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다



  책방에 책이 있다. 책에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에 넋이 있다. 넋에 사랑이 있다. 사랑에 삶이 있다. 삶에 하루가 있다. 하루에 모든 숨결이 있다. 문득 책을 덮는다. 한창 책을 읽다가 덮는다. 책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책을 골라서 읽다가, 차근차근 흐름을 살피다가, 조용히 책을 덮는다.


  책에 깃든 이야기는 어떤 숨결인지 곰곰이 되새긴다. 내 가슴속에서 늘 싱그럽게 살아서 움직이는 숨결을 찾으려고 수많은 책을 살피거나 읽은 셈일까. 내 가슴속에서 펄떡펄떡 뛰는 숨결이 내 삶이 맞는지 알아보려고 다른 사람들이 적은 책을 그토록 찾거나 살핀 셈일까.


  책이 보여주는 길인 ‘이 책에 적힌 대로 따라오시오’가 아니다. 곧잘 ‘이 책에 적힌 대로 따라오시오’ 하고 외치는 책이 있지만, 이런 책은 한 번 훑은 뒤에 다시 펼칠 일이 드물다. 내가 여러 차례 되읽는 책은 언제나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아무 길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나 스스로 내 가슴속을 들여다보라고 넌지시 고갯짓을 할 뿐이다. ‘네 가슴속에 다 있는데 뭘 그리 먼길을 나서면서 기웃기웃 구경하니?’ 하고 한 마디 한다.


  우리는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우리는 죽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살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참말 언제나 모든 것을 다 하면서 이곳에 있다. 저마다 가슴속에 어떤 이야기가 있고 어떤 숨결이 피어나는가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기에 ‘다른 책’, 그러니까 ‘다른 나’를 찾으려고 했는가 보다.


  책이 있는 책방에 선다. 책마다 수많은 ‘내’가 있다. 저마다 다른 곳에서 저마다 다르게 꿈꾸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내’가 있다. 나는 어떤 길을 책에서 보려 하는가. 나는 어떤 길을 익혀 내 길을 걸어가려는가. 실마리를 여는 열쇠를 가슴속에서 끄집어 내려고 이웃한테 말을 건다. 책을 펼쳐서 읽고, 책을 조용히 덮은 뒤, 한손으로 가슴 언저리를 쓰다듬는다. 4347.8.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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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서



  책방에서 책을 본다. 책방에서 책내음을 맡는다. 책방에서 책빛을 느낀다. 책방에서 책지기 손길을 헤아린다.


  책방에 가는 까닭은 내 마음을 움직이는 책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책을 손에 쥐는 까닭은 내 마음을 찬찬히 살찌우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싶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 하루가 즐겁다면 먼먼 옛날부터 우리 둘레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이녁 슬기를 책마다 살뜰히 담아서 나누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내 마음에 새로운 숨결로 스며들 책을 살핀다. 내가 고르는 책 하나는 둘레 이웃이 빚은 선물이다. 둘레 이웃은 내가 책을 더 잘 알아볼 수 있도록 곱게 건사해서 책시렁에 놓는다. 나는 그저 책을 바라볼 수 있으면 된다. 나는 그저 책을 손에 쥐어 펼치면 된다. 나는 그저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마음에 이야기를 새기면 된다.


  책방지기는 쪽종이에 이웃 책방 전화번호를 적어서 붙인다. 책손이 남긴 말을 간추려 쪽종이에 적어서 나란히 붙인다. 책을 읽을 적에는 이야기를 읽고, 이야기를 읽을 적에는 숨결을 읽으니, 책 하나를 장만하러 책방에 갈 적에는 숨결을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려는 마음이지 싶다. 4347.8.30.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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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4년 9월 21일에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열리는 '책방은 도시를 가꾸는 숲'이라는 좌담회에서 쓸 발표글입니다. 다음달에 쓸 발표글이지만, 나 스스로 이 글을 띄워 놓아야 그때에 안 잊고 챙길 수 있으리라 여겨, 걸쳐 놓습니다. 다음달 9월 21일에 부산 헌책방골목으로 나들이를 오실 수 있는 분들은, 즐겁게 찾아와서 좌담회에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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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은 도시를 가꾸는 숲


  책방이 한 곳 있는 마을과 책방이 한 곳도 없는 마을은 사뭇 다릅니다. 도시라면 자동차를 몰거나 버스라든지 전철을 타고 제법 멀리까지 책방마실을 할 텐데, 시골에서는 가까이 드나들 책방이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아름다운 숲과 들과 멧골과 바다와 냇물을 누리면 된다고 할 만하니, 책이나 책방이 없어도 괜찮다고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도시는 어떠할까요. 도시에는 극장과 찻집과 술집과 옷집과 백화점과 갖가지 맛집이 있으면 될까요. 책방 하나 없는 도시를 세우고, 책방 하나 없이 아파트와 큰 건물을 줄줄이 세우면 될까요.

  나라에서는 고속도로를 닦거나 발전소를 짓거나 새로운 도시를 만든다며 아파트를 올리는 데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들입니다. 그러나, 책방 한 곳 건사하려고 들이는 돈은 아예 없습니다. 다만, 공공도서관은 꾸준히 늘립니다.

  도서관에서 모든 책을 다 빌려서 읽을 수 있어도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굳이 집에 책을 두기보다는, 가까운 도서관에 모든 책이 다 있어서 언제라도 넉넉히 책을 빌려서 읽을 수 있어도 아름답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에 있는 도서관은 사진책이나 그림책(어른이 보는 그림책과 어린이가 보는 그림책 모두)이나 만화책은 갖추지 않습니다. 한국에 있는 도서관은 문학책과 인문책을 살펴서 갖춥니다. 어린이책은 따로 어린이책 도서관에 가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새벽 일찍 열거나 밤 늦게 여는 도서관이 없습니다. 도서관 일꾼을 넉넉히 두어 스물네 시간 불을 밝히는 도서관이 없지요.

  책방은 책을 사고파는 구실만 하지 않습니다. 책방이 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갖추지 않는 책’을 만납니다. 책방이 있기 때문에 ‘새로 나오는 책’을 더 빠르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책방이 있기 때문에 ‘틈나는 대로 자주 빌려서 볼 만한 책’을 즐겁게 장만해서 언제나 집에 갖출 수 있습니다.

  우리가 책을 장만해서 읽는다고 할 때에는 ‘한 번 읽은 뒤 다시는 안 펼칠 책’을 장만하거나 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번 읽은 책을 다시는 안 볼’는지 몰라요. 한 번 읽었으니 다 되었다고 여겨 헌책방에 내놓을 수 있어요.

  한 번 읽고 그칠 책이라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도 됩니다. 그러나 더 헤아려 본다면, 한 번 읽고 그칠 책을 도서관에서 꼭 갖춰야 하는가 하고 궁금해 할 만합니다. 왜냐하면, 도서관은 ‘대여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은 책을 오래도록 건사하면서 지키려는 곳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우리가 책방마실을 하면서 책을 장만한다고 할 때에는, 두고두고 되읽을 책을 산다는 뜻이요, 아이들한테 물려주고 싶은 아름다운 빛을 만난다는 뜻입니다.

  책방이 한 곳이라도 있는 마을과 책방이 한 곳조차 없는 마을은 아주 다릅니다. 책방이 조그맣다 하더라도 한 곳이라도 있다면, 이 마을은 ‘아이들한테 물려줄 선물이 될 책’을 갖춘 쉼터나 만남터나 모임터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책방이 한 곳조차 없다면? 말 그대로입니다.

  책방이 한 곳이라도 있는 마을이란, 책뿐 아니라 다른 슬기로운 빛을 아이들한테 물려주려는 어른들이 씩씩하고 힘차게 마을살림을 가꾼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그러니까, 마을빛을 가꾸면서 마을살림을 북돋우려 한다면, 마을에는 아주 조그마한 책방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한 곳은 있어야 합니다.

  책이란 무엇일까요? 한 번 읽고 나서 다시 안 읽는 종이꾸러미도 ‘겉보기로는 책’입니다만, 참된 이름으로 ‘책’을 말해 본다면, 책이란 사람이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동안 가장 아름답고 환하게 밝힌 슬기로운 빛을 담은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숲에서 자라는 나무를 베어 종이를 빚은 뒤, ‘나무에서 탈바꿈한 종이’에 이야기를 적바림할 때에 책이 됩니다.

  마을에 책방이 한 곳이라도 있다고 할 적에는, 마을살림을 가꾸고 마을빛을 밝히는 슬기를 더욱 북돋우거나 살찌울 밑거름이 되는 ‘책’이 있다는 뜻입니다. 마을사람 스스로 책을 장만해서 읽으면서 스스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을사람 스스로 아름다운 책을 함께 장만해서 읽으며 늘 즐겁게 새로운 빛을 배우고 나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책방은 왜 도시를 가꾸는 숲이 될까요? 책방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름다운 책을 알아볼 뿐 아니라, 아름다운 책을 펴낸 작가와 출판사한테 힘을 보태어 줄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책을 한 권 장만하면, 이 아름다운 책을 쓴 사람과 펴낸 사람은 기쁘게 일삯을 벌어요. 아름다운 눈길로 알아본 책 하나는, 아름다운 손길로 이어지고, 아름다운 마음길로 서로 다리를 놓는 사이, 어느새 마을과 마을이 어깨동무하면서 지구별이 사랑스럽게 빛날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나 새 찻길을 닦아야 하더라도, 공사비 가운데 1/1000쯤은 ‘마을에 책방 한 곳 지키도록 하는 돈’으로 쓸 수 있기를 빕니다. 공장을 짓건 발전소를 짓건 골프장을 짓건 백화점을 짓건 무엇을 하건, 중앙정부와 지역정부 모두 공사비 가운데 1/1000쯤은 ‘마을 헌책방’과 ‘마을 새책방’이 함께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돕는 돈으로 쓸 수 있기를 빕니다. 마을마다 책방이 싱그럽게 살아나야 마을이 스스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4347.8.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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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지키는 손



  책방지기는 내내 장갑을 끼고 일한다. 헌책방이든 새책방이든 언제나 장갑을 끼고 일한다. 책방지기가 장갑을 끼지 않으면 손이 다칠 수 있다고도 할 텐데, 손보다 책이 다칠 수 있다. 책을 나르고 꽂고 하다 보면 손에서 땀이 나기 마련이니, 땀이 난 손으로 책을 만지면 ‘물이 묻는 책은 다친’다.


  헌책방에서 일하는 사람은 손에 책때가 덜 묻도록 하려고 장갑을 낀다고 할 테지만, 새책방에서 일하는 사람도 ‘갓 찍어서 나온 책에서 날리는 먼지’ 때문에 장갑을 낀다. 묵은 책에는 묵은 먼지가 낀다면, 갓 나오는 책에는 인쇄소와 제본소를 거치면서 ‘갓 나온 먼지’가 풀풀 날린다. 어느 책방에서 일하든 장갑을 끼지 않으면 책먼지가 손에 시커멓거나 뽀얗게 묻는다.


  책방지기가 책상맡에 조용히 앉아서 느긋하게 책을 읽기는 쉽지 않다. 책방지기는 하루 내내 책만 만지작거린다고 할 수 있다. 다리를 쉬면서, 손님이 뜸한 틈을 타서, 새롭거나 놀랍다 싶은 책을 문득 보았을 때에, 살며시 책을 펼친다. 책방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야 비로소 책을 읽을 만하다.


  책방은 징검다리이다. 책을 쓴 사람과 책을 읽는 사람을 잇는 징검다리이다. 삶을 밝히는 아름다운 지식을 담은 책 하나가 태어나도록 글쓴이는 온힘을 쏟는다. 삶을 밝히는 아름다운 지식을 담은 책 하나를 맞아들이려고 책손은 눈빛을 밝힌다. 책방지기는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아니다. 책방지기는 ‘잇는 사람’이다. 잇는 사람으로서 징검다리 구실을 알뜰히 한다. 징검다리가 있기에 ‘쓰는 사람’은 더욱 기쁘게 힘을 낸다. 징검다리가 있으니 ‘읽는 사람’은 한결 즐겁게 책마실을 한다. 비바람에도 징검다리는 튼튼하게 선다. 책방지기는 늘 씩씩하게 책방을 지킨다. 4347.7.1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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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단골 되기



  ‘책방 단골’은 아무나 될 수 없다고 한다. 책방을 자주 드나드는 사람은 ‘자주 오는 손님’은 될 수 있으나 ‘책방 단골’이라는 이름을 얻지는 못한다. ‘단골’은 어떤 책손한테 붙이는 이름일까? 글쎄, 나는 어느 책방을 두고도 나 스스로 ‘단골’이라고 느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아가니, 시골에서는 달포에 한 차례 책방마실을 하기에도 만만하지 않다. 자주 드나들지 못하는 책방이기에 한 차례 찾아가더라도 책을 잔뜩 장만하기는 하지만, 단골은 ‘책을 많이 사들이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얼추 열다섯 해쯤 앞서이지 싶은데, ‘책방 단골’을 놓고 ‘책방에 자주 오는 아저씨’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서울 용산에 있는 헌책방 〈뿌리서점〉이었다. 그곳을 날마다 드나드는 아저씨들이 꽤 많은데, 그분들이 서로 옥신각신 얘기를 주고받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서로 생각을 모두었다. 그분들이 말하는 ‘책방 단골’은 이렇다.


 ㄱ. 서른 해 넘게 드나들기

 ㄴ. 오천 권 넘게 장만하기


  어느 한 군데 책방에서 ‘단골’이라는 이름을 얻자면, 그 책방을 서른 해 넘게 드나들되, 그동안 책을 오천 권 넘게 장만해야 한단다.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한 군데 책방을 스무 해쯤 드나들었으면 아직 ‘단골’은 아니다. 스무 해 즈음 드나들었을 때에는 제법 자주 드나들었다고 할 만하지만, 아직 그 책방 속내까지 헤아리지는 못할 만한 햇수라 하겠지. 자주 드나든다고 하더라도 책을 어느 만큼 장만해서 읽지 않는다면, 그 책방이 어떤 책을 다루고 어떤 책으로 오래도록 책방살림을 꾸리는가를 알지 못한다고 할 만하다.


  나한테는 아직 ‘단골이라 할 만한 책방’이 없다. 왜냐하면, 아직 서른 해 넘게 드나든 책방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 드나든 책방은 스물세 해 드나든 곳이다. 이 다음으로는 스물두 해 드나든 곳이 있고, 스물한 해 드나든 곳이 꽤 많다. 앞으로 일곱 해는 더 있어야 나한테도 ‘단골 책방’이 생긴다. 나는 마흔일곱 살이 되어야 비로소 ‘단골 책방’을 이야기할 수 있구나. 4347.7.1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헌책방 언저리)



+



알라딘이 열다섯 돌이라 하는데,

나는 아직 알라딘에서도

열 돌이 안 되었다.


알라딘이라는 곳 단골이 되기에도

아직 스무 해가 남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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