 2023)


숲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숨어 있어요

→ 숲에는 숱한 짐승이 있어요

→ 숲에는 여러 짐승이 숨어 살아요

1쪽


자, 모두 찾을 준비가 되었나요?

→ 자, 모두 찾아볼까요?

→ 자, 모두 찾아나설까요?

1쪽


숲속에서 사슴 가족이 평화롭게 쉬고 있어요

→ 숲에서 사슴네가 아늑하게 쉬어요

→ 숲에서 사슴무리가 고요히 쉬어요

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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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선생님
도쿠다 유키히사 지음, 야마시타 코헤이 그림, 김보나 옮김 / 북뱅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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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4.3.13.

그림책시렁 1375


《바나나 선생님》

 도쿠다 유키히사 글

 야마시타 코헤이 그림

 김보나 옮김

 북뱅크

 2024.3.5.



  어린이는 ‘선생님’이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둘레 어른이 쓰라고 시키니 외웁니다. 일본에서는 이웃을 살짝 올리면서 “김 선생”처럼 쓰는데, 우리말씨로 보자면 “김 씨”라 일컫는 셈입니다. 어린이집이나 어린배움터에서 으레 “선생님은 말이죠”처럼 말하지만, 틀렸습니다. ‘교수’라는 분이 스스로 “교수님은 말이죠” 하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르치는 자리를 가리킬 적에 ‘선생·선생님’을 쓸 수 있되, 가르치는 사람은 스스로 밝힐 적에는 ‘나·저’라 해야 올바릅니다. 《바나나 선생님》은 2013년에 처음 나왔다고 합니다. 어린이집 길잡이 하루가 더없이 고되어 보입니다. 하루 내내 놀아주고 돌봐주고 챙겨주느라 기운이 쪽 빠지겠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은 어버이라면, 누구보다 어버이가 아이랑 놀고 돌보며 챙길 노릇입니다. 어린이집이나 배움터는 가볍게 드나들면서 조금 더 눈길을 틔우는 살림을 배워서 스스로 일어서도록 돕는 징검다리여야지요. 길잡이는 어디까지 해줘야 할까요? 길잡이가 나서기 앞서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를 짓고 노래를 부를 노릇입니다. 이제는 ‘육아 전문가’한테 그만 맡기고, ‘어버이 스스로 어진길을 익혀 아이하고 나누는 이슬받이’로 설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ㅅㄴㄹ


#ばななせんせい #やましたこうへい #得田之久


+


안녕! 선생님 이름은 바나나라고 해요

→ 반가워! 내 이름은 바나나예요

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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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하늘에도 슬픔이 - 청년사 만화 작품선 03
이희재 지음 / 청년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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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4.3.12.

만화책시렁 621


《저 하늘에도 슬픔이》

 이윤복 글

 이희재 그림

 청년사

 2004.4.8.



  모르는 아이는 없다고 느낍니다. 알면서 짐짓 감추고, 더 알려는 마음을 접더군요. 아는 아이는 빙그레 웃거나 찡그리며 웁니다. 매캐한 먼지를 털려고 웃고, 캄캄한 멍울을 씻으려고 울어요. 아이를 지켜보노라면, 저마다 다르게 어버이를 북돋우고 어른을 일깨우는 줄 알아차릴 만합니다. 어버이나 어른이라면, 먼저 아이한테 물을 일입니다. 아이는 스스럼없이 들려줍니다. 아이가 말하는 곳에는 언제나 빛과 실마리가 있습니다.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어린이 이윤복 님이 남긴 하루글을 바탕으로 나온 그림꽃입니다. 곯고 고단하고 가난하고 쓸쓸한 나날이지만, 꼬박꼬박 하루글을 남겼어요. 집을 떠난 어머니를 언젠가 다시 만나면 풀어놓을 이야기를 아로새기는 마음이었을 수 있습니다. 1950년에도 1960년에도 1970년에도 1980년에도, 또 1990년과 2000년에도 가난한 사람은 내내 가난합니다. 일을 안 해서 가난하지 않습니다. 턱이 높고, 이웃을 안 쳐다보는 굴레가 깊고, 아이들 스스로 꿈을 바라보도록 북돋울 어른마저 드문 탓입니다. ‘경제개발·새마을운동’은 모두 뒷구멍이 큰 허울입니다. 오늘날 숱한 ‘개발사업’도 매한가지입니다. 눈을 떠서 함께 하늘을 바라볼 때라야, 비로소 빗물로 멍울을 달랠 수 있습니다.


ㅅㄴㄹ


“니 껌 파는 아이가? 그 껌 한 통 얼마고?” “요고 전부 다섯 개 들었는데 십 원입니다.” “한 통 팔면 얼마 남노?” “사 원 남아예. 사실랍니까?” “니 아부지 계시나?” “예.” “엄마는?” “없어예.” “엄마 와 없노?” “묻지 마이소.” (20쪽)


‘저 사람들은 어떻게 돈을 벌었길래 저렇게 잘 입고 다닐까?’ (26쪽)


“여러분! 윤복이가 결석한 이유를 알려주겠어요 … 줄곧 껌 장사를 했어요. 희망원에 잡혀 간 적도 많았어요. 요 며칠 동안에도 윤복이는 염소를 먹이러 다녔던 거예요. 식구들 끼니와 아버지 약값을 벌기 위해, 윤복이는 하루에 십 원씩 받고 염소를 먹였어요.” (61쪽)


‘오늘은 저녁때 껌을 팔고 돌아오는 길에, 어떤 할아버지께서 중앙통 가게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니 이십 원밖에 없었다. 할아버지의 손에 이 원을 쥐어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90쪽)


“울지 않기로 하는 기다. 엄마 보고 싶어도 울지 않는 기다. 아부지, 순나 보고 싶어도 울지 않는 기다.” (115쪽)


“윤복이는 왜 신발을 벗고 하지?” “신발이 닳을까 봐 그런데요.” “…….” (171쪽)


‘날씨가 추워지고, 자꾸만 쌀값이 올라간다. 순나도 어디에선가 우리들 걱정을 하고 있겠지. 저 하늘에도, 저 하늘에도 슬픔이 있을까?’ (21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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