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여든여섯 (2021.2.28.)

― 부산 〈온달서점〉



  술이 얼근한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곳이어야 길손집이 있는 나라입니다. 술집 곁에 길손집을 몰아놓으니 엇비슷하게 물드는구나 싶습니다. 수수한 살림집 한켠에 길손집이며 술집이며 옷집이며 밥집이며 책집이 나란히 있다면 이 나라가 좀 바뀌지 않을까요? 시끄러운 곳을 한쪽에 모으니 되레 지분거리지 싶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를 데리고 깃들 만한 길손집이 없다시피 해요. 아이하고 조용히 묵고, 아이가 가볍게 뛸 만한 마당이 있는 길손집이란 참 드뭅니다.


  지끈지끈한 머리로 길손집을 나서는데,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낯익은 소리가 골목을 울립니다. “아, 너로구나!” 우리 보금자리에서 날마다 만나는 직박구리가 부산 광복동 골목에서 자라는 조그마한 나무에 앉았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바라봅니다. 노래하던 직박구리도 노래를 멈추고 저를 마주봅니다. 둘은 한동안 서로 보면서 그대로 있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 눈짓으로 절을 하고서 보수동 쪽으로 걸어갑니다. 직박구리는 나뭇가지에 얌전히 있다가 다시 노래합니다.


  아침부터 일찍 여는 책집이 있고, 느긋하게 여는 책집이 있습니다. 바지런히 하루를 여는 〈온달서점〉에 들어갑니다. 온달지기님은 헌책을 모아서 가져오는 할아버지하고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너무 많이 들어와서 팔기 어려운 책이고요, 이 책은 가져오셔도 사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 사 가는 사람이 없나? 이래 깨끗한데?” 한참 두 분이 이야기하고서 책값을 치러 드리고는 “저 할아버지가 여든여섯이랍니다. 저런 나이에도 골목마다 돌면서 헌책을 모아서 가져오십니다. 대단하지 않으십니까?”


  여든여섯이란 나이는 무엇을 할 만한 몸일까요? 우리 삶터는 여든여섯 살 할매나 할배한테 무엇을 바랄까요? 여든여섯 해를 살아내면서 몸에 아로새기고 마음에 익힌 슬기나 빛이나 숨결이나 손길을 귀여겨듣고서 새롭게 슬기로 삭이도록 주고받는 징검다리나 이음터가 있을까요?


  곰곰이 보면 어르신 말씀을 나눌 징검다리가 없다시피 한데, 어린이 노래를 나눌 이음터도 나란히 없다시피 합니다. 돌봐주어야만 하는 나이인 여든여섯이 아니요, 가르치기만 해야 하는 나이인 여덟이나 여섯이 아니에요. 함께 생각하고 같이 살림하고 나란히 놀고 노래하며 하루를 꿈꿀 한집안이자 이웃이며 동무입니다.


  책을 석 자락 셈합니다. “오늘 마수를 해주시네. 고맙게 일찍부터 마수를 합니다. 요새는 열두 시가 되도록 마수도 못하는 날이 흔합니다.” 겉에서 슥 훑다가 지나가면 책이 부르는 소리를 못 듣습니다. 한 발만 디뎌도 이 소리를 듣고요.


ㅅㄴㄹ


《진달래꽃》(김소월, 대원사, 1991.11.15.첫/2001.11.10.새판)

《韓國 俗談의 妙味》(김도환, 제일문화사, 1978.10.3.)

《슬램덩크 31》(이노우에 타케히코/소년챔프 편집부 옮김, 대원, 1996.10.2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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