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126. 이리 와서 함께 보자



  사진을 배우려 한다면 ‘이론’이 아닌 ‘사진’을 배워야 합니다. 글을 배우려 한다면 ‘이론’이 아닌 ‘글’을 배워야 합니다. 그림을 배울 적이든, 노래나 춤을 배울 적이든, 시골 흙일이나 바닷가 고기잡이를 배울 적이든 늘 같아요. 우리는 ‘이론’을 배울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이론’은 내가 스스로 삶을 세워서 지을 적에 나 스스로 갈고닦아서 내놓기 때문입니다.


  ‘이론’은 사람 숫자만큼 다릅니다. 왜냐하면, 모든 이론은 삶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 삶은 다 다릅니다. 그러니, 모든 이론은 다 다를 수밖에 없어요. 몇몇 이름난 사람들 이론을 배운들 사진도 글도 그림도 흙일(농사)도 못 배웁니다. 밥을 짓고 싶으면 밥짓기를 배워야 합니다. ‘요리’나 ‘요리 이론’을 아무리 배운들 밥을 못 짓습니다.


  사진 이론을 배우는 사람은 사진을 모르는 채 ‘이론’만 압니다. 이리하여, 사진을 배우려 하면서 ‘사진비평’만 잔뜩 읽는 사람은, 사진은 하나도 모르는 채 ‘사진 이론’만 머릿속에 잔뜩 집어넣은 꼴입니다. 시를 배우려 하는 사람도 이와 같아요. 시를 배우면서 누리려 하지 않고 ‘문학비평’이나 ‘시론’만 잔뜩 읽으면, 머릿속에 헛바람만 집어넣은 꼴입니다.


  그렇다고 이론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론은 저절로 생겨요. 내가 스스로 내 삶을 세우거나 지으면 ‘내 이론’이 저절로 섭니다. 그러니, 이론에는 마음을 기울이지 말고, 내 삶을 바라보면 됩니다. 이리 와서 함께 보면 됩니다.


  사진을 배우려 할 적에는 ‘이름난 몇몇 작가’가 남긴 작품을 볼 수도 있고, ‘이름이 안 난 수많은 이웃’이 남긴 작품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저 내가 찍은 사진을 내가 바라보면서 사진을 배울 수도 있어요. 어떻게 배우든 모두 사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진’을 사진답게 배우려 하기에, 삶을 삶답게 마주합니다. 남들 앞에서 거들먹거리거나 자랑하려는 뜻이라면 ‘사진 이론’을 배워도 될 테지만, 나 스스로 삶을 사랑하면서 가꾸려 한다면, 그저 즐겁게 내 이웃과 동무를 이리로 불러서 함께 놀고 노래하듯이 사진을 즐기면 됩니다. 4348.2.14.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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