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41 크거나 작다


  두 아이가 있습니다. 두 아이가 나란히 설 적에 키가 같을 수 있고, 한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키가 크거나 작을 수 있습니다. 둘을 놓고 보면 둘이 같거나 다릅니다. 100원이 있습니다. 100원은 99원보다 큽니다. 그러나 101원보다 작습니다. 101원은 100원보다 크지만, 102원보다 작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따지면, 더 큰 숫자나 더 작은 숫자는 없습니다. 이리하여, 한 달에 버는 돈이 1000만 원이라고 할 때에 0원이라고 할 때에 어느 쪽이 더 크거나 작지 않습니다. 1000만 원과 999만 원을 대고, 999만 원과 998만 원을 대면서 차근차근 살피면 모두 같거든요.

  생각해 보면 됩니다. 1000만 원을 벌면 기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999만 원을 벌면 안 기쁠까요? 1001만 원을 벌면 더 기쁠까요? 998만 원을 벌면 덜 기쁘거나 안 기쁠까요? 이렇게 1만 원씩 덜면서 0원까지 오고 보면, 이러고 나서 -1만 원과 -1000만 원까지 가 보아도 모두 같아요.

  크기란 틀림없이 있습니다. 어떻게 있느냐 하면, ‘크기’를 생각할 때에는 크기가 틀림없이 있습니다. 크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어떠할까요? 네, 크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크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두 아이를 바라보면서 한 아이가 큰지 작은지 따지지 않습니다. 아니, 크기를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으니까, 누구 키가 큰지 아예 알지 못해요. 생각하지 않고, 바라보지 않으니, ‘크기를 생각하지 않고 바라보지 않은 사람’한테는 참말로 ‘크기가 없’습니다.

  삶은 ‘크기’로 따지거나 헤아리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큰’ 집도 없고 ‘작은’ 집도 없어요. 어느 만큼 되어야 큰 집이고 어느 만큼 되면 작은 집일는지 생각해 보셔요. 만 평쯤 되면 큰 집일까요? 그러면, 만하고 한 평이면? 만하고 두 평이면? 만하고 백 평쯤 되는 집이 옆에 있으면 만 평짜리 집도 ‘작은’ 집이 되고 맙니다. 열 평짜리 집이라 해도 아홉 평짜리 집이 옆에 있으면, 열 평짜리 집도 ‘큰’ 집이 되어요.

  삶도 집도 서로 같습니다. 우리는 ‘큰’ 집이나 ‘작은’ 집에 살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스스로 살 만한’ 집에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부자여야 하지 않고, 가난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살 만한’ 살림을 꾸려야 합니다. 즐겁게 지낼 집에서 살면 됩니다. 즐겁게 가꿀 살림이면 됩니다.

  책을 몇 권쯤 읽어야 많이 읽는다고 할까요? 한 해에 천 권 읽으면 많이 읽는 셈일까요? 그러면 구백아흔아홉 권 읽는 사람은 책을 적게 읽는 셈일까요? 아닐 테지요. 구백아흔여덟 권 읽는 사람은 책을 적게 읽는다고 하지 않을 테지요? 이 숫자대로 한 권씩 덜어 오백 권 …… 삼백 권 …… 백 권 …… 열 권, 한 권에 이릅니다. 이제 0권에 닿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책 많이 읽는 잣대’란 없습니다. 삶을 따지거나 재는 잣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숫자는 언제나 눈속임입니다.

  더 큰 사랑이 없고, 더 작은 사랑이 없습니다. 사랑이면 모두 사랑입니다. 더 큰 선물이 없고, 더 작은 선물이 없습니다. 선물이면 모두 선물입니다. ‘크기’를 따지려 할 적에는 ‘삶’을 못 봅니다. ‘크기’에 얽매이는 사람은 ‘사랑’하고 멀어집니다. ‘크기’를 자꾸 살피면서 붙잡으려 한다면 ‘꿈’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크기는 늘 눈가림입니다.

  큰 꿈이나 작은 꿈은 없습니다. 큰 마음이나 작은 마음은 없습니다. 큰 생각이나 작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있을 것’이 있습니다. 그저 우리 삶이 있고, 사랑과 꿈이 있습니다. 눈을 뜨고 보아야 합니다. 눈을 속이거나 가리는 거짓을 벗겨야 합니다.

  한 사람이 하루 동안 열 마지기 땅뙈기를 야무지게 갈았기에 훌륭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열흘 동안 한 마지기 땅뙈기를 겨우 갈았기에 덜떨어지지 않습니다. 둘은 저마다 제 삶에 맞게 땅을 갈았습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며 누군가는 100점을 맞을 테고 누군가는 50점을 맞을 테며 누군가는 0점을 맞습니다. 100점이기에 훌륭하지 않습니다. 점수는 늘 점수입니다. 우리가 바라볼 곳은 ‘크기’나 ‘숫자’나 ‘점수’가 아닙니다. 은행계좌나 권력이나 이름값을 볼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사람’을 보고 ‘삶’을 보며 ‘사랑’과 ‘꿈’을 보면 됩니다. 보아야 할 모습을 볼 때에 사람이 되고, 보아야 할 삶을 보면서 아낄 때에 삶이 되며, 보아야 할 삶을 보면서 기쁘게 웃고 노래할 때에 사랑과 꿈이 피어납니다. 4348.3.1.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람타 공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