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의 아이들 난 책읽기가 좋아
구드룬 파우제방 글, 잉게 쉬타이네케 그림, 김경연 옮김 / 비룡소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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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2023.5.28.

숲책 읽기 200



《나무 위의 아이들》

 구드룬 파우제방 글

 잉게 쉬타이네케 그림

 김경연 옮김

 비룡소

 1999.7.20.



  《나무 위의 아이들》(구드룬 파우제방·잉게 쉬타이네케/김경연 옮김, 비룡소, 1999)을 처음 읽을 무렵, 이제 이 나라에는 “나무 타는 아이들”은 감쪽같이 사라졌을 텐데 싶었습니다. 어버이 가운데 아이한테 “나무 심을 마당”을 베풀거나 물려주는 이는 찾아보기 너무 어렵습니다. 배움터 길잡이 가운데 아이들한테 배움책(교과서)이 아닌 나무를 길동무로 삼거나 배움벗으로 삼아 즐겁게 뛰놀도록 틈을 내주는 어른이 있으려나 궁금했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이 타고 오를 나무를 건사하는 길잡이(교사·교감·교장)는 예전부터 아예 없거나 아주 드뭅니다. 나무타기를 하려면 가지를 함부로 치지 않을 노릇입니다. 타고 오를 나무라면 여러 나무가 자라야겠지요. 나무 곁에는 풀밭이 흐드러지면서 갖은 들꽃이 피고 질 노릇이요, 갖은 풀벌레에 개구리에 뱀에 제비에 참새에 복닥복닥 어우러질 수 있어야 합니다.


  푸나무만 우거지는 숲이 아닙니다. 숱한 새가 나란히 깃들어야 숲입니다. 벌나비에 풀벌레가 마음껏 살아가는 곳이 숲입니다. 골짝물이나 냇물이 싱그럽고, 온갖 짐승이 사이좋게 살아가는 데가 숲입니다. 그러니, 이 나라에는 “나무를 돌보며 물려주는 어버이나 어른”도 거의 자취를 감추고, “숲다운 숲과 나무다운 나무”도 자꾸 사라지거나 밀려나거나 죽어버립니다.


  그나저나 “나무 위”는 하늘이라, 아이들은 “나무 위”에 있지 않아요. 아이들은 “나무를 타고 앉을” 뿐입니다. 새라면 나무 위로 날 테지만, 아이들은 “나무를 타면서” 놉니다. 이 아름책이 한글판으로 나온 지 벌써 스무 해가 훌쩍 지났습니다만, 이제라도 책이름을 바로잡기를 바랍니다. “나무 타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나무타기를 하기에 나무를 익히고, 나무를 사랑하고, 나무를 돌아봅니다. 아이들은 맨발로 풀밭을 달리기에 풀꽃을 사귀고, 풀꽃을 품으며, 풀꽃을 아낍니다. 아이들은 글을 몰라도 되고, 종이책이 없어도 되고, 배움터(학교)조차 없어도 됩니다. 아이들한테는 첫째로 숲이 있을 노릇이고, 둘째로 냇물과 샘물과 바다가 있을 노릇입니다. 셋째로 새와 풀벌레와 숲짐승이 있을 노릇에, 넷째로 해바람비에 풀꽃나무가 싱그러이 어우러진 즐거운 보금자리가 있을 노릇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이가 사라지는 시골’이 대단히 많습니다. 아니, 우리나라 모든 시골에서는 아이가 사라집니다. 시골에서 아이가 왜 사라질까요? 시골에는 숲부터 짓밟혀 사라졌어요. 시골에는 아이들이 스스럼없고 느긋하게 뛰어놀면서 어울릴 숲이 확 밀려나고, 온통 죽음물(농약) 수렁입니다.


  시골을 살리고 싶나요? ‘인구소멸지역’에서 벗어날 길을 알고 싶은가요? 나무를 심으셔요. 죽음물(농약)을 몽땅 걷어내셔요. 아이들을 사슬(학교·입시지옥)에 가두려는 얼뜬 마음을 털어내셔요. 흙을 만지고 풀꽃을 쓰다듬고 나무를 안으면서 하루를 새하고 노래할 틈과 자리와 살림을 짓는다면, 다시 아이들이 태어날 수 있고, 태어난 아이들이 놀 수 있으면, 이 나라는 아름답게 거듭날 만합니다.


ㅅㄴㄹ


움베르토는 나무에 올라가 본 적이 없어. 움베르토 집 정원에선 나무에 올라가선 안 되었거든. 하긴 나무에 올라가도 된다고 해도 친구도 없이 혼자 덜렁 무슨 재미가 있겠니. (26쪽)


세뇨르 리폴은 횃불을 발로 밟아 껐어. 두 손이 덜덜 떨렸어. 움베르토가 소리쳤어. “아빠, 저도 산타나네 아이들처럼 숲을 지키고 싶어요. 저는 저 애들 친구고요, 또 숲의 친구예요. 숲이 이대로 있었으면 좋겠어요.” 세뇨르 리폴이 대답했어. “그렇게 되면 새 밭을 갖지 못한다, 움베르토.” 움베르토가 물었어. “왜 우리에게 밭이 더 필요하지요? 우린 잘살고 있잖아요. 하지만 숲은 모두에게 필요해요. 산타나네 식구들도, 우리 리폴네 식구들도, 심지어 여기서 멀리 살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숲이 필요해요. 숲은 물과 좋은 공기를 주니까요. 여기서 살고 있는 여러 동물들도 숲이 필요하고요.” (51쪽)


움베르토가 외쳤어. “아빠, 아빠가 숲을 태우신다면, 나중에 제가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주시는 농장은 갖지 않겠어요! 옳지 못한 것은 갖지 않겠어요!” 세뇨르 리폴은 여전히 말이 없었어. (52쪽)


#DieKinderindenBaumen #GudrunPausewang #IngeSteineke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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