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고니못 (2021.5.12.)

― 서울 〈호수책장〉



  시골사람한테 서울마실은 가장 가깝습니다. 이 시골에서 저 시골로 오가는 길은 서울을 다녀오는 길보다 단출하며 길삯마저 적게 들어요. 곰곰이 보면 시골에서도 읍내나 면내를 잇는 길이 뻥뻥 뚫리고, 시골에서 구경터(관광지)로 삼는 곳도 길이 잘 뚫립니다만,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가는 시골버스는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나라가 모든 사람을 온통 서울바라기로 몰아붙인 지 꽤 깁니다. 얼추 즈믄 해가 넘을 테지요. 고구려·백제·신라·가야·부여로 알맞게 나누던 작은 울타리일 적에는 곳곳이 사이좋게 어울릴 만했다면, 한나라로 삼는다며 크게 치고받으면서 이웃을 무너뜨릴 적에는 서울 한 곳만 키우려 했어요.


  굳이 한나라여야 하지 않습니다. 아니, 나라가 없어도 될 만합니다. 다스리거나 이끄는 이가 없이 누구나 스스로 살림을 짓고 사랑을 속삭이면서 삶을 노래할 적에 참다이 아름다우면서 즐겁다고 느껴요. 다스리거나 이끄는 이가 나오기에 따돌림질이나 괴롭힘질이 불거져요. 함께 살림을 지으면서 사랑하는 자리에는 깍두기가 없습니다.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기에 외려 하나가 되고, 하나로 묶어세우면서 되레 갈기갈기 쪼개지면서 미워하고 시샘하고 억누른다고 느낍니다.


  처음에는 논밭이었고, 새마을로 가꾸면서 높다란 집이 섰고, 이제는 집보다 우람하게 자라난 나무가 퍽 많은 서울 강서에 〈호수책장〉이 있습니다. 못에는 고니랑 오리가 노닙니다. 못가에서는 온갖 숲짐승이 이웃이 되어 목을 축입니다. 예부터 고니나 한새(황새)나 오리가 내려앉는 곳은 사람이 살기에 좋다고 여겼습니다. ‘오리나무’는 오리를 비롯해 사람이 알콩달콩 지내던 터에서 잘 자랍니다.


  마을책집은 둘레 여러 배움터 곁에 있습니다. 배움터를 오가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다리를 쉬고 눈을 밝히면서 깃들 샘터입니다. 어린이는 어린 눈빛으로, 푸름이는 푸른 눈망울로, 어른은 철드는 눈길로 손에 쥘 그림책이에요. 다 다른 우리는 다 다르면서 새롭게 그림책을 마음에 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한가람이 흐르는데, 서울 곳곳에 고니못에 오리못에 한새못이 있으면 좋겠어요. 나무그늘에 풀밭에 꽃뜰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들어가지 마시오’ 하고 울타리를 치는 데가 아닌, ‘맨발로 들어가시오’ 하고 활짝 여는 빈터랑 쉼터가 늘면 좋겠습니다. 마을에 깃든 책집은 마을이웃한테 이런 이야기를 속삭이고 이런 생각을 펴겠지요. 햇살이며 햇빛이며 햇볕이 쏟아지는 〈호수책장〉 길턱에는 매미 허물이 있어요. 이 아이들은 어느 나무 밑에서 꿈꾸다가 날개를 달고서 노래하는 몸으로 피어나고는, 이곳에서 우리 손길을 기다릴까요?


ㅅㄴㄹ


《내가 지구별에 온 날》(나비연, 있는그대로, 2020.11.11.)

《해녀 비바리와 고냉이》(오은미, 오울, 2019.11.30.)

《연필》(김혜은, 향, 2021.4.30.)

《풀밭에 숨은 보물 찾기》(박신영, 사계절, 2020.5.15.)

《같을까? 다를까? 개구리와 도롱뇽》(안은영, 천개의바람, 2016.2.2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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