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어려운 말 : 어린이부터 읽는 그림책을 펴면, 거의 모두라 할 만한 그림책마다 ‘어린이 눈높이에 안 맞는 말씨’가 흐르기 일쑤이다. 게다가 요새는 ‘그녀·필요·이해·행복’ 같은 말씨까지 그림책에 나오고 ‘시작·존재·-하고 있다·-었었-’까지 쉽게 춤추고 ‘위·속·안·아래’를 어느 곳에 어떻게 써야 알맞은가를 가리지 못하는 분이 참으로 많다. “나무 아래”라고 하면 “나무뿌리가 있는 땅속”을 가리킨다. 나무 곁이나 나무가 드리운 그늘을 말하려면 “나무 밑”이나 “나무 곁”이라 해야 한다. 새가 나뭇가지에 앉을 적에는 “가지 위에 앉을” 수 없다. “가지에 앉는다”라 해야 맞다. 어째 하나같이 띄어쓰기나 맞춤길만 살필 뿐, 말이 안 되는 말을 헤아리지 않고, ‘어른 인문책이나 논문에나 쓰는 일본 한자말에 번역 말씨’를 섣불리 그림책이나 동시나 동화에 쓰는 이가 너무 많고, 어린이 인문책은 차마 어린이한테 읽으라고 말하기 껄끄러울 만큼 어수선하다. 그런데 교과서도 똑같더라. 무엇이 말썽일까? “어려운 말”을 썼기에 말썽일까? 아니다. “어려운 말”은 써도 된다. 어렵고 쉽고 하는 대목이 아닌 “어린이 눈높이에 어울리는 말”을 썼느냐를 첫째로 살필 노릇이다. 이다음으로 “함께 즐거이 나눌 말”인가를 살피고, “기쁘게 물려받아 새롭게 가꿀 말”인가를 살필 노릇이지. 생각해 보라. 어린이한테 아무것이나 먹으라고 건네는 어버이나 어른이 어디 있는가? 어린이한테 아무 밥이나 섣불리 먹이지 않듯, 어린이한테 아무 말이나 함부로 쓰지 않아야, 비로소 우리는 ‘어버이·어른’이란 이름을 어린이 곁에서 쓸 만하다. 아무 곳이나 집으로 삼지 않아야 ‘어버이·어른’이다. 아무 밥이나 먹이지 않고, 아무 옷이나 입히지 않고, 아무 살림이나 그냥그냥 꾸리지 않을 뿐더러, 아무 말 잔치를 하지 않을 줄 알아야 ‘어버이·어른’이다. 그렇지만 한국이란 나라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엮는 숱한 일꾼은 아직 어린이를 바라보지 못하고 어깨동무도 못한다. 이제는 어린이를 바라보고 어깨동무를 하면 어떨까? 이제부터 어린이 눈높이를 살피고, 어린이한테 물려줄 말살림을 사랑스레 가꾸어 가면 어떨까? 2020.2.15.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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