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이 여기 있으니



  책방이 여기 있으니, 즐겁게 찾아간다. 여기에 있는 이 책방은 언제나 마을쉼터 구실을 하니, 나는 이곳에서 마음을 쉬면서 느긋하게 책을 살핀다. 이 조그마한 책방은 예나 이제나 앞으로도 사랑스러운 책터로 고운 숨결을 이을 테니, 바로 이 책방은 누구나 홀가분하게 드나들면서 이야기를 새록새록 얻는 만남터로 거듭난다.


  책방이 여기 있으니, 마을이 한결 싱그러이 춤춘다. 여기에 있는 이 책은 언제나 내 가슴으로 스며드는 노래가 될 테지. 나는 노래를 부르려고 책방에 간다. 나는 노래를 함께 나눌 이웃을 만나려고 책방에 선다. 나는 노래를 짓는 슬기로운 숨결을 되새기려고 오늘 여기 이 책방에서 책시렁을 찬찬히 살펴본다. 4348.10.17.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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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책을 찾아서



  집에 책을 잔뜩 쌓아 놓고서 읽는 사람은 흔히 ‘집에서 책을 잃는’. 책꽂이에 꽂았는데 잃고, 책탑처럼 책을 쌓았기에 잃으며, 가방에 넣은 채 까맣게 잊어서 잃는다. 베개 밑에 두거나 깔개 밑에 둔 줄 잊은 채 잃기도 하는데, 어린 아이들이 뛰놀다가 베개 밑에 깔리기도 하니까, 뭐. 마당에서 책을 읽다가 퍼뜩 다른 일이 떠올라서 평상이나 짐에 올려놓고 집안으로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책을 잃기도 한다. 이래저래 잃는 책이 많다. 웬만한 책은 하루가 다 가기 앞서 찾지만, 이틀이나 사흘이 되도록 못 찾는 책이 있고, 어느 책은 여러 해 뒤에 뜬금없다 싶은 곳에서 찾기도 한다.


  어제오늘도 책 한 권을 찾느라 한참 온갖 곳을 뒤졌으나 책이 안 나왔다. 오늘까지 사흘째 책 한 권을 찾는데 도무지 나오지 않아서 새로 한 권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 놓았는지, 아니면 어디에 두고 잃었는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저녁해를 바라보면서 빨래를 걷은 뒤 우체국에 다녀온다. 작은아이가 잠들었기에 혼자 다녀온다. 작은 가방에 소포를 잔뜩 넣고 다녀온다.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치고 면소재지 가게에 들러서 집으로 돌아올 무렵, 문득 가방이 더 무겁다고 느껴서 가방 주머니 한쪽을 여니 ‘사흘 동안 잃어버려서 못 찾은 책’이 나온다.


  허허허. 너털웃음이 나오면서 빙그레 꽃웃음도 터진다. 이야, 드디어 찾았네.


  이제 앞으로는 책을 좀 잃지 말자. 무엇보다도 ‘집에서 책을 잃는 바보짓’은 좀 그만하자. 집에서 읽던 책을 어디에 두었는지 까맣게 잊는 멍청한 짓은 오늘로 끝내자. 4348.10.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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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전을 읽은 청소년한테 들려준 말



  어여쁜 푸름이가 나한테 묻는다. 나는 이 물음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위인전을 보면 위인들은 역경이나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데요, 역경이나 고난은 어떻게 해야 해요?” “힘들게 살고 싶어요?” “네? 잘 모르겠어요.” “힘들게 살고 싶으면 일부러 힘든 일을 찾아서 해도 돼요. 그런데 왜 힘든 일을 일부러 찾아서 해야 할까요? 생각해 보세요. 백만 평이라고 쳐 보지요. 우리 부모님이 훌륭한 일을 해서 아름다운 집과 숲을 백만 평 넓이로 가꾸는 보금자리를 이루었다고 해 보지요. 자,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이 아름다운 부모님 집을 일부러 떠나서 밑바닥부터 다시 하면서 일부러 어렵게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우리 부모님이 일군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그야말로 아름답게 누리면서 삶을 지으면 될까요? 어느 경험을 골라서 하든 다 괜찮아요. 좋은 쪽도 나쁜 쪽도 없어요. 고난과 역경을 일부러 다 경험해 보아도 나쁘지 않아요. 그러나 고난과 역경을 일부러 경험해 보다가 지치거나 힘들어서 죽고 싶어질 수 있고, 그만 죽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한번 생각해 보셔요. 우리 부모님이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일구셨다면, 이 보금자리는 왜 일구셨을까요?” 어여쁜 푸름이하고 더 말을 나눈다. “우리 친구는 ‘위인’이 되고 싶으세요?” “아니요.” “위인이 굳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어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사람이 되어 살면 돼요. 스스로 즐겁고 기쁘며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살면 돼요. 그뿐이에요. 위인이 될 까닭도 안 될 까닭도 없어요. 우리는 우리 삶을 배워서 꿈을 지으면 돼요. 위인전이 왜 재미없는 책인지 아시나요? 위인전은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몰아세우면서 마치 그러한 일을 누구나 다 겪어야 하는듯이 이야기하기 때문에 재미없어요.” 4348.10.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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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용료’를 챙겨 줄 수 있는 문화



  신문이나 잡지 같은 매체에서 ‘사진을 안 쓰는’ 일이란 드물다. 흔하게 나오는 수많은 책에서도 ‘사진을 안 쓰는’ 일이란 드물다. 그러면, 사진을 그렇게 흔히 쓰는 한국 사회에서 사진사용료는 얼마나 챙겨 줄까? 사진을 찍은 사람 이름(저작권)은 얼마나 지켜 줄까?


  나는 사진을 1999년부터 찍었고, 내가 찍은 사진을 여러 신문이나 잡지에 예전에는 제법 보내 주었으나 요새는 웬만해서는 거의 아무 데도 보내 주지 않는다. 한국에서 나오는 모든 신문사와 잡지사가 이러하지 않을 테지만, 나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신문사와 잡지사에 내 사진을 보내 주면서 ‘사진사용료’를 받은 일이 아직 없다. 다문 1만 원이나 1천 원조차 사진사용료를 치러 주지 않았다. ‘진보’ 매체이든 ‘보수’ 매체이든 똑같다. 그러나 꼭 한 군데, 경기문화재단이라는 곳에서는 내 사진을 쓰면서 ‘한 장에 얼마씩’ 꼼꼼하게 챙겨 주었다(게다가 큼지막하게 쓰면 사용료를 더 주기까지 했다). 사진사용료를 이토록 알뜰히 챙겨 주는 곳은 꼭 경기문화재단 한 군데만 보았다(내 경험으로는).


  요 몇 해 사이에는 다른 걱정이 하나 생긴다. 걱정이라기보다 슬픔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어느 사진잡지에 사진비평을 자원봉사로 써서 싣는데, 달마다 그 사진잡지에 ‘사진가 작품’을 얻어서 함께 실을 때마다 더없이 미안하다. 나로서도 사진책도서관을 지키는 살림돈이 모자라서 빚을 지거나 이웃이나 형한테서 돈을 꾸는 터라, 사진가한테 사진을 몇 장씩 얻어서 지면에 싣도록 다리를 놓기는 하되, 사진가한테 아직 한 번도 사진사용료를 챙겨 주지 못했다. 나도 글을 실으면서 돈(글삯)을 한 번도 못 받았으니 사진가로서도 사진을 실으면서 사진사용료(사진삯)를 못 받겠구나 싶기는 하지만, 이래서야 될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앞으로는 내 주머니를 털어서 적어도 5만 원이라도 작가들한테 사진사용료를 챙겨서 드려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잡지사에서 못한다면 나라도 해야 할 노릇이리라 본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짝 아찔하지만, 우리 살림돈이 아슬아슬하니까, 그렇지만 그런 생각만 하다가는 앞으로도 사진사용료를 제대로 치르는 문화는 아주 먼 나라 일이 될밖에 없다. 길을 찾고 한 걸음씩 천천히 가다 보면 틀림없이 나아질 테지만, 오늘 내 주머니에 돈이 없대서 그냥 지나치려고 한다면 아무것도 안 된다. 내 주머니에 없으면 이웃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빌려서라도 사진사용료를 치르고, 나중에 이웃님한테 빚을 갚을 수도 있으니까. 4348.9.2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 + +


이러한 사진을 얻어서 지면에 싣는데

아무도(작가도 매체도) 사진사용료를

치러 줄 수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



한영수 님 사진책 <꿈결 같은 시절>에 실린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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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해를 읽은 책



  도서관 책상에 올려놓고 여섯 해에 걸쳐서 그야말로 야금야금 읽은 책을 이레쯤 앞서 다 읽었다. 여섯 해 동안 책상맡에 둔 책을 이제 책꽂이로 옮긴다. 시원하면서 섭섭하다고 할 때에 이런 느낌이로구나. 두툼한 책을 책상맡에서 치우니 책상이 넓어 보인다. 이제 새로운 책이 도서관 책상에 오르겠지. 앞으로 어떤 책을 또 여섯 해에 걸쳐서 야금야금 읽으려나. 어떤 책이 여섯 해에 걸쳐서 고요히 마음으로 스밀 만할까. 4348.9.2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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