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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정면 ㅣ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43
김선향 지음 / 실천문학사 / 2016년 6월
평점 :
시를 노래하는 시 118
네 코앞에 미사일을 들이대 볼까?
― 여자의 정면
김선향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6.6.27. 8000원
나는 사내라는 몸을 입고 태어났습니다. 사내라는 몸을 입었으니 스물을 갓 넘길 무렵 군대라는 곳에 갔습니다. 군대라는 곳에 간 사내이기에 두 손에 총을 쥐면서 ‘누군가를 나쁜 놈으로 여겨서 총으로 쏘아 죽이거나 칼로 찔러 죽이거나 주먹이나 발길로 때려서 죽이는 재주’를 익히는 솜씨를 날마다 받아야 합니다.
군대에 있어야 하던 사내로서 그때에 늘 생각해 보았어요. 왜 이렇게 정갈하고 아름다운 멧골에 막사를 세우고 군사훈련을 시키는 짓을 남녘이나 북녘 모두 바보스레 해야 할까 하고요. 남·북녘은 서로 돈이 얼마나 많기에 전쟁무기와 군부대에 이토록 어마어마하게 돈을 쏟아부어야 할까 하고요.
엄마, 그거 알아? 난 노점상에서 떨이로 사온 귤 대신 고디바초콜릿이 먹고 싶었어. 단화를 신고 온종일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 같은 여자, 생리휴가도 없이 서서 피 흘리는 가장은 사절이야. (안녕, 엄마)
그녀는 늘 옆모습만 보여줬지 / 왼쪽이 웃는 듯해서 / 오른쪽을 보면 울고 있었어 / 왼쪽은 나를 사랑했고 / 오른쪽은 나를 증오하는 것 같았지 (그녀의 정면)
흔히 ‘군부대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 나라에 군부대가 없으면 저쪽에서 이쪽을 얕보고 쳐들어오리라 여기곤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아이들한테도 고스란히 이어져요. 아이들은 어릴 적에 ‘호신술’을 익혀야 합니다. 골목마다 감시카메라를 달아야 합니다. 이웃사람을 ‘이웃’이 아닌 ‘수상한 사람’으로 바라보도록 길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렇게 온 사회에 전쟁이나 감시라고 하는 바람이 불도록 하면서, 막상 사회는 그리 평화스럽거나 아늑하지는 못합니다. 경찰이나 군대가 있으니 ‘이만큼 평화롭다’고 여길 분도 있을 텐데, 막상 우리는 어릴 적부터 ‘이웃사랑’이나 ‘마을사랑’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요. 젊은 사내는 군대에서 ‘이웃을 나쁜 놈으로 여겨서 때려죽이는 재주’에 길들어야 하고요.
평화를 가꾸는 평화교육이 아니라, 전쟁무기를 남보다 더 갖추어서 남을 윽박지르거나 꺾어누르는 ‘전쟁교육’을 시키는 사회가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그러니까 한국 정치·사회는 새삼스레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조용하고 한갓지면서 평화로운 시골마을에 ‘사드’ 같은 무시무시한 미사일을 들이겠다는 정책을 내놓습니다.
자장 자장 우리 엄마 자장 자장 잘도 잔다 // 기차 타고 전철 타고 마을버스 타고 / 양손에 어깨에 들고 메고 와서는 / 문전부터 딸년에게 핀잔만 들었구려 (엄마를 위한 자장가)
동네 오빠 아는 오빠 친구의 오빠 / 신세대들은 남편에게도 오빠라 부른다지 / 쥐꼬리 월급 어디에 다 썼냐고 잔소리해대는 남편 오빠 / 결혼하더니 남이 되어버린 피붙이 오빠 / 노래를 기차게 잘하는 오빠 / 오입질에 선수인 오빠 / 입만 열면 거짓말을 늘어놓는 오빠 (오빠들)
김선향 님이 빚은 시집 《여자의 정면》(실천문학사,2016)을 읽습니다. 이 시집은 오롯이 ‘가시내(여자)’ 목소리와 눈길과 숨결이 흐릅니다. 사내(남자)한테 눌리거나 밟히거나 치이거나 차이거나 꺾이거나 눌리거나 죽는 가시내 이야기가 흐릅니다.
사내하고 가시내를 가르는 가장 큰 금이라면, 가시내는 새로운 목숨(아기)을 몸소 낳습니다. 사내는 아기를 낳는 씨앗을 몸에 건사하기는 하지만, 몸소 새로운 목숨을 낳지 못해요. 가시내는 몸소 아기를 낳으면서 새로운 사람을 새롭게 사랑하는 마음을 북돋울 수 있다면, 사내는 먼발치에서 마치 남 일처럼 구경하거나 아예 모르기까지 하기 일쑤입니다. 이러면서 우리 사회에서 사내는 젊은 나이에 군부대에 들어가서 군사훈련을 받고,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잔뜩 억눌린 몸으로 ‘성욕해소’에 마음을 빼앗기지요.
군부대 둘레에 있는 술집과 방석집을 떠올려 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조선 가시내를 비롯해서 중국과 아시아 가시내를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사로잡아서 노리개로 삼은 짓을 떠올려 봅니다. 전쟁무기를 손에 쥔 사내는 마음에 평화를 생각하거나 키우지 못해요. 전쟁무기를 손에 쥐고 군사훈련을 받는 사내는 평화롭거나 사랑스러운 마을을 즐겁게 짓는 길에 힘을 쓰지 못해요.
한국에 온 지 이태가 되어서야 / 자기 이름을 겨우 쓸 수 있는 프엉 씨 //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더니 / 호치민, 버스, 여덟 시간, 까마우, 더워 // 공부한 지 두 달이 넘었는데도 / 읽을 수 있는 단어는 열 개 남짓 / 하지만 모르는 게 없는 생선 이름들 (붉은 꽃, 흰 꽃)
북녘에서 우리 코앞에 미사일을 들이대는데 남녘에서도 북녘 코앞에 미사일을 들이대야 하지 않느냐고 여길 수 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제 아이들을 다시 생각해 봐야지 싶어요. 두 아이가 뭔가 어떤 일이 있어서 틀어져서 식식거리며 노려본다고 해 보셔요. 이 두 아이더러, “자, 신나게 싸워! 한 놈이 자빠져서 죽을 때까지 때려눕혀!” 하고 말해도 될까요?
남녘뿐 아니라 북녘에서도 군부대를 줄이고 전쟁무기를 없애도록 정치 우두머리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슬기로운 길을 찾은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한테 이런 전쟁무기가 있으니 우리한테도 저런 전쟁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외치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전쟁무기에 들이붓는 짓은 이제 그쳐야 합니다.
우리가 피땀과 같이 내놓은 돈(세금)은 바로 우리 삶터를 가꾸고 사랑하면서 아끼는 길에 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가르치는 자리에 피땀 같은 돈을 써야지요. 아프고 슬픈 이웃을 따스히 보살피면서 북돋우는 길에 피땀 같은 돈을 써야지요. 아름다운 마을이 되고 아름다운 숲이 되며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곳에 피땀 같은 돈을 써야지요.
― 피임 같은 건 여자가 알아서 해야지 / ―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야 한다 // 흡반처럼 달라붙는 말들을 뜯어내 / 쓰레기통에 처넣지 못한 채 / 비디오방에 갔다 // 거기서 차승원, 설경구랑 놀았다 / 눈물이 쏟 빠지도록 웃다가 / 간이소파에 파묻혀 / 웅크리고 잠을 잤다 (도둑고양이)
너무 추워, 엄마. / 봄은 어디에 있어요? / 세 살 딸아이가 묻는다 (봄은 어디에)
시집 《여자의 정면》을 가시내뿐 아니라 사내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읽는 모습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이 나라에서 이 땅에서 이 지구라는 별에서, 수많은 가시내가 사내한테 밟히고 눌리고 차이고 꺾이고 얻어맞고 노리개로 뒹굴어야 하던 발자국을 이 조그마한 시집에서 두 눈 똑바로 뜨고 읽는 모습을 곰곰이 그려 봅니다.
전쟁무기는 멈추어야 합니다. 전쟁이 아닌 평화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싸움은 그쳐야 합니다. 싸움이 아닌 어깨동무로 거듭날 노릇입니다. 참된 사랑이 되도록, 착한 이웃이 되도록, 고운 살림이 되도록, 이제 우리 보금자리하고 마을을 바라볼 때입니다. 내 이웃 코앞에 미사일을 들이대는 바보스러운 짓은 이처럼 똑같이 바보스러운 짓으로 우리한테 돌아옵니다. 오직 사랑만이 사랑으로 돌아오고, 오로지 평화만이 평화로 돌고 돕니다. 2016.7.22.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