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들어와 보셔요 (2021.5.11.)

― 인천 〈북극서점〉



  그저 길에 서면 어디로 가야 할는지 몰라 헤맵니다. 자동차가 시끄럽고, 잿빛집이 해바람을 가리며, 땅바닥은 풀밭이나 흙이 아닌 딱딱한 잿빛돌이나 까만돌이거든요. 그저 숲에 서면서 어떻게 해야 좋을는지 몰라 헤맨 적이 없습니다. 숲에서라면 여기에 머물러도 좋고, 봉우리나 등성이 쪽으로 가도 좋으며, 빙글빙글 돌아도 좋아요. 푸르게 우거지는 곳에서는 가만히 눈을 감고서 어디에나 드러눕습니다.


  큰고장으로 볼일을 보러 갈 적마다 책집을 찾아갑니다. 어느 고장이든 사뿐히 찾아가면서 그곳에 깃든 마을책집으로 걸어갑니다. 마을책집이 없는 고장은 어쩐지 쌀쌀맞습니다. 마을책집이 있는 고장은 그곳 이웃님한테 “요 가까이에 그 책집 있는데 가 보셨나요?” 하고 여쭙니다.


  마을책집에는 책을 열이나 스물씩 한꺼번에 사려고 찾아가지 않습니다. 둘러보다가 맞춤한 책이 없으면 꾸벅 절을 하고 돌아나오면 되고, 둘러보다가 눈에 뜨이는 책이 있으면 한두 자락을 집으면 됩니다. 길가에서 보면 모를 만한 마을책집입니다. 들어와 보면 시끌시끌한 바깥소리를 고스란히 막고서 큰고장 한복판에서 ‘종이숲’을 이룬 풋풋한 내음을 누리는 쉼터입니다.


  슥 지나치기만 하면 몰라요. 모두 내려놓고서 골목을 사뿐히 걸어 보셔요. 턱을 넘지 않으면 모르지요. 무엇을 바란다는 생각을 지우고서 가만히 열고서 넘어요. 인천 부평에 있는 〈북극서점〉으로 찾아가는 5월 첫무렵 햇볕이 뜨겁습니다. 굴포천에는 푸나무가 우거집니다. 고맙게도 푸나무가 마음껏 우거져도 그대로 두는군요. 뜰지기(정원사)를 부려서 매만지지 않으면 좋겠어요. 사람 손길을 안 받고서 짙푸르게 피어나기에 숲이거든요. 마을책집이란 마을지기인 책집지기가 하나씩 헤아려서 건사한 책으로 꾸민 종이숲입니다. 이 종이숲에서는 ‘왜 이 책을 골라서 이렇게 두셨을까?’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두 손에 종이내음을 묻힙니다.


  더 좋거나 훌륭한 책을 만나러 마을책집에 가지 않아요. 마을에서 푸르게 피어나는 길에 동무할 책을 새롭게 마주하려고 마을책집에 갑니다. 더 빨리 읽거나 더 많이 읽으려고 마을책집에 가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피면서 스스로 빛날 적에 즐겁게 웃고 노래할 만한가를 돌아보려고 마을책집에 갑니다.


  푸른숲에 깃들지 않고서는 푸른빛을 알 길이 없습니다. 마을책숲에 깃들지 않고서는 마을빛하고 책빛을 읽을 길이 없습니다. 걸어갑니다. 혼자서도 걷고, 동무랑 나즈막히 수다를 펴면서 걷습니다. 자전거로 바람을 가르고, 바구니에 책 몇 자락을 담아서 풀내음이 싱그러운 냇가에 가서 풀밭에 폭 앉아서 책을 읽습니다.


ㅅㄴㄹ


《Big bird's day on the farm》(Cathi Rosenberg-Turow 글·Maggie Swanson 그림, Golden Books, 1985)

《플란더즈의 개》(위다/송숙영 옮김, 삼신, 1986.9.25.)

- ‘딱따구리도서관 세계명작’ 몰래책

《어린이세계 297호》(강인덕 엮음, 극동문제연구소, 1989.9.1.)

《새의 언어》(데이비드 앨런 시블리/김율희 옮김, 윌북, 2021.4.5.)

《der Maulwurf und der kleine Schneemann》(Zdenek Miler, leiv Leipziger Kinderbuch, 2016/2019)

《Der Maulwurf im Fruehling》(Hana Doskocilova 글·Zdenek Miler 그림, leiv Leipziger Kinderbuch, 2007/2018)

《스스스스스》(슬로보트 글·방새미 그림, 북극서점, 2020.7.4.)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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