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아이 - 약초치료사 줄리엣 할머니의 자연육아법
줄리엣 디 베어라클리 레비 지음, 박준식 옮김 / 목수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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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55


《자연의 아이》

 줄리엣 디 베어라클리 레비

 박준식 옮김

 목수책방

 2019.2.15.



아버지는 일상생활 중에 너무나 자주 찾아오는 유혹과 사악한 욕망에 저항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련하는 과정에서 피조물 중 가장 고귀한 존재인 사자를 늘 가슴에 품어야 한다. (48쪽)


그 우유가 어느 젖소에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며, 따라서 이렇게 자라는 아기는 수많은 젖소의 우유를 먹게 되어 더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80쪽)


어릴 적부터 모든 동물의 새끼는 이슬이나 눈을 핥아 먹는다. 심지어 여우나 늑대 같은 육식동물의 새끼도 그렇고, 초식동물의 새끼도 어미의 젖 외에 그렇게 수분을 보충한다. (99쪽)


우리가 큰 댐들을 건설하지 않고, 농경지와 과수원에 뿌린 독극물이 흘러내린 더러운 폐수와 유독성 물질로 깨끗한 물을 오염시키지 않는다면, 개울과 하천에는 물고기가 넘쳐날 것이다. (119쪽)


몸 대부분을 태양에 노출시킨 상태로 가장 민감한 부분을 숨 쉬지 않는 뜨거운 천 속에 감추고 있으면 여성에게는 유방과 자궁에 질환이 생길 수 있고, 남성에게는 전립선 질환이 일어날 수 있다. 반드시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면, 면 재질을 택하라 … 아이들에게 비와 눈을 피해 몸을 가리라고 가르치지 말고, 머리에 비를 맞고 눈 속으로 빗물이 들어가는 황홀한 희열을 맛보게 해야 한다. (137쪽)


현재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는 대부분 순수하지 않고, 운이 좋아야 진짜 순수한 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예전처럼 자연적 정화과정이 잘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리고 현대의 백신 때문에 자연적 정화과정이 억제되면, 몸의 전체적 건강이 근본적으로 훼손된다. (195쪽)


인간이 동물에게 더 친절해지기 전까지는 지상에 평화가 없을 것이다. (307쪽)



  아이를 낳는 사람은 두 어른입니다. 아이를 낳기 앞서까지는 ‘어른’이라는 이름이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는 ‘어버이’란 이름을 새로 얻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자리에 서면 두 이름이 나란히 있어요. 한켠에서는 어른이요, 다른켠에서는 어버이입니다.


  어른이자 어버이로서 아이를 낳아 돌보는 길이라면, 어른이란 길하고 어버이란 길을 같이 가야겠지요. 어른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사전을 보면 어른을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4. 한 집안이나 마을 따위의 집단에서 나이가 많고 경륜이 많아 존경을 받는 사람 5.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로 풀이하는데, 어쩐지 모자라 보입니다. 다 자랐다고 해서 어른이라 해도 될까요? 제 일을 맡아서 할 줄 아는 모습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어른이란 사람을, “철이 들어 스스로 삶을 짓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날마다 스스로 새롭게 배우면서 이를 즐거이 살림짓기로 잇는, 이러면서 아이를 이끄는 상냥한 넋”이라고 여깁니다. 일을 하는 매무새는 ‘철이 든’ 모습이어야겠고, 언제나 즐겁게 새로 배우며 상냥하게 이끌 줄 알아야 비로소 어른이지 싶어요. 그래서 나이가 어려도 어른스러운 사람이 있어요.


  사전에서 어버이란 낱말을 찾으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풀이합니다. 매우 밋밋합니다. 고작 어머니하고 아버지를 아우르는 이름일 뿐인 ‘어버이’일까요? 


  저는 어버이란 자리를 “아이를 돌보는 어른. 어머니하고 아버지를 아우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몸으로 낳은 아이를 돌보기도 하지만, 스스로 낳지 않았어도 사랑으로 이웃 아이를 맞아들여 돌보는 어른이기도 하다. 날마다 스스로 새롭게 다스리고 갈고닦으면서 이를 즐거이 살림짓기로 잇는, 이러면서 아이를 사랑이란 마음으로 따스하고 넉넉하며 참하고 슬기롭게 이끄는 상냥한 넋”으로 여깁니다. 두 사람을 뭉뚱그리기만 하는 낱말이 아닌, 참다우면서 사랑이 깃든 품이 될 적에 비로소 어버이라고 느껴요.


  《자연의 아이》(줄리엣 디 베어라클리 레비/박준식 옮김, 목수책방, 2019)를 읽으며 어른이자 어버이로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가 하고 더 헤아립니다. 이 책을 쓴 할머니는 바로 어른이자 어버이로서 아이를 슬기롭고 참하게 돌보아서 새로운 어른이자 어버이로 일어서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지 싶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맡기는 길이 아닌, 어버이가 스스로 돌보는 길을 들려주려 합니다. 아이가 사회살이를 하도록 이끄는 길이 아닌, 어른으로서 먼저 삶을 짓는 길을 보여주려 합니다.


  우리는 집을 어떻게 지어서 살아야 즐겁고 아름다울까요? 우리는 옷을 어떻게 지어서 입고 건사해야 즐겁고 아름다울까요? 우리는 밥을 어떻게 지어서 누려야 즐겁고 아름다울까요? 《자연의 아이》는 책이름처럼 ‘숲아이’가 되도록 돌보자면, 어른이자 어버이부터 ‘숲어른’이요 ‘숲어버이’로 살아가는 길을 꿰뚫고서, 이를 부드럽고 즐거이 이야기꽃으로 들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짚습니다.


  그렇지요. 숲아이 곁에 숲어른하고 숲어버이가 있을 노릇입니다. 서로 어깨동무하는 숲사람으로 살아갈 노릇입니다. 언제나 숲살림을 지으면 넉넉하고, 시골에서든 서울에서든 숲마음을 품을 줄 알면 되어요.


  친환경이나 유기농 같은 이름은 없어도 됩니다. ‘숲’이면 됩니다. 청정이나 그린이나 녹색 같은 이름은 내려놓아도 됩니다. ‘숲’이면 넉넉합니다.


  숲에 거름이나 농약이나 비료를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숲은 사람뿐 아니라 뭇목숨을 살리는 바탕입니다. 공기청정기에서 나오는 바람이 아닌, 숲에서 흐르는 바람이 우리 몸을 맑고 튼튼히 가꿉니다. 수돗물이나 정수기로 받는 물이 아닌, 숲에서 비롯하여 흐르는 숲물(냇물·샘물)이 우리 몸을 싱그럽고 튼튼히 북돋아요. 아무리 전깃불이 환하더라도 햇빛을 따라가지 못해요. 아무리 전기담요에 난방기가 뛰어나도 햇볕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에어컨이 좋더라도 숲바람 꽁무니를 따르지 못해요.


  서리가 내리기 앞서까지 이슬은 언제나 반짝반짝 온누리를 적십니다. 이슬을 머금은 풀하고 나무는 하루 내내 싱그럽고 짙푸릅니다. 더구나 숲짐승이며 풀벌레는 바로 이 이슬을 나누어 먹습니다.


  우리 사람은 어떤 물을 마실까요? 우리 사람은 이슬받이를 언제부터 잊거나 잃었을까요?


  몸을 돌보고 마음을 건사하는 길을 아이하고 어른이 숲에서 함께 배워서 살림으로 녹여내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아늑하게 누릴 숲을 고이 보듬는 길을 가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나누는 모든 말도 숲에서 태어난 줄 새삼스레 깨달으면서 착하고 어진 말을 주고받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숲이 되면, 오롯이 숲으로 가면, 언제나 사랑이고 아늑한 보금자리이겠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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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가 궁금해? - 익숙한 듯 낯선 이웃
채희영 지음, 김왕주 그림 / 자연과생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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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54


《참새가 궁금해》

 채희영 글·사진

 김왕주 그림

 자연과생태

 2019.8.16.



참새 학명은 ‘산 참새’, 영명은 ‘숲 참새’라는 뜻입니다. (16쪽)


어른 참새는 식물 씨앗을 주로 먹으며, 특히 곡류를 좋아합니다. 물론 동물성 먹이도 먹습니다. 나비목(40%)을 가장 많이 먹으며, 이어서 딱정벌레목과 집게벌레목, 메뚜기목(각각 15%)을 비슷하게 먹고, 그 다음으로 잠자리목(5%), 기타(10%)로 조사되었습니다. (48쪽)


번식기에 암컷은 수컷 노랫소리를 듣고서 짝을 고르기 때문에 암컷 선택을 받으려면 수컷은 여러 소리로 노래할 줄 알아야 합니다. (61쪽)


우리나라에서 참새가 줄어든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질 좋은 먹이를 구하고, 둥지를 안정적으로 틀 수 있는 환경이 감소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80쪽)


참새가 줄면 참새 먹잇감인 진딧물이 늘어납니다. 진딧물은 식물 잎 등에 붙어 영양분을 빨아먹기 때문에 진딧물이 많아지면 시들어 죽는 식물도 그만큼 늘어날 거예요. (81쪽)



  한가을에 접어들어 들판이 누렇습니다. 이 누런 들판 가을볕을 듬뿍 머금으면서 나락이 익는 냄새를 퍼뜨립니다. 일찍 심은 들은 일찍 베겠지만, 나중 심은 들은 가을볕을 더 머금으면서 벨 날을 기다려요. 벼베기를 마친 나락은 시골길 한켠에 길게 펼칩니다. 논자락에서는 볕을 먹고 익는다면, 길자락에서는 볕을 담으면서 곱게 마르지요. 볕으로 곱게 마른 나락은 다음 한 해를 살뜰히 이을 먹을거리로 건사할 수 있습니다.


  가을날 벼베기철이 되면 참새가 낟알을 쪼느라 부산한 모습을 곧잘 봅니다. 또 벼베기를 마친 빈들에 내려앉은 참새떼를 어렵잖이 만날 수 있습니다. 자, 이때에 문득 생각해 볼 만해요. 나락이 잘 여물어 날로 먹을 만한 때는 한가을입니다. 그렇다면 한가을에 이르기까지 참새 같은 새는 무엇을 먹으며 살림을 이을까요?


  《참새가 궁금해》(채희영, 자연과생태, 2019)는 매우 단출합니다. 몸무게가 20그램이 될락 말락 하다는 참새라는데, 이 단출한 숲책은 96쪽이에요. 조그마한 참새를 이야기하는 가벼운 숲살림 꾸러미입니다. 그러나 아흔여섯 쪽에 걸쳐 참새 한살이를 비롯해 참새하고 얽힌 우리 살림살이를 잘 펼쳐 놓습니다. 마치 가을볕을 머금는 가을나락 같다고 할 만합니다.


  가을이 깊어 나락을 벨 즈음 낟알을 찾는다는 참새라지만, 이때까지 참새 먹이는 나비에 나방에 애벌레에 풀벌레라지요. 잠자리랑 거미도 많이 잡아서 먹고요. 아마 파리랑 모기도 꽤 많이 잡아채어 먹지 않을까요?


  어느 모로 본다면 가을에 벼를 벤 빈들에서 이삭을 쪼려는 참새를 귀엽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봄여름 내내 애썼고, 첫가을에도 힘쓴 참새더러 조그맣게 누리라고 내미는 우수리가 될 수 있어요. 겨울에도 눈밭 한켠에 모이그릇을 놓고서 참새가 겨울나기를 잘 하라며 아낄 수 있습니다. 참새를 비롯한 마을 텃새는 마을 논밭에서 애벌레랑 나비 나방을 알맞게 줄이는 큰몫을 맡거든요.


  예전에 적잖은 나라에서 ‘참새가 많아 곡식을 쪼니 싫다’고 여겨 참새잡이를 일삼은 적 있다는데, 이렇게 참새잡이를 일삼아 ‘참새가 사라진 마을’이 된 뒤에는 벌레가 엄청나게 끓어대어 아예 흙짓기가 무너졌다지요. 논밭뿐 아니라 아무까지 온통 벌레한테 잡아먹혔다고 해요. 이리하여 부랴부랴 다른 고장이나 나라에서 참새를 얼른 데려와서 풀어놓았다 하고, 참새가 돌아온 마을은 ‘벌레 들끓어 흙짓기가 망가지는 일’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논밭에는 애벌레도 나비도 어느 만큼 같이 살아야 아름다운 셈입니다. 갖가지 숨결이 고루 어우러지기에 아름드리숲이 되고, 이 아름드리숲에서 사람도 아름답게 살아갈 만하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참새 한 마리는 대단한 이웃이에요. 사람들 곁에 머물며 한 해 내내 노래를 베풀고, 꾸준히 벌레잡이를 하는 멋진 동무이기도 합니다. 노래벗이요 벌레잡이인 참새를 조금 더 상냥히 바라보면 좋겠어요. 단출한 이야기책 《참새가 궁금해》를 곁에 놓으면서.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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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엮다 오늘의 일본문학 11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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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배를 엮다”, 한국은 “숲을 짓다”



《배를 엮다》

 미우라 시몬

 권남희 옮김

 은행나무

 2013.4.10.



“뭐어? 국어학이라고? 뭐냐, 그건? 너 우리말 할 줄 알잖아?” (9쪽)



  긴머리를 치렁거리기도 하고, 고무줄로 묶은 뒤에 꽃집게로 여미기도 한 채, 80리터들이 큰 등짐을 짊어지고 앞에는 수첩을 담는 어깨짐을 둘 가로지르고는 끌짐까지 곁들인 차림새로 다니는 아저씨가 있습니다. 가을이 깊어도 민소매에 깡동치마를 두르고 고무신을 꿰기에 “저기 뭐 하는 사람이래?” 하는 수다가 들릴 만큼 쳐다보는 이가 있습니다. 이러거나 말거나 가득 지고 지르고 끄는 짐으로 씩씩하게 걷다가 수첩을 꺼내어 뭐를 쓰고, 또 버스나 전철을 기다리며 책을 꺼내어 읽는데 연필을 쥐어 또 뭐를 바지런히 쓰기도 합니다. 때로는 책을 집어넣고 동시를 신나게 씁니다. 무슨 일을 하는 아저씨일까요?



“한창 활동하는 남성이 중심이 되어 편찬을 추진하는 일이 많아서 패션이나 가사와 관련된 용어가 불충분한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앞으로의 사전은 그러면 안 됩니다. 취미도 관심 분야도 다 제각각인 남녀노소가 모여 한 권의 사전을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만.” (59쪽)



  소설책 《배를 엮다》(미우라 시몬/권남희 옮김, 은행나무, 2013)는 일본에서 무척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리 널리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일본에서는 소설을 넘어 영화가 나왔고, 만화영화가 나오기도 했을 뿐 아니라, 이제 만화책으로까지 새로 나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소설책 《배를 엮다》는 어떤 이야기를 담았기에, 영화에 만화영화에 만화책으로 결을 넓혀서 일본에서 크게 바람을 일으킬까요? 또 한국에서는 이 이야기를 살피는 분이 꽤 있기는 해도 왜 그다지 눈여겨보지는 않을까요?



니시오카는 사전에 매료된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먼저 일을 일이라고 생각하긴 하는지부터 궁금했다. 월급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고 자비로 자료를 구입하기도 하고, 마지막 전철을 놓친 사실도 모르고 조사를 하느라 편집부에서 자는 날도 있다. (152쪽)



  앞서 밝힌 알쏭달쏭한 차림새인 아저씨는 바로 제 모습입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고 살아가며 저 같은 차림인 사내를 아직 본 적이 없고, 저처럼 갖은 짐을 이고 지고 들고 끌고 다니는데, 손이 비면 이 빈손에는 어김없이 책이나 수첩이 들리는 사람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걸어다닐 적에도 책을 읽거나 수첩에 글을 옮기거나 동시를 씁니다. 불빛이 없는 한밤에는, 서울에서라면 길거리를 밝히는 등불에 기대고, 시골에서라면 별빛에 기대어 책을 읽거나 글을 씁니다. 그리고 꽤 자주 책이며 수첩을 집어넣고서 눈을 감고 풀잎이나 나뭇잎이나 꽃잎하고 속삭입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 빗방울하고 이야기를 하고, 마실길에 너럭바위가 보이면 가만히 너럭바위에 앉거나 누워서 이 바위가 살아온 나날을 마음으로 듣곤 해요.


  사전이라는 책을, 이 가운데 한국말사전이란 책을 쓰기에 이런 차림에 저런 몸짓을 합니다. 제가 가시내란 몸을 입고 태어났으면 아마 바지만 둘렀을 수 있다고 여기는데, 사내란 몸을 입고 태어났기에 ‘치마’란 낱말을 뜻풀이를 제대로 하자면 치마를 입고 살아가는 결을 몸으로도 익혀서 받아들여야 비로소 뜻풀이를 제대로 합니다. 중·고등학교 다니며 바짝 깎은 머리로 살았으니, 이제는 치렁대는 긴머리로 살며 ‘치렁치렁하다’란 말을 몸으로 느끼고, 집안일을 도맡으면서 도마질이든 칼질이든 채치기이든 국이며 찌개이며 밥하고 얽힌 살림살이를 몸으로 받아들여서 이러한 낱말을 찬찬히 뜻풀이를 하는 길을 찾습니다.


  ‘풀·꽃·나무’를 풀이하자니 풀이며 꽃이며 나무하고 수다를 떨어야 합니다. 빗물이나 냇물이나 바닷물이란 낱말을 풀이하자니 마땅히 비나 내나 바다하고도 사귀면서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돌이나 바위란 낱말을 풀이하려고 돌하고 바위랑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지요.



말이 갖는 힘. 상처 입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고 누군가에게 전하고 누군가와 이어지기 위한 힘을 자각하게 된 뒤로, 자신의 마음을 탐색하고 주위 사람의 기분과 생각을 주의 깊게 헤아리려 애쓰게 됐다. (258쪽)



  소설책 《배를 엮다》를 읽으면 일본이란 터전에서 여느 일본사람하고 달라도 참으로 다른 ‘사전을 짓는 길을 가는 사람’ 모습이 제법 잘 나옵니다. 사전쓰기를 하는 이는 다른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깔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눈치를 안 보고 딴짓을 안 한다는 뜻입니다. 겉치레를 안 하고 겉모습에 안 휘둘린다는 뜻입니다.


  ‘멋·사랑·아름다움’을 어떻게 풀이해야 할까요? 겉으로 꾸민 멋이나 사랑이나 아름다움에 휩쓸려서야 제대로 뜻풀이를 못 하겠지요? 멋이나 사랑이나 아름다움은 겉모습이나 겉치레나 꾸밈결이 아니에요. 속에서 우러나오는 결을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멋있다’나 ‘사랑스럽다’나 ‘아름답다’ 하고 말합니다.


  사전이란 책을 쓰자면 바로 이 대목, 겉읽기는 겉읽기대로 하되, 언제나 바탕은 속읽기를 제대로 하는 길을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말은, 말을 낳는 마음은 권위나 권력과는 전혀 무연한 자유로운 것입니다.” (288쪽)



  말을 홀가분하게 다루어 책으로 엮으니 사전입니다.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엮을 수 없습니다. 어느 대학교나 연구소 입김에 휘둘릴 수 없습니다. 몇몇 전문가 마음대로 뜻풀이를 바꿀 수 없습니다. 숨을 쉬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말씨 하나에 생각을 나타내어 나누는 기쁨이며 보람이 있’는 줄 깊고 넓게 느끼면서 살가이 어루만질 줄 아는 눈빛이어야지 싶습니다.


  누가 돈을 얹어 준대서 어느 낱말 뜻풀이를 바꾸지 않습니다. 누가 주먹다짐을 한대서 어느 낱말 뜻풀이를 고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살아가고 살림하며 사랑하는 결을 마음으로 마주하면서 속내를 환히 밝히는 길을 살펴 뜻풀이를 붙입니다.


  가만히 따지면, 배라는 탈거리는 ‘뭇다’라는 낱말로 그려요. ‘배무이’라 하지요. 그런데 소설책 《배를 엮다》는 일본말로도 ‘엮다’를 쓰더군요. 처음에는 이 말을 넣은 대목이 아리송했지만, 마치 그물을 엮듯이, 씨줄날줄을 고르면서 반듯하게 엮듯이, 어디에 얽매이거나 휩쓸리지도 않은 채, 넓디넓은 바다를 아름다이 가로지르는 마음으로 사전이란 책을 쓴다는 뜻으로 ‘엮다’란 낱말을 골랐구나 싶더군요.


  자, 그러면 한국에서 한국말사전을 쓰는 저는 어떤 낱말을 고를까요? 일본은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이기에 “배를 엮다”가 어울립니다. 이와 달리 한국은 멧자락이 골골샅샅 우거진 나라입니다. 한국은 아름드리인 나무가 빼곡하던 누리였어요. 그래서 한국이란 나라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가는 사람한테 어울리는 이름이라면 “숲을 짓다”라고 느낍니다. 한국은 숲나라입니다. 한국은 숲에서 살림이며 사랑을 지어서 삶을 이루는 생각을 슬기롭게 새로 짓는 기쁨으로 웃음짓는 나라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제 이름을 2014년부터 ‘숲노래’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한국말사전을 한국말사전답게 쓰자면, 이 땅에서는 ‘숲을 노래하는 숨결’이 되어야 하는구나 싶었고, ‘숲말’을 ‘숲책’으로 새로짓는, 숲길을 걷고, 숲사랑이 되노라면, 어느새 “숲을 짓다”라는 이야기 한 자락이 태어나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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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는 말들 - 엑소포니, 모어 바깥으로 떠나는 여행
다와다 요코 지음, 유라주 옮김 / 돌베개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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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잘하고 싶다면 한국말부터 잘하자



《여행하는 말들》

 다와다 요코

 유라주 옮김

 돌베개

 2018.9.7.



어디에서나 통하는 얕은 영어로 하는 따분한 비즈니스 토크가 세계를 뒤덮으면 참 시시할 것이다. 나는 영어를 험담하고 싶지도 않고 프랑스어를 찬양하는 것도 아니다. 그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묘한 장소성이, 농밀한 순간이 소중하기 때문에 국경을 넘고 싶다고 느낀다. (55쪽)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푸름이를 만나서 이야기를 펴는 자리에 가면 저한테 곧잘 이런 말을 묻습니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어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고. 저는 푸름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되묻습니다. “여러분은 저한테 한국말로 물어보나요, 아니면 영어로 물어보나요? 여러분이 영어를 배울 적에 머리로 생각을 어떤 말로 갈무리를 하나요?”


  유럽에서 네덜란드사람은 영국사람‘보다’ 영어를 잘한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아마 덴마크사람도 비슷할 수 있어요. 그 나라 사람은 왜 영국사람‘보다’ 영어를 잘한다는 말을 흔히 들을까요?


  수수께끼는 하나입니다. 네덜란드에는 네덜란드말이 있고, 덴마크에는 덴마크말이 있습니다. 이 두 나라는 어린이 나이에 여러 나라 말을 한꺼번에 배워요. 네덜란드라면, 어린이 나이에 ‘네덜란드말, 영어, 프랑스말’을, 덴마크라면 ‘덴마크말, 영어, 독일말’을 배운다고 하는데요, 여러 다른 말을 가르치는 틀이 설 수 있는 까닭은 바로 ‘네덜란드에서는 네덜란드말부터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기 때문이에요. 덴마크도 그렇고요.



작은 언어를 보호하는 정책에서 중요한 사람은 시인이다. 시로 쓰이지 않는다면 그 언어는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다. (117쪽)


과거 동유럽에서 문화 통제하에 살았던 동년배 동료를 무의식중에 동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는데 어쩌면 동정해야 할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통제 속에서 치우친 지식만 몸에 익히며 자란 나일지도 모른다. (133쪽)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무엇보다 한국말을 어떻게 배울까요? ‘국어’라는 교과목이나 시험과목이 아닌, 이 땅에서 이웃하고 사귀면서 즐겁게 생각을 꽃피우는 이야기가 될 바탕인 말일까요, 아니면 머리에 달달 집어넣어야 하는 시험지식인 문법하고 띄어쓰기하고 맞춤법하고 표준말일까요?



한자도 결국 외래어다. 오히려 가타가나는 자기가 외부인이라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외래어지만 한자는 자기가 오리지널인 척 거짓말하는 외래어로 보인다. (135쪽)


모처럼 의욕을 가지고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티브이, 컵, 버스, 타월, 테이블, 도어, 커튼, 볼펜만 배우고 있으면 당연히 누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이다. 영어를 변형한 말들로만 보일 뿐이다. 더구나 이 단어가 읽기 편하다면 괜찮은데 반대로 더 어렵다. (154쪽)



  일본말보다는 독일말로 문학을 한다는 어느 일본 이웃이 쓴 《여행하는 말들》(다와다 요코/유라주 옮김, 돌베개, 2018)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이 일본 이웃이 ‘독일말로 쓴 문학’을 놓고서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갈팡질팡한다지요. 그러나 독일에서는 ‘독일문학’에도 넣고 ‘세계문학’에도 넣는대요. 다만 일본은 아직 갈팡질팡한다고 합니다.


  문득 우리 옛자취를 더듬어 봅니다. 한국에서 일제강점기라는 그 메마르고 차갑고 서슬퍼렇고 어둡던 무렵, 한국말 아닌 일본말로 문학을 편 분이 꽤 많습니다. 우리는 이 글, ‘일본말로 한국사람이 쓴 글’을 어느 문학에 넣어야 할까요? ‘일본문학’에도 넣고 한국문학에도 넣을까요, 아니면 한국문학하고 ‘세계문학’에 넣으면 될까요?


  조선 무렵에 훈민정음이란 글씨가 태어났어도 굳이 한문으로 문학을 한 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한글(훈민정음)이 아닌 한문으로 쓴 문학은 중국문학일까요, 한국문학일까요, 아니면 세계문학일까요?



사투리를 하는 방식도 재미있었다. 각자가 과거에 어디에서 살았고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살아왔는지가 그 사람이 지금 하는 말 속에 남아 있다. (159쪽)



  나라 곳곳에서 중·고등학교 푸름이를 만나는 자리에 서면, 좀처럼 사투리를 못 듣습니다. 참말로 이제는 푸름이 나이쯤 되면 사투리를 아예 모르거나 높낮이(고저장단)만 살짝 남은 말씨입니다. ‘나락’ 같은 말조차 모르는 전라도 푸름이가 꽤 많습니다. 요새는 서울 이웃도 ‘싸목싸목’ 같은 전남 사투리를 고운 말씨라 여기며 받아들여 쓰기도 하지만, 막상 전라도 어린이나 푸름이는 ‘싸목싸목’이 뭔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하고 아리송해 하기 일쑤입니다.


  이 책 《여행하는 말들》을 쓴 일본 이웃은, 독일에서 갖가지 독일 사투리를 들으면서 즐겁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도 프랑스에서도, 또 미국이나 온누리 여러 나라에서도 ‘표준 독일말’이나 ‘표준 영어’나 ‘표준 일본말’이나 ‘표준 한국말’이 아닌, 고장마다 맛깔나게 다른 말씨를 귀로 들으면서 매우 즐거우면서 재미있다고 밝혀요. 그 사투리에는, 고장말에는, 고을말에는, 바로 그 고장이나 고을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이 손수 지은 살림결이 고스란히 묻어나거든요.



번역가가 있으니 무엇이든 국경을 넘어서 자유롭게 흐른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이 세계 대부분의 텍스트는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았거나 이미 오역이 됐거나 둘 중 하나다. (162쪽)



  한국말은 엉성하면서 영어만 잘한다면, 이이는 영어만 할밖에 없습니다. 자, 그러면 생각해 봐요. 한국이란 나라에서 살아가는데 ‘한국 이웃’하고 생각을 나눌 한국말이 엉성하다면, 어떤 이야기를 펼 만할까요? 우리 스스로도 우리 이웃한테 내 뜻이나 마음을 제대로 못 펴겠지만, 이웃이 우리한테 펴는 뜻이나 마음을 얼마나 알아듣거나 알아차릴까요?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한국말부터 잘해야 하는 까닭’은 한 줄로도 갈무리할 만합니다. 내 뜻을 제대로 펴고, 네 뜻을 제대로 읽고 싶기 때문이에요.


  어느 나라 어느 말이든 홀가분하게 날아다니고 싶습니다. 표준이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나 문법이라는 굴레가 아닌, 이야기라는 꽃이 되어 훨훨 날아다니면서 즐겁고 향긋한 내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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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브르의 탐구생활 - 취미는 자연! 산나물, 노린재, 오래된 살림, 할머니를 좋아합니다
이파람 지음 / 열매하나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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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책시렁 92


《이파브르의 탐구생활》

 이파람

 열매하나

 2019.7.29.



지역마다 다른 놀이의 특색이 흥미롭고 재밌기만 한데, 어째서 지금은 한두 가지 방식으로만 이어지고 있는 건지 아쉽다. (42쪽)


콩알을 한데 모아놓고 보니 형형색색 그 자태가 영롱하고 신비하다. 행성을 닮은 씨앗 안에는 어떤 우주가 들어 있을가? (80쪽)


고사리는 어쩐지 바다향이 나서 좋다. 산에서 맡는 바다 내음이라니. (100쪽)


이름처럼 바람이 불면 온몸으로 노래하는 생명체인 것을 나는 미안하게도 종종 잊곤 한다. (133쪽)


떡갈나무잎에 떡을 사서 쪘다는 조상님들의 지혜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152쪽)



  1970년대 무렵을 헤아리면 이 나라 시골에 아이랑 젊은이가 북적북적했다고 합니다. 1980년대에도 아직 아이랑 젊은이가 복닥복닥했다는데, 1990년대로 접어들고 2000년대로 넘어서자 어느새 텅 비다시피 하고 2010년대를 지나고 2020년대를 코앞에 두면서 마을이 아예 사라질 판이 됩니다.


  모든 것이 서울에 우루루 몰린 흐름이니, 시골을 빨리 떠나서 서울로 가려는 물결이 되었다고 할 만해요. 1950년대나 1930년대에도 시골을 떠나 서울로 간 사람은 제법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많던 시골 어린이하고 시골 젊은이가 감쪽같이 빠져나간 지는 이제 서른∼마흔 해 언저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동안 ‘서울살이를 노래하는 책’이 참으로 많이 나왔어요. 거의 모든 책은 서울살이를 바탕으로 썼다고 할 만해요. ‘시골살이를 노래하는 책’은 드문드문 나왔지요. 그런데 이제는 서울내기가 시골내기로 삶을 바꾸는 흐름이 차츰 늘면서 ‘시골을 새로 읽고 누린 기쁨’을 담아내는 책이 부쩍 늘어납니다.


  더는 서울에서 견딜 수 없다고, 이제는 서울에서는 스스로 사람다운 사랑을 나누기 어렵다고 여긴 젊은 이웃님 두 분은 《이파브르의 탐구생활》(이파람, 열매하나, 2019)이라는 책을 선보입니다. 서울살이가 꼭 나쁘거나 메마르다고는 할 수 없어요. 사람이 아주 많으니 더 살갑게 어우러지는 한마당이 서기도 합니다. 다만, 서울에서 마당 있는 느긋한 보금자리를 꾸미기란 좀처럼 안 쉬운 일이에요. 서울에서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놀 터전을 찾기도 만만하지 않아요. 시골에서라면 집을 사고 땅까지 살 돈으로 넉넉하지만, 서울에서는 전세값을 대기에도 빠듯한 판입니다.


  모든 것, 이른바 물질문명이 넘실거리는 서울입니다. 극장도 많고 책집도 많고, 찻집이며 옷집이며 밥집도 많아요. 굳이 전화를 안 걸고 손전화 단추를 톡톡 눌러도 집까지 튀김닭이며 피자를 갖다 주는 도시예요.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가게도 적고, 값도 비싸고, 무얼 사다 먹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서울에 없고 시골에 있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 바로 별입니다. 싱그러운 바람입니다. 맑은 물입니다. 깊은 숲입니다. 멧새와 철새가 늘 다르게 들려주는 노래입니다. 철마다 새로 깨어나는 풀벌레는 철마다 다른 노래잔치를 벌입니다. 봄부터 가을이 저물 때까지 개구리도 우렁차게 노래를 베풀어요. 무논에서만 개구리가 노래하지 않아요. 겨울잠에 들기 앞서 참개구리는 풀숲 한켠에 깃들어 마지막 가을노래를 베풉니다. 게다가 바람이 쉬잉 불면 나무가 춤을 추면서 새로운 노래를 들려주기도 해요. 가랑잎이 떨어지는 소리는 마치 북소리 같아요.


  시골집 마당이나 텃밭이나 뒤꼍을 누린다면, 따로 심은 푸성귀가 없더라도, 온갖 풀을 나물로 삼을 만합니다. 새로 돋는 나뭇잎도 즐거운 나물입니다. 감잎이나 뽕잎을 비롯해, 쑥잎이나 쇠무릎잎도 즐겁게 덖어서 찻물로 우려서 마실 만해요. 수세미가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면, 싱그러운 설거지 수세미도 얻지만, 통통한 수세미를 썰어서 말리면 수세미 찻물을 얻기도 해요.


  이제 바람이 되고 싶던 서울내기는 ‘이파람’이란 이름을 새로 지었다고 해요. 둘레에서 이파람 님을 ‘이파브르’란 새이름으로 불러 주기도 한대요. 무엇이든 낯설지만, 낯설기에 더 들여다보면서 배우고 싶은 이파람 님은, ‘풋풋한 파브르 살림’을 꾸리는 재미를 누린다지요. 이 재미진 하루는 어느새 글로 피어납니다. 텃밭살림 못지않게 글꽃살림을 짓습니다.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에서 배운 적 없는 숲살림이나 들살림을 몸으로 부대낍니다. 숲이나 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책이 아니라 눈이랑 손으로 마주합니다. 시골로 삶자리를 옮겼다면 즐겁게 숲을 껴안으면 좋겠어요. 그냥그냥 서울살이가 좋더라도 마음눈을 뜨고서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별빛을 같이 나누면 좋겠어요. 다같이 ‘풋풋한 파브르’가 되어 들꽃내음을 누리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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