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책을 쓴 옷차림 (2018.6.28.)
―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인천 동구 금곡로 5-1
032.766.9523.
책을 쓴 사람은 사내이거나 가시내입니다. 또는 사내도 가시내도 아닙니다. 책을 엮고 꾸미며 펴내는 사람은, 또 책을 다루는 사람은, 사내이거나 가시내입니다. 또는 사내도 가시내도 아닙니다. 책이 되려면 종이하고 잉크가 있어야 하는데, 숲에서 나무가 잘 자라도록 돌본 사람은 사내이거나 가시내입니다. 또는 사내도 가시내도 아닙니다. 나무를 다루어 종이로 바꾼 사람은 사내이거나 가시내입니다. 또는 사내도 가시내도 아닙니다.
종이공장에서는 나무를 누가 돌보고 베었는가를 따질까요? 출판사에서는 종이를 누가 다루었는가를 알아볼까요?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은 인쇄·제본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사내인지 가시내인지 살필까요? 책을 짐차에 실어서 책집으로 나르는 일꾼이 민소매인지 반소매인지를 들여다볼까요?
점글을 읽는 사람은 점글을 볼 뿐, 점글을 새긴 이가 사내이거나 가시내이거나 가리지 않습니다. 점글을 새긴 이가 뚱뚱하거나 날씬하거나 따지지 않습니다. 손말을 나누는 사람은 손짓을 읽을 뿐, 손말을 펴는 이가 어떤 목소리인가를 살피지 않습니다. 눈으로 글씨를 읽거나 귀로 말을 듣는다면 얼굴이나 차림새를 들여다볼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생각해 볼 노릇이에요. 우리 가슴을 적신 글을 쓴 사람이 할머니라서 섭섭한지요? 우리 눈물을 적시거나 웃음꽃을 지핀 글을 쓴 사람이 어린이라서 서운한지요? 가시내가 쓴 글만 읽어야 할까요? 사내가 쓴 글은 읽으면 안 될까요? 바지만 입는 가시내가 쓴 글은 외곬일까요? 치마를 두르는 사내가 쓴 글은 엉터리일까요?
고흥에 있는 중학교 푸름이를 만나서 이야기를 펴는 자리에 ‘민소매·반바지’ 차림으로 갔다고 해서, 이다음에 보성군에 있는 어느 고등학교에서 그곳 푸름이를 만나서 이야기를 펼 자리가 사라졌습니다. 교사·교장·학부모가 ‘민소매·반바지’ 차림인 ‘불량’한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고 했다더군요. 한여름에 긴소매·긴바지를 입어야 ‘불량하지 않은 강사 차림새’라고 하더군요.
인천에서 이야기꽃을 펴는 일이 있어서 왔다가 손전화 쪽글로 이런 말을 받았습니다. 배다리에 있는 헌책집 〈아벨서점〉에서 이 책 저 책 고르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저는 헌책집 일꾼이 잘생기거나 잘 차려입은 곳을 찾아가지 않습니다. 저는 으리으리하거나 번듯하게 꾸민 책집을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새책을 장만한다고 하더라도 겉이 긁혔대서 속을 못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비오는 날 한 손에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 책을 읽고 걷다가 그만 책이 미끄덩 바닥에 떨어져 옴팡 젖었어도 얼른 손천으로 닦아서 말린 다음에 읽습니다. 빗물에 책이 불어도 줄거리나 알맹이는 하나도 안 다칩니다.
아이들하고 누릴 그림책 《파우스트와 필로우》(까롤린느 그레고와르/유혜자 옮김, 중앙출판사, 2000), 《모그와 고양이 대회》(주디스 커/장미란 옮김, 한국몬테소리, 2003), 《사과씨 공주》(제인 레이/고혜경 옮김, 웅진주니어, 2007)를 고릅니다. 아름다이 태어났어도 새책집에서 사라진 그림책이 많습니다. 《I'm a big sister》(Joanna Cole(글)·Maxie Chambliss(그림), morrow, 1997)하고 《the new land, a first year on the Prairie》(Marilynn Reynolds(글)·Stephen McCallum(그림), orca book, 1997)도 고릅니다. 모두 새롭게 숨결을 북돋우는 꽃다운 책이라고 여깁니다.
널리 팔리거나 읽히면서 아름다운 책이 있다면, 널리 팔리거나 읽히지만 안 아름다운 책이 있습니다. 어느 모습을 볼 적에 우리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즐거운 길이 될까요. 겉모습일까요, 속차림일까요. 《ちびまる子ちゃん》(さくらももこ, 集英社, 1990)하고 《おぼあちゃん, だいすき》(olympus, ?)를 손에 쥐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여태 숱한 책집에서 온갖 책을 만나서 장만하고 읽는 동안 다른 사람 눈치를 본 일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사서 읽기에 구태여 저까지 사서 읽어야 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저는 제 마음을 사랑으로 가꾸는 길에 징검다리가 되는 책이라고 스스로 느껴야 비로소 쳐다보고, 집어들고, 펼치고, 서서 다 읽은 다음에 기쁘게 장만하며 살았습니다. 언제나 책집에서 다 읽어 보고서 삽니다.
이렇게 책을 사서 읽으니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요. “아니, 책집에서 다 읽었다면서요? 다 읽은 책을 왜 사요?” 저는 웃으며 대꾸합니다. “아니, 책을 안 읽어 보고 사나요? 보금자리에서 함께 살아갈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함께 사나요? 저는 한 판 읽은 다음에 다시 쳐다볼 일이 없는 책은 살 마음이 없어요. 되읽으면서 가슴을 적실 아름다운 책이라고 여기기에 기꺼이 주머니를 털어서 장만합니다. 이 몸으로 살아가며 적어도 열 판은 읽을 만한 책이어야 사지요. 때로는 열 판은커녕 한 판 읽기도 지겨운 책을 잘못 고르기도 합니다만, 두고두고 건사해서 아이한테 물려주고 싶은, 아이하고 함께 읽고픈 책을 사려면 미리 다 읽어 봐야 해요. 안 읽어 보고서 책을 살 수 있다면 하느님이거나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집을 고릅니다.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송찬호, 문학과지성사, 2009), 《흰 책》(정끝별, 민음사, 2000), 《우주가 잠들었을 때 나는 달이 되었다》(임경자, 문학의전당, 2014)를 살피는데, 썩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아니, 그리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시집을 사기는 사면서 푸념을 합니다. 시를 쓰는 분은 너무 글멋을 부립니다. 삶을 고스란히 노래하듯 그리는 길하고 꽤 동떨어집니다.
비매품으로 나온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작 의궤》(국립중앙박물관, 2011)를 구경한 다음 《경상도 우리 탯말》(윤명희·이대희·이성배·심인자·하루비, 소금나무, 2006)을 손에 쥡니다.
우리 경상도 말은 존칭어가 발달되지 못한 것이 특징 중의 하나이다. 서울말에서 볼 수 있는 층층의 존칭어와 자신을 낮추는 겸양어도 발달돼 있지 않다. 세련된 수사나 말을 아름답게 꾸며서 하려는 언어적 매카니즘이 적은 것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때로 마음을 숨기는 반어적 표현을 하기도 하지만 대체료 표현이 직설적이다. 모음의 수도 전국의 탯말 가운데 가장 적고 다혈질적인 성격과 맞물려 말도 무척 빠르다. 제한된 시간에 많은 정보를 표현하려다 보니 음절이 생략되는 축약현상도 전국 어느 지역보다 가장 두드러진다. (22쪽)
퍽 옛날에 나온 책을 되살렸다고 하는 《조선의 귀신》(村山智順/김희경 옮김, 동문선, 1990)을 봅니다. 한겨레 스스로 아직 갈무리하지 못했을 무렵 일본 지식인하고 학자가 이 나라 이야기를 꽤 많이 남겨 놓았습니다. 아니, 말을 제대로 해야겠지요. 이 나라 지식인하고 학자는 이 나라 수수한 살림살이를 눈여겨보지 않았어요. 이 나라 먹물붙이는 언제나 임금 둘레에 붙어서 떡고물을 받아먹는 짓을 했습니다. 비록 일본사람이 갈무리한 책이라 하지만, 일본사람은 한국을 식민지로 삼으려는 뜻이었든 이웃으로 마주하는 몸짓이었든 임금 둘레 떡고물을 책으로 엮기보다는 수수한 시골사람 살림을 여미는 책을 참 많이 내놓았습니다.
현재 우리들의 눈에 비치는 조선의 생활·문화·사상의 제현상은 이 비유에 있어서의 이파리이고 꽃이다. 이 이파리나 꽃의 성정을 이해하고, 이것을 아름답게 꽃피우기 위해서는 아마도 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 저급한 사상, 민간신앙의 연구부터 착수하여야 할 것이다. (13쪽)
그나저나 책에 나오는 ‘저급한 사상’이란 대목이 걸립니다. ‘낮은자리 넋’으로 보자면 볼 수야 있겠지만, ‘삶을 바탕으로 이루는 넋(생각)’이라고 해야 알맞으리라 봅니다.
만화책 《장백산의 비밀》(차성진, 고려원미디어, 1990)하고 《외뿔이》(오세영, 게나소나, 2001)까지 고르기로 합니다. 차성진 님 만화를 어릴 적에 만화잡지에서 빠짐없이 찾아 읽던 일이 새삼 떠오릅니다. 오세영 님 만화책은 어느덧 판이 끊어졌습니다. 우리 책숲에 있는 책이지만 하나 더 건사할 생각입니다.
꽃차림을 하고서 책집을 꾸며도 좋습니다. 좀 허름해 보이는 책집을 돌보아도 좋습니다. 책낯도 곱게 가꾸면 더 좋을 테지만, 속빛이 없이 겉낯만 매끈한 책은 굳이 읽을 생각이 없습니다. 눈을 감고서 마음으로 마주하면 좋겠어요. 종이에 찍힌 글씨에 도사리는 숨결을 마음으로 읽으면 좋겠어요. 겉읽기 아닌 속읽기를, 겉차림이 아닌 속사랑을, 온삶으로 마주할 수 있기를 빕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