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위의 아이들 난 책읽기가 좋아
구드룬 파우제방 글, 잉게 쉬타이네케 그림, 김경연 옮김 / 비룡소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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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2023.5.28.

숲책 읽기 200



《나무 위의 아이들》

 구드룬 파우제방 글

 잉게 쉬타이네케 그림

 김경연 옮김

 비룡소

 1999.7.20.



  《나무 위의 아이들》(구드룬 파우제방·잉게 쉬타이네케/김경연 옮김, 비룡소, 1999)을 처음 읽을 무렵, 이제 이 나라에는 “나무 타는 아이들”은 감쪽같이 사라졌을 텐데 싶었습니다. 어버이 가운데 아이한테 “나무 심을 마당”을 베풀거나 물려주는 이는 찾아보기 너무 어렵습니다. 배움터 길잡이 가운데 아이들한테 배움책(교과서)이 아닌 나무를 길동무로 삼거나 배움벗으로 삼아 즐겁게 뛰놀도록 틈을 내주는 어른이 있으려나 궁금했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이 타고 오를 나무를 건사하는 길잡이(교사·교감·교장)는 예전부터 아예 없거나 아주 드뭅니다. 나무타기를 하려면 가지를 함부로 치지 않을 노릇입니다. 타고 오를 나무라면 여러 나무가 자라야겠지요. 나무 곁에는 풀밭이 흐드러지면서 갖은 들꽃이 피고 질 노릇이요, 갖은 풀벌레에 개구리에 뱀에 제비에 참새에 복닥복닥 어우러질 수 있어야 합니다.


  푸나무만 우거지는 숲이 아닙니다. 숱한 새가 나란히 깃들어야 숲입니다. 벌나비에 풀벌레가 마음껏 살아가는 곳이 숲입니다. 골짝물이나 냇물이 싱그럽고, 온갖 짐승이 사이좋게 살아가는 데가 숲입니다. 그러니, 이 나라에는 “나무를 돌보며 물려주는 어버이나 어른”도 거의 자취를 감추고, “숲다운 숲과 나무다운 나무”도 자꾸 사라지거나 밀려나거나 죽어버립니다.


  그나저나 “나무 위”는 하늘이라, 아이들은 “나무 위”에 있지 않아요. 아이들은 “나무를 타고 앉을” 뿐입니다. 새라면 나무 위로 날 테지만, 아이들은 “나무를 타면서” 놉니다. 이 아름책이 한글판으로 나온 지 벌써 스무 해가 훌쩍 지났습니다만, 이제라도 책이름을 바로잡기를 바랍니다. “나무 타는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나무타기를 하기에 나무를 익히고, 나무를 사랑하고, 나무를 돌아봅니다. 아이들은 맨발로 풀밭을 달리기에 풀꽃을 사귀고, 풀꽃을 품으며, 풀꽃을 아낍니다. 아이들은 글을 몰라도 되고, 종이책이 없어도 되고, 배움터(학교)조차 없어도 됩니다. 아이들한테는 첫째로 숲이 있을 노릇이고, 둘째로 냇물과 샘물과 바다가 있을 노릇입니다. 셋째로 새와 풀벌레와 숲짐승이 있을 노릇에, 넷째로 해바람비에 풀꽃나무가 싱그러이 어우러진 즐거운 보금자리가 있을 노릇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이가 사라지는 시골’이 대단히 많습니다. 아니, 우리나라 모든 시골에서는 아이가 사라집니다. 시골에서 아이가 왜 사라질까요? 시골에는 숲부터 짓밟혀 사라졌어요. 시골에는 아이들이 스스럼없고 느긋하게 뛰어놀면서 어울릴 숲이 확 밀려나고, 온통 죽음물(농약) 수렁입니다.


  시골을 살리고 싶나요? ‘인구소멸지역’에서 벗어날 길을 알고 싶은가요? 나무를 심으셔요. 죽음물(농약)을 몽땅 걷어내셔요. 아이들을 사슬(학교·입시지옥)에 가두려는 얼뜬 마음을 털어내셔요. 흙을 만지고 풀꽃을 쓰다듬고 나무를 안으면서 하루를 새하고 노래할 틈과 자리와 살림을 짓는다면, 다시 아이들이 태어날 수 있고, 태어난 아이들이 놀 수 있으면, 이 나라는 아름답게 거듭날 만합니다.


ㅅㄴㄹ


움베르토는 나무에 올라가 본 적이 없어. 움베르토 집 정원에선 나무에 올라가선 안 되었거든. 하긴 나무에 올라가도 된다고 해도 친구도 없이 혼자 덜렁 무슨 재미가 있겠니. (26쪽)


세뇨르 리폴은 횃불을 발로 밟아 껐어. 두 손이 덜덜 떨렸어. 움베르토가 소리쳤어. “아빠, 저도 산타나네 아이들처럼 숲을 지키고 싶어요. 저는 저 애들 친구고요, 또 숲의 친구예요. 숲이 이대로 있었으면 좋겠어요.” 세뇨르 리폴이 대답했어. “그렇게 되면 새 밭을 갖지 못한다, 움베르토.” 움베르토가 물었어. “왜 우리에게 밭이 더 필요하지요? 우린 잘살고 있잖아요. 하지만 숲은 모두에게 필요해요. 산타나네 식구들도, 우리 리폴네 식구들도, 심지어 여기서 멀리 살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숲이 필요해요. 숲은 물과 좋은 공기를 주니까요. 여기서 살고 있는 여러 동물들도 숲이 필요하고요.” (51쪽)


움베르토가 외쳤어. “아빠, 아빠가 숲을 태우신다면, 나중에 제가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주시는 농장은 갖지 않겠어요! 옳지 못한 것은 갖지 않겠어요!” 세뇨르 리폴은 여전히 말이 없었어. (52쪽)


#DieKinderindenBaumen #GudrunPausewang #IngeSteineke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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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이전의 마음
나카야 우키치로 지음, 후쿠오카 신이치 엮음, 염혜은 옮김 / 목수책방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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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노래 숲책 2023.4.18.

숲책 읽기 195


《과학 이전의 마음》

 나카야 우키치로 글

 후쿠오카 신이치 엮음

 염혜은 옮김

 목수책방

 2017.6.9.



  《과학 이전의 마음》(나카야 우키치로/염혜은 옮김, 목수책방, 2017)을 읽었습니다. 읽기는 읽었는데 엮음새가 너무 어지럽습니다. 꾸밈결(디자인)을 남달리 보여주려고 했구나 싶은데, ‘꾸민 멋’으로 뒤죽박죽 벌리고 좁히고 늘리고 하다 보니 눈이 아프군요.


  일본사람이 여민 말씨 가운데 하나인 ‘과학’은 ‘科學’으로 적습니다. 대단하다 싶은 뜻을 품은 이름이 아닌 ‘과학’입니다. 일본이건 다른 이웃나라이건, 이 배움길은 “밝히는 길”입니다. 우리말로는 ‘밝힘길·밝은길·밝길’로 받아들이고 바라볼 만한 ‘과학’입니다.


  그러니까 “과학 이전의 마음”이라면, “밝히기 앞서 마음”이요, “낱낱이 파헤치려 하기 앞서 무엇을 바라보며 살았나” 하는 길을 짚는다는 얼거리라고 하겠습니다. 해묵은 이웃나라 책을 오늘날 되읽으려 한다면, 오직 이 하나 ‘마음’ 때문일 테지요.


  우리나라에도 ‘밝히는 길’을 걸어간 분이 많습니다. 이 가운데 ‘조복성’ 님이 있습니다. 일본사람 글을 책으로 여미기에 나쁠 일은 없으나, 우리는 조복성 님이며 석주명 님이 일찌감치 남긴, 또 주시경 님 같은 어른이 일찌감치 맨바닥에서 뒹굴면서 캐낸 이슬 같은 이야기꽃을 오늘말로 가다듬어서 풀어내어 함께 읽을 수 있다면, 스스로 이 ‘마음씨앗’을 새록새록 가꿀 만하리라 봅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자꾸자꾸 ‘천황’을 들먹이는 글을 왜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더군요. ‘천황을 섬기는 과학’이라면, 말 다 하지 않았을까요?


ㅅㄴㄹ


아무튼 천황이 영하 25도 저온실에 방문한다는 자체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또한 천황 앞에서 만에 하나라도 눈 결정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보통 큰일이 아니라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34쪽/1947.1.)


비과학적 교육을 받은 내 자신이 훨씬 더 행복했다고 힘주어 말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운星雲이 온몸을 휘휘 감고 있는 허공과 비녀를 꽂은 뱀은 내 과학의 모태다. 사람들은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내 자신만은 끝까지 이것들을 소중하게 가슴속에 간직할 생각이다. (161쪽/1946.10.)


분화나 대지진 전에 꿩이나 새가 도망간다는 이야기도 완전히 유언비어는 아니다. 새들이 실제로 토지의 파동을 감지한다는 게 밝혀지면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291쪽/1950.6.)


생활이 바빠지지 않으면 전기제품도 사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가정에 가전제품이 들어오면서 옛날에 비해 굉장히 생활이 편해진 것 같지만 사실 옛날보다 더 한가해진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옛날보다 바빠진 사람이 훨씬 더 많다. (361쪽/(1962.2.)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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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 - 나를 키워 준 시골 풀꽃나무 이야기
숲하루(김정화) 지음 / 스토리닷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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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 숲노래 환경책 2023.4.5.

숲책 읽기 194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

 숲하루

 스토리닷

 2022.12.13.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숲하루, 스토리닷, 2022)은 2022년에 태어난 ‘올해책’이라고 여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만 한 책이 태어날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풀꽃책(식물도감)을 들추어야 풀꽃을 알 수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 풀꽃을 지켜보고 돌아보고 살펴볼 적에라야 풀꽃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학교 농학과’를 다녔기에 풀꽃을 알 수 있지 않습니다. ‘대학교수’쯤 해야 풀꽃을 알 수 있지 않아요. 풀꽃책(식물도감)을 쓰거나 엮은 적잖은 글꾼 가운데 ‘책에 이름을 담은 풀꽃’을 모조리 먹어 본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스스로 먹어서 스스로 몸이 어떻게 바뀌는가를 느껴 보지 않는다면, 풀꽃이 어떤 보람(효능)이 있는지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먹어 보지 않은 풀꽃이면서 어떻게 풀꽃 보람(효능)을 글로 적을까요?


  풀꽃을 알려면 씨앗부터 누리면 됩니다. 씨앗을 손바닥에 얹고서 가만히 기운을 느끼고, 씨앗을 밥으로 삼아 고마이 먹고, 이 씨앗을 땅에 놓아 무럭무럭 자라도록 하고, 봄에는 봄잎을 여름에는 여름잎을 가을에는 가을잎을 나물로 삼을 노릇입니다. 그런데 봄나물이라 해도 새벽이슬이 내린 잎하고 낮볕이 따끈따끈 스민 잎하고 별빛이 살며시 내린 잎은 맛도 결도 숨도 다릅니다.


  쑥 하나만 알려고 해도 열 해로는 어림없습니다. 흔히 봄쑥·가을쑥처럼 말하지만 2월쑥·3월쑥·4월쑥·5월쑥이 다 다릅니다. 10월쑥·11월쑥도 다른데, 하루하루 더 다르기까지 합니다. 또한, 뜯는 때에 따라서도 달라요. 자라는 땅에 따라서도 다를 뿐 아니라, 쑥 곁에 어떤 나무나 풀꽃이 자라는가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모과나무 곁에서 자라는 쑥이라면 모과빛을 살포시 담습니다. 뽕나무 곁에서 자라는 쑥이라면 뽕빛을 살몃살몃 담지요. 그러나 이런 결과 살림과 이야기를 찬찬히 짚은 풀꽃책(식물도감)은 여태 안 나왔습니다.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은 책이름처럼 풀꽃나무하고 놀던 어린 나날을 이야기로 여밉니다. 경북 의성 멧골자락에서 태어나서 자란 시골순이는 엄마아빠 사랑을 듬뿍 누리면서 하루하루 꿈을 키웁니다. 아직 고린틀(가부장제)이 단단하던 지난날이요, 시골은 고린틀이 더 세다고 하지만, 글님 아버지는 고린틀을 그다지 안 내세운 듯싶습니다. 앞장서서 바꾸기는 어려웠어도 고린틀이 그대로 흐르기를 바라지 않으셨구나 싶고, 이 마음이 들꽃씨앗으로 땅에 드리워 천천히 자라났구나 싶습니다.


  지난날 시골사람은 ‘참정권’ 같은 어려운 먹물말은 몰랐을 테지만 아이들한테 집안일과 흙일을 골고루 맡길 줄 알았습니다. 지난날 시골에서는 순이도 돌이도 똑같이 집안일을 하고 흙일을 맡았습니다. 아이들도 어버이 곁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함께 쉬고 함께 자고 함께 놀고 노래하면서 마음빛을 가꾸었습니다.


  흔히들 “아이들한테 자연을 물려주어야 한다”고들 말하는 듯싶으나 ‘자연’이란 뭘까요? 둘레(사회)에서 하는 말은 걷어치우고서 “아이한테 물려줄 숲을 어른부터 아름답게 누리면서 함께 사랑하자”고 새롭게 말을 할 줄 알아야지 싶어요.


  생각해 봐요. 왜 플라스틱에 담은 물을 사다 마셔야 하지요? 가뭄이라 물이 모자라다는 핑계는 씨알도 안 먹힙니다. 물은 안 모자랍니다. 몇몇 일터(기업)에서 땅밑물을 펑펑 뽑아내어 마구잡이로 돈벌이를 할 뿐입니다. 왜 제주물을 온나라 곳곳에서 플라스틱에 담아서 사다 마셔야 하나요? 이 얼뜬짓을 얼른 멈출 노릇 아닐까요? 그러나 온나라 곳곳은 땅밑물을 뽑아대는 무리가 퍼지기만 합니다. 우리는 이런 바보나라를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없습니다. 누구나 땅밑물을 맑고 넉넉하게 누릴 수 있는 아름나라를 물려줄 일입니다. 누구나 마당에 나무를 심고 풀꽃을 누리는 즐거운 보금자리를 물려줄 일입니다.


  풀 한 포기하고 얽힌 사랑을 누구나 글로 여밀 수 있기를 바라요. 꽃 한 송이하고 맺은 살림을 서로서로 글로 담을 수 있기를 바라요. 나무 한 그루하고 마주한 삶을 스스로 글빛으로 밝힐 수 있기를 바라요.


  글은 삶에서 태어납니다. 겉치레를 하는 삶이라면 겉글을 꾸밉니다. 속가꿈을 하는 삶이라면 속빛이 환한 글을 씁니다. 억지로 보기좋게 꾸미려 드는 몸짓이라면 ‘짜맞춤·만듦’으로 글을 내놓겠지요. 삶짓기(밥짓기·옷짓기·집짓기)를 품고 사랑하는 마음으라면 ‘마음짓기’라는 숨결로 글을 펼 테고요.



ㅅㄴㄹ


어릴 적 일인데, 마을을 막 벗어나 오빳골을 오를 적에 앞서간 마을 언니오빠를 따라잡으려고 막 뛴다. 마음은 바쁜데 뛰다가 돌에 걸려 고꾸라진다. 옷도 버리고 손도 따끔한데 윗길에서 보고 낄낄 웃는다. 나는 씩씩거리면서도 누가 한 짓인지 묻지 않았다. (가는잎그늘잔디12쪽)


한 벌 털고 나면 다시 네 단을 아버지가 묶어 두면 나는 밑으로 기어다니며 놀았다. 어머니는 한 톨이라도 깨가 땅에 떨어질까 싶어 살살 터는데 깨단 밑으로 지나가면서 흔들려 깨가 땅에 많이 떨어진다. (깨/37쪽)


골라 다니며 우리가 찾아다니던 돌나물은 이제는 길가까지 내려와도 뜯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숟가락을 부딪치며 떨거덕거리며 먹던 우리는 그곳을 떠났는데, 네가 남아서 골을 푸르게 지키네. 이제 마음껏 꽃을 피우렴. (돌나물/73쪽)


아홉 살에서 열세 살 적에 본 밤하늘과 여름밤은 어린 날 하나뿐인 책이다. 별을 헤아리면서 잠이 든다. 새벽이슬을 맞으면 방으로 옮기는데 찬기운에 새벽에 깨서 혼자 방으로 건너가기가 싫었다. 네 시가 되면 일어나는 아버지는 나를 안고 방에다 누인다. 내 몸이 뜨락을 오르는 줄 느낀다. 설핏 잠이 깨도 자는 척한다.(모깃불/109쪽)


오가는 길에 뒤가 마려우면 하나둘 보리밭 이랑에 들어갔다. 보리밭이 길가에 있어 아이들이 지나가면 몸을 숨기고 뒷일을 봤다. 우리 집은 땅이 얼마 없어서 보리를 얼마 뿌리지 못했다. 보리를 밟으면 좋다고 하면서도 우리 보리를 밟지 않고 어머니도 남일이 바빠 보리를 밟지 않았다. (보리/137쪽)


이 다래가 익어 다래꽃이 피었다. 찬바람이 불면 가시가 송송 난 밤이 쩍 벌어지듯 딱딱한 다래가 쩍 벌어졌다. 허옇게 벌어지면 다래를 밍(명)딴다. 손으로 쏙쏙 뽑듯 솜을 꺼냈다. 솜은 부드럽지만, 나무와 다래가 말라 딱딱했다. 솜을 뽑는 일이 재밌었다. (솜꽃/173쪽)


잔디는 배움터에서 시켰기 때문에 훑기도 했지만 팔려고 훑기도 했다. 어머니 아버지도 많이 훑었다. 재 너머 덥니미에 소풀을 먹이면서 잔디씨를 훑는다. 온집안이 훑어 한 되가 모이면 어머니는 저자에 가서 팔았다. 우리는 잔디씨를 온집안이 훑어서 파는데 배움터에서는 왜 거저로 잔디씨를 거두는지 못마땅했다. (잔디/201쪽)


어른이 되니 어머니처럼 호박죽을 쑨다. 호박을 갈고 밀가루 아닌 찹쌀가루를 넣고 콩 아닌 팥을 넣고 설탕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었다. (호박꽃/239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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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바꾸는 새 - 새의 선물을 도시에 들이는 법
티모시 비틀리 지음, 김숲 옮김 / 원더박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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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숲책 / 숲노래 책읽기 2023.4.4.

숲책 읽기 192


《도시를 바꾸는 새》

 티모시 비틀리

 김숲 옮김

 원더박스

 2022.1.5.



  《도시를 바꾸는 새》(티모시 비틀리/김숲 옮김, 원더박스, 2022)처럼 요즈음은 ‘서울에서 새바라기’를 하는 사람이 부쩍 늘고, 이런 줄거리를 다루는 책이 제법 나옵니다. 다만, 부쩍 늘고 책이 제법 나오기는 할 뿐입니다. 아직 모두 얕습니다. 무엇이 얕은가 하면, ‘새가 궁금하면 새한테 바로 물어보면 될 노릇’인데, 우리 스스로 ‘새한테 곧바로 물어볼 마음’이 아닌 ‘조류학자란 이름인 전문가한테 물어보면서 새이름을 외우는 길’에서 맴돌기만 합니다. 길드는 굴레입니다.


  2023년 4월에 “풀꽃도 소리를 지른다”는 이야기가 떴습니다. 이스라엘에서 ‘풀꽃소리’가 어떻게 들리는가를 살폈다지요. 이 이야기를 듣거나 읽으면서 무엇을 느낄 만한가요? “그래, 그분(전문가·과학자)들이 말하니까 믿을 만하구나! 여태 몰랐네!” 하고 여기는지요? 아니면 “그래, 그이(전문가·과학자)들은 이제서야 알아내어 말할 뿐, 풀꽃은 먼먼 옛날부터 우리 곁에서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속삭이면서 함께 살아왔지. 예전에는 누구나 풀꽃소리에 풀꽃수다에 풀꽃노래를 누리면서 살았지.” 하고 여기는지요?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를 못 듣는 사람이 수두룩하지만,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비가 날갯짓하는 소리를 못 듣는 사람이 많지만, 나비가 날갯짓할 적마다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햇살이 퍼지는 소리를 느끼거나 듣나요? 별빛이 드리우는 소리를 느끼거나 듣나요? 바닷물이 출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땅밑에서 샘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나요?


  우리가 스스로 눈귀를 안 열었을 뿐, 풀꽃도 새도 풀벌레도 개미도 나비도 별도 해도 흙도 모래도 늘 ‘소리·수다·이야기·노래’를 사람들한테 들려주었습니다. 이러한 ‘소리·수다·이야기·노래’를 느낀 사람들은 ‘글을 안 쓰고 시골이나 숲에서 수수하게 아이를 낳아 돌보는 살림지기로 살아오’면서 도란도란 조촐하게 하루를 그리고 누렸어요. 이러한 풀꽃소리나 나비수다나 별빛노래를 안 듣거나 못 듣거나 ‘그런 소리 따위는 없어!’ 하고 쳐내는 이들은 힘·돈·이름을 앞세우게 마련이었어요.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봐요. 새 한 마리는 서울(도시)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매캐하고 빽빽하며 시끄러운 서울’이 아닌 ‘풀꽃나무가 우거지고 비바람이 감겨들고 별빛에 햇빛이 춤추던 숲마을 서울’이던 무렵을 온마음과 온몸으로 아는 작은 새 한 마리를 작은 사람으로서 마주하고 만나고 맞이할 수 있으면, 서울도 시골도 아름드리 푸른터로 바꿀 수 있습니다.


  종잇조각(졸업장·자격증·명함)을 버리고 나뭇잎하고 풀잎하고 꽃잎을 손바닥에 얹으면서 새노래를 반길 줄 안다면, 온누리를 아름답게 바꾸는 사랑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쇳덩이(자동차)에 몸을 싣기만 한다면, 매캐하고 빽빽하며 시끄러운 서울이 더 단단히 뿌리뻗도록 이바지합니다. 두 다리로 사뿐사뿐 풀밭을 거닐면서 마음을 기울여 새랑 이야기밭을 짓는다면, 우리 스스로 눈부시게 거듭나면서 서울도 시골도 저절로 바꾸어 낼 만합니다. 《도시를 바꾸는 새》는 썩 나쁘다고 여길 책은 아니지만 ‘새한테 안 묻고 전문지식에 기대려 하는 대목’에 기울고 말기에 굳이 손에 쥘 만한 책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새를 만나고 싶으면 책을 내려놓아요. ‘멀리보기(쌍안경·망원경)’도 집어치워요. ‘꾼(전문가·조류학자)’이 붙인 새이름에 얽매이지 말고, 먼먼 옛날부터 ‘아이를 낳아 사랑으로 돌본 수수한 엄마아빠가 붙인 수수한 새이름’을 떠올리면서 나긋나긋 휘파람을 부는 몸짓으로 새를 불러요. 우리가 맨몸으로 숲에 깃들어 휘파람을 가볍게 불면, 새는 귀를 쫑긋하면서 우리 어깨에 내려앉고, 우리 머리에 날아앉으며, 우리 손바닥에 푸득푸득 날갯짓을 접으면서 가만히 깃들고, 우리 눈을 똑바로 봅니다.


  ‘꾼(전문지식)’을 붙잡을 적에는 서울(도시)을 못 바꿉니다. 꾼을 치워야 비로소 서울을 바꿀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부터 갈아엎습니다.


ㅅㄴㄹ


새의 울음소리를 듣고 행동을 관찰하는 데는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큰 혜택을 얻는다. (28쪽)


새를 관찰하고 새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으며, 새와 함께하면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135쪽)


빛 공해는 새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 특히 박쥐에게도 위험하다. 사람도 빛 공해 때문에 별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193쪽)


우리가 관심을 쏟아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부문은 이미 만연한 파괴적인 방식의 농업이다. 한 가지 작물만 심는 단일 작물 재배와 고농도 화학약품을 사용하는 지금의 식량 생산 방법은 큰 문제다. (305쪽)


#TheBird-FriendlyCity #CreatingSafeUrbanHabitats #TimothyBeatley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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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소의 문학 - 구조 요청의 동역학 카이로스총서 55
김대성 지음 / 갈무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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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문학읽기 2023.4.1.

인문책시렁 302


《대피소의 문학》

 김대성

 갈무리

 2018.12.31.



  《대피소의 문학》(김대성, 갈무리, 2018)을 곰곰이 읽었습니다. 저는 ‘대피소’ 같은 한자말을 안 쓰지만, 이 말이 무엇을 가리키거나 뜻하는지는 헤아립니다. 우리 아이들하고 살아가며 이 말을 쓸 일은 없되, 아이들하고 함께 읽는 책이나 같이 다니는 곳에 문득 이 낱말이 나오면 풀어내 줄 테니까요. 아이들이 이 말을 쓸 일이 없더라도, 책이나 길에서 얼핏 보고서 무엇인지 알도록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어요.


  한자말 ‘대피’는 ‘달아남·내뺌’이나 ‘비낌·떠남·감·등짐’을 나타냅니다. ‘대피 + 소’ 얼개로 바뀌면 ‘돌봄터·쉼터’로 바뀌지요. 앞뒤에 붙는 말씨에 따라 쓰임새가 바뀌곤 합니다.


  마흔 살이 넘도록 그냥그냥 ‘문학’이란 한자말을 썼으나, 이제는 ‘글’이라고만 하거나 ‘글꽃’이라고도 합니다. 한자말 ‘문학’을 일본사람이 총칼을 앞세워 이 나라를 집어삼키고서 훅 퍼뜨렸기 때문에 안 쓰지 않습니다. 열아홉 살을 넘어서던 무렵에는 ‘국어’ 아닌 ‘말·우리말·한말’을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스물다섯 살을 넘어서던 즈음에는 ‘사회’ 아닌 ‘터·마을·삶터·집·나라’를 쓰자고 생각했고, 서른 살을 넘어서던 때에는 ‘학교’ 아닌 ‘배움터·집’을 쓰자고 생각했고, 서른다섯 살을 넘어서던 때에는 ‘정치·경제’ 아닌 ‘벼슬·다스림·길’하고 ‘살림·돈’을 쓰자고 생각했어요. 마흔 살 무렵에 ‘문화’ 아닌 ‘삶·꽃·살림·지음·오늘·집밥옷·길·밭·바탕·멋·놀이’를 쓰자고 생각했고, 마흔다섯 언저리에 비로소 ‘문학’을 내려놓고서 ‘글·꽃·글꽃·이야기·노래·수다’를 쓰기로 생각했습니다.


  말 한 마디를 새로 품을 적마다 스스로 피어나게 마련입니다. 다만, 이 말을 품기에 아름답거나 훌륭하지 않습니다. 저 말을 움켜쥐거나 붙잡는대서 못나거나 볼꼴사납지 않습니다. 이 말을 품는 사이에 스스로 피어나는 삶이 있고, 저 말을 틀어쥐는 동안 스스로 죽어가는 빛이 있을 뿐입니다.


  말이란 마음입니다. 마음이란 삶입니다. 삶이란 살림이고, 살림이란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넋이고, 넋이란 숨결이요, 숨결이란 빛인데, 빛이란 씨앗이고, 씨앗이란 꿈이면서, 꿈이란 밤이지요. 밤은 어느새 밤으로 갑니다. 이리하여 ‘말’을 받은 ‘밤’은 처음부터 새삼스레 꿈을 거치고 씨앗을 지나고 빛을 지나 새록새록 마음에까지 이르러요.


  우리는 밤이라는 곳에 고요히 있다가 문득 눈을 뜨면서 말을 터뜨립니다. 한달음에 ‘밤 → 말’로 나아간다고 여겨도 되지만, 이 한달음 사이에 거치거나 디디는 숱한 길을 차근차근 짚어도 됩니다. 눈을 뜨기에 나랑 너를 나누고, 나랑 너 사이에 흐르는 바람을 알아보며, 나랑 너가 우리이면서 남인 줄 깨닫습니다. 하나가 둘로 갈리면서 하늘이 열리고, 열린 하늘은 둘이자 여럿이자 모두이면서 울타리처럼 하나이기도 하기에 ‘한울’이요 ‘우리’인 줄 느낄 만합니다.


  “쉬는 글꽃(대피소의 문학)”이란 몸도 마음도 쉬는 글길이자, 바람을 마쉬는(들이쉬고 내쉬는) 글빛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글님은 부산 글판이며 서울 글판에서 맞닥뜨린 터무니없거나 얼척없거나 뜬금없는 일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새롭게 글씨앗으로 여미어 내놓았습니다. 엉터리스러운 짓을 일으킨 분들은 ‘나쁘지 않’되 ‘낫지 않’기도 합니다. 그저 그분들은 그분들 삶을 걸어가면서 그런 짓을 스스로 일으켜서 겪을 뿐입니다. 우리는 그분들을 나무랄 일도 다그칠 까닭도 탓할 이야기도 없어요. 그냥그냥 그분을 물끄러미 보면서 우리 스스로 새삼스레 여밀 오늘 이 글사랑을 헤아리고서 품으면 넉넉합니다.


  이름을 내세우려고 쓰는 글은 가엾습니다. 힘을 앞세우면서 내거는 빛꽃(사진)은 창피합니다. 돈을 벌어들이며 내놓는 그림은 불쌍합니다. 다만, 이렇게 느낄 뿐입니다. 그분들은 이름이랑 힘이랑 돈을 거머쥐면서 해낙낙하니까 그 길을 갈 뿐이에요. 우리는 이름·힘·돈이 아닌 삶·살림·사랑을 바라보기에, 시골에서도 서울(도시)에서도 숲빛으로 마음을 다독이면서 이곳에 아이들하고 도란도란 어깨동무를 하면서 놀이를 하고 노래를 할 뿐입니다.


  삶·살림·사랑에는 숨이 흐릅니다만, 이름·힘·돈으로는 숨막힙니다. 글판에서 내로라하는 분들이 이름·힘·돈을 털어내고서 홀몸으로 가벼이 서면서 아이들 곁에서 수다꽃을 피우실 수 있다면, 우리나라 글꽃에서 술판이나 노닥판은 저절로 사라질 테고, 그 나물에 그 밥인 끼리질(커넥션)이며 돌라먹기는 눈녹듯 사그라들리라 봅니다.


ㅅㄴㄹ


중요한 것은 텅 빈 이곳을 무언가로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놓쳐버린 끈을 다시 그러잡는 것이며 닫힌 문을 두드려 막힌 통로를 뚫어내 안팎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67쪽)


신경숙 사태가 2000년대 초반의 문학 권력 논쟁의 반복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반복되는 건 신경숙과 대형 문학 출판사의 공모만이 아니다.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까지 독점적인 방식으로 반복될 때 비평은 정체되고 고립될 수밖에 없다. (116쪽)


‘선배’ 편집위원들이 대개가 어느 대학의 교수인 상황에서 젊은 비평가들 또한 대부분이 대학원 출신이어서 이들의 문단 활동이나 편집회의 참여는 단순히 글을 기고하거나 잡지를 만드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생계와 직결된 경우가 많다 … 대학 강의가 문서상으론 초빙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해도 실제로는 정규직 교수가 ‘나눠주는 것’으로 관습화되어 있듯이 편집위원이라는 직책 또한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잠시 ‘할당’되는 것에 가깝다. (119, 120쪽)


오늘날의 한국 문학장은 하나의 성城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지만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의 수는 점점 늘어가고 있는 기이한 성 … 힘들게 시민권을 배당받아 성안으로 들어간 사람이 성 밖으로 나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안은 실체 없는 ‘대의’로 넘쳐나고 혼자의 몸으로 그러한 ‘대의’를 거스르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성안의 대의’는 스스로 ‘서는 것’을 스스로 ‘걷는 것’을, 스스로 ‘쓰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135, 139쪽)


‘문학의 곳간’을 연다는 것은 저마다의 생활 속에서 문학과 접속할 수 있는 다른 면들을 발명하고 실험한다는 것이다. (228쪽)


몰개성적인 케이블카는 대도시 사람들이 지방으로 내려가 그곳의 풍광을 마음놓고 감상하는 데 최적화된 관광 상품이다. (266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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