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27. 오늘 하루도 하나씩
날마다 사진을 수십 장이나 수백 장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날마다 한두 장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며칠에 한 장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고, 한 달에 한두 장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 달 만에 비로소 사진 한 장을 찍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스스로 그러모은 사진 장수’는 다릅니다. 누군가는 얼핏 보기에 ‘사진이 무척 많이 있다’고 할 만하며, 누군가는 얼핏 보기에 ‘사진이 얼마 없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사진이 무척 많은 사람은 사진을 잘 찍거나 멋스럽거나 놀랍거나 대단할까요? 사진이 얼마 없는 사람은 사진을 못 찍거나 멋이 없거나 안 놀랍거나 안 대단할까요?
사진책 한 권은 두꺼울 수 있습니다. 사진책 한 권은 얇을 수 있습니다. 사진 천 장으로 사진책 한 권을 엮을 만하고, 사진 백 장이나 스무 장으로 사진책 한 권을 묶을 만합니다.
사진책에 사진을 더 많이 써야 사진책이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진을 이천 장쯤 담은 사진책인데, 내 눈을 사로잡거나 끌어당길 만한 이야기를 볼 수 없다면, 이런 사진책에는 마음이 갈 수 없습니다. 사진을 스무 장만 담은 사진책이지만, 내 눈을 사로잡거나 끌어당길 만한 이야기를 내내 볼 수 있다면, 이런 사진책에는 마음이 가만히 기울어집니다.
여러 달에 사진을 한 장 찍는다고 하더라도, 날마다 조금씩 숨결이 모여서 어느 하루에 열매를 맺습니다. 하루에 사진을 수십 장이나 수백 장을 찍는다고 한다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열매를 맺는’지 ‘열매는 안 맺는’데 그저 사진기 단추를 눌러대는지 헤아릴 노릇입니다. 어떤 흐름을 보여주려고 여러 장 찍을 수 있어요. 그러나, 흐름을 보여준다 하더라도 굳이 열 장이나 서른 장을 써야 하지 않습니다. ‘흐름’을 꼭 석 장으로만 보여주도록, 또는 흐름을 다문 한 장으로만 보여주도록 사진을 찍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흐름이란 그냥 흐름이 아닌 ‘삶’입니다. 삶을 보여주려는 사진이라면, 한두 장으로는 어림없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 열 장이나 스무 장을 자꾸 찍으려 할 수 있어요.
이때에 생각해야 합니다. ‘한 사람 삶’을 사진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해 봅시다. 한 사람이 백 해를 산다면, 한 해에 한 장씩 치면 사진이 백 장입니다. 한 달에 한 장씩 치면 사진이 천이백 장입니다. 한 주에 한 장씩 치면 사진이 육천 장에 이릅니다. 하루에 한 장씩 치면 사진이 사만이천 장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날마다 새로운 밥을 먹고 새로운 일을 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납니다. 이러한 ‘흐름’을 모두 보여주려 한다면, 또 ‘흐름’을 낱낱이 보여주려 한다면, ‘백 해를 산 사람’을 사진으로 보여줄 적에는 ‘백 해를 들여야 읽을 수 있을 만큼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모든 움직임과 몸짓을 사진으로 다 찍어야 비로소 ‘흐름’을 짚는 사진이 되는 셈입니다.
사진은 ‘기록’이 아닙니다. 사진은 동영상도 아닙니다. 사진은 책 하나로 엮어서 보여주는 이야기꾸러미가 되기도 하고, 다문 종이 한 장짜리로 간추려서 들려주는 노랫가락이 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야기꾸러미가 되려면 먼저 노랫가락이 되어야 합니다. 수수께끼이면서 실마리가 되는 삶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4348.2.2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