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빛나는 고을 빛나는 책터 (2018.3.7.)
― 전북 전주 〈조지 오웰의 혜안〉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25
063.288.8545.
전북 전주에 그림책을 살뜰히 다루는 〈책방 같이:가치〉가 태어났을 적에 ‘전주는 참 대단하지. 그림책을 오롯이 다루는 마을책집이 문을 여는구나!’ 싶어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이윽고 인문책을 오롯이 다루는 〈조지 오웰의 혜안〉이 태어난 이야기를 듣고는 ‘어쩜 전주는 엄청나지. 그림책집 곁에 인문책집이 있네. 마을책집이 하나둘 움을 트고 이야기를 지피는 고장이라면 두고두고 아름터로 흐르겠네.’ 하고 생각했습니다.
전주마실을 할 적에 〈조지 오웰의 혜안〉을 들르려고 해보지만 좀처럼 때가 안 맞습니다. 따로 하루를 전주에서 묵지 않고서야 들를 길이 없습니다. 전주사람이라면 가뿐하게 마실하겠지요. 저녁나절에 여는 때를 맞추어 시골에서 찾아가자니 여러모로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있으면 언젠가 닿기 마련. 드디어 저녁나절에 전주에 찾아가서 하루를 묵을 일을 마련했고 가벼이 거닐어 마을책집에 닿습니다.
조지 오웰 님이 쓴 책 가운데 미처 챙기지 못한 《조지 오웰, 영국식 살인의 쇠퇴》(조지 오웰/박경서 옮김, 은행나무, 2014)가 보여서 집어듭니다. ‘조지 오웰’에 왔으니 ‘조지 오웰’도 만나야지요.
어린 날 푼푼이 소꿉돈을 모아서 애거서 크리스티 님 책을 장만해서 읽으려 했습니다. 1980∼90년대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은 추리소설을 건사하지 않았습니다. 추리소설뿐 아니라 만화책을 갖춘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은 없다시피 했어요. 오늘날에도 만화책을 제대로 갖춘 도서관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학습만화라든지 ‘그래픽노블’쯤은 조금 두지만, 만화답게 이야기를 엮는 책은 눈여겨보려 하지 않기 일쑤예요.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애거서 크리스티/김시현 옮김, 황금가지, 2014)을 어루만집니다. 추리소설이란 길을 걸어온 이녁 삶을 스스로 풀어낼 만하겠지요.
시조로 삶을 노래하는 《쓸 만한 잡담》(서성자, 천년의시작, 2016)을 넘기다가 《너의 섹시한 뇌에 반했어》(조정란, 런더너, 2018)를 들춥니다. 책집지기가 손수 갈무리한 이야기를 묶은 책입니다.
나라 곳곳에 마을책집이 하나둘 늘면서 책집지기 스스로 삶을 풀어놓는 책이 둘씩 셋씩 늘어납니다. 대단히 멋지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우리 삶부터 바라볼 노릇이고, 우리 살림부터 가꿀 일이에요. 마을에서 책집이라는 터전을 추스르는 마음부터 돌아보면서 이야기를 지필 만하지요.
마을책집마다 책집지기가 이 터를 가꾸는 이야기를 꾸준히 선보이면 참으로 재미있고 뜻깊으리라 생각합니다. 다 다른 고장에서 다 다른 빛으로 태어나서 퍼지는 아름다운 빛살을 담은 책이란 더없이 싱그럽겠지요.
빛나는 고을에 빛나는 책터입니다. 빛나는 눈망울로 빛나는 이야기를 누립니다. 빛나는 손에 빛나는 풀 한 포기를 놓습니다. 빛나는 걸음으로 빛나는 풀밭을 걷습니다. 봄에 걷는 풀밭하고 여름 가을 겨울에 거니는 풀밭은 다릅니다. 봄에 만나는 마을하고 여름 가을 겨울에 만나는 마을도 다르지요. 철마다 다른 빛을 품은 마을에 움트는 마을책집에는 철마다 어떤 바람이 새삼스레 흐를까요. 이다음에 전주에서 저녁마실을 할 때가 또 언제이려나 하고 곱씹으면서 길손집으로 걸어갑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