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꼭 지켜야 할 벼 철수와영희 어린이 인문생태그림책 1
노정임 지음, 안경자 그림, 강병화 감수, 바람하늘지기 / 철수와영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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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먹는 밥으로 사랑을 일굽니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69] 안경자·노정임, 《우리가 꼭 지켜야 할 벼》(철수와영희,2012)

 


  내가 먹는 모든 밥은 내 몸이 됩니다. 내 몸은 내 삶이 되고, 내 삶은 내 아이들 삶으로 이어집니다.


  아이들은 나이가 들며 이제 저희대로 저희 좋은 삶길을 걷겠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걷는 삶길이란 어버이한테서 물려받으면서 스스로 찾거나 살피거나 헤아리는 길입니다.


  아이들 몸을 이루는 숨결은 어버이가 여느 때에 꾸준히 먹은 밥으로 이루어집니다. 어른들 스스로 어린 날부터 차근차근 먹으며 숨결을 이은 밥이 곧 아이들 목숨이에요. 아이들이 걸린다는 아토피이든 숱한 몸앓이는 모두 어버이가 아이한테 물려준 생채기이자 아픔이고 슬픔이에요. 어버이는 몸으로 이 숱한 생채기나 아픔이나 슬픔을 누리지 않습니다. 바로 가장 가까운 곁에서 아이들이 괴롭고 힘겨우며 지치는 모습을 그예 바라보면서 어찌저찌 손을 못 쓰며 바라보기만 합니다.


  그러니까, 어버이 스스로 착하고 맑으며 고운 밥을 꾸준하게 즐겨먹는다면, 어버이 숨결로 빚을 아이들 목숨은 더없이 착하고 맑으며 고울 수 있어요.


..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부지런히 자료를 찾다가 가장 놀란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우리 나라의 농약 사용량이 무척 많다는 사실이었고 … 한 가지 더 안타까운 것은 농촌과 농업에 대한 자료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8쪽)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물려주는 사랑은 어버이가 늘 먹는 밥과 같다고 느낍니다. 어버이로서 날마다 어떤 밥을 먹느냐만큼, 어버이로서 날마다 어떤 사랑을 나누느냐에 따라 아이들 하루하루가 달라지는구나 싶어요. 어버이로서 늘 누리는 사랑이란 아이들이 늘 누리는 사랑이고, 어버이답게 노상 빚는 꿈이란 아이들이 노상 빚는 꿈이로구나 싶어요.


  내가 꽃내음 맡으며 들길을 걸으면 아이도 나와 함께 꽃내음 맡으며 들길을 걷지만, 이에 앞서 내 몸과 마음으로 스미는 꽃내음이 내 생각을 따숩게 다스립니다. 내가 들새 노랫소리 들으며 멧길을 오르내리면 아이도 나와 함께 노랫소리 들으며 멧길을 오르내리지만, 이보다 내 넋과 얼로 녹아드는 노랫소리가 내 사랑을 곱게 보듬습니다.


  날마다 좋은 밥을 먹어야겠다고 느낍니다. 언제나 좋은 밥을 마련해야겠다고 느낍니다. 가장 좋다고 느끼는 먹을거리로 밥상을 차려요. 가장 좋다고 느낄 마음가짐으로 밥상을 차릴 때에 즐거워요. 가장 비싼 먹을거리가 아니라 가장 좋다고 느끼는 먹을거리예요. 가장 빛나는 밥솜씨가 아니라 가장 좋은 매무새로 짓는 밥이에요.


.. 쌀과 밥을 못 본 친구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벼’를 못 본 친구는 있을 수도 있어요. 쌀과 밥은 부엌에 있지만, 벼는 논에서 자라니까요. 벼는 쌀을 얻으려고 논에 심어 기르는 한해살이풀이랍니다 ..  (14쪽)

 

 


  오월 끝무렵이 되니 전남 고흥 시골마을 할머니와 할아버지 모두 바쁩니다. 오월 첫머리까지는 모두들 천천히 쉬엄쉬엄 지내며 얼크러져 노시는구나 싶었으나, 이제 밭자락마다 마늘 캐느라 바쁘고, 논자락마다 써레질과 물대기로 바쁩니다. 차근차근 밑일을 마치는 유월을 맞이하면 모두들 무논에 모를 심겠지요. 예전처럼 손으로 모를 심지는 않지만, 즐겁게 모를 심겠지요. 허리 굽은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손으로 모를 심으라 바라기 힘들 테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은 바로 ‘시골 늙은 할매 할배가 일군 쌀’을 사다가 밥을 지어 먹겠지요.


  곰곰이 돌아봅니다. 열 해 앞서도, 스무 해 앞서도, 또 서른 해 앞서도 시골마을에서는 ‘늙은 사람’이 흙을 일구었습니다. 앞으로 열 해 뒤에도, 또 스무 해 뒤에도, 어쩌면 서른 해나 마흔 해 뒤에도 시골마을에서는 ‘늙은 사람’만 흙을 일구고, 젊은 사람은 도시에서 돈을 벌는지 몰라요. 이 나라에서 흙과 사귀는 일이란 늙은 사람만 할 일이요, 젊은 사람은 자가용이랑 인터넷이랑 돈이랑 물질문명하고 사귀기만 하면 될 노릇일는지 몰라요.


  사랑하는 사람한테 장미꽃을 사다 선물한다는데, 정작 장미씨를 받아 장미싹을 틔워 장미나무를 키운 다음 이 장미나무한테서 얻은 꽃송이를 꺾어 선물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그저 돈을 벌어 돈으로 장미를 사고 돈을 치러 빼입은 옷을 차려입은 다음 서로서로 만나는 도시예요. 내 몸을 움직이지 않아요. 내 마음이 내 몸에 따라 거듭나지 않아요. 내 몸에 흙을 묻히거나 내 얼굴에 햇살이 닿도록 하지 않는 도시예요.


  한국사람은 누구나 밥을 먹는다지만, 막상 밥이 될 쌀을 어떻게 빚고, 쌀은 벼에서 어떻게 갈무리하는가를 살피지 않아요. 한국사람은 빵이나 라면이나 국수를 참 많이 먹는데, 정작 빵이나 라면이나 국수, 여기에 과자가 될 밀을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일구어 얻는가를 헤아리지 않아요.


  아이들도 모르지만, 아이들보다 어른들부터 모릅니다. 아이들도 생각하지 않지만, 아이들에 앞서 어른이 먼저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 벼꽃이 피었어요. 아주 빨리 꽃가루받이를 한답니다. 2∼3시간 안에 수정을 하고 곧 지지요. 옛 어른들은 “벼꽃 필 때는 거름도 주지 말라”고 했대요. 부지런한 농부도 이때는 논에 가지 않고 벼꽃이 알아서 일하길 조용히 기다리지요 ..  (21쪽)

 


  그림책 《우리가 꼭 지켜야 할 벼》(철수와영희,201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그림책은 날마다 밥을 어버이한테서 받아먹는 아이들이 ‘벼’를 옳게 제대로 슬기롭게 알도록 이끕니다. 아이들이 밥을 모르고서는, 벼를 모르고서는, 쌀을 모르고서는, 참말 밥을 밥답게 누리지 못하고 삶을 삶답게 즐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베푸는 선물 같은 책입니다.


  그래, 이 그림책은 아이들한테 되게 좋겠구나 싶어요. 이 그림책을 읽을 아이들은 벼와 쌀과 밥을 잘 가누어 돌아볼 만하고, 알뜰살뜰 생각할 수 있겠구나 싶어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한 가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벼와 쌀과 밥을 알 수 있다지만, 어른들은 어떡하지요? 아이들은 벼와 쌀과 밥을 알아차리고 느끼며 익힌다지만, 어른들은 무엇을 하나요?


  아이들은 예쁘게 빚고 알차게 엮은 그림책을 읽으며 좋은 생각을 마음껏 북돋운다지만, 어른들은 어떤 생각을 얼마나 북돋울까요?


.. 논은 사람 손으로 만든 습지예요. 습지는 생물다양성이 높은 아주 중요한 생태계랍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넓은 습지는 바로 논이에요. 논은 사람이 사는 마을처럼 여러 생명이 자라고 어울려 사는 생명의 터전이랍니다 ..  (28쪽)

 


  어떤 그림책이든 어른이 장만해서 아이들한테 읽힙니다. 어떤 그림책이든 아이들이 책방마실을 하면서 장만하지 않습니다. 어떤 그림책이든 아이들 혼자 도서관으로 나들이를 가서 읽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그림책이든 아이들이 어버이나 교사랑 나란히 도서관으로 나들이를 가서 읽습니다.


  책을 덮고 가만히 생각합니다. 우리 어른들이 이 그림책을 먼저 즐겁게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어른들부터 이 그림책을 예쁘게 읽으면 좋겠다고 느낍니다. 우리 어른들부터 벼와 쌀과 밥을 곱게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어른들부터 날마다 맛나게 밥먹고, 언제나 예쁘게 꿈꿀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어른들부터 좋은 삶을 생각하고 좋은 사랑을 나누며 좋은 밥을 즐길 수 있으면 참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먹는 밥으로 사랑을 일굽니다. 내가 나누는 밥으로 꿈을 빛냅니다. (4345.5.27.해.ㅎㄲㅅㄱ)

 


― 우리가 꼭 지켜야 할 벼 (안경자 그림,노정임 글,바람하늘지기 기획,철수와영희 펴냄,2012.6.6./1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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