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여든여섯 (2021.2.28.)

― 부산 〈온달서점〉



  술이 얼근한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곳이어야 길손집이 있는 나라입니다. 술집 곁에 길손집을 몰아놓으니 엇비슷하게 물드는구나 싶습니다. 수수한 살림집 한켠에 길손집이며 술집이며 옷집이며 밥집이며 책집이 나란히 있다면 이 나라가 좀 바뀌지 않을까요? 시끄러운 곳을 한쪽에 모으니 되레 지분거리지 싶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를 데리고 깃들 만한 길손집이 없다시피 해요. 아이하고 조용히 묵고, 아이가 가볍게 뛸 만한 마당이 있는 길손집이란 참 드뭅니다.


  지끈지끈한 머리로 길손집을 나서는데,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낯익은 소리가 골목을 울립니다. “아, 너로구나!” 우리 보금자리에서 날마다 만나는 직박구리가 부산 광복동 골목에서 자라는 조그마한 나무에 앉았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바라봅니다. 노래하던 직박구리도 노래를 멈추고 저를 마주봅니다. 둘은 한동안 서로 보면서 그대로 있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 눈짓으로 절을 하고서 보수동 쪽으로 걸어갑니다. 직박구리는 나뭇가지에 얌전히 있다가 다시 노래합니다.


  아침부터 일찍 여는 책집이 있고, 느긋하게 여는 책집이 있습니다. 바지런히 하루를 여는 〈온달서점〉에 들어갑니다. 온달지기님은 헌책을 모아서 가져오는 할아버지하고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너무 많이 들어와서 팔기 어려운 책이고요, 이 책은 가져오셔도 사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 사 가는 사람이 없나? 이래 깨끗한데?” 한참 두 분이 이야기하고서 책값을 치러 드리고는 “저 할아버지가 여든여섯이랍니다. 저런 나이에도 골목마다 돌면서 헌책을 모아서 가져오십니다. 대단하지 않으십니까?”


  여든여섯이란 나이는 무엇을 할 만한 몸일까요? 우리 삶터는 여든여섯 살 할매나 할배한테 무엇을 바랄까요? 여든여섯 해를 살아내면서 몸에 아로새기고 마음에 익힌 슬기나 빛이나 숨결이나 손길을 귀여겨듣고서 새롭게 슬기로 삭이도록 주고받는 징검다리나 이음터가 있을까요?


  곰곰이 보면 어르신 말씀을 나눌 징검다리가 없다시피 한데, 어린이 노래를 나눌 이음터도 나란히 없다시피 합니다. 돌봐주어야만 하는 나이인 여든여섯이 아니요, 가르치기만 해야 하는 나이인 여덟이나 여섯이 아니에요. 함께 생각하고 같이 살림하고 나란히 놀고 노래하며 하루를 꿈꿀 한집안이자 이웃이며 동무입니다.


  책을 석 자락 셈합니다. “오늘 마수를 해주시네. 고맙게 일찍부터 마수를 합니다. 요새는 열두 시가 되도록 마수도 못하는 날이 흔합니다.” 겉에서 슥 훑다가 지나가면 책이 부르는 소리를 못 듣습니다. 한 발만 디뎌도 이 소리를 듣고요.


ㅅㄴㄹ


《진달래꽃》(김소월, 대원사, 1991.11.15.첫/2001.11.10.새판)

《韓國 俗談의 妙味》(김도환, 제일문화사, 1978.10.3.)

《슬램덩크 31》(이노우에 타케히코/소년챔프 편집부 옮김, 대원, 1996.10.2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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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dalbook 2022-05-05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지가 참 좋아요.
설명도 그렇고요.

숲노래 2022-05-07 09:48   좋아요 0 | URL
말씀 고맙습니다.
보수동을 가꾸는
아름다운 책집이기에
책도 반갑고
사진도 곱게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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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2021.4.23.)

― 포항 〈리본책방〉



  봄바람이 흐드러지는 아침에 대전에서 포항으로 기차를 타고 갑니다. 기차나루에서 가까운 〈리본책방〉부터 찾아가려고 시내버스를 갈아탑니다. 포항이라면 사람도 많을 텐데 “포항으로 주민등록을 옮기자!”고 알리는 글월이 곳곳에 붙습니다. 어느덧 우리나라는 푸른별에서 아기가 가장 적게 태어나는 나라로 손꼽히니, 시골이 사라지기 앞서 나라부터 사라질 만하겠네 싶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고장에 안 살면서 ‘머리만 늘린다’고 포항이 나아질까요? 이런 눈속임을 포항뿐 아니라 전남이며 경남 여러 시골에서 해요. 아기도 어린이도 푸름이도 젊은이도 어르신도 살가이 어우러지면서 빛나는 고장으로 돌보는 벼슬판(정치행정)이라면 걱정할 일이 없어요. 벼슬판에서 돌라먹기나 검은짓이 끝없이 불거지니 젊은이는 사랑하고 등져요. 어린배움터에서 ‘성평등 교육·성교육’을 한다지만 막상 ‘사랑으로 살림짓기’는 가르치지도 보여주지도 못하는 얼거리라 어린이 마음밭이 넉넉하며 아름답게 자라기도 어렵다고 느낍니다. 배움수렁(입시지옥)하고 일수렁(취업난)을 푸는 길은 매우 쉽지만, 이 쉬운 길을 가지 않는 나라이니 까마득합니다.


  책집지기님이 바깥일을 보고 오시느라 책집 곁에서 드센 봄바람을 머금으며 기다립니다. 책집 앞자락에 그림책을 여럿 놓으셨기에 그림책을 둘러보고, 새로 노래꽃(동시)을 쓰고, 가만히 앉아서 구름바라기를 합니다.


  드디어 〈리본책방〉 여닫이를 밀고서 들어갑니다. 안쪽으로 깊습니다. 나들턱에 그림이 있고, 안쪽 자리에도 그림이 있습니다. 책집지기 아버님이 그리셨다는군요. 할아버지 그림을 천천히 하나둘 곳곳에 걸면 나날이 새롭게 피어나겠네 싶습니다. 할머니가 되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분이 차츰 느는데, 할아버지도 글이며 그림을 사랑하면 좋겠어요.


  포항에도 예전에 꽤 이름난 헌책집이 여럿 있었다고 들었으나 막상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새롭게 움트는 헌책집이자 모임터인 〈리본책방〉은 새로 태어나는 눈빛이자 서로 잇는 끈으로 이 고장에 손빛을 아로새겨 주리라 생각합니다. 마을빛이 널리 드리우려면 새책을 다루는 마을책집하고 헌책을 건사하는 마을책집이 나란히 있을 노릇입니다.


  새로 태어나서 읽힌 책이 돌고돌 틈이 있을 때에 비로소 책살림(독서문화)이 흐드러집니다. 모든 사람이 넉넉살림은 아닌 터라, 또 새로 나온 책을 모든 사람이 다 알아보지 못하는 터라, 책마을로 크려면 헌책집이 꼭 있어야 합니다. 새로짓기 곁에는 새로살림이 있어요. 피어나기 옆에는 거듭나기가 있습니다.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노래하려는 마음이라면 이 길은 늘 즐거이 사랑이 됩니다.


ㅅㄴㄹ


《쓰고 달콤하게》(문정민, 클북, 2019.12.17.)

《돌아오지 않는 여행》(체리 가라드/정인영 옮김, 수문출판사, 1994.7.25.)

《나비를 보는 고통》(박찬일, 문학과지성사, 1999.4.30.)

《참 맑은 물살》(곽재구, 창작과비평사, 1995.11.10.)

《暗靑의 문신》(허영자, 미래사, 1991.11.15.)

《나는 어머니와 산다》(한기호, 어른의시간, 2015.6.30.)

《훈장》(이외수, 시몬, 1989.3.3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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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못 (2021.5.12.)

― 서울 〈호수책장〉



  시골사람한테 서울마실은 가장 가깝습니다. 이 시골에서 저 시골로 오가는 길은 서울을 다녀오는 길보다 단출하며 길삯마저 적게 들어요. 곰곰이 보면 시골에서도 읍내나 면내를 잇는 길이 뻥뻥 뚫리고, 시골에서 구경터(관광지)로 삼는 곳도 길이 잘 뚫립니다만,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가는 시골버스는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나라가 모든 사람을 온통 서울바라기로 몰아붙인 지 꽤 깁니다. 얼추 즈믄 해가 넘을 테지요. 고구려·백제·신라·가야·부여로 알맞게 나누던 작은 울타리일 적에는 곳곳이 사이좋게 어울릴 만했다면, 한나라로 삼는다며 크게 치고받으면서 이웃을 무너뜨릴 적에는 서울 한 곳만 키우려 했어요.


  굳이 한나라여야 하지 않습니다. 아니, 나라가 없어도 될 만합니다. 다스리거나 이끄는 이가 없이 누구나 스스로 살림을 짓고 사랑을 속삭이면서 삶을 노래할 적에 참다이 아름다우면서 즐겁다고 느껴요. 다스리거나 이끄는 이가 나오기에 따돌림질이나 괴롭힘질이 불거져요. 함께 살림을 지으면서 사랑하는 자리에는 깍두기가 없습니다.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기에 외려 하나가 되고, 하나로 묶어세우면서 되레 갈기갈기 쪼개지면서 미워하고 시샘하고 억누른다고 느낍니다.


  처음에는 논밭이었고, 새마을로 가꾸면서 높다란 집이 섰고, 이제는 집보다 우람하게 자라난 나무가 퍽 많은 서울 강서에 〈호수책장〉이 있습니다. 못에는 고니랑 오리가 노닙니다. 못가에서는 온갖 숲짐승이 이웃이 되어 목을 축입니다. 예부터 고니나 한새(황새)나 오리가 내려앉는 곳은 사람이 살기에 좋다고 여겼습니다. ‘오리나무’는 오리를 비롯해 사람이 알콩달콩 지내던 터에서 잘 자랍니다.


  마을책집은 둘레 여러 배움터 곁에 있습니다. 배움터를 오가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다리를 쉬고 눈을 밝히면서 깃들 샘터입니다. 어린이는 어린 눈빛으로, 푸름이는 푸른 눈망울로, 어른은 철드는 눈길로 손에 쥘 그림책이에요. 다 다른 우리는 다 다르면서 새롭게 그림책을 마음에 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한가람이 흐르는데, 서울 곳곳에 고니못에 오리못에 한새못이 있으면 좋겠어요. 나무그늘에 풀밭에 꽃뜰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들어가지 마시오’ 하고 울타리를 치는 데가 아닌, ‘맨발로 들어가시오’ 하고 활짝 여는 빈터랑 쉼터가 늘면 좋겠습니다. 마을에 깃든 책집은 마을이웃한테 이런 이야기를 속삭이고 이런 생각을 펴겠지요. 햇살이며 햇빛이며 햇볕이 쏟아지는 〈호수책장〉 길턱에는 매미 허물이 있어요. 이 아이들은 어느 나무 밑에서 꿈꾸다가 날개를 달고서 노래하는 몸으로 피어나고는, 이곳에서 우리 손길을 기다릴까요?


ㅅㄴㄹ


《내가 지구별에 온 날》(나비연, 있는그대로, 2020.11.11.)

《해녀 비바리와 고냉이》(오은미, 오울, 2019.11.30.)

《연필》(김혜은, 향, 2021.4.30.)

《풀밭에 숨은 보물 찾기》(박신영, 사계절, 2020.5.15.)

《같을까? 다를까? 개구리와 도롱뇽》(안은영, 천개의바람, 2016.2.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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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와 보셔요 (2021.5.11.)

― 인천 〈북극서점〉



  그저 길에 서면 어디로 가야 할는지 몰라 헤맵니다. 자동차가 시끄럽고, 잿빛집이 해바람을 가리며, 땅바닥은 풀밭이나 흙이 아닌 딱딱한 잿빛돌이나 까만돌이거든요. 그저 숲에 서면서 어떻게 해야 좋을는지 몰라 헤맨 적이 없습니다. 숲에서라면 여기에 머물러도 좋고, 봉우리나 등성이 쪽으로 가도 좋으며, 빙글빙글 돌아도 좋아요. 푸르게 우거지는 곳에서는 가만히 눈을 감고서 어디에나 드러눕습니다.


  큰고장으로 볼일을 보러 갈 적마다 책집을 찾아갑니다. 어느 고장이든 사뿐히 찾아가면서 그곳에 깃든 마을책집으로 걸어갑니다. 마을책집이 없는 고장은 어쩐지 쌀쌀맞습니다. 마을책집이 있는 고장은 그곳 이웃님한테 “요 가까이에 그 책집 있는데 가 보셨나요?” 하고 여쭙니다.


  마을책집에는 책을 열이나 스물씩 한꺼번에 사려고 찾아가지 않습니다. 둘러보다가 맞춤한 책이 없으면 꾸벅 절을 하고 돌아나오면 되고, 둘러보다가 눈에 뜨이는 책이 있으면 한두 자락을 집으면 됩니다. 길가에서 보면 모를 만한 마을책집입니다. 들어와 보면 시끌시끌한 바깥소리를 고스란히 막고서 큰고장 한복판에서 ‘종이숲’을 이룬 풋풋한 내음을 누리는 쉼터입니다.


  슥 지나치기만 하면 몰라요. 모두 내려놓고서 골목을 사뿐히 걸어 보셔요. 턱을 넘지 않으면 모르지요. 무엇을 바란다는 생각을 지우고서 가만히 열고서 넘어요. 인천 부평에 있는 〈북극서점〉으로 찾아가는 5월 첫무렵 햇볕이 뜨겁습니다. 굴포천에는 푸나무가 우거집니다. 고맙게도 푸나무가 마음껏 우거져도 그대로 두는군요. 뜰지기(정원사)를 부려서 매만지지 않으면 좋겠어요. 사람 손길을 안 받고서 짙푸르게 피어나기에 숲이거든요. 마을책집이란 마을지기인 책집지기가 하나씩 헤아려서 건사한 책으로 꾸민 종이숲입니다. 이 종이숲에서는 ‘왜 이 책을 골라서 이렇게 두셨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두 손에 종이내음을 묻힙니다.


  더 좋거나 훌륭한 책을 만나러 마을책집에 가지 않아요. 마을에서 푸르게 피어나는 길에 동무할 책을 새롭게 마주하려고 마을책집에 갑니다. 더 빨리 읽거나 더 많이 읽으려고 마을책집에 가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피면서 스스로 빛날 적에 즐겁게 웃고 노래할 만한가를 돌아보려고 마을책집에 갑니다.


  푸른숲에 깃들지 않고서는 푸른빛을 알 길이 없습니다. 마을책숲에 깃들지 않고서는 마을빛하고 책빛을 읽을 길이 없습니다. 걸어갑니다. 혼자서도 걷고, 동무랑 나즈막히 수다를 펴면서 걷습니다. 자전거로 바람을 가르고, 바구니에 책 몇 자락을 담아서 풀내음이 싱그러운 냇가에 가서 풀밭에 폭 앉아서 책을 읽습니다.


ㅅㄴㄹ


《Big bird's day on the farm》(Cathi Rosenberg-Turow 글·Maggie Swanson 그림, Golden Books, 1985)

《플란더즈의 개》(위다/송숙영 옮김, 삼신, 1986.9.25.)

- ‘딱따구리도서관 세계명작’ 몰래책

《어린이세계 297호》(강인덕 엮음, 극동문제연구소, 1989.9.1.)

《새의 언어》(데이비드 앨런 시블리/김율희 옮김, 윌북, 2021.4.5.)

《der Maulwurf und der kleine Schneemann》(Zdenek Miler, leiv Leipziger Kinderbuch, 2016/2019)

《Der Maulwurf im Fruehling》(Hana Doskocilova 글·Zdenek Miler 그림, leiv Leipziger Kinderbuch, 2007/2018)

《스스스스스》(슬로보트 글·방새미 그림, 북극서점, 2020.7.4.)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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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집이 태어나 마을이 피어난다 (2021.4.23.)

― 포항 〈달팽이책방〉



  아침에 포항에 깃들어 책집마실을 하다가 어찌해야 싶어 한참 헤맸습니다. 오래오래 곁에 두던 빛꽃눈(사진기 렌즈)이 숨을 거두었거든요. 이 빛꽃눈이 해롱거리는 줄 진작 알았으나 더 손질을 맡기지 않았어요. 스무 해란 나날을 함께하며 손질을 석 벌 맡겼으니 이제는 쉴 때일 테지요. 마침 포항에 빛꽃집(사진가게)이 있습니다. 웃돈을 치러 빛꽃눈을 새로 장만합니다. 살림돈을 허느라 후줄근하지만 써야 할 곳에 즐겁게 쓰고서 다시 차곡차곡 벌면 됩니다.


  닳고 낡아 맨들맨들한 빛꽃눈은 등짐에 깊숙이 넣습니다. 새 빛꽃눈을 쓰다듬으면서 〈달팽이책방〉으로 갑니다. 기찻길 기스락에 ‘만물수퍼마켓’이 그대로입니다. 〈달팽이〉로 걸어가는 길에 새로 들어선 가게를 곳곳에서 봅니다. 이제 〈달팽이〉 앞에 섭니다. 노랫가락이 가볍게 흐르고 책손이며 찻손이 꾸준히 드나듭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마을이 달라진다는 옛말이 있는데, 책집이 태어나면 마을이 피어난다는 새말을 하고 싶습니다. 아이가 뛰놀기에 마을이 빛난다면, 책집이 불을 밝히기에 마을이 사랑스럽지 싶습니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마을이 무르익는다면, 책집이 열 해 스무 해를 뿌리내리기에 마을이 아름답지 싶어요.


  요 몇 해 사이에 미처 찾아가지 못한 대구 〈대륙서점〉이 지난 2019년 6월 19일에 닫은 줄 뒤늦게 알았어요. 일흔 해를 이은 마을책집을 닫는 마음이란 어떠할까요. 마을에서 찾지 않기에 마을책집이 닫는다고도 하지만, 이보다는 마을일꾼이어야 할 사람(공무원·교사·시장·군수·의원)이 스스로 두 다리로 거닐며 마을책집을 찾지 않은 탓이 크지 싶습니다. 벼슬자리에 선 이들한테 으레 씽씽이(자가용)를 내주지만, 이제는 씽씽이 아닌 ‘마을책집에 가서 책을 사서 읽도록’ 해야지 싶어요. 마을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마을가게에서 살림을 장만하며, 벼슬꾼 스스로 마을빛이 될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대수롭습니다. 지은이가 손수 지은 살림꽃을 아로새긴 꾸러미가 책이기에 대수롭지는 않습니다. 책은 대단합니다. 지은이가 손수 살아내는 오늘꽃을 갈무리한 꾸러미가 책이라서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글·그림·빛꽃으로 그러모아 꾸러미로 엮은 책이란, 언제나 사랑으로 어질며 상냥히 슬기를 담아낸 노랫가락이기에 대수로우면서 대단합니다. 혼자 움켜쥐려는 앎빛이 아닌, 이웃하고 나눌 앎빛을 그리면서 이야기로 모두 풀어내어 값싸게 익히고 즐기도록 짓는 책입니다.


  마을을 사랑하기에 마을 한켠에 책집을 열어요. 마을 이웃 스스로 마을빛이 되어 저마다 다르면서 새롭게 하루를 밝히도록 북돋우는 징검다리가 되도록 책집을 엽니다. 달팽이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아요. 달팽이다운 날갯짓으로 눈부십니다.


ㅅㄴㄹ


《누가 시를 읽는가》(프레드 사사키·돈 셰어 엮음/신해경 옮김, 봄날의책, 2019.3.25.)

《저는 은행 경비원입니다》(히읗, 히읗, 2021.1.19.)

《보이지 않는 잉크》(토니 모리슨/이다희 옮김, 바다출판사, 2021.1.29.)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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