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걷는 사람 : 운전면허시험을 본 적조차 없으니 자동차를 몰 줄 모르기도 하거니와 TV수신료를 낸 적이 없으니 방송을 보지도 않는데다가, 웬만한 길은 두 다리나 자전거로 다니고 버스로 마을길을 훑듯이 다니며 살아간다. 여수문화방송에서 책을 말하는 자리에 나가기로 해서 고흥에서 여수로 가는 길에도 이처럼 두 다리하고 버스로 움직인다. 여수 시외버스나루에서 내린 뒤에 등짐하고 끌짐을 이끌고 천천히 걷는다. 여수는 여러모로 관광도시라 할 텐데 거님길이 참 엉망이다. 거님길 한복판에 버젓이 자동차가 버티고 서기도 하지만, 길바닥이 깨지고 울퉁불퉁한 채로 나뒹군 지 한참 된 티가 난다. 관광이란 길손집에서 관광지 사이를 자동차를 빌려서 싱싱 움직이고는 사진만 찍으면 끝인가? 그렇다면 제주 올레길을 흉내낸 거님길은 다 뭘까? 두 다리로 걷는 길이 엉터리라면 그 고장은 그냥 엉터리라는 뜻이다. 생각해 보라. 어린이한테 자가용이 있는가? 열다섯 살이나 열일곱 살 푸름이가 자가용을 모는가? 아니다. 어린이도 푸름이도 걸어다닌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떠한가?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이 자가용을 몰지 않는다. 참으로 많은 이들이 걸어다닌다. 거님길을 똑바로 다스리는 길은 문화나 복지도 아닌 ‘기본 인권’이자 ‘기본 생활권’이다. 그런데 한국은 어디를 가도 거님길을 제대로 돌보는 고장을 못 보았으니, 한국은 모든 고장이 그저 엉터리이지 싶다. 걷지 않는 대통령이라면 중국에 줘 버리자. 걷지 않는 시장이나 군수라면 일본에 보내 버리자. 걷지 않는 공무원이라면 모든 공무원을 없애 버리자. 마을을 걷지 않는 공무원이 마을을 알거나 사랑할 수 있을까? 지역구를 언제나 샅샅이 걸어서 다니지 않는 정치꾼이 마을사랑이라는 길을 펼 수 있을까? 나라 곳곳을 두 다리로 걷지 않는 대통령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을까? 이 나라를 두루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로 다니지 않으면서 글을 쓰는 이들이 무슨 문학을 하거나 교육을 하거나 정치나 사상이나 종교를 할까? 시인이나 소설가나 교사나 교수나 과학자나 스님이나 목사한테서 운전면허를 모두 거둬들여라. 자가용을 몰면서 시를 쓰고 소설을 쓰거나 아이를 가르치거나 깨달음을 말하거나 과학을 밝히려 한다면 하나같이 거짓말쟁이라고 느낀다. 그대한테 다리가 없다면 자가용을 타라. 그대한테 다리가 있다면 걷거나 자전거를 타라. 여수문화방송 편성국장님이 “터미널에서 방송국까지 걸어온 사람은 오늘 처음 봤습니다.” 하고 말씀하더라. 나는 빙그레 웃었다. “언덕받이에 있는 방송국으로 걸어 올라가는 길이 대단히 즐거웠어요. 노랑턱멧새 같았는데, 열다섯 마리 남짓 저하고 1미터쯤 떨어진 채 길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같이 올라왔어요. 우거진 나무에 얼마나 많은 새가 깃들어 사는가 하고 놀랐어요. 여수에 이런 곳이 있고, 방송국이 이런 길이라니, 참 아름답더군요.” 2020.3.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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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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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이란 : “국어사전을 쓴다는 양반이 무슨 만화책을 그렇게 많이 봐?” 하는 핀잔을 으레 듣습니다. 이런 핀잔을 들으면 빙그레 웃음짓고서 “아직 만화책을 안 보셨구나? 아름다운 만화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짓거나 웃음을 지은 적이 없으시구나? 나이든 어른끼리만 읽는 문학으로는 삶을 못 바꿔요. 어린 아이들하고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읽으면서 울고 웃는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이 바로 삶을 바꾼답니다.” 하고 대꾸를 해요. 테즈카 오사무라는 ‘만화 하느님’은 일본제국주의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그무렵 ‘군수공장 징용’으로 끌려갔고, 그곳 뒷간에서 몰래 만화를 그리면서 ‘전쟁무기 만드는 일’을 안 하려고 숨다가 들통이 나서 홀로 감시탑에 갇힌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그 군수공장은 미군 폭격으로 싸그리 불탔고, 감시탑에 갇힌 ‘군수공장 징용자이면서 일을 안 하고 만화만 그리던 테즈카 오사무’는 용케 살아남았습니다. 이런 그이는 일본 정부가 ‘패전’이라 읊은 1945년 8월 15일 그날을 ‘해방’으로 여기면서 일본뿐 아니라 지구별 모든 어린이가 만화로 ‘평화사랑’을 쉽고 재미나게 누릴 수 있기를 꿈꾸었습니다. 만화책이란 이런 책입니다. 2020.3.8.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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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인 표현 : ‘추상적인 표현’이란 뭘까? 이런 말을 어린이한테 들려줄 만할까? 어른 사이에서도 ‘추상적인 표현’은 ‘뜬구름을 잡는’ 느낌이다. ‘두루뭉술’하지. ‘어렴풋’하다. ‘한자말을 잇달아 쓰는 말은 뜬구름을 잡듯 얄궂다‘고 밝히는 어느 분이 쓴 글도 ‘한자말을 잇달아 쓴 모습’이더라. 아, 그렇게 힘든가? 남이 쓴 한자말은 읽기에 거북하고 글쓴님이 쓰는 한자말은 읽기에 안 거북할 만할까? 그 한자말이나 저 한자말이나 매한가지 아닐까? 글손질을 해본다. 2020.3.4. ㅅㄴㄹ


[보기글]

“추상적인 표현을 뒤섞어 놓은 문장을 목격하는 순간, 왠지 내가 유식한 것 같은 착각이 들지만, 흔하게 사용하지 않는 한자어를 굳이 연이어 써야 했을까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논문조차 어렵게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독자의 폭을 좁히는 일이니까. 아무리 어려운 용어라도 쉽게 풀어 써야 좋은 글이다. 인터뷰를 정리할 때 내가 가장 신경 쓰는 대상은 독자다. 누군가 책을 읽고 그 저자의 인터뷰를 찾아볼 가능성은 1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은 독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숲노래 글손질]

“뜬구름 잡듯 뒤섞어 쓴 글을 보면, 왠지 내가 똑똑한 듯하지만, 흔히 안 쓰는 한자말을 굳이 잇달아 써야 했을까 모르겠다. 배움글조차 어렵게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읽는이가 줄어드니까. 아무리 어려운 말이라도 쉽게 풀어 써야 좋다. 만나서 들은 말을 추스르며 읽는이를 살핀다. 책을 읽고 글쓴이가 들려준 이야기를 찾아볼 일은 드물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밑이야기를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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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 : 누구를 만나러 움직이는 길이면 으레 노래꽃 열여섯 줄을 쓴다. 이 노래꽃은 으레 둘을 떠올리면서 쓴다. 한켠으로는 ‘오늘 마주할 이웃’이요, 다른 한켠으로는 ‘우리 집 어린이’이다. 글꾸러미에 먼저 손글씨로 쓰고, 정갈한 종이에 두 벌 옮겨쓴다. 한 벌은 ‘오늘 마주할 이웃’한테 드리고, 다른 한 벌은 ‘우리 집 어린이’한테 준다. 오늘 마주할 이웃한테 어제 쓴 손글을 건네지 않는다. 바로 오늘 써서 곧장 오늘 건넨다. 오늘 이곳에 흐르는 바람이 온누리를 휘휘 돌다가 사분히 내려앉아서 나란히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손글씨란 손에 담는 글빛이다. 손으로 또박또박 옮기면서 눈으로 바라보는 마음빛이다. 머리로 짓고 마음으로 심은 이야기를 함께하려고 들려주는 사랑노래이기도 하다. 2020.3.4.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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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손가락 :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는 말이 있다. 난 이 말이 영 안 내킨다. 손가락을 보면 어때서? 달만 보느라 손가락을 못 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한테 눈이 둘이 있으면, 두 눈으로 달하고 손가락을 나란히 볼 노릇이다. 하나만 볼 수 없다. 무엇보다도 나는 ‘달’을 안 본다. 나는 오직 ‘별’을 본다. 그리고 별이니 달이니 손가락이니보다는 ‘나’를 보려고 한다. 2000.3.2. ㅅㄴㄹ


月と指 : “月は見ないで指だけ見る”という言葉がある。 私はこの言葉が氣に入らない。指を見たらどうかな? 月だけ見ていて指が見られない人がどれほど多いか? 僕たちには目が二つあれば, 

兩眼で月と指を一緖に眺めよう。 一つだけ見られない。 何よりも私は‘月’を見ない。 私はただ‘星’を見る。そして星だの月だの指だのよりは‘私’を見ようとする。 (作 : 森の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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