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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 - 육아에 무너진 여자를 일으킨 독서의 조각들
김슬기 지음 / 웨일북 / 2018년 6월
평점 :
까칠읽기 . 숲노래 책읽기 / 인문책시렁 2025.11.20.
까칠읽기 105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
김슬기
웨일북
2018.6.15.
온누리 모든 어른은 아기로 태어나서 아이라는 나날을 누렸다. 어른인 우리를 기꺼이 낳아서 돌본 어버이가 없다면, 어느 누구도 이곳에 설 수 없다. 다만, 우리를 낳은 모든 어버이가 어질거나 슬기롭거나 참하거나 착하지는 않다. 쓸개빠진 이도 있고, 주먹을 휘두른 이도 있고, 막짓을 일삼은 이도 있다. 그런데 얼뜬 모든 어버이도 처음에는 아기였고 아이로 자랐다.
아기로 태어나서 아이로 살다가 “아기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는 자리에 새롭게 서는 사람이라면, 몇 갈래 길 가운데 하나를 간다. 첫째, 나를 낳아 돌본 어버이가 한 짓 그대로 되풀이한다. 둘째, 나를 낳아 돌본 어버이가 한 짓을 찬찬히 짚고서 모두 털어내고 씻어내어 사랑을 그린다. 셋째, 나를 낳아 돌본 어버이가 베푼 사랑을 고스란히 물려준다. 넷째, 나를 낳아 돌본 어버이가 베푼 사랑을 새롭게 북돋아 우리 아이뿐 아니라 모든 아이하고 나눈다.
《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를 곰곰이 읽었다. 글쓴이는 ‘아이 엄마’하고 ‘어버이’라는 이름을 버거워하는데, 그렇다면 ‘어른’이라는 이름도 버거울 듯싶다. 아직 ‘아이’로 머물고 싶기에 ‘엄마·어버이·어른’ 모두 안 바라보려는 듯하다고 느낀다. 스스로 보금자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그대로 여러 이름을 새로 받게 마련인데, 스스로 나아갈 길과 살림을 안 바라보려고 하면 ‘나’라는 이름도 바라볼 수 없다.
아기인 나를 받아들여야 태어난다. 아이인 나를 받아들여야 자란다. 어른인 나를 받아들여야 배우고 익히며 나누고 가르친다. 어버이인 나를 받아들여야 사랑을 깨달으려고 눈뜨는 하루를 살아내고 살림을 짓는다. 아기요 아이에 어른이자 어버이인 나를 알아차리면 ‘어머니’나 ‘아버지’ 가운데 하나를 품을 수 있고, 이제부터 스스로 하늘빛을 품느냐 못 품느냐에 따라서 ‘한어버이(할머니·할아버지)’가 되거나 ‘늙은이’가 될 수 있다.
책마루로 숨기에 나쁠 일이란 없다. 숨어서 지내는 틈을 누릴 노릇이다. 아니, 집일과 집살림을 곁님한테 통째로 맡기고서 달포나 이태쯤 집을 비워도 된다. 아니, ‘어버이요 아버지이자 어른’이라는 이름을 짝꿍이 제대로 못 바라보고 못 받아들일 적에는, 여러 해쯤 집을 비우고서 홀로서기를 하면 된다. 짝꿍(사내)도 스스로 부딪히고 벼랑끝에 서면서 깨달을 틈을 누려야 한다.
그래서 어버이 가운데 어머니 쪽은 아버지한테 끝없이 일을 맡기고 시키고 얘기해야 한다. 이때에 잔소리라 여긴다면 집을 나오면 된다. 이 모든 잔소리가 잔잔하게 울리는 사랑소리인 줄 알아채고 받아들일 때까지 쉬잖게 일을 맡기고 시키고 얘기할 노릇이고, 이렇게 살림을 하다 보면, 어머니 쪽도 아버지 쪽도 ‘어버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놀랍고 대단한지 느낄 수 있다.
스스로 어떤 이름인지 안 바라보고 안 받아들일 적에는 ‘나’부터 없는 줄 알아야 한다. ‘나를 보기’가 아닌 ‘나만 보기’를 하느라, 한자말로 하자면 ‘자아도취’에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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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기 전까지, 엄마라는 이름을 얻기 전까지의 나는 자아도취형 인간이었다. (16쪽)
나는 더 이상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쓰지 않기 시작했다. (23쪽)
엄마라는 단어가 지닌 보편성은 얼마나 무서운가. 엄마라는 말이 가진 이미지는 너무도 강렬해서, 내가 엄마가 되는 순간 ‘나’라는 인간이 갖고 있던 개별성은 흔적 없이 사라진다. 나는 엄마이기 이전에 ‘나’라는 한 사람인데,. (50쪽)
나는 갈등 자체를 회피했다. 이보가 예민할 수 없는 사춘기 여학생들의 감정선을 견디기 어려웠다. (62쪽)
이 작은 아이의 ‘살아 있어’는 이렇게 펄떡펄떡 생기가 넘치는구나. 그럼 나는? 나의 ‘살아 있어’는 뭘까? (84쪽)
나는 늘 작가들을 동경했다. 뛰어난 글을 읽으며 감탄한 뒤에는 ‘나는 이렇게 쓸 수 없다’는 절망감과 ‘이렇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러움에 휩싸였다. (88쪽)
하지만 지치고 고단한 나에겐 화풀이의 대상이 필요했다. (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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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잠들면 서재로 숨었다》(김슬기, 웨일북, 2018)
한 아이의 엄마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 아이 엄마로 사는 길이 무엇인지
→ 아이 엄마는 어떻게 사는지
→ 아이 엄마란 어떤 삶인지
5쪽
그때의 나에게 간절했던 건 오롯이 나 혼자 존재할 수 있는 찰나의 시간과 비좁은 공간이었다
→ 그때 나는 오롯이 혼자 지낼 틈과 작은 곳에 목말랐다
→ 그때 나는 오롯이 혼자 있을 짬과 작은 곳을 빌었다
→ 그때 나는 오롯이 혼자 머물 겨를과 작은 곳을 바랐다
7쪽
책모임을 시작한 건 같은 해의 가을이다
→ 책모임은 그해 가을부터 한다
12쪽
그럭저럭 괜찮은 날이 많아졌다
→ 그럭저럭 보낸 날이 는다
→ 그럭저럭 산 날이 늘어난다
13쪽
육아에 지칠 때마다 남편에게 열변을 토하며 내뱉은 넋두리다
→ 아이한테 지칠 때마다 짝한테 내뱉은 넋두리다
→ 아이 돌보며 지칠 때면 곁님한테 내뱉은 넋두리다
39쪽
불안 역시 피할 수 없는 기제로 작동한다
→ 걱정도 떨칠 수 없다
→ 근심도 버릴 수 없다
→ 걱정도 안 할 수 없다
→ 근심도 꼭 한다
66쪽
나의 일, 나의 길은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포기해야 하는 것도,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내 일과 길은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그만둬야 하거나 그만둘 수 있지도 않다
→ 나는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일과 길을 끝내야 하거나 끝낼 수 있지도 않다
94쪽
이런 일 속에 숨어 있는 수많은 의미를 생각했다
→ 이런 일에 숨은 숱한 뜻을 떠올렸다
→ 이런 일이 무슨 뜻인지 곱씹었다
101쪽
나를 알기 위해, 내 주변의 사물을 알기 위해, 나를 둘러싼 세상과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 속의 역사를 알기 위해 반짝이는 눈으로 질문을 던지는 아이를 보며
→ 나를 알려고, 둘레를 알려고, 온누리와 내가 없던 지난날을 알려고 반짝이는 눈으로 묻는 아이를 보며
→ 나와 둘레와 온누리를 알려고, 또 내가 없던 어제를 알려고 눈을 반짝이며 묻는 아이한테
203쪽
소멸의 계절 겨울을 지나
→ 잠드는 겨울을 지나
→ 사위는 겨울을 지나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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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