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책을 쓴 옷차림 (2018.6.28.)

―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인천 동구 금곡로 5-1

032.766.9523.



  책을 쓴 사람은 사내이거나 가시내입니다. 또는 사내도 가시내도 아닙니다. 책을 엮고 꾸미며 펴내는 사람은, 또 책을 다루는 사람은, 사내이거나 가시내입니다. 또는 사내도 가시내도 아닙니다. 책이 되려면 종이하고 잉크가 있어야 하는데, 숲에서 나무가 잘 자라도록 돌본 사람은 사내이거나 가시내입니다. 또는 사내도 가시내도 아닙니다. 나무를 다루어 종이로 바꾼 사람은 사내이거나 가시내입니다. 또는 사내도 가시내도 아닙니다.


  종이공장에서는 나무를 누가 돌보고 베었는가를 따질까요? 출판사에서는 종이를 누가 다루었는가를 알아볼까요?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은 인쇄·제본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사내인지 가시내인지 살필까요? 책을 짐차에 실어서 책집으로 나르는 일꾼이 민소매인지 반소매인지를 들여다볼까요?


  점글을 읽는 사람은 점글을 볼 뿐, 점글을 새긴 이가 사내이거나 가시내이거나 가리지 않습니다. 점글을 새긴 이가 뚱뚱하거나 날씬하거나 따지지 않습니다. 손말을 나누는 사람은 손짓을 읽을 뿐, 손말을 펴는 이가 어떤 목소리인가를 살피지 않습니다. 눈으로 글씨를 읽거나 귀로 말을 듣는다면 얼굴이나 차림새를 들여다볼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생각해 볼 노릇이에요. 우리 가슴을 적신 글을 쓴 사람이 할머니라서 섭섭한지요? 우리 눈물을 적시거나 웃음꽃을 지핀 글을 쓴 사람이 어린이라서 서운한지요? 가시내가 쓴 글만 읽어야 할까요? 사내가 쓴 글은 읽으면 안 될까요? 바지만 입는 가시내가 쓴 글은 외곬일까요? 치마를 두르는 사내가 쓴 글은 엉터리일까요?


  고흥에 있는 중학교 푸름이를 만나서 이야기를 펴는 자리에 ‘민소매·반바지’ 차림으로 갔다고 해서, 이다음에 보성군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에서 그곳 푸름이를 만나서 이야기를 펼 자리가 사라졌습니다. 교사·교장·학부모가 ‘민소매·반바지’ 차림인 ‘불량’한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고 했다더군요. 한여름에 긴소매·긴바지를 입어야 ‘불량하지 않은 강사 차림새’라고 하더군요.


  인천에서 이야기꽃을 펴는 일이 있어서 왔다가 손전화 쪽글로 이런 말을 받았습니다. 배다리에 있는 헌책집 〈아벨서점〉에서 이 책 저 책 고르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저는 헌책집 일꾼이 잘생기거나 잘 차려입은 곳을 찾아가지 않습니다. 저는 으리으리하거나 번듯하게 꾸민 책집을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새책을 장만한다고 하더라도 겉이 긁혔대서 속을 못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비오는 날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 책을 읽고 걷다가 그만 책이 미끄덩 바닥에 떨어져 옴팡 젖었어도 얼른 손천으로 닦아서 말린 다음에 읽습니다. 빗물에 책이 불어도 줄거리나 알맹이는 하나도 안 다칩니다.


  아이들하고 누릴 그림책 《파우스트와 필로우》(까롤린느 그레고와르/유혜자 옮김, 중앙출판사, 2000), 《모그와 고양이 대회》(주디스 커/장미란 옮김, 한국몬테소리, 2003), 《사과씨 공주》(제인 레이/고혜경 옮김, 웅진주니어, 2007)를 고릅니다. 아름다이 태어났어도 새책집에서 사라진 그림책이 많습니다. 《I'm a big sister》(Joanna Cole(글)·Maxie Chambliss(그림), morrow, 1997)하고 《the new land, a first year on the Prairie》(Marilynn Reynolds(글)·Stephen McCallum(그림), orca book, 1997)도 고릅니다. 모두 새롭게 숨결을 북돋우는 꽃다운 책이라고 여깁니다.


  널리 팔리거나 읽히면서 아름다운 책이 있다면, 널리 팔리거나 읽히지만 안 아름다운 책이 있습니다. 어느 모습을 볼 적에 우리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즐거운 길이 될까요. 겉모습일까요, 속차림일까요. 《ちびまる子ちゃん》(さくらももこ, 集英社, 1990)하고 《おぼあちゃん, だいすき》(olympus, ?)를 손에 쥐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여태 숱한 책집에서 온갖 책을 만나서 장만하고 읽는 동안 다른 사람 눈치를 본 일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사서 읽기에 구태여 저까지 사서 읽어야 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저는 제 마음을 사랑으로 가꾸는 길에 징검다리가 되는 책이라고 스스로 느껴야 비로소 쳐다보고, 집어들고, 펼치고, 서서 다 읽은 다음에 기쁘게 장만하며 살았습니다. 언제나 책집에서 다 읽어 보고서 삽니다.


  이렇게 책을 사서 읽으니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요. “아니, 책집에서 다 읽었다면서요? 다 읽은 책을 왜 사요?” 저는 웃으며 대꾸합니다. “아니, 책을 안 읽어 보고 사나요? 보금자리에서 함께 살아갈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함께 사나요? 저는 한 판 읽은 다음에 다시 쳐다볼 일이 없는 책은 살 마음이 없어요. 되읽으면서 가슴을 적실 아름다운 책이라고 여기기에 기꺼이 주머니를 털어서 장만합니다. 이 몸으로 살아가며 적어도 열 판은 읽을 만한 책이어야 사지요. 때로는 열 판은커녕 한 판 읽기도 지겨운 책을 잘못 고르기도 합니다만, 두고두고 건사해서 아이한테 물려주고 싶은, 아이하고 함께 읽고픈 책을 사려면 미리 다 읽어 봐야 해요. 안 읽어 보고서 책을 살 수 있다면 하느님이거나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집을 고릅니다.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송찬호, 문학과지성사, 2009), 《흰 책》(정끝별, 민음사, 2000), 《우주가 잠들었을 때 나는 달이 되었다》(임경자, 문학의전당, 2014)를 살피는데, 썩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아니, 그리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시집을 사기는 사면서 푸념을 합니다. 시를 쓰는 분은 너무 글멋을 부립니다. 삶을 고스란히 노래하듯 그리는 길하고 꽤 동떨어집니다.


  비매품으로 나온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작 의궤》(국립중앙박물관, 2011)를 구경한 다음 《경상도 우리 탯말》(윤명희·이대희·이성배·심인자·하루비, 소금나무, 2006)을 손에 쥡니다.


우리 경상도 말은 존칭어가 발달되지 못한 것이 특징 중의 하나이다. 서울말에서 볼 수 있는 층층의 존칭어와 자신을 낮추는 겸양어도 발달돼 있지 않다. 세련된 수사나 말을 아름답게 꾸며서 하려는 언어적 매카니즘이 적은 것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때로 마음을 숨기는 반어적 표현을 하기도 하지만 대체료 표현이 직설적이다. 모음의 수도 전국의 탯말 가운데 가장 적고 다혈질적인 성격과 맞물려 말도 무척 빠르다. 제한된 시간에 많은 정보를 표현하려다 보니 음절이 생략되는 축약현상도 전국 어느 지역보다 가장 두드러진다. (22쪽)


  퍽 옛날에 나온 책을 되살렸다고 하는 《조선의 귀신》(村山智順/김희경 옮김, 동문선, 1990)을 봅니다. 한겨레 스스로 아직 갈무리하지 못했을 무렵 일본 지식인하고 학자가 이 나라 이야기를 꽤 많이 남겨 놓았습니다. 아니, 말을 제대로 해야겠지요. 이 나라 지식인하고 학자는 이 나라 수수한 살림살이를 눈여겨보지 않았어요. 이 나라 먹물붙이는 언제나 임금 둘레에 붙어서 떡고물을 받아먹는 짓을 했습니다. 비록 일본사람이 갈무리한 책이라 하지만, 일본사람은 한국을 식민지로 삼으려는 뜻이었든 이웃으로 마주하는 몸짓이었든 임금 둘레 떡고물을 책으로 엮기보다는 수수한 시골사람 살림을 여미는 책을 참 많이 내놓았습니다.


현재 우리들의 눈에 비치는 조선의 생활·문화·사상의 제현상은 이 비유에 있어서의 이파리이고 꽃이다. 이 이파리나 꽃의 성정을 이해하고, 이것을 아름답게 꽃피우기 위해서는 아마도 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 저급한 사상, 민간신앙의 연구부터 착수하여야 할 것이다. (13쪽)


  그나저나 책에 나오는 ‘저급한 사상’이란 대목이 걸립니다. ‘낮은자리 넋’으로 보자면 볼 수야 있겠지만, ‘삶을 바탕으로 이루는 넋(생각)’이라고 해야 알맞으리라 봅니다.


  만화책 《장백산의 비밀》(차성진, 고려원미디어, 1990)하고 《외뿔이》(오세영, 게나소나, 2001)까지 고르기로 합니다. 차성진 님 만화를 어릴 적에 만화잡지에서 빠짐없이 찾아 읽던 일이 새삼 떠오릅니다. 오세영 님 만화책은 어느덧 판이 끊어졌습니다. 우리 책숲에 있는 책이지만 하나 더 건사할 생각입니다.


  꽃차림을 하고서 책집을 꾸며도 좋습니다. 좀 허름해 보이는 책집을 돌보아도 좋습니다. 책낯도 곱게 가꾸면 더 좋을 테지만, 속빛이 없이 겉낯만 매끈한 책은 굳이 읽을 생각이 없습니다. 눈을 감고서 마음으로 마주하면 좋겠어요. 종이에 찍힌 글씨에 도사리는 숨결을 마음으로 읽으면 좋겠어요. 겉읽기 아닌 속읽기를, 겉차림이 아닌 속사랑을, 온삶으로 마주할 수 있기를 빕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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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사람으로 살려는 길 (2018.1.21.)

― 경기 양평 〈산책하는 고래〉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용문산로 340-20

070.8870.7863.

http://blog.naver.com/whalestory3



  저는 자가용을 몰지 않습니다. 운전면허부터 없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3년에 학교에서는 운전면허를 따라고들 북돋았습니다. 이때에 운전면허를 참 많이들 따더군요. 대입시험이 끝나고 졸업식을 할 때까지 학교에서는 수업을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고작 운전면허를 따라고 시키더군요. 앞으로 학교를 마치고 일자리를 찾으려 할 적에 면허가 있고 없고는 크게 다르다고 했습니다. 저는 따졌지요. “모든 사람이 다 차를 몰 줄 알아야 하나요? 자동차를 안 타고 다니면 안 됩니까? 저는 기름 안 먹고 물하고 바람을 먹는 자동차가 나오면 면허를 딸 생각이 있지만, 그때에도 면허는 따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이 몰지 않고도 다니는 자동차가 있다면, 그때에는 장만해서 몰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려고 해요.”


  춘천에 있는 마을책집으로 마실을 하고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이튿날 춘천 마을책집 지기님이 수원까지 갈 일이 있다고 하셔서 같이 타고 말동무가 되기로 합니다. 춘천에서 수원으로 가는 길에 경기 양평을 거칩니다. “그럼 우리, 양평에 있는 마을책집에 들러 보면 어떨까요?”


  한갓진 길을 달립니다. 서울을 벗어나려는 건너쪽 찻길은 자동차가 가득하지만, 서울 언저리로 달리는 찻길은 한갓집니다. 이러다가 갑자기 길이 막힙니다. 무슨 일일까요? 길그림을 보던 춘천 책집지기님이 “우리가 스키장 옆을 지나가는가 봐요. 아, 몰랐네.”


  자가용도 없지만 스키터란 데를 간 일도 없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키터 옆을 지나가 봅니다. 스키를 타려고 구름처럼 몰린 자동차물결에 끼여 5킬로미터쯤 되는 길을 한 시간 넘게 느릿느릿 지나갑니다. 스키터 언저리에는 스키 살림을 다루는 가게가 엄청나게 많고, 스키터를 드나들려는 사람이 묵는 집도 매우 커다랗게 잔뜩 있습니다. ‘한국에서 스키를 즐기는 사람이 이다지도 많네!’ 하고 놀랍니다. ‘어쩌면 나는 한국사람이 아닌지 몰라. 이렇게 이 나라가 돌아가는 꼴을 하나도 모르잖아?’


  스키터 둘레를 빠져나오니 비로소 한갓집니다. 마을책집을 찾으려고 마을 분한테 길을 여쭙고 다시 여쭈어 드디어 양평 〈산책하는 고래〉에 닿습니다. 멀면서도 가까운, 가까우면서도 먼 길이었습니다.


  마을책집 〈산책하는 고래〉는 어린이책하고 그림책을 꾸준히 펴내는 ‘고래이야기’에서 꾸리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 마을책집에서는 하룻밤을 묵을 수 있다지요. 그림책하고 노닐듯 시골바람을 쐬면서 하룻밤을 누릴 분은 그윽하면서 즐겁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골자락에서 살며 늘 숲바람을 쐬고 미리내를 바라보는 터라, 우리 보금자리에서 지내기만 해도 늘 ‘책밤’을 누려요.


  그동안 미처 못 살핀 그림책을 눈여겨보려 합니다. 《무엇이든 삼켜버리는 마법상자》(코키루니카 글·그림/김은진 옮김, 고래이야기, 2007)를 고르고, 《내가 지구를 사랑하는 방법》(토드 파 글·그림/장미정 옮김, 고래이야기, 2010)을 고르며, 《눈을 감고 느끼는 색깔여행》(메네타 코틴 글·로사나 파리아 그림/유 아가다 옮김, 고래이야기, 2008)을 고릅니다. 《세상이 자동차로 가득 찬다면》(앨런 드러먼드 글·그림/유지연 옮김, 고래이야기, 2010)을 고르고, 《두고 보라지!》(클레르 클레망 글·오렐라 귀으리그림/마음물꼬 옮김, 고래이야기, 2017)를 고르며, 《쿠베가 박물관을 만들었어요!》(오실드 칸스터드 욘센 글·그림/황덕령 옮김, 고래이야기, 20014)를 고릅니다.


  마을책집 〈산책하는 고래〉를 둘러보고 싶다면 이곳에서 책을 한 자락 사야 합니다. 저는 마을책집으로 나들이를 갈 적에 ‘책을 살 뜻’이니 기꺼이 신나게 온갖 책을 돌아보면서 장만합니다. 시골집으로 돌아가서 아이들 품에 안겨 줄 그림책을 헤아립니다.


  어린이 아닌 어른이 읽을 책은 따로 한켠에 건사해 놓습니다. 《시민에게 권력을》(하승우, 한티재, 2017)을 읽다가 《산골에서 팔자가 활짝 피셨습니다》(김윤아·김병철, 나는북, 2017)를 읽습니다. 그러게요. 멧골에서 살며 삶길이 활짝 펼 만하지요. 숲이라는 바람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을 뜨고 마음을 열며 살림도 펴리라 봅니다. 《노르웨이의 나무》(라르스 뮈팅/노승영 옮김, 열린책들, 2017)는 노르웨이가 얼마나 도끼질을 잘할 뿐 아니라 도끼도 잘 벼리는가를 낱낱이 다룹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야, 노르웨이란 나라에서 지은 난로를 장만하고 싶구나. 노르웨이 난로라면 얼마나 놀랍도록 훌륭할까’ 하고 생각했어요.


  저한테는 한국 여권이 있습니다. 이웃나라로 가자면 ‘한국사람’이라는 대목을 밝혀야 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틀에 매일 뜻이 없습니다. 지구라는 별에서 사는 지구사람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지구라는 별에서 숲을 사랑하고 아끼는 숲사람으로 살림을 지으려 합니다. 지구를 품은 온누리를 헤아려 별사람으로 사랑을 가꾸려 합니다.


  시골집에 머물지 않고 바깥으로 마실을 다닐 적에는 언제나 버스나 전철이나 길에서 노래꽃을 적습니다. 동시를 써요. 그날그날 만날 이웃님을 헤아려서 열여섯 줄짜리 노래꽃을 갈무리합니다. 저는 노래꽃을 지어 이웃님하고 나누고 싶기에 자가용 손잡이를 쥘 겨를이 없습니다. 마을책집으로 나들이를 다니면서 아름책을 만나고 싶으니 자가용 손잡이를 잡을 마음이 없습니다. 읽고 쓸 뿐 아니라, 언제나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싶기에, 길을 걷다가 쪼그려앉아서 들꽃을 쓰다듬고 싶기에, 운전면허도 자가용도 저한테는 덧없다고 여겨요.


  굳이 곁에 두어야 한다면 ‘자동차를 즐겁게 모는 멋진 이웃님’을 사귀면 되겠지요. 바다를 품은 고래가 이야기하는 책이 상큼하게 물결치는 마을책집에는 다음에 언제 마실을 할 만할까 하고 어림합니다. 다음에도 멋진 이웃님 곁에 앉아서 나들이를 할 날을 손꼽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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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고을 빛나는 책터 (2018.3.7.)

― 전북 전주 〈조지 오웰의 혜안〉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25

063.288.8545.



  전북 전주에 그림책을 살뜰히 다루는 〈책방 같이:가치〉가 태어났을 적에 ‘전주는 참 대단하지. 그림책을 오롯이 다루는 마을책집이 문을 여는구나!’ 싶어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이윽고 인문책을 오롯이 다루는 〈조지 오웰의 혜안〉이 태어난 이야기를 듣고는 ‘어쩜 전주는 엄청나지. 그림책집 곁에 인문책집이 있네. 마을책집이 하나둘 움을 트고 이야기를 지피는 고장이라면 두고두고 아름터로 흐르겠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전주마실을 할 적에 〈조지 오웰의 혜안〉을 들르려고 해보지만 좀처럼 때가 안 맞습니다. 따로 하루를 전주에서 묵지 않고서야 들를 길이 없습니다. 전주사람이라면 가뿐하게 마실하겠지요. 저녁나절에 여는 때를 맞추어 시골에서 찾아가자니 여러모로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있으면 언젠가 닿기 마련. 드디어 저녁나절에 전주에 찾아가서 하루를 묵을 일을 마련했고 가벼이 거닐어 마을책집에 닿습니다.


  조지 오웰 님이 쓴 책 가운데 미처 챙기지 못한 《조지 오웰, 영국식 살인의 쇠퇴》(조지 오웰/박경서 옮김, 은행나무, 2014)가 보여서 집어듭니다. ‘조지 오웰’에 왔으니 ‘조지 오웰’도 만나야지요.


  어린 날 푼푼이 소꿉돈을 모아서 애거서 크리스티 님 책을 장만해서 읽으려 했습니다. 1980∼90년대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은 추리소설을 건사하지 않았습니다. 추리소설뿐 아니라 만화책을 갖춘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은 없다시피 했어요. 오늘날에도 만화책을 제대로 갖춘 도서관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학습만화라든지 ‘그래픽노블’쯤은 조금 두지만, 만화답게 이야기를 엮는 책은 눈여겨보려 하지 않기 일쑤예요.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애거서 크리스티/김시현 옮김, 황금가지, 2014)을 어루만집니다. 추리소설이란 길을 걸어온 이녁 삶을 스스로 풀어낼 만하겠지요.


  시조로 삶을 노래하는 《쓸 만한 잡담》(서성자, 천년의시작, 2016)을 넘기다가 《너의 섹시한 뇌에 반했어》(조정란, 런더너, 2018)를 들춥니다. 책집지기가 손수 갈무리한 이야기를 묶은 책입니다.


  나라 곳곳에 마을책집이 하나둘 늘면서 책집지기 스스로 삶을 풀어놓는 책이 둘씩 셋씩 늘어납니다. 대단히 멋지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우리 삶부터 바라볼 노릇이고, 우리 살림부터 가꿀 일이에요. 마을에서 책집이라는 터전을 추스르는 마음부터 돌아보면서 이야기를 지필 만하지요.


  마을책집마다 책집지기가 이 터를 가꾸는 이야기를 꾸준히 선보이면 참으로 재미있고 뜻깊으리라 생각합니다. 다 다른 고장에서 다 다른 빛으로 태어나서 퍼지는 아름다운 빛살을 담은 책이란 더없이 싱그럽겠지요.


  빛나는 고을에 빛나는 책터입니다. 빛나는 눈망울로 빛나는 이야기를 누립니다. 빛나는 손에 빛나는 풀 한 포기를 놓습니다. 빛나는 걸음으로 빛나는 풀밭을 걷습니다. 봄에 걷는 풀밭하고 여름 가을 겨울에 거니는 풀밭은 다릅니다. 봄에 만나는 마을하고 여름 가을 겨울에 만나는 마을도 다르지요. 철마다 다른 빛을 품은 마을에 움트는 마을책집에는 철마다 어떤 바람이 새삼스레 흐를까요. 이다음에 전주에서 저녁마실을 할 때가 또 언제이려나 하고 곱씹으면서 길손집으로 걸어갑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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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길 배움길 책길 (2018.7.24.)

― 일본 오사카 히가시코하마 〈天牛堺書店 粉浜店〉

大阪府 大阪市 住吉區 東粉浜 3丁目 23-20

3 Chome-23-23 Higashikohama, Sumiyoshi Ward, Osaka, 558-0051

+81 6-6674-1101



  으레 지나다니는 곳에 책집이 있어도 못 알아보는 분이 많습니다. ‘설마 그런 자리에 책집이?’ 하고 여깁니다. 그러나 책집만 그럴까요. 찻집도 빵집도 떡집도 옷집도 ‘설마 그런 데에?’ 하고 놀라면서 만날 만합니다. 큰길가에 있다고 하더라도 못 보고 지나칠 때가 있습니다. 딱 그곳을 찾아가려고 마음을 먹지 않고서야 가게이름이며 알림판이며 눈에 안 들어올 테니까요.


  일본 오사카 히가시코하마 둘레를 열흘쯤 이 골목 저 거리 돌아본 어느 날, 먹을거리를 장만하려고 제법 들른 적이 있는 가게 옆에 책집이 있는 줄 처음으로 알아챘습니다. 그동안 왜 이 책집을 못 알아챘을까 하고 돌아보니 언제나 ‘우리 아이들 쳐다보기’가 첫째였고, 우리가 가야 할 곳을 길그림을 펼쳐서 살피기가 둘째였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에 오롯이 마음을 쓴 터라, 으레 지나다니던 거리에 책집이 덩그러니 있는 줄 뒤늦게 알았습니다.


  일본 전철로 ‘코하마역(粉浜驛)’ 밑자리, 커다란 가게 옆에 있는 〈天牛堺書店 粉浜店〉입니다. ‘天牛堺書店’이 제법 크고 많은 듯합니다. 큰책집 또래가게가 아니어도 일본은 어느 고을 어느 마을에나 책집이 많다고 했습니다. 일본에서도 작은 마을책집이 제법 문을 닫았다고 하지만, 한국에 대면 아직 엄청나게 많이 있다고 여겨요.


  오사카 히가시코하마 한켠에 있는 이 책집은 안쪽은 새책을 놓고 바깥쪽에는 헌책을 놓습니다. 두 갈래로 나눈 짜임새가 새삼스럽습니다. 더구나 바깥에 내놓은 단돈 200엔짜리 헌책 가운데 눈에 띄는 책이 왜 이다지도 많은지요. 아직 한국말로 나오지 않은 숱한 인문·역사책을 한꾸러미 짊어지고 한국으로 돌아가고픈 생각이 가득하지만 “그 무거운 책을 어떻게 들고 가려고? 아이들도 있는데?” 하는 말에 한 자락조차 품에 안지 못합니다.


  비록 한국사람이 손수 캐내거나 밝힌 이야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일본에서 눈밝은 이가 캐낸 여러 이야기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여태 눈여겨보지 못한 곳을 짚고,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대목을 헤아리며, 우리가 곰곰이 생각하면서 새롭게 알아낼 길을 그릴 만합니다. 배움길이란 언제 어디에서나 맞물려요. 삶길이란 어느 곳에서나 익히면서 가다듬습니다. 눈을 감거나 등을 지면 배우지 못하기도 하지만 사랑하고도 동떨어져요. 눈을 뜨고 손을 잡을 적에 기쁘게 배울 뿐 아니라 홀가분하게 날갯짓하곤 합니다.


  끌짐 하나 가득 채우고 싶은 책이 눈앞에 선하지만 그 모든 책은 뒤로 젖히고서 만화책 《のびたの南極カチコチ大冒險》(藤子·F·不二雄, 小學館, 2017)을 고릅니다. 작고 가벼운 도라에몽 만화책입니다. 한국말로 안 나온 도라에몽입니다. 오늘은 작고 가벼운 도라에몽으로 넉넉하다고 여기려 합니다. 두 아이는 히가시코하마에서 히야바야시로 가는 택시에서 신이 나서 만화책을 폅니다. 택시를 타고 달리면서 하는 거리구경보다 만화책이 훨씬 신나는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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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마을 한켠 작은책집은 (2018.7.20.)

― 일본 오사카 히가시코하마 〈後藤書店〉

大阪府 大阪市 住吉區 東粉浜 三丁目 29-4

3 Chome-29-4 Higashikohama, Sumiyoshi Ward, Osaka, 558-0051 

+81 6-6671-5327



  일본 오사카에 ‘blu room R’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마을 한복판에 깃든 조그마한 쉼터입니다. 몸하고 마음을 새롭게 일깨우는 ‘파란칸’인데, 이곳을 찾아가려고 목돈을 마련해서 마실길에 올랐습니다. 길손집에 묵으면서 블루룸까지 천천히 걸어서, 슬슬 전철로, 씽씽 택시로, 여러 가지로 오가며 일본 골목길이며 골목마을은 한국하고 얼마나 다르며 비슷한가 하고 눈여겨보았습니다. 관광지나 여행지 아닌 수수한 마을살림을 조용히 들여다보고 가만히 지켜보았습니다. 마을사람이 저자마실을 하는 데에서 똑같이 저자마실을 하고, 마을사람이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데에서 똑같이 밥을 먹거나 차를 마셨어요. 마을사람뿐 아니라 마을 아이들이 쉬거나 뛰노는 곳에서 같이 매미 노래를 듣고 나무그늘을 누리면서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풀밭에 드러눕기도 합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큰고장이 옴팡 뒤집어져야 한 터라, 여느 큰고장은 일본 마을하고 참 닮았더군요. 집이나 가게에 붙은 일본글을 한글로 바꾸면 감쪽같이 한국처럼 보일 만합니다. 어느 나라나 수수한 마을길은 말끔일꾼 아닌 마을사람 스스로 새벽 아침 낮 저녁에 슬슬 비질을 한다고 느껴요. 일본만 마을길에 쓰레기가 안 뒹굴지 않아요. 한국도 마을길에는 쓰레기가 안 뒹굽니다. 할매 할배가 틈틈이 비질을 하고서 해바라기를 하거든요. 아니, 해바라기를 하다가 비질을 해야 한달까요. 해바라기를 하다가 문득 옆집 둘레에 뒹구는 쓰레기를 보면 스스럼없이 치우는 손길이 마을사람 손길이요 골목사람 눈길이거든요.


  2018년 6월에 오사카 마실을 할 적에는 미처 못 보았으나 7월에 다시 마실을 하면서 히가시코하마라는 조그마한 마을 한켠에 있는 카레집 맞은쪽에 마을책집이 있는 줄 알아챘습니다. 큰길에 있는 큰책집이 아니요, 마을 한켠에 살짝 깃든 작은책집이라 더더욱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일본 마을책집이니 마땅히 일본글로 적은 일본책만 있겠지요. 그러나 한국말로 안 나온 아름다운 만화책이며 사진책이며 그림책을 만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책이 수두룩하거든요. 아이들하고 곁님한테 “살짝 들어가 보면 안 될까?” 하고 묻고 싶으나, 더위에 지치고 낮잠이 몰려온 모습을 느끼고는 “사진만 몇 자락 얼른 찍을게.” 하고 말합니다.


  이다음에 오사카로 마실을 새로 나올 수 있다면 꼭 들르기로, 그때에는 하루를 잡고서, 작은 마을책집이 품고 길어온 오랜 발자취하고 손때를 맞아들여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마을 어린이한테 즐겁게 피어날 꿈을 베푼 책을 나누어 온 곳일 테니. 마을 어른한테 넉넉히 살림짓는 사랑을 들려준 책을 펼쳐 온 자리일 테니.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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