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식구 마실


 네 식구가 함께 마실을 한다. 기저귀를 뗀 첫째는 딱히 다른 옷가지를 안 챙기며 마실을 할 수 있다. 첫째는 속옷 한 벌과 손닦개 하나만 챙겨도 된다. 둘째는 갓난쟁이인 터라 기저귀 한 뭉치에다가 겉옷과 겉싸개와 속싸개까지 잔뜩 챙겨야 한다. 노상 집에서만 지내던 둘째가 집을 떠나 한나절 바깥에서 보낸다. 집에 있을 때 아이를 안고 마당으로 나오거나 멧길을 오르내리다 보면 으레 새근새근 잠들곤 한다. 네 식구가 함께 마실을 하는 동안에도 아이는 어머니 품이나 아버지 품에서 거의 잠든 채 지낸다.

 돌이켜보면 인천에서 살던 때, 첫째를 안고 골목마실을 하노라면 첫째는 내내 새근새근 잠들었고, 나는 잠든 아이를 안고 한손으로 덜덜 떨며 사진을 찍었다. 고작 두세 해 앞서 일인데, 오늘 다시 두세 해 앞서처럼 하라 하면 할 수 있을까. 내 몸이 버틸 수 있을까.

 시골길을 함께 걷고, 시골버스를 함께 탄다. 읍내에 나왔을 뿐이지만, 읍내는 시골집하고 견주면 퍽 시끄럽다. 나는 자꾸자꾸 시끄러운 소리에 걸린다. 혼자 자전거를 몰며 읍내에 나온다든지 첫째를 자전거에 태워 장마당 마실을 나온다든지 할 때에는 이렇게까지 시끄러운 줄 느끼지 못했다. 둘째를 안고 돌아다니면서 비로소 읍내 또한 참 시끄러운 데라고 새삼스레 느낀다. 왜냐하면, 둘째가 들을 만한 바람소리나 풀벌레소리나 새소리를 읍내에서라고 들을 수 있지는 않다. 거의 다니지 않는 자동차라 하더라도 자동차 소리가 많고, 가게에서 울리는 노랫소리가 퍼지며, 이곳저곳에서 공사하는 소리가 넘친다. 새로 짓는 가게에서 나는 페인트 냄새와 아스팔트가 달아오르는 냄새를 맡는다. 풀잎 냄새나 햇살이랑 바람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사람들은 흔히 ‘사회성’이니 ‘사회 적응’이니 ‘사회살이’를 이야기한다. 나는 이 ‘사회’가 조금도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기에, 두 아이가 사회를 알거나 겪거나 부대껴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느끼고, 사랑스러운 푸나무를 헤아리는 일보다 거룩하거나 좋은 삶이 있을까.

 과일집 짐차를 얻어 타며 집으로 돌아온다. 두 아이는 과일집 짐차에서 곯아떨어진다. 과일집 짐차가 읍내를 빠져나오는 길이 즐겁다. 길가에 줄지어 선 자동차가 안 보이고, 조그마한 시골길 둘레에 온통 논밭이거나 멧자락인 터전으로 접어드니 반갑다. (4344.8.23.물.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