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콩알글 : 이제 한국에서도 거의 모든 마을책집은 손글씨로 책을 하나하나 알린다. 일본에서는 진작부터 이러했다. 1999∼2000년에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일하며 길거리에서 책장사를 할 적에, 또 책잔치에 나가서 책팔이를 할 적에, 기계글씨 아닌 손글씨로 골판종이에 적어서 척 책상에 올려놓았더니 “야, 손글씨가 뭐니? 컴퓨터 있잖아? 컴퓨터로 뽑지, 손으로 그게 뭐니?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했다. 그때에는 교보·영풍을 비롯해서 어느 책집에서도 ‘손글씨로 책을 알리는 글종이’를 마련하면 죄다 손사래를 치거나 치우거나 내다버렸다. 그러나 책집에서든 길에서든 책잔치에서든 사람하고 사람이 만나서 책을 주고받는 장사를 하니, 책을 사 가는 분들한테 ‘이 책을 땀흘려서 꾸미고 펴낸 사람 숨결’을 보여주면서 건네고 싶었다. 책살림이 그렇게 앞선 일본이란 나라에서 굳이 예전부터 손글씨로 책알림글을 쓴 까닭을 헤아려 본다. 한국은 이제라도 이러한 살림결에 흐르는 마음빛을 찬찬히 나누면서 누릴 수 있으니, 이러한 모습도 좋다고 생각한다. 문득 생각하기로 ‘깨알같이 쓴 손글’이라고 말하려 했는데, 다시 보니 깨알은 너무 작아서 보기 어렵고 ‘콩알같이 쓴 손글’이라 말해야 옳겠구나 싶다. 동글동글 콩알글. 흙을 살리고 몸을 살리며, 새도 벌레도 한 톨씩 나누어 먹는 콩알 같은 콩알글. 그래, 콩알글이로구나. 2020.2.2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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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해 : 어릴 적부터 떠올리면, 어느 집에 열 해 넘게 눌러앉은 적이 없지 싶다. 태어난 인천 도화동 집이며, 옮겼던 주안동 집에서도 얼마 안 있다가 옮기기 바빴다고 등본에 나오고, 그나마 인천 신흥동 집에서는 아마 아홉 해를 살았나 싶은데, 연수동으로 옮겨야 했다.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살 적에도 이문동에서 세 해를 있다가 종로 교남동으로 옮겨 다섯 해 있었고, 다시 인천으로 돌아온 뒤에도 으레 거듭 옮기는 걸음이었다. 이제 고흥으로 옮겨서 열 해째인데, 열 해 동안 미적거리며 쓰지 못한 ‘책숲마실’ 이야기를 여민다. 이 열 해 사이에 ‘미적거리며 못 쓴 여러 책집’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 책집지기로 일하시다가 문을 닫으면 아주 연락이 끊기는데, 그분들이 씩씩하게 책집살림 가꿀 적에 마치지 못한 글을 이제 겨우 매듭을 지으며 가늘게 한숨을 쉰다. 2020.2.22.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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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말 : 어린이부터 읽는 그림책을 펴면, 거의 모두라 할 만한 그림책마다 ‘어린이 눈높이에 안 맞는 말씨’가 흐르기 일쑤이다. 게다가 요새는 ‘그녀·필요·이해·행복’ 같은 말씨까지 그림책에 나오고 ‘시작·존재·-하고 있다·-었었-’까지 쉽게 춤추고 ‘위·속·안·아래’를 어느 곳에 어떻게 써야 알맞은가를 가리지 못하는 분이 참으로 많다. “나무 아래”라고 하면 “나무뿌리가 있는 땅속”을 가리킨다. 나무 곁이나 나무가 드리운 그늘을 말하려면 “나무 밑”이나 “나무 곁”이라 해야 한다. 새가 나뭇가지에 앉을 적에는 “가지 위에 앉을” 수 없다. “가지에 앉는다”라 해야 맞다. 어째 하나같이 띄어쓰기나 맞춤길만 살필 뿐, 말이 안 되는 말을 헤아리지 않고, ‘어른 인문책이나 논문에나 쓰는 일본 한자말에 번역 말씨’를 섣불리 그림책이나 동시나 동화에 쓰는 이가 너무 많고, 어린이 인문책은 차마 어린이한테 읽으라고 말하기 껄끄러울 만큼 어수선하다. 그런데 교과서도 똑같더라. 무엇이 말썽일까? “어려운 말”을 썼기에 말썽일까? 아니다. “어려운 말”은 써도 된다. 어렵고 쉽고 하는 대목이 아닌 “어린이 눈높이에 어울리는 말”을 썼느냐를 첫째로 살필 노릇이다. 이다음으로 “함께 즐거이 나눌 말”인가를 살피고, “기쁘게 물려받아 새롭게 가꿀 말”인가를 살필 노릇이지. 생각해 보라. 어린이한테 아무것이나 먹으라고 건네는 어버이나 어른이 어디 있는가? 어린이한테 아무 밥이나 섣불리 먹이지 않듯, 어린이한테 아무 말이나 함부로 쓰지 않아야, 비로소 우리는 ‘어버이·어른’이란 이름을 어린이 곁에서 쓸 만하다. 아무 곳이나 집으로 삼지 않아야 ‘어버이·어른’이다. 아무 밥이나 먹이지 않고, 아무 옷이나 입히지 않고, 아무 살림이나 그냥그냥 꾸리지 않을 뿐더러, 아무 말 잔치를 하지 않을 줄 알아야 ‘어버이·어른’이다. 그렇지만 한국이란 나라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엮는 숱한 일꾼은 아직 어린이를 바라보지 못하고 어깨동무도 못한다. 이제는 어린이를 바라보고 어깨동무를 하면 어떨까? 이제부터 어린이 눈높이를 살피고, 어린이한테 물려줄 말살림을 사랑스레 가꾸어 가면 어떨까? 2020.2.15.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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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교열 : 다른 사람이 쓴 책도 나쁘지 않지만, 스스로 좋아하는 살림길을 글로 담아서 책으로 내고 싶은데, 여러모로 글쓰기나 글손질을 어떻게 가누면 되는가를 몰라서 물어보는 이웃님이 있다. 이때에 늘 여쭙는 말씀을 옮겨 본다. “남한테 읽힐 글을 쓰려고 하지 마시고, 누구보다도 첫째인 읽음이(독자)는 바로 우리 스스로인 줄 알아야 해요. 가장 크고 사랑스러운 읽음이는 바로 나입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우리가 쓰는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읽으면서 재미있다고 활짝 웃거나 슬프다고 눈물방울이 똑똑 떨어질 수 있어야 해요. 남이 읽고서 웃어 주거나 울어 줄 글이 아닌, 내가 글을 쓰는 동안 저절로 웃음이 터지고 눈물이 쏟아지는, 그런 글쓰기가 되면 됩니다. 자, 글쓰기란 이와 같은데요, 교정교열이라고도 하는 글손질은 어떠하느냐 하면, 우리 스스로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게 글을 쓰지 않으면, 이 글을 되읽으면서 손질할 적에 지치고 괴롭답니다. 생각해 보시겠어요? 잘 읽히거나 팔려서 돈이 되기를 바라는 글로 책을 여민다고 할 적에, ‘똑같은 글을 세벌 네벌 다시 읽고서 틀린글씨 하나를 찾아내야 하는’데요, 마음이 끌리지 않거나 가지 않는 글을 되읽기란 끔찍하겠지요. 저는 사전을 쓰는 사람이라서, 제가 쓰는 사전은 적어도 열다섯벌을 되읽으면서 손질해요. 2016년에 선보인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은 서른벌을 되읽고 손질하느라, 저도 힘을 쫙 빼야 했습니다만, 출판사에서도 몹시 애써 주셨지요. 사전이야 워낙 꼼꼼하게 보아야 하니 열다섯벌도 서른벌도 잘 참아내며 되읽는데요, 여느 책이라면 적어도 다섯벌은 되읽고서 손질할 노릇입니다. 틀린글씨 하나를 살피려고 다섯벌을 되읽는 글이라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으신가요? 좀 아실까요? 스스로 며칠 만에 다섯벌을 되읽으면서도 기뻐서 웃음이 나고 슬퍼서 눈물이 날 만한 이야기를 쓰신다면 책을 펴낼 만해요. 날마다 한벌씩 되읽기를 서른 날을 잇달아 하는, 그러니까 서른 날에 걸쳐 서른벌을 되읽으면서도 언제나 웃음눈물이 갈마드는 이야기를 글로 쓰셨다면, 그 책은 둘레에서 널리 읽어 주거나 아껴 주지 않아도, 이러한 글을 책으로 엮은 이웃님한테 가장 빛나는 사랑으로 남을 테고, 이 빛나는 사랑은 아이들한테 넉넉히 물려줄 만하리라 생각해요.” 2020.2.14.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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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 아낌없이 주기에 아낌없이 받는다고 여길는지 모르고, 아낌없이 길어올리니 아낌없이 퍼져서 너하고 나라는 울타리나 담벼락이 없이, 모두 나란히 누리는 살림길을 열는지 모른다. 주기에 받는다기보다 스스로 짓고 새로 열며 함께 기쁜 살림빛이지 싶다. 2020.1.23. ㅅㄴㄹ


惜しげもなく : 惜しげもなくくれるのに, 惜しみなく貰うって, 考えられる。 惜しげもなく汲み上げるから, 惜しげもなく廣がって, 君と僕とは垣根も壁もなく, みんな竝んで暮らす生活を開ける。 くれるからもらうっていうか, 自分で建てて新しく開きながら, 共にうれしい生活だと思う。 (作 : 森の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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