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를 바라보다


 아이를 안고 택시 앞자리에 앉으며 달리다가, 또 차를 얻어타고 아이를 안으며 앞자리에 앉아서 달리다가 길바닥을 기어가는 개미를 바라본다. 개미를 바라보고 사마귀를 바라보며 자그마한 지렁이와 꼬물꼬물 벌레들을 바라본다. 내가 얻어타는 자동차 바퀴가 이 벌레들을 밟는다고 느끼며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아슬아슬 비켜 갈 수 없구나 싶으며 가슴이 저민다.

 걸어가는 사람이면서 발밑에 벌레가 깔려 죽는 줄 못 느끼는 사람이 무척 많다. 나는 땅밑을 바라보며 걷는 사람은 아니지만 한 발 두 발 디딜 때에 발밑에 벌레가 깔릴 듯하면 어? 하고 느끼며 발을 옆으로 옮긴다. 자전거를 몰면서도 길바닥에서 날개를 말리는 나비나 잠자리가 있을 때에, 또 다른 자동차에 치이거나 밟혀서 죽은 나비나 잠자리가 있을 때에, 사마귀가 섰을 때에, 방아깨비가 노래를 할 때에, 부디 이 벌레들이 내 자전거 바퀴에 으깨지지 않기를 바라며 자전거 손잡이를 살짝살짝 돌린다.

 사람들은 길에 선 벌레를 바라보거나 길을 걷는 개미를 살필 줄 모를까. 길에 선 벌레를 바라보거나 길을 걷는 개미를 살피는 사람이 어딘가 얄궂은가. 문득 내가 참으로 바보스럽거나 이 나라 이 땅에 하나도 안 어울릴 만한 사람이구나 하고 느낀다. 자전거 수레에 아이를 태워 읍내 마실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 몹시 외롭다. (4344.8.2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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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67 : 책을 읽는 마음


 나라 안팎으로 이름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님이 쓴 글을 그러모은 《영혼의 시선》(열화당,2006)을 읽었습니다. 브레송 님은 “사진기는 환경을 존중해야 하고, 사회적 배경을 묘사하는 삶의 환경을 포함시켜야 한다(29쪽).”고 이야기합니다. 참 옳고 무척 맞는 이야기입니다. 사람과 삶과 삶터를 바라볼 줄 아는 눈길이기에 사진 하나 어여삐 빚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야기는 브레송 님만 꺼내지 않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이름나지 않은 수많은 여느 사람들도 한결같이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내 삶을 사랑하고 내 삶터를 알아야 합니’다.

 내 삶을 사랑하지 않고서야 ‘무상급식’이 어떠한 일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정치꾼들이 시끄러이 떠들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 깨달아야 할 ‘무상급식’입니다. 경제꾼들이 어수선하게 외치지 않더라도 내 머리와 마음으로 알아채야 할 ‘4대강사업’입니다. 경찰과 판검사가 읊어야 할 만한 ‘국가보안법’일 수 없습니다. 신문기자가 쓰는 글을 읽고서야 ‘진보와 보수’를 판가름한다면 벌써 늦습니다.

 조 신타 님이 그리고 데라무라 데루오 님이 글을 쓴 그림책 《임금님과 수다쟁이 달걀 부침》(돌베개어린이,2003)을 읽습니다. 그림책 임금님은 높직하게 올려세운 성벽으로 둘러싸인 안쪽에서 살아갑니다. 임금님이 성벽 밖으로 나갈 일이란 아주 드물 뿐 아니라 거의 없습니다. 성벽 안쪽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임금님이 성벽 바깥 터전이나 사람이나 자연을 알 길이란 없습니다. 성벽 안쪽에는 냇물도 바람도 멧자락도 푸나무라든지 숲도 없습니다. 오직 사람들이 만든 돌길에 돌집에 돌방이 있습니다. 창과 방패를 든 무시무시한 군인들이 가득 있습니다. 임금님이 이곳 성벽 안쪽에서 닭장 문을 함부로 열어 모든 닭이 빠져나오는데, 임금님은 당신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앗, 큰일났다.’ 임금님은 깜짝 놀라 도망쳤습니다(8쪽).”라는 말마따나 그냥 냅다 내빼면서 당신 잘못을 숨깁니다.

 어리숙한 임금님을 섣불리 탓할 수 없습니다. 임금님은 자연을 모르고 자연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자연하고 벗삼으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볼 줄 모르고 느낄 줄 모르며 알 줄 모르는데, 임금님을 나무랄 수 없습니다. 길은 하나입니다. 임금님이 무거운 금관을 벗고 무거운 비단옷을 벗으며 맨몸 맨발로 성벽 밖으로 뛰쳐나가 냇물로 뛰어들어 멱을 감거나 풀숲에 드러누워 해바라기를 해야 합니다.

 이리하여,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꽁초니 쓰레기니 아무 데나 버릴 뿐 아니라, 발을 밟거나 어깨를 툭 치고도 ‘잘못했습니다’ 하고 고개숙일 줄 모르는 모습을 어찌 꾸짖을 수 없습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삶을 모르고 사람을 모르며 사랑을 모르는데, 어떻게 ‘무엇이 잘못이고 무엇이 참이며 무엇이 빛인’ 줄 알아차릴까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은 책을 읽을 틈이 없습니다. 시골에는 책방이 없습니다. 시골은 인터넷도 느리고, 아예 안 들어오기까지 합니다. 도시에서 회사를 다니거나 가게를 꾸리는 사람은 돈벌이에 바빠 책을 들출 겨를이 없습니다. 도시에는 책방이 많고 인터넷도 빠릅니다. 책을 손에 쥐고 책을 읽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삶을 사랑하려는 몸짓일까요. (4344.8.26.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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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톱을 깎는 평화


 늦은 저녁이 되어도 첫째는 잠들지 않습니다. 더 놀고 싶으니 잠들지 않겠지요. 불을 끄고 자리에 눕지 않았으니 잠들지 못하겠지요. 아버지는 손톱깎이를 꺼냅니다. 아이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아버지는 먼저 아버지 손톱을 깎습니다. 빨래를 할 때에 자꾸 손톱이 바닥에 긁히기에 얼른 깎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여러 날이 지나도록 좀처럼 손톱깎이를 꺼내지 못했습니다. 오늘 비로소 꺼내어 집습니다. 한쪽 손을 다 깎고 다른 손을 깎을 무렵 아이가 저도 깎아 달라 합니다. 아버지 다 깎은 다음 깎을 테니 기다리라 말합니다. 아버지는 발톱도 깎으려 했지만 발톱 깎는 일은 잊고 아이 발부터 살핍니다. 아이 발톱을 먼저 깎습니다. 발톱을 다 깎으니 아이가 손을 척 내밉니다. “손에 힘 빼야지.” 조그마한 손가락을 살며시 쥐고 더 조그마한 손톱을 천천히 깎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손톱도 못 깎으면서 여러 날 지났을 뿐 아니라, 아이 손톱 또한 못 깎으며 여러 날 보냈다고 깨닫습니다. 아이 손발톱을 다 깎고 손톱깎이를 제자리에 놓습니다. 이윽고 잠자리에 들면서 퍼뜩 떠올립니다. 아이고, 내 발톱은 못 깎았네. (4344.8.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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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식구 마실


 네 식구가 함께 마실을 한다. 기저귀를 뗀 첫째는 딱히 다른 옷가지를 안 챙기며 마실을 할 수 있다. 첫째는 속옷 한 벌과 손닦개 하나만 챙겨도 된다. 둘째는 갓난쟁이인 터라 기저귀 한 뭉치에다가 겉옷과 겉싸개와 속싸개까지 잔뜩 챙겨야 한다. 노상 집에서만 지내던 둘째가 집을 떠나 한나절 바깥에서 보낸다. 집에 있을 때 아이를 안고 마당으로 나오거나 멧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으레 새근새근 잠들곤 한다. 네 식구가 함께 마실을 하는 동안에도 아이는 어머니 품이나 아버지 품에서 거의 잠든 채 지낸다.

 돌이켜보면 인천에서 살던 때, 첫째를 안고 골목마실을 하노라면 첫째는 내내 새근새근 잠들었고, 나는 잠든 아이를 안고 한손으로 덜덜 떨며 사진을 찍었다. 고작 두세 해 앞서 일인데, 오늘 다시 두세 해 앞서처럼 하라 하면 할 수 있을까. 내 몸이 버틸 수 있을까.

 시골길을 함께 걷고, 시골버스를 함께 탄다. 읍내에 나왔을 뿐이지만, 읍내는 시골집하고 견주면 퍽 시끄럽다. 나는 자꾸자꾸 시끄러운 소리에 걸린다. 혼자 자전거를 몰며 읍내에 나온다든지 첫째를 자전거에 태워 장마당 마실을 나온다든지 할 때에는 이렇게까지 시끄러운 줄 느끼지 못했다. 둘째를 안고 돌아다니면서 비로소 읍내 또한 참 시끄러운 데라고 새삼스레 느낀다. 왜냐하면, 둘째가 들을 만한 바람소리나 풀벌레소리나 새소리를 읍내에서라고 들을 수 있지는 않다. 거의 다니지 않는 자동차라 하더라도 자동차 소리가 많고, 가게에서 울리는 노랫소리가 퍼지며, 이곳저곳에서 공사하는 소리가 넘친다. 새로 짓는 가게에서 나는 페인트 냄새와 아스팔트가 달아오르는 냄새를 맡는다. 풀잎 냄새나 햇살이랑 바람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사람들은 흔히 ‘사회성’이니 ‘사회 적응’이니 ‘사회살이’를 이야기한다. 나는 이 ‘사회’가 조금도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기에, 두 아이가 사회를 알거나 겪거나 부대껴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느끼고, 사랑스러운 푸나무를 헤아리는 일보다 거룩하거나 좋은 삶이 있을까.

 과일집 짐차를 얻어 타며 집으로 돌아온다. 두 아이는 과일집 짐차에서 곯아떨어진다. 과일집 짐차가 읍내를 빠져나오는 길이 즐겁다. 길가에 줄지어 선 자동차가 안 보이고, 조그마한 시골길 둘레에 온통 논밭이거나 멧자락인 터전으로 접어드니 반갑다. (4344.8.23.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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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집을 나와 부리나케


 시골집을 나와 부리나케 자전거를 달려 면내 버스역에서 서울 가는 시외버스를 탄다. 시외버스 때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쉬지 않고 발판을 굴린다. 자전거를 이렇게 굴리는 동안, 나는 아무런 소리도 듣지 않고, 어떠한 냄새도 맡지 않는다. 시외버스에서는 버스 바퀴 구르는 소리랑 엔진 움직이는 소리만 가득해서 귀가 쩡쩡 울린다. 자가용을 탄다 한들 새소리나 바람소리를 들을 만할까? 도시에서 살아가며 내 목숨을 고이 아끼려 애쓰지 않는다면, 누구나 금세 눈멀고 귀멀며 마음이 조각조각 바스라지리라 느낀다. 힘이 들어 시외버스 걸상에 폭 안기면서 마음을 쉬지 못한다. (4344.8.16.불.ㅎㄲㅅㄱ)
 

- 지난주에 서울마실을 하던 길에 공책에 적은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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