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67 : 책을 읽는 마음
나라 안팎으로 이름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님이 쓴 글을 그러모은 《영혼의 시선》(열화당,2006)을 읽었습니다. 브레송 님은 “사진기는 환경을 존중해야 하고, 사회적 배경을 묘사하는 삶의 환경을 포함시켜야 한다(29쪽).”고 이야기합니다. 참 옳고 무척 맞는 이야기입니다. 사람과 삶과 삶터를 바라볼 줄 아는 눈길이기에 사진 하나 어여삐 빚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야기는 브레송 님만 꺼내지 않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이름나지 않은 수많은 여느 사람들도 한결같이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내 삶을 사랑하고 내 삶터를 알아야 합니’다.
내 삶을 사랑하지 않고서야 ‘무상급식’이 어떠한 일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정치꾼들이 시끄러이 떠들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 깨달아야 할 ‘무상급식’입니다. 경제꾼들이 어수선하게 외치지 않더라도 내 머리와 마음으로 알아채야 할 ‘4대강사업’입니다. 경찰과 판검사가 읊어야 할 만한 ‘국가보안법’일 수 없습니다. 신문기자가 쓰는 글을 읽고서야 ‘진보와 보수’를 판가름한다면 벌써 늦습니다.
조 신타 님이 그리고 데라무라 데루오 님이 글을 쓴 그림책 《임금님과 수다쟁이 달걀 부침》(돌베개어린이,2003)을 읽습니다. 그림책 임금님은 높직하게 올려세운 성벽으로 둘러싸인 안쪽에서 살아갑니다. 임금님이 성벽 밖으로 나갈 일이란 아주 드물 뿐 아니라 거의 없습니다. 성벽 안쪽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임금님이 성벽 바깥 터전이나 사람이나 자연을 알 길이란 없습니다. 성벽 안쪽에는 냇물도 바람도 멧자락도 푸나무라든지 숲도 없습니다. 오직 사람들이 만든 돌길에 돌집에 돌방이 있습니다. 창과 방패를 든 무시무시한 군인들이 가득 있습니다. 임금님이 이곳 성벽 안쪽에서 닭장 문을 함부로 열어 모든 닭이 빠져나오는데, 임금님은 당신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앗, 큰일났다.’ 임금님은 깜짝 놀라 도망쳤습니다(8쪽).”라는 말마따나 그냥 냅다 내빼면서 당신 잘못을 숨깁니다.
어리숙한 임금님을 섣불리 탓할 수 없습니다. 임금님은 자연을 모르고 자연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자연하고 벗삼으며 살아가지 않습니다. 볼 줄 모르고 느낄 줄 모르며 알 줄 모르는데, 임금님을 나무랄 수 없습니다. 길은 하나입니다. 임금님이 무거운 금관을 벗고 무거운 비단옷을 벗으며 맨몸 맨발로 성벽 밖으로 뛰쳐나가 냇물로 뛰어들어 멱을 감거나 풀숲에 드러누워 해바라기를 해야 합니다.
이리하여,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꽁초니 쓰레기니 아무 데나 버릴 뿐 아니라, 발을 밟거나 어깨를 툭 치고도 ‘잘못했습니다’ 하고 고개숙일 줄 모르는 모습을 어찌 꾸짖을 수 없습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삶을 모르고 사람을 모르며 사랑을 모르는데, 어떻게 ‘무엇이 잘못이고 무엇이 참이며 무엇이 빛인’ 줄 알아차릴까요.
시골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은 책을 읽을 틈이 없습니다. 시골에는 책방이 없습니다. 시골은 인터넷도 느리고, 아예 안 들어오기까지 합니다. 도시에서 회사를 다니거나 가게를 꾸리는 사람은 돈벌이에 바빠 책을 들출 겨를이 없습니다. 도시에는 책방이 많고 인터넷도 빠릅니다. 책을 손에 쥐고 책을 읽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삶을 사랑하려는 몸짓일까요. (4344.8.26.쇠.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