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사용료’를 챙겨 줄 수 있는 문화



  신문이나 잡지 같은 매체에서 ‘사진을 안 쓰는’ 일이란 드물다. 흔하게 나오는 수많은 책에서도 ‘사진을 안 쓰는’ 일이란 드물다. 그러면, 사진을 그렇게 흔히 쓰는 한국 사회에서 사진사용료는 얼마나 챙겨 줄까? 사진을 찍은 사람 이름(저작권)은 얼마나 지켜 줄까?


  나는 사진을 1999년부터 찍었고, 내가 찍은 사진을 여러 신문이나 잡지에 예전에는 제법 보내 주었으나 요새는 웬만해서는 거의 아무 데도 보내 주지 않는다. 한국에서 나오는 모든 신문사와 잡지사가 이러하지 않을 테지만, 나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신문사와 잡지사에 내 사진을 보내 주면서 ‘사진사용료’를 받은 일이 아직 없다. 다문 1만 원이나 1천 원조차 사진사용료를 치러 주지 않았다. ‘진보’ 매체이든 ‘보수’ 매체이든 똑같다. 그러나 꼭 한 군데, 경기문화재단이라는 곳에서는 내 사진을 쓰면서 ‘한 장에 얼마씩’ 꼼꼼하게 챙겨 주었다(게다가 큼지막하게 쓰면 사용료를 더 주기까지 했다). 사진사용료를 이토록 알뜰히 챙겨 주는 곳은 꼭 경기문화재단 한 군데만 보았다(내 경험으로는).


  요 몇 해 사이에는 다른 걱정이 하나 생긴다. 걱정이라기보다 슬픔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어느 사진잡지에 사진비평을 자원봉사로 써서 싣는데, 달마다 그 사진잡지에 ‘사진가 작품’을 얻어서 함께 실을 때마다 더없이 미안하다. 나로서도 사진책도서관을 지키는 살림돈이 모자라서 빚을 지거나 이웃이나 형한테서 돈을 꾸는 터라, 사진가한테 사진을 몇 장씩 얻어서 지면에 싣도록 다리를 놓기는 하되, 사진가한테 아직 한 번도 사진사용료를 챙겨 주지 못했다. 나도 글을 실으면서 돈(글삯)을 한 번도 못 받았으니 사진가로서도 사진을 실으면서 사진사용료(사진삯)를 못 받겠구나 싶기는 하지만, 이래서야 될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앞으로는 내 주머니를 털어서 적어도 5만 원이라도 작가들한테 사진사용료를 챙겨서 드려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잡지사에서 못한다면 나라도 해야 할 노릇이리라 본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짝 아찔하지만, 우리 살림돈이 아슬아슬하니까, 그렇지만 그런 생각만 하다가는 앞으로도 사진사용료를 제대로 치르는 문화는 아주 먼 나라 일이 될밖에 없다. 길을 찾고 한 걸음씩 천천히 가다 보면 틀림없이 나아질 테지만, 오늘 내 주머니에 돈이 없대서 그냥 지나치려고 한다면 아무것도 안 된다. 내 주머니에 없으면 이웃님 주머니에 있는 돈을 빌려서라도 사진사용료를 치르고, 나중에 이웃님한테 빚을 갚을 수도 있으니까. 4348.9.29.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 + +


이러한 사진을 얻어서 지면에 싣는데

아무도(작가도 매체도) 사진사용료를

치러 줄 수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일일까?



한영수 님 사진책 <꿈결 같은 시절>에 실린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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