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봄바람 (2021.4.23.)

― 포항 〈리본책방〉



  봄바람이 흐드러지는 아침에 대전에서 포항으로 기차를 타고 갑니다. 기차나루에서 가까운 〈리본책방〉부터 찾아가려고 시내버스를 갈아탑니다. 포항이라면 사람도 많을 텐데 “포항으로 주민등록을 옮기자!”고 알리는 글월이 곳곳에 붙습니다. 어느덧 우리나라는 푸른별에서 아기가 가장 적게 태어나는 나라로 손꼽히니, 시골이 사라지기 앞서 나라부터 사라질 만하겠네 싶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고장에 안 살면서 ‘머리만 늘린다’고 포항이 나아질까요? 이런 눈속임을 포항뿐 아니라 전남이며 경남 여러 시골에서 해요. 아기도 어린이도 푸름이도 젊은이도 어르신도 살가이 어우러지면서 빛나는 고장으로 돌보는 벼슬판(정치행정)이라면 걱정할 일이 없어요. 벼슬판에서 돌라먹기나 검은짓이 끝없이 불거지니 젊은이는 사랑하고 등져요. 어린배움터에서 ‘성평등 교육·성교육’을 한다지만 막상 ‘사랑으로 살림짓기’는 가르치지도 보여주지도 못하는 얼거리라 어린이 마음밭이 넉넉하며 아름답게 자라기도 어렵다고 느낍니다. 배움수렁(입시지옥)하고 일수렁(취업난)을 푸는 길은 매우 쉽지만, 이 쉬운 길을 가지 않는 나라이니 까마득합니다.


  책집지기님이 바깥일을 보고 오시느라 책집 곁에서 드센 봄바람을 머금으며 기다립니다. 책집 앞자락에 그림책을 여럿 놓으셨기에 그림책을 둘러보고, 새로 노래꽃(동시)을 쓰고, 가만히 앉아서 구름바라기를 합니다.


  드디어 〈리본책방〉 여닫이를 밀고서 들어갑니다. 안쪽으로 깊습니다. 나들턱에 그림이 있고, 안쪽 자리에도 그림이 있습니다. 책집지기 아버님이 그리셨다는군요. 할아버지 그림을 천천히 하나둘 곳곳에 걸면 나날이 새롭게 피어나겠네 싶습니다. 할머니가 되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분이 차츰 느는데, 할아버지도 글이며 그림을 사랑하면 좋겠어요.


  포항에도 예전에 꽤 이름난 헌책집이 여럿 있었다고 들었으나 막상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새롭게 움트는 헌책집이자 모임터인 〈리본책방〉은 새로 태어나는 눈빛이자 서로 잇는 끈으로 이 고장에 손빛을 아로새겨 주리라 생각합니다. 마을빛이 널리 드리우려면 새책을 다루는 마을책집하고 헌책을 건사하는 마을책집이 나란히 있을 노릇입니다.


  새로 태어나서 읽힌 책이 돌고돌 틈이 있을 때에 비로소 책살림(독서문화)이 흐드러집니다. 모든 사람이 넉넉살림은 아닌 터라, 또 새로 나온 책을 모든 사람이 다 알아보지 못하는 터라, 책마을로 크려면 헌책집이 꼭 있어야 합니다. 새로짓기 곁에는 새로살림이 있어요. 피어나기 옆에는 거듭나기가 있습니다.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노래하려는 마음이라면 이 길은 늘 즐거이 사랑이 됩니다.


ㅅㄴㄹ


《쓰고 달콤하게》(문정민, 클북, 2019.12.17.)

《돌아오지 않는 여행》(체리 가라드/정인영 옮김, 수문출판사, 1994.7.25.)

《나비를 보는 고통》(박찬일, 문학과지성사, 1999.4.30.)

《참 맑은 물살》(곽재구, 창작과비평사, 1995.11.10.)

《暗靑의 문신》(허영자, 미래사, 1991.11.15.)

《나는 어머니와 산다》(한기호, 어른의시간, 2015.6.30.)

《훈장》(이외수, 시몬, 1989.3.30.)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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